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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24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2.10.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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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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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94.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DUMMY

펠페림 가주.

그녀는 가주 중 가장 어린 자였다.

다른 가주들이 대부분 여든을 넘기고 있는 것에 비해 그녀는 이제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그 차이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이유라고 한다면 펠페림의 전대 가주가 일찌감치 물러났기 때문이고 아직 가주에 오르기에는 어린 그녀를 가주로 콕 집어 세웠기 때문이다.


몸이 약했던 전대 가주는 오랜 지병이 심해져 더 이상 가주직을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대 가주의 뒤를 이을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의 눈에 차는 자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당시 정규군의 이번대 대장을 맡고 있었던 그녀를 불러들였다.


같은 가문 사람이 정규군 부대의 대장을 맡는다는 것은 가문에게 엄청난 영광이었고 또 동시에 여러 이득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그 중요성을 알기에 어지간하면 전대 가주 또한 그녀를 대장직에 남기고 싶었으며 그녀 또한 대장직에 남고자 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대장에서 물러난다고 이후의 대장이 같은 가문의 사람일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대 가주와 대화를 나누고는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 떼르 가주는 위험하다. 카밀로테를 제 손안에 넣고 제 입맛에 맞게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그럴만한 능력이 된다는 게야. 교활하고 집요한 떼르 가주를 어중이떠중이가 상대해 봤자 삼켜져 먹힐 뿐이다. 떼르 가문을 견제할 수 있는 가문은 우리 펠페림 뿐인데 여기서 우리 가문이 무너지면 그때는 정말 그 자의 세상이 되고 만다.


카밀로테에서 가장 세력이 큰 가문은 누가 뭐래도 떼르와 펠페림, 두 가문이었다.

그 뒤로 이제 은우, 이납솔, 뵈나 순으로 이어지고 말이다.


- 너도 펠페림이니 대장이라는 것이 네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네가 대장으로 남으면 너에게는 물론이요 우리 가문에게 영광이고 이득이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오래지 않아 네 영광과 이득을 바칠 카밀로테가 망가지고 말 것이다.

- ... 제가 가주가 된다면 그 자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네가 그나마 가능성이 가장 높구나.


결국 그녀는 가주직을 받아들였다.


전대 가주의 말대로 떼르 가주를 견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전대 가주가 물러나자마자 그는 곧바로 다른 가문을 제게 얽매기 시작했다.

때로는 달콤한 사탕으로 때로는 무자비한 채찍질로 다른 가주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펠페림 가주가 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길다면 긴 시간.

다른 가주를 포섭한 떼르 가주는 오직 한 가지 일에 집착했다.

2와4사이월 가문의 몰살이 그것이었다.

그녀가 그런 그의 흉악한 계획을 저지한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그렇기에 떼르 가주가 이번 가주 회의를 연 목적이 2와4사이월 가문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당연했다.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보호하겠다고요?"


펠페림 가주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네."

"당신이 왜?"


당황한 나머지 그녀는 하지 말아야 할 질문까지 하고 말았다.


"펠페림 가주. 가주께서는 왜 내가 2와4사이월 가문을 몰살시킬 것이라 생각한 겐가?"

"그야..."


네가 평소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가문도 치워버리고 카밀로테의 혼란한 분위기도 수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잖아.

내가 평소 알던 너라면 당연한 거지.


차마 이렇게 말하지는 못하는 터라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펠페림 가주께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나보오."

"아니. 제 말은..."

"괜찮네."


떼르 가주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을 끊었다.


"앞서 말한대로 난 2와4사이월 가문을 보호하고자 하네."


그의 뜻밖의 발언에 다른 가주들 모두 연거푸 헛숨을 들이켰다.

제 몸의 가치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뵈나 가주는 목이 많이 탔는지 원탁에 준비된 물을 입에 들이 부었다.


"이유는?"


은우 가주의 물음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불쾌한지 그의 목소리는 이납솔 가주를 대할 때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유라면 이미 펠페림 가주께서 말하지 않았나. 가여운 여인이긴 하나 정신이 온전하다고 보기 어렵네. 그런 이의 증언 하나로 가문 하나를 없앤다는 것은 무리이지 않겠나."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던 2와4사이월의 가주도 떼르의 말이 계속 될수록 점점 얼굴을 피기 시작했다.

그런 2와4사이월 가주의 표정을 살핀 뵈나 가주는 심기가 뒤틀리는 것이었다.

이대로 얌전히 입을 꾹 닫고 있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떼르 가주. 생각해봐라.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저들이 한 짓이라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데 우리가 마냥 저들을 보호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과연 납득하겠느냔 말이야."

"그렇지 않겠지."

"그걸 아는 사람이!"

"쉿."


손가락 하나를 들어 입에 가져가 대는 떼르 가주.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같은 가주끼리 할 행동으로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지금껏 뵈나 가주가 보였던 행동에 근거해 생각해보면 곧 뵈나 가주는 떼르 가주에게 고래고래 악을 쓰며 덤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떼르 가주의 말대로 입을 다물었다.


"...알겠다."


떼르의 말에 죽는 시늉도 할 수 있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시뻘게진 뵈나 가주는 제 화를 이기지 못해 입을 몇 번이나 벙긋거리긴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떼르 가주가 가주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우리 가주들은 카밀로테인들을 공정히 대해야 하지요.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서는 안됨은 물론. 다수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고 소수를 처벌한다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다.

정론을 말한 사람이 떼르 가주라는 사실이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 없었지만 어쨌든 그의 말을 반대할 거리가 없었다.


이납솔 가주가 물었다.


"옳은 말일세. 그런 의미에서 2와4사이월 가문을 보호해야한다는 것이라면 찬성이지만 이대로 해방주의자들이란 존재를 방치하는 것 역시 해서는 안될 터...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것인가?"


여자의 증언을 듣고 2와4사이월 가문을 수색하는 것도 방법이겠다만 무엇보다 이들이 해방주의자들이라고 명확히 구분지어줄 증거가 마땅치 않았다.

기껏해야 지금까지의 습격자들은 하나같이 품에 환각제인 '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 정도가 다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수색을 마친 참이었다.

현재 수색을 통해 잡아들인 자들 중 대부분이 꿈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잡아들인 것이었는데 그 중에 붉은 머리 가문은 없었다.


"지금부터 그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고 내가 여러분을 부른 것입니다."


펠페림 가주는 떼르 가주의 속셈을 알아내고자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펠페림 가주께서는 이제 오해가 풀리셨는가?"

"... 네."

"잘 되었군. 그럼 이제 얘기해 봅시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방법을 말이야."


은우 가주의 바람과는 다르게 가주 회의는 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바람이 쌀쌀해진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큰빛은 이제 빠르게 저물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차가웠다.

겨울이 슬그머니 제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11월 마을의 치료소.

2와4사이월의 율레 부대장의 병실.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넷을 비롯한 4인방이 병실에 들어서니 그곳에는 이미 혁명단 단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제는 대놓고 율레 부대장의 병실에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소문이 심상치 않아요..."


우려하는 목소리는 딜람이었다.

그녀가 우려하는 것은 역시나 지금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관한 것이었다.


- 해방주의자들의 정체가 저주받은 가문이라며?

- 누가 그렇게 참혹한 참상을 벌이는가 했더니...

- 모든 게 설명이 되네요. 자신들의 죄를 망각이라도 했는지...

- 사람들을 용의 압제 아래 살게 한 자의 후손이 자유를 외치다니. 뻔뻔하기도 하지.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제외하고도 2와4사이월 가문을 향한 비난은 그칠 줄 몰랐다.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아주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가주의 명대로 2와4사이월 가문의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있어 별다른 변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치안군에 속했기에 어쩔 수 없이 수색에 참여한 넷은 하루종일 사람들로부터 해코지를 당해야 했다.

넷이 해방주의자들에게 습격을 당했던 사람이고 오히려 습격으로부터 치안군을 지켜낸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빨간 머리라는 이유로 해코지를 당한 것이다.


그런 것 치고 의외로 그녀의 몸은 깨끗했는데 그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녀와 같은 조로 배정된 듀시아 덕이었다.

사람들이 넷을 해코지를 하는 족족 듀시아가 막아낸 것이다.


무려 그 떼르 가주 앞에서 따박따박 말대꾸를 했던 넷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현재 흘러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함부로 나섰다가 이야기가 어떻게 와전될지 모를 일이기에 그녀는 참았고 그런 그녀 대신 듀시아가 나서준 것은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다.


병실에 들어온 이후로 넷이 분통이 터진다며 들이켠 물잔만 다섯 잔이 넘어가고 있었다.


꿀꺽꿀꺽



그녀가 잔을 거칠게 내려놓자마자 옆에 선 듀시아가 물잔에 차가운 물을 채워넣었다.


"이제 배불러."

"응."

"... 고마워."


듀시아는 별것 아니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두른 적갈색 망토는 여기저기 얼룩이 져있었다.

누군가 던진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받아냈기에 그런 것이다.


넷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행동이 기꺼웠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웠다.

평소라면 부담스러움이 더 커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짐짓 짜증을 냈겠지만 최근 그녀는 정신적으로 몰린 상태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듀시아의 더러워진 망토를 잡았고 다른 손으로 망토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냈다.



스윽


"... 내가 나중에 빨면 되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

"... 응."


어딘가 묘한 두 사람의 분위기에 세슈람이 말했다.


"너네 지금 뭐하냐."

"왜. 뭐가. 닥쳐. 용같은 게."

"..."


어설프게 시비를 걸었던 그는 넷의 폭언에 쭈그리가 되어버렸다.


4인방으로부터 하루의 보고를 들은 다른 사람들도 저들의 하루를 짤막하게 말해줬다.

가장 먼저는 율레 부대장이었다.


"나는 그래도 괜찮았다."


치료사들은 율레 부대장을 고까운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 그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공포가 워낙에 강력해 함부로 그를 해코지 하지는 않았다.

넷과 다른 점이 또 있었는데 율레 부대장은 해방주의자들의 습격으로 팔을 잃은 것으로 되어있으니 좀 더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에 유리했다.


"대신 하람과 율트나, 두 사람이 여기에 남기에는 위험해 보여 집으로 돌려 보냈다."

"아... 감사합니다."


넷은 부모님이 방에 없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무려 이센 일번대 부대장이 집까지 두 사람과 동행했단다.

그 밖의 이트나나 율레 치료사나 아직 깨지 못한 이레 대장은 별 문제는 없었다고.


어느정도 서로의 상황을 공유한 이후 잠깐의 정적.

넷이 기어코 가주 회의에 대해서 물었다.


"아직 아무 말도 없어요?"


이트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침 일찍 시작한 가주 회의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넷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닐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만약... 가주 회의에서 저희 가문을 처벌하기로 결정이 난다면..."

"그럴 일은 없어요."


이트나가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는데요?"

"사람은 평소 관계를 잘 맺어둬야 하는 거예요. 넷양도 명심하세요."

"네?"

"저기 펠페림 가주님 있죠?"

"있죠."

"저희 편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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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 실패의 이유 22.10.17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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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 악으로 깡으로 22.10.12 42 2 12쪽
96 96. 내가 누군지 아니 22.10.11 41 2 12쪽
95 95.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22.10.10 39 3 12쪽
» 94.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22.10.06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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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1. 맨날 술이야 22.10.03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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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 아님 아무튼 아님 22.09.26 47 2 12쪽
87 87. 끼잉 22.09.22 47 3 12쪽
86 86. 오 오오옷 이 맛은 22.09.21 61 3 12쪽
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2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6 3 12쪽
83 83. 한 번 봐준다 22.09.15 48 2 11쪽
82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7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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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8. 아가리 싸움꾼 22.09.07 5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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