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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22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2.10.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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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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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92. 누구인가 누가 소리를 내었어

DUMMY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데클락의 정상, 그곳에 위치한 성전.

한때는 용이 노예를 부려 지어 만든 용의 거처였지만 현재는 대현자가 거하는 곳.


성전은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복도, 정원, 그리고 보좌.


복도.

성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으로 거대한 성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 복도를 지키는 것이 바로 대현자를 지키는 정예 중에서도 최정예라 할 수 있는 호위군이다.

전체 수가 오십명 정도 되는 호위군은 교대로 이 복도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이 장소를 복도라 칭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본래 용의 거체가 여유롭게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다.

그 거대한 공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중앙의 복도만을 '복도'로 사용할 뿐이었다.


드넓은 공간 속에 놓인 그 길고 긴 복도를 스물정도 되는 수의 호위군이 끝에서 끝까지 양쪽으로 시립해 있는 것이다.

심지어 복도의 왼편과 오른편의 거리도 상당하다.


비록 호위군들이 하나같이 강자들이라고는 하나 성전의 압도적인 거대함 앞에서는 그들의 위용은 아무래도 빈약한 것이었다.


"..."


안 그래도 넓은 곳인데 빛이라고는 호위군이 서있는 곳을 겨우 비추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불빛 뿐이었다.

대현자가 복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 거대한 공간이 빛으로 가득차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호위군의 대원들은 꼼작없이 미약한 빛이 만들어주는 조그마한 섬에서 고립되어 서있어야 했다.


"그립다... 여자 살 냄새."


흔들림 없는 자세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대원은 돌연 그의 귀에 들린 말에 흠칫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의 앞과 양옆의 대원들은 모두 꼿꼿한 자세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그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저 멀리서 한 말이라기에는 그의 귀에 들린 목소리는 그의 지척에서 속삭이는 소리였다.


그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목소리가 들려서 뿐만은 아니었다.

귀에 들려온 말, 그 내용이 문제였다.

그건 분명 그가 호위를 서는 내내 머릿속으로 줄곧 하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뒷목을 짜르르하고 타고 흐르는 소름에 그는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웅얼거렸다.


"... 이젠 하다하다 헛것이 들리네."




그가 웅얼거리자마자 곧바로 경고음이 날아들었다.

호위군의 대장이 제다카를 바닥에 내리찍으면 낸 소리였다.

해석하자면 호위하는 동안 잡소리를 내지 말고 호위에 전념하라는 뜻이었다.


그래.

복도란 공간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한 곳이었다.

그가 조그만 소리로 웅얼거려도 그 소리가 저 멀리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 앞에 서있는 대장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설령 누군가가 진짜로 자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면 그 직후에도 저 근육 빵빵한 대장의 경고음이 들려왔어야 했다.


결국 그가 방금 들은 소리는 환청이었다는 소린데...


"그때 안았던 년이 진짜 끝내줬는데."


'!'


그 순간 그의 귀로 좀전에 들었던 환청이 더 분명하고 큰 소리로 울려퍼졌다.

단순히 착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분명한 소리.

다만 이번에는 그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여자를 안은지 오래 되었으니 여자 살 냄새가 그립다.

이건 분명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맹세코 특정 누군가를 떠올리며 끝내줬다느니 하는 천박한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여자 살 냄새가 그립다고 하며 그동안 같이 잤던 여자들이 얼핏 떠오르긴 했지만...


잠깐.

그러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가?


그때 환청이 또 다시 들려왔다.

더 노골적이었고 더 추악한 욕망을 담고 있었다.


"하... 이거 그냥 아무나 붙잡고..."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려퍼지자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챙그랑


동시에 제다카까지 놓친 덕에 고요한 복도에 듣기 싫은 소리가 한동안 웅웅댔다.

소리가 멎을 때즘 호위군의 대장이 움직였다.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덩달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대한 사내는 이윽고 환청을 듣던 남자 앞에 섰다.


"죄... 죄송합니다!"

"... 최근 무리했나보군. 오늘은 이만 숙소로 돌아가라. 아니... 아주 카밀로테에 내려가 일주일 정도 쉬다 오도록."


소란을 피운 것으로 혼날 줄 알았건만 의외로 근육 빵빵 대장은 그의 건강을 염려하며 휴가를 내주었다.

그는 허겁지겁 성전을 나섰다.


구구구구궁


거대한 성전의 문이 닫혀 성전을 떠나는 대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장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 대장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려있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더라...'


아까 그 대원의 반응을 보아하니 환청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드러난 적이 드물어서 그렇지 이미 그에게 같은 문제로 이야기를 해온 대원이 한둘이 아니다.

단순히 환경의 문제인가?

아니면 과연 용이 거하던 곳이라 성전이 저주를 받은 것인가?


- 너무 무리하는 거 같네요. 좀 쉬엄쉬엄 하세요. 모든 대원들이 대장처럼 강철과 같은 육신을 가진 게 아니에요.


이 문제에 대해서 대현자님에게도 말해보았지만 대현자님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휴식을 권할 뿐이었다.

대현자님의 조언대로 실제로 좀 쉬고 오면 증상이 없어졌기에 환청이 들리는 대원들은 휴가를 보내고는 있었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최근들어 이런 현상이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것.


"너희들의 육체를 무장한만큼 정신 역시 단단히 무장해라."


그는 시립해있는 다른 대원들을 향해 말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좀전의 말은 대원들 들으라고 한 말이긴 했지만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대현자를 죽여. 그리고 네가 대현자가 되는 거야!"


이미 수년 전부터 그의 귀에 하루도 쉬지 않고 들려오는 말.

누군가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


호위군 대장이 지키고 서있는 문을 지나면 나오는 정원.

수십 그루의 나무가 심긴 정원을 지나면 드디어 보좌가 있는 방이 나온다.

백수정으로 된 보좌가 흩뿌리는 빛은 방을 환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찬란한 보좌 위에 비뚜름하게 기대어 있던 대현자가 갑작스레 몸을 뒤틀며 보좌에서 떨어져 내렸다.


"우우욱! 우웨엑!"


보좌에서 떨어져 바닥을 기면서도 좀처럼 대현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속을 게울 뿐이었다.

바닥에 퍼지는 토사물에 섞인 찌꺼기를 본 대현자는 이전보다 더 격하게 속을 비워냈다.

속에 들어있던 것을 다 토하고도 구토는 멈추지 않았고 이후로도 대현자는 묽은 액체를 한참이나 토해냈다.


"하아... 하아..."


대현자의 머릿속에서 기만의 광소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기만은 웃고 있을 것이다.


뵈나 셋.

그녀는 좀처럼 자신에게 몸을 넘겨주지 않던 기만이 자신에게 몸을 넘겨준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자신이 곧 보게 될 것이 무엇이든 간에 끔찍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눈을 감던 말던 머릿속에서 일련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머리를 처박고 무언가를 쩝쩝대는 자신.

축축하고, 질기고, 짭짜름하면서도... 무엇보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쳐들자 두 눈에 자신이 탐닉하던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누군가의 신체였다.

이미 반쯤 파먹힌 신체였는데도 남자는 살아있었다.


- 살... 살려줘.


두려움에 가득한 남자의 두 눈을 보며 자신은 빙긋이 웃고 있었다.


기억의 재연이 끝남과 함께 그녀는 자신이 배부르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욱!"


이미 토해낼 것이 없음에도 뵈나 셋은 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제 몸을 찾은 뵈나 셋은 항상 기만이 자신의 몸으로 행한 그 끔직한 짓거리를 그녀는 조금도 빼먹지 않고 봐야했다.

처음 기만과 손을 잡을 때 그녀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으아악!"


셋이 절규했다.

곧 절규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두려움, 무력감, 자기 혐오.


흐느끼는 목소리로 그녀는 애타게 누군가를 찾았다.


"...아. 어디있어. 나 이제 너무 힘들어..."


구하러 온다며.

언제 온다는 거야.


"...시아."


이제는 무리야.

너무 지쳤어.

그러니.


"제발... 제발 어서 나를..."


그녀는 한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자의 이름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나를 죽여줘... 듀시아."


***


해방주의자들의 최초의 습격, 12월 마을.

이후 차례대로 치안군 별대를.

본대와 집행처를.

종국에 정규군 부대의 대장들을 습격한 것도 모자라 치안군 대장을 잔혹하게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해방주의자들의 연이은 공격에 불안함을 느낀 카밀로테인들은 집문을 걸어잠그고 몸을 숨겼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었고 또 그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해방주의자들의 잔혹함에 분노하였다.

분노한 자들은 저들의 가주들을 찾아가 목소리를 내었다.


그들을 찾아내 죽이자고.

아주 싹을 뽑자고.


몇몇 성질이 급한 자들은 조금이라도 2와4사이월 가문이나 속죄일에 태어난 아기들에 대한 옹호 발언을 했던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와 치안군이나 집행처에 데려오고 있었다.

그 과정 중에 서로 싸움이 붙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더러는 피를 보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치안군과 집행처가 마을 수색을 시작했으며 거기에 정규군까지도 연합전을 대비한 훈련을 멈추고 마을 수색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수상한 사람 몇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어수선한 작금의 분위기를 수습할 방법은 해방주의자라는 베일에 쌓인 단체의 정체를 밝혀내 처단을 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각 가문의 가주들이 떼르 가주로부터 서신을 받은 것은 이런 혼란한 와중이었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가주 회의를 소집한다는 내용.

그 끝에는 해방주의자들의 정체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4월 마을의 도서관.

그 꼭대기 층에 위치한 서고.


각 가문의 비전 마법, 위력이 너무 강해 재현에 제한을 두는 고대 마법 등이 엄격히 구분되어 보관되는 곳.

역사에 걸쳐 기록된 모든 종류의 마법이 보관되어 있는 이곳을 가리켜 사람들은 천년서고라 칭하지만 가주들 사이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회의장.


오래전 함부로 타 가문의 비전 마법을 훔치지 못하도록, 혹은 고대 마법이 특정 가문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주들은 각각의 마법들이 적힌 문서를 봉인하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마법에 접근이 허락된 대현자를 제외하면 이 마법들의 열람이 가능한 순간은 오직 모든 가주들의 입회 하에 이뤄질 때뿐이었다.


새해가 시작되면 가주들은 천년서고에 모여 각 가문의 비전 마법을 갱신하는 등의 작업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가주들은 자연스레 각 마을 간에 일어나는 문제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게 자리를 잡아 지금의 가주 회의가 된 것이다.


회의장 내 커다란 원탁.

원탁에 마련된 각 가문 가주들의 자리 뒤로 조그마한 방이 나있었다.

그 방이 바로 각 가문의 비전 마법이나 여타 기밀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윽고 원탁에 모든 가문의 가주들이 자리를 잡았다.

가주들의 면면을 살핀 떼르 가주가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가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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