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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04 22:09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11,097
추천수 :
684
글자수 :
1,309,674

작성
22.10.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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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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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95.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DUMMY

떼르와 펠페림.

두 거대 가문.

그 중 펠페림의 가주가 같은 편이라는 말은 넷을 안심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일단 저희 마을은 무사하겠네요."

"..."

"학교장님? 저희 마을 무사한 거 맞...죠?"


저기요?

거기서 침묵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야기 흐름대로라면 넷의 말에 이트나가 그렇다 답을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는 입을 다물고는 미간을 좁힐 뿐이었다.


"넷. 잘 들어라. 하람과 율트나를 마을로 돌려보낸 것은 두 사람이 밖에 있으면 위험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


입을 연 것은 율레 부대장이었다.


"다른 이유라뇨?"

"떼르 가주, 그가 왜 가주 회의를 소집했다고 생각하지?"

"그야 저희 가문을 노리고..."

"그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허술했다.

근거라고는 기껏해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의 증언 한 마디다.

거기에 해방주의자들이라고 특정지을 만한 근거 역시 환각제의 보유 여부 말고는 마땅치 않은 시점.

그나마도 정확한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습격한 자들 중에 붉은 머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렇듯 죄를 입증할 근거가 빈약한데 과연 떼르 가주가 다른 가주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가?

현재 보여진 것만으로는 분명 무리가 있는 일이었다.


물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부분의 가주들이 찝찝하긴 해도 그의 계획에 수긍할 공산이 컸다.

80명의 목숨을 빼앗는 즉시 카밀로테는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 이쪽에는 펠페림 가주가 뒤를 봐주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어중간한 가문이 아니라 그 펠페림이다.


펠페림 가주의 존재를 생각하면 떼르 가주가 이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오지 않는 이상 그가 원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떼르 가주가 이들 모르게 준비한 패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가 준비한 패가 확실한 패였다면 회의가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가 가주 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은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회의 시간은 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수는 몇가지 없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아직 확실한 패를 꺼내지 않았거나.

아니면 회의 자체가 그에게 별 의미가 없거나.

두 경우의 공통점은 시간을 끈다는 것.


"떼르 가주가 가주들을 붙들고 시간을 끌어서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모든 가주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

가주가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가주가 자리를 비우면 가문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진다."


음?

줄곧 잘 듣던 4인방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딜람이 물었다.


"가주님이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그 자리를 대행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요."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가문의 정점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람들 인식에는 큰 틈이 생긴다. 더군다나 지금은 이성보다 분노가 앞서는 상황."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등을 떠밀기만 해도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지금 당장이라도!"


넷이 자리를 박차려는 것을 이트나 학교장이 막아섰다.


"진정해요. 하람씨와 율트나씨가 있다면 지원을 가기 전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그래. 진정해라. 무엇보다 우리가 함부로 나서면 안된다."


현재 그들이 마땅한 명분 없이 함부로 나선다면 해방주의자라는 누명을 쓰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지원 갈 사람이 없으면 저희 부모님이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지원 갈 사람 만들고 있어요."

"누가요? 어떻게요?"

"며칠 전 흐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었죠?"

"네..."


그때 딜람과 듀시아 품에 있던 노란 호박이 빛을 내며 떨리기 시작했다.

정규군 부대로 복귀하라는 알림이었다.


"마침 시작했네요. 일단 두 사람은 서둘러 부대로 복귀하도록 해요. 어서요. 어서."


***


"빨간 머리 년놈들을 보호한다고?"


쾅!


주먹을 내리친 책상이 반으로 부러졌다.


"도대체 제정신이야? 이 빌어먹을 노친네들이."


집무실에 앉아있던 이납솔 아훔, 치안군 부대장은 부하가 전달한 정보를 듣고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정보란 가주 회의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논의에 대한 것이었다.


별대 2조장의 증언을 들은 직후, 아훔 부대장은 치안군을 이끌고 2와4사이월 마을로 쳐들어가려고 했었다.


- 기다리게. 복수는 명확한 상황 파악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네.


떼르 가주가 한 말이었다.


"그 빌어먹을 노인네가 나에게 분명 그렇게 말했단 말이다!"

"... 떼르의 가주님께서 그렇다면 아훔 부대장님을 가지고 노신 겁니까? 그러면 저희 대장님의 복수는... 복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가주 회의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던 부하가 한 말에 아훔의 머릿속이 찬물을 끼얹은 듯 차분해졌다.


"가주 회의는 얼마나 더 남은 것 같았지?"

"그게...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의견 조율이 원할하지 않다고..."

"알겠다."


그는 제다카를 집어들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어... 어디 가십니까 부대장님!"

"은밀히 대원들을 모아라. 죽은 대장님의 복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모두 날 따라오라고."

"... 네!"


밖으로 나간 부하는 서둘러 대원들을 불러모았다.


가주들이 죄인들의 죄를 덮으려 한다.

대장님의 피를 마신 대지가 원통함에 울부짖고 있다.

이제 우리의 복수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대장님의 핏값을 물게 하자.

카밀로테의 정의를 지키자.


은밀하게 외치는 소리는 기름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대원들이 하나둘 본대 앞 대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훔 부대장은 기묘한 전율에 휩싸였다.

모두가 바라는 일.

모두가 갈망하는 일.

하나되어 이루는 일.

그 광경이 주는 마약과도 같은 느낌에 그는 처음 그에게 정보를 전해주었던 부하의 수상한 점에 대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가주 회의가 이뤄지는 곳은 천년서고,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곳이라는 것.

한 번 들어가면 모두의 동의 없이는 누구도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곳.

그곳에서 이뤄지는 회의의 내용이 실시간으로 전해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니.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것은 이미 그에게, 그들에게 사소한 것이었다.

들불처럼 일어난 분노는 그런 모든 의구심을 불사르며 타오르기만 할 뿐이었다.


***


명확히 누구를 잡아내야 하는지도 모를 모호한 명령에 심력을 소진할대로 소진한 정규군 대원들은 수색 작업을 끝내고는 모두 저마다 개인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종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모든 대원을 긴급히 소집할 때나 쓰이는 종이었다.


부대 내에 있던 자들은 물론이고 부대 밖으로 나갔던 자들까지 빠르게 훈련장에 모여들었다.

갑작스레 훈련장에 모인 정규군 대원들은 모두 어리벙벙한 얼굴이었다.


단상 위에는 사번대 대장이 서 있었으며 양 옆으로 이번대 대장과 오번대 대장이 나란히 서있었다.

웅성거리는 대원들 앞으로 뒤늦게 육번대 대장과 칠번대 대장이 걸어왔다.


펠페림 유날 육번대 대장은 대장 중 가장 어린만큼 일단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려는 모양새였지만 칠번대 대장은 오면서부터 불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세유 세슐.

그는 일번대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대장이었으며 자기에게 오는 이득이 없다면 도통 움직이지를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 그가 이렇게 화가 난 것 역시 긴급 소집으로 그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상 위에 올라서있는 사번대를 향해 쏘아붙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리 긴급하냔 말이야."

"긴급...하다기 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이번 정규군 부대를 습격했던 자들에 관한 것이니."

"... 이전에 물을 때는 입을 꾹 닫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와서 짜증이야 났지만 사번대의 말대로 해방주의자들의 정체는 중요했다.

소문으로야 빨간 머리 년놈들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정도로 칠번대는 순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장 세 명이 연루된 사건이다.

그들의 증언 한 번에 순식간에 칼이 겨누는 곳이 달라질 터.


그는 철저히 실리에 근거해 움직이는 자였다.

그 역시 저주받은 마법사의 후손들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사라질 가능성은 적었다.

무엇보다 저주받은 가문 출신의 여아를 대현자가 점찍어두고 있지 않던가.


의문이 드는 것은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이냐는 것이다.

이러면 꼭 사번대 대장이 저주받은 가문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사번대의 유일한 흠이라 할 수 있는 시원찮은 아들 녀석이 치안군에 들어가 바로 그 '넷'이라는 아이와 어울린다고는 하지만 그가 나서서 저주받은 가문을 보호할 이유는 없었다.


떠오르는 경우라고 해봐야 제 아들을 넷과 혼인이라도 시키려는 것인가 싶은데.

설마 대현자가 차기 대현자로 넷을 점찍어두고 있다는 그 말도 안되는 소문을 믿고 있는 것일까?


칠번대가 골똘히 사번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는 사이 대원들이 얼추 모였다 생각했는지 사번대가 제 목소리를 키웠다.


"지금 습격자에 대해 돌고 있는 소문을 너희들 역시 들어봤을 것이다. 2와4사이월 가문... 아니. 트리아트 가문의 소행이라고 말이다."


펠페림 디율이 서두를 떼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저... 저 미친 작자가!"


세슐 칠번대 대장은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하지만 트리아트 가문이 나와 여기 이번대 대장님의 가족을 습격했다는 것은 낭설이다."

"이보게!"


보아하니 이번대는 물론 오번대, 그녀까지 이번 성명서에 관여한 눈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발언에 가만히 있었을 리 없었을테니 말이다.

마침 그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육번대 대장이 앞으로 나서 멀리 퍼지는 사번대의 목소리를 끊어냈다.


"지금 발언...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육번대는 염려했고.


"정신이 나간 것이야? 다음에 할 말. 그게 뭐든 하지 말게."


칠번대는 뜯어 말렸다.


트리아트.

3월 마을.

모두 카밀로테에서는 금지된 이름이었다.


물론 금지어라고 해서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저주받은 마법사의 이름을 종종 말할 경우에도 트리아트란 이름을 쓰긴 했다.

하지만 일개 개인이 사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과 정규군의 대장이라는 자가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발언에 뒤따르는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같지 않았다.


정규군 대장이 굳이 붉은 머리 가문의 이름을 금지어인 트리아트라 정정해서 불렀다.

이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눈치챈 대원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커졌다.


육번대와 칠번대 대장이 막아서는 경우에 대해서 이미 이야기가 되어있던 것인지 사번대 옆에 있던 유드바와 디넷이 두 대장을 막아 섰다.


"이이익!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야!"


저들이 꾸미고 있는 일을 저지해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두고 봐야 할까?

어느 쪽이 이득인 것이지?


머리를 맹렬히 굴리던 칠번대는 육번대가 얌전히 물러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군인다운 그녀지만 동시에 상황파악이 빠른 아이다.


저지하려면 무력을 써야할 텐데 여기서 무력을 써서 저들을 제압하려고 해도 이쪽은 두 명 저쪽은 세 명이다.

사실 이미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얌전히 물러나는 것.


끊겼던 목소리가 다시 크게 울려퍼지며 웅성거리는 무리를 뒤덮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지. 이번 습격과 트리아트는 상관이 없다."


웅성거림이 줄긴 했지만 대원들 사이에 수선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이번에 내가 습격을 받은 이유는 명백하다."


그러나 이어진 디율의 발언에 훈련장에는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내가 트리아트 셋을 따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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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90.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22.09.29 56 2 13쪽
89 89.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22.09.28 49 2 12쪽
88 88. 아님 아무튼 아님 22.09.26 47 2 12쪽
87 87. 끼잉 22.09.22 46 3 12쪽
86 86. 오 오오옷 이 맛은 22.09.21 60 3 12쪽
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2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6 3 12쪽
83 83. 한 번 봐준다 22.09.15 48 2 11쪽
82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7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1 2 12쪽
80 80. 산들바람에 바다가 마르고 22.09.12 49 2 12쪽
79 79. 가족과 함께하는 밀도 있는 시간 22.09.08 50 2 12쪽
78 78. 아가리 싸움꾼 22.09.07 52 2 12쪽
77 77. 왕 신 장군 황제 대장 22.09.06 37 3 12쪽
76 76. 불효자식 22.09.05 63 2 12쪽
75 75. 멈춰 22.09.01 42 2 12쪽
74 74. 나 잡아봐라 22.08.31 38 2 12쪽
73 73.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22.08.30 41 2 12쪽
72 72.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고 22.08.29 43 2 12쪽
71 71. 바람 22.08.25 3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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