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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19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2.09.12 12:00
조회
49
추천
2
글자
12쪽

80. 산들바람에 바다가 마르고

DUMMY

카밀로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싸움을 시작할 무렵.

죽음의 숲 속 호숫가.


"크흠. 크흠! 흠."


검은 고양이 투실라고가 연신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투실라고가 꺼낸 율레 부대장의 과거 이야기는 의외로 넷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꽤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상상이 안 간다며 신기해하는 듀시아가 가장 얌전한 편이었다.

넷은 숨죽여 웃다가 사레가 들렸고 이트나 학교장은 품에서 음성 저장 도구를 꺼내 거기에 투실라고의 말을 저장해 두기까지 했다.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투실라고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주제를 바꿔보려 했지만 그들은 도통 그를 따라주지 않았다.

투실라고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에 뵈나 율레가 보였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와중에 뵈나 율레 혼자만이 씁쓸한 얼굴이었다.

이 마음씨 고운 아가씨는 자신으로 인해 루스트로님께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일 터였다.

노묘는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율레 아가씨. 다 지난 일이잖습니까? 이제 오해도 다 풀렸으니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 해묵은 감정을 풀면 되는 일입니다."

"글쎄요...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녀는 노묘의 위로에도 좀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이 짧은 소동을 마무리 한 것은 다름 아닌 뵈나 율레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의 울음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네요."

"아니요. 사실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투실라고의 말에 이트나 학교장이 답했다.


"어차피 여기 일 빨리 끝내고 가봐야 기다려야 해서요."

"그런가요?"


듣기로는 이곳에 들른 이후로 또 해야 할 일이 있다던데.

그들이 나름대로 시간을 재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투실라고는 더 말하지 않고 그들을 데리고 목적지로 향했다.

노묘는 호수 앞에 놓인 커다란 두 개의 돌덩이 사이를 지나 호수에 심어져 있는 키 큰 갈대를 향해 걸어갔다.


스스스슥


노묘의 발이 닿는 순간 갈대가 저절로 갈라졌다.

갈라진 갈대는 호수의 물이 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촘촘히 붙어 벽이 되었고 갈대 벽 사이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하로 3층정도 내려가니 곧 땅 속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지하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천장에는 지상에서 볼 수 있었던 밤하늘과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모습이 그 모습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지상의 하늘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별 사이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푸른 줄기가 이리저리 뻗어있다는 것이었다.

줄기 끝에는 고드름처럼 돌이 매달려 있었고 돌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지상의 강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돌에서 흘러나온 물은 곳곳에서 조그만 호수를 이루어 이곳에 지내는 생명체에게 마실 물을 공급해주었다.


초원과 호수를 따라 퀴 가문에서 재배하고 있는 종류보다 훨씬 더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나셴드 가문에서 볼 수 없었던 동물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장 계단 바로 옆에만 해도 처음보는 동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동글동글한 눈에 몸이 가는 이들은 뒷발을 딛고 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마치 보초를 서는 것 같았는데 그들은 막 계단을 벗어난 투실라고 일행을 재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일행 맨 앞에 있는 노묘를 발견하자 그들은 들어가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초원을 걸을 때마다 나는 풀이 쓸리는 소리에 주위에 잠에 들었던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 슬쩍 그들을 보았다.

그 모습에 투실라고 일행은 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그렇게 초원을 지나자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던 마을이 도착하였다.


마을 앞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과 거대한 곰 한 마리가 같이 서있었다.

그냥 거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고 생각이 들정도로 곰은 거대하고 또 둥글었다.

곰의 털은 새하얀 색이었는데 티끌 하나 묻지 않아 깨끗한 것이 관리의 비결을 묻고 싶을 정도였다.


"드디어 왔구만! 카콜. 나를 좀 내려줘라!"

"쿠오?"


너무 커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곰의 어깨에는 노인 한 명이 앉아있었다.


"나를! 땅에! 내리라고!"

"...! 쿠오쿠오!"


노인이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곰이 몸을 기울였다.

카콜이라 불린 곰이 노인을 바닥에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곰의 그 거대하던 몸뚱이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든 카콜은 폴짝 뛰어올라 노인의 품에 안겼다.


허리는 굽고 수염은 길게 늘어뜨린 노인은 굉장히 호쾌한 사람이었다.

그는 긴 수염으로 땅을 쓸며 앞으로 나섰다.


"엑살라니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난 이 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조율하는 사람이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장로라고 부르니 그대들도 나를 그렇게 부르게."


노인은 이미 안면이 있는 이트나를 꽤나 거칠게 끌어안았다.


"으하하! 반갑구만!"

"네 그동안 잘 지내셨죠 장로님."

"그렇고 말고! 그나저나 일단 아이부터 재워야겠구만. 카논아!"


뵈나 율레의 품에서 울면서 보채는 아기를 본 장로가 그의 옆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엷은 푸른빛을 띄는 머리가 새하얀 피부를 따라 부드럽게 흐르고 있는 청초한 여인이었다.

장로의 부름에 여인이 앞으로 나와 아이를 받았다.


아이를 받은 그녀는 그대로 마을 안으로 향했고 그녀 뒤로 이트나가 바짝 뒤쫓았다.


“저번에 다치셨던 곳은 이제 다 나으셨는지요. 유고님.”

“예. 덕분입니다. 카논님도 그동안 잘지내셨나요?”


이트나 학교장과 카논이라 불린 여인은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꽤나 가까운 것이 눈치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두 사람 사이는 퍽 특별해 보였다.


"호오... 우리 '유고' 큰아버지께서 연애를 하긴 했네."

"이런 곳에서 몰래 연애를 하니 사람들이 오해를 하지..."


듀시아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넷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카밀로테 마법학교의 학교장, 떼르 이트나.

마법 실력은 물론 명석한 두뇌까지 소유한 그는 3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교장에 오르는 파격적인 인사를 가능하게 한 자였다.

학교장을 지내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후 4년이라는 시간동안 보여준 그의 행적은 그 논란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요컨대 그는 카밀로테 내에서 인정받는 마법사라는 뜻이었다.

그에 걸맞게 여러 혼담이 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외모 또한 취향을 탈지언정 어디가서 못났다는 소리를 들을 외모도 아니었기에 심심치 않게 여성들에게 고백도 받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들어온 모든 혼담을 모두 거절하고 일에만 열중하는 것 아니겠는가?

처음 이트나 학교장이 심각한 일 중독자라는 내용으로 시작한 소문이 일 년, 이 년 시간이 흐르자 점점 그의 아래쪽에 문제가 있다느니 등의 저급한 소문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에 이트나 학교장은 성불구자가 되어있었다.


"으하하하 두 사람이 잘 어울리지?"


어느새 장로는 듀시아와 넷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반갑구나 옛말의 아이야!"


열심히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말을 걸어오는 장로가 넷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내 너에 대해서는 들은 게 많다! 당황스럽겠지! 갑자기 네가 살아온 나라를 멸망시키라고 말하면 나같아도 당황할 것이야! 그런 네가 이곳을 꼭 보면 좋겠다 싶어서 내 특별히 부탁을 했다!"


장로는 넷을 이끌고 마을 안으로 향했다.

집들은 모두 둥근 공 모양이었고 흙으로 구워 만들어 짙은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애들아! 잠깐 나와보거라!"


안 그래도 큰 목소리에 목청을 올려 말하니 장로의 말은 말 그대로 온 집에 울려 퍼졌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집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곧 아이들이 몰려나왔다.


"아! 장로님! 내가 이기고 있었는데!"

"아니거든! 끝까지 했으면 내가 이겼거든!"

"빠뽜!"

"..."


모두 넷과 비슷한 또래거나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어른들에게 안겨서 나오고 있었다.

하나둘씩 모이는 아이들을 보며 장로가 말했다.


"모두 셋이다."

"... 네?"

"이 아이들 모두 너와 같은 셋이다."


저주받은 마법사의 이름을 이어받아 죽어야만 했던 아이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율레 부대장의 비밀을 들은 시점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두 눈으로 직접 수많은 셋들을 보니 가슴에 울컥하고 무언가 복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장로가 말했다.


"이 아이들이 웃으면 이곳 엑살라니스가 환해진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아이들이야."


사실 넷은 이미 카밀로테의 건국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상태였다.

초대 대현자가 다시 살려낸 용, 이후에 그가 만든 마법사들의 나라.

트리아트 셋을 저주받은 마법사라고 부르며 그의 죄를 이후에 태어난 후손들에게 적용시켰던 그 법도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대의 대현자께서 자신을 중용하려는 이유도 사실은 자기를 차기 대현자로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나라 카밀로테를 뿌리부터 바꾸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미에 새 카밀로테인 것이다.


뭐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내심 자신에 관한 그 옛말이란 것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렇게 머리로만 알던 지식이, 혼자 내린 결심의 이유가 눈앞에 살아서 숨쉬는 것을 경험하니 그 지식과 결심이 얼마나 얄팍했던 것인진 그녀는 깨달았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소중한 아이들이네요."


떨리는 목소리로 이뤄진 넷의 고백에 장로가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그렇고 말고! 소중한 아이들이고 말고!"


한편 밖으로 나온 수많은 아이들의 이름이 셋이라는 것을 들은 뵈나 율레는 다급히 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2와4사이월 가문, 그러니까 트리아트 가문의 사람들의 피가 섞이면 머리색은 그 진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빨간색으로 고정이다.

다날, 그녀의 딸이라면 분명 머리색에서 티가 날텐데 좀처럼 붉은색의 머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초조해진 그녀는 장로를 불렀다.


"저기요. 장로님. 혹시 아이들 중에 빨간 머리를 한 아이는..."


그녀가 채 묻기도 전에 장로가 어디 한 곳을 가리켰다.

때마침 문이 열린 곳에서 붉은 머리의 아이가 뛰쳐 나왔다.


아이는 천천히 뵈나 율레를 향해 다가왔다.

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지척까지 온 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안겨들었다.


“너무 보고 싶었어. 이모.”


웃는지 우는지 모를 목소리였다.


안겨오는 무게로 뒤로 주춤한 뵈나 율레는 머리에서 몸에 명령을 전달하기도 전에 품속의 아이를 꼭 껴안았다.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길 바랐던 아이.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자신을, 자신의 친구를 버려둔 권능자를 얼마나 원망했었는가.


"나도... 나도 네가 너무나 보고싶었단다. 에우랄."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결국 그녀에게까지 범람하고 말았던 거대한 해일같던 아픔이 바람같이 안겨든 아이에 의해 빠르게 마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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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 빛이 어둠에 비치되 22.10.19 43 2 11쪽
100 100. 도입부는 빠르고 힘차게 +1 22.10.18 55 1 12쪽
99 99. 실패의 이유 22.10.17 43 2 12쪽
98 98.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22.10.13 4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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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2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6 3 12쪽
83 83. 한 번 봐준다 22.09.15 48 2 11쪽
82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7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2 2 12쪽
» 80. 산들바람에 바다가 마르고 22.09.12 50 2 12쪽
79 79. 가족과 함께하는 밀도 있는 시간 22.09.08 50 2 12쪽
78 78. 아가리 싸움꾼 22.09.07 52 2 12쪽
77 77. 왕 신 장군 황제 대장 22.09.06 3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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