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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26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2.09.15 12:04
조회
48
추천
2
글자
11쪽

83. 한 번 봐준다

DUMMY

트리아트 셋.

그의 마지막 마법은 실로 놀라운 마법이었다.

몸 속을 타고 돌던 피 전부가 모조리 빛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빛은 검이 되었다.

하늘을 찢으며 떨어져 내린 빛의 검은 그대로 용의 머리를 갈랐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영웅왕.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마법의 영역에 닿았다 전해지는 자.

역사상 가장 강한 인간이라고 불리는 영웅왕조차 용의 비늘에 흠집을 낸 것이 전부였다.


그런 용을 단번에, 그것도 깔끔하게 두 동강을 내버린 마법이다.


이 마법을 경험한 넷은 자신이 이 마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숨을 걸어도 부족했다.


하지만 비슷하게나마 흉내내는 것이라면 가능했다.

흉내내는 대가로 목숨을 바쳐야 하는 극악의 효율을 자랑하는 마법이지만 대신 그만큼 위력 하나는 좋을 것이라는 것이 넷의 생각이었다.


어찌되었든 용을 죽였던 마법이다.

불완전한 마법이라고 해도 그게 용도 아닌 파편인데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렴.

무려 용을 죽인 마법인데.


그러니 넷은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자.


"후우... 바로 구하러 가죠. 제게 파편을 죽일 방법이 있어요."


그녀의 비장한 얼굴을 본 이트나가 말했다.


"당연한 말을 뭘 그렇게 비장하게 하고 있어요."

"... 에?"


그러면 비장해야죠.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가 가벼울 리가.


"넷양. 혹시 목숨이라도 걸 생각이에요?"


옆에서 절대 안된다며 호들갑을 떠는 듀시아를 넷이 대충 밀어냈다.

자신의 질문에도 말 없이 비장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넷에게 이트나가 다시 물었다.


"목숨을 걸겠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 파편을 죽일 방법이라는 게 이번에 새로 배운 마법을 말하는 거겠죠?"

"... 네."

"그래도 대현자는 죽이지 못해요."


음.

이건 예상 못했는데.

아니 학교장님이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이 마법 진짜 효과 미쳤는데.

막 용도 죽이는데요?


"이 기회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죠. 넷양은 트리아트 셋이 아니에요."


아니.

제 이름이 트리아트 셋이라면서요.

여전히 불리면 소름돋고, 익숙하지 않지만 일단 제 본명이 트리아트 셋이라고요.


물론 지금 말하는 트리아트 셋이 단순히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 즉 저주받은 마법사를 말한다는 것을 넷은 알고 있었다.


"... 그거야 당연하죠."

"아니. 중요한 문제에요. 모든 마법에 능한 자는 오직 트리아트 셋 그분 한 분뿐이에요."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그의 말투에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넷의 답을 듣고서야 이트나는 다시 원래 문제로 돌아왔다.

그녀가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낸 해결책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니 결국 제자리.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는데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건 넷의 생각이었고 이트나는 이미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은 상태였다.


"신비씨? 일단 그걸 건네주시겠어요?"

"그거라면... 절대 안될 말이다. 그건 나중에..."

"괜찮아요."


이트나가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신비는 고집을 부려볼까도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일이 틀어져도 자기 탓이 아니라며 뚱뚱한 고양이는 앞발을 높이 들더니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폭신한 신비의 발바닥이 땅에 닿은 순간 작은 빛이 일며 가죽 주머니가 등장했다.


뭔 놈의 고양이가 공간에 관련된 마법을 써?

이렇게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신비가 보여준 마법은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었다.

신비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잠시 부여한 능력 중 하나였다.

그나마도 죽음의 숲에서만 가능한 것이었고 말이다.


"이걸 여기다가 쓰면 어쩌자는 건지... 저 무지몽매한 것, 어리석은 것, 미련한 것."


투덜거리며 가죽 주머니에 머리를 처박은 신비가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에는 그 입에 무언가 물려있었다.


"어? 마법! 아니 그보다 그건..."


신비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낡은 지팡이였다.

자주색이 섞인 짙은 갈색의 지팡이.

본래 모양에서 거의 다듬지 않아 몸체는 이리저리 휘어있었고, 나무의 겉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살려둬 잡으면 손에서 까끌거리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질 터였다.

요컨대 유행이 한참 지난 가공법으로 만들어진 지팡이였다.


오래된 가공법을 따른 지팡이답게 몸체 끝에 꼭 작은 마법석 하나라도 달고 나오는 요즘 지팡이와 다르게 마법석 하나 박혀있지 않은 투박하기 짝이 없는 지팡이.

유독 눈에 익는 모습에 넷이 가까이 다가가 지팡이를 살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실금이 지팡이 중간에 나있었다.

이렇게까지 낡은 지팡이는 보기 힘들다.

그것도 중간에 부러졌던 흔적이 남은 지팡이라면 말이다.

역시나 이 지팡이는 넷, 자신의 것이었다.


"이거 제 지팡이인데 왜 이걸 신비가..."

"설명은 가면서 할테니 일단 서두르죠."


난데없이 등장한 자신의 낡은 지팡이를 건네받은 넷은 우선 이트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


"흐음... 파편 쪼가리가 끈질기구나."


검은 물감을 이용해 치안군 대장의 몸을 난도질한 이레는 그럼에도 파편이 죽지 않은 것을 보고 재차 검은 가시를 만들어냈다.


신음소리도 없었다.

오직 사람의 몸이 꿰뚫리는 소리만이 어두운 공간을 채웠다.

그렇게 한참을 찌르고 있으니 검은 가시 틈에서 무언가 붉게 일렁였다.


"흥."


이센이 이레를 밀어내니 두 사람 사이로 얇디 얇은 광선이 지나갔다.

이레는 마법 탈진이 오고 있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파편의 몸에서 물러난 검은색 가시들이 재차 파편의 몸을 관통하였다.


이제 곧이다.

처음 세워놨던 계획대로 여기서 치안군 대장 몸속에 있는 파편의 힘을 다 소진시킨다면 남은 것은 이번대의 아내를 조종하고 있는 힘 뿐이다.


여기서 파편은 본체가 죽어도 절대로 아내의 몸을 조종하는 힘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쪽을 활로라 여기겠지.

가능성을 따져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이쪽은 무려 본체의 힘을 거의 다 소진시킨 사람들이고 저쪽은 본체에서 뽑아낸 그 조금의 힘에 휘둘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저쪽의 사람들을 처리하고 적당한 몸을 차지하는 것이 살 가능성이 더 높았다.

물론 그때가 되면 옛말의 아이를 비롯한 무리가 그 전투에 난입할 것이다.


'옛말의 아이의 무리가 합류한다면 무난하게 사번대는 구하겠지. 거기에 운이 좋다면 이번대까지 구할 수 있을 것이고.'


딜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파편이 엮인 시점에서 파편에 조종당하고 있는 제 엄마까지 구해낼 여력이 혁명단에는 없었다.

일단 이레가 장로에게서 전해들은 정보로는 딱 사번대의 구출 여부만이 나와있을 뿐.

이번대나 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즉, 거기서부터는 오롯이 그들의 선택의 달려있는 것이다.

특히 딜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녀의 선택에 따라서 아버지인 이번대라도 살리거나, 혹은 아버지 어머니 둘 다 잃거나.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뭐.

그것도 일단 여기서 치안군 대장의 숨통을 끊어놔야 가능한 것이다.


몇 번째인지도 모를 가시가 빠져나가니 그곳에는 미동조차 않는 치안군 대장이 보였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지만 피가 나지 않는 것이 파편이 얼마남지 않은 제 힘으로 상처를 틀어막은 것 같았다.


이센이 말했다.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그래."

"힘드시면 제가 마무리 할까요?"


부들부들 떠는 이레의 손을 본 이센이 물었지만 그녀는 끝내 제 손으로 끝낼 것을 고집했다.


"하여간 꼰대. 고집은..."

"네가 오늘 나를 꼰대라 부른 횟수는 다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그만큼 혼날 줄 알아."

"와."


쪼잔해.

나이도 많이 잡수신 사람이 마음 좀 넓게 쓰시고 그러지.


"!"


이레가 눈을 돌연 부릅떴다.


"이센! 도망치거라! 어서!"

"갑자기 왜 그러는..."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이레가 그를 다급히 밀어냈다.


"아니 무슨 일인데!"

"잔말말고!"


이레가 품 속에서 물감이 든 병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지직


쫘아아악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


이레 바로 뒤.

검은 물감이 칠해진 공간이 거칠게 찢어지고 있었다.

그래.

공간이 찢어지고 있었다.


키이이잉


"할머니!"


찢어진 공간의 틈 사이로 붉은 광선이 점멸했다.


이센의 비명소리.

확장되는 그의 눈동자.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려는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멍청한 것. 도망치라니까.'


그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이레는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점검했다.


'심장... 쪽인가.'


붉은 광선이 꿰뚫은 부위가 영 좋지 않았다.

이래서야 저 어린 놈을 구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왜 갑자기 대현자가 움직인 것인가?

그런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현재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센만이라도 이곳에서 내보내는 것.

그것이 그녀가 집중해야할 부분이었다.


찰나의 시간동안 자신의 다음 행동을 결정한 이레가 손을 휘저었다.

그녀가 꺼낸 병 속의 물감이 튀어나와 넓게 퍼졌다.


"안돼! 듣고 있어? 할머니! 안된다고!"


'안돼는 뭐가 안돼 이놈아. 잔말말고 썩 꺼지거라.'


그대로 물감이 이센을 덮으려는 순간이었다.


"안되지 안돼."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물감이 멈췄다.

이레를 향해 날아오던 이센 역시 멈췄다.

벌어진 틈 사이로 사뿐한 발걸음과 함께 넘어온 이는 대현자였다.


대현자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하얗게 센 장발을 하나로 묶어 단정히 한쪽 어깨에 늘어뜨려 놓고있었다.

은은한 빛을 뿌리는 하얀 망토, 파란 빛망울을 쉴 새 없이 뿜어대는 천년목 지팡이.

조금의 다급함도 없는 차분한 발걸음.


그 모든 모습이 평소의 대현자와 같았지만 두 사람은 대현자가 대현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고 있으면 자못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대현자의 모습 주변으로 사납게 일렁이는 힘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레가 칠한 검은색 물감보다 더 검은 힘.


"일단 죽어라."


대현자의 말과 함께 그녀 주변에서 일렁이던 힘이 날카로운 날모양으로 바뀌었다.


"으으읍!"


입까지 막힌 이센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우드득


억지로 제 몸을 묶고 있는 구속에서 벗어나려했지만 뼈만 부러질 뿐이었다.

정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이레가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그렇게 검은색 칼날이 이레의 목에 가닿기 직전이었다.


우우우우웅


공기가 떨리는 소리와 함께 빛이 터져나왔다.

빛을 인지한 순간에 이미 그 자리에는 이곳에 없던 이들이 서있었고.


채앵


구불거리는 빨간 머리를 흩날리며 대현자 앞으로 끼어든 소녀가 대현자의 검은 칼날을 튕겨냈다.


"허억... 허억. 저희 안늦었죠?"


파지지지직


검은 머리를 한 소년이 뿜어낸 번개가 사방으로 튀며 주변을 샛노랗게 물들였다.

이센을 구속하고 있던 힘이 번개에 타들어가 사라졌다.


"후우... 그런 거 같은데?"


공간을 넘어 대현자 앞에 뛰어든 이들은 넷과 듀시아였다.


넷이 손에 쥐고 있는 검으로 대현자를 겨누었다.

하얗게 빛나는 빛의 검이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살려는 드릴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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