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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7.03 19:29
연재수 :
257 회
조회수 :
11,687
추천수 :
695
글자수 :
1,378,486

작성
22.11.02 12:01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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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09. 내 옆에 있으라고 했다지만

DUMMY

몸 여기저기가 골고루 부러진 넷은 온 몸에 부목을 대고 있었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사실 넷이 아닌 그 누구라고 하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치료소의 특실은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와..."


당장 병실이 넓은 것도 넓은 것이었지만 그 외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넷이 살면서 경험해 본 적 없는 호화스러운 것들 투성이었다.

넷 정도의 사람이 너댓명은 같이 잘 수 있을 정도로 큰 침대는 푹신 했고 이불은 부드러웠다.

침대에 전반적으로 달려있는 쓸데없는 레이스도 계속 보고 있자니 나름대로 귀여운 것도 같았다.


바로 옆에 놓인 탁자 위에는 듀시아를 통해 종종 맛봤던 고급 과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매일 싱그러운 과일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끼니때마다 들어오는 음식은 아예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뿐이었다.

고기로만 배를 채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탈이 나 한 끼를 건너 뛰어야 했을 때는 얼마나 서글펐는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 안에 무려 개인 목욕탕이 있었다.

당장 몸을 담그지는 못하지만 목욕탕을 뒤덮고 있는 화려한 장식물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 발만 담가도 자신의 몸이 반짝거릴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었다.


똑똑


다디단 막대기 모양의 바삭한 빵을 입에 욱여넣고 있으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굳이 누구인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들어와!"


그녀의 허락과 함께 듀시아가 들어왔다.

그는 오늘 분의 빵과 과자를 양팔 가득 안고 있었다.

사실 넷의 탁자에 산처럼 쌓여있는 간식의 반은 듀시아가 가져온 것이었다.


"바보야. 나한테 주지 말고 너 먹으라니까."


벌써 몇 번을 말하는 건데 이 놈은 도통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난 많이 먹었어."


되도 않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품 속에 간식을 우르르 탁자에 쏟아냈다.


"이거 다 먹으면 나 진짜 큰일나."

"어떻게 큰일나는데?"

"살쪄."

"괜찮아."


내가 살 찌는 게 싫다는 데 왜 네가 괜찮대.

허 참.

진짜 어이없네.


품 속의 음식을 다 털은 듀시아는 자연스레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빤히 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넷은 손에 잡고 있던 빵을 탁자에 도로 내려놨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듀시아가 두 눈을 샐샐거렸다.


"마저 먹어. 이거 맛있더라."


그는 넷이 내려놓은 막대모양 빵을 들어 다시 그녀의 입에 물려 주었다.

빵을 물려준다고 몸을 숙인 듀시아와의 거리가 가까웠다.


"끄응..."


예전에는 안 그랬다.

말은 능글맞게 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커녕 어쩌다 어깨라도 닿으면 대번에 몸이 굳는 애였다.

그런데 작은 용과의 싸움 이후로는 스스럼 없이 이렇게 거리를 좁혀오는 것이었다.


- 너를 잃고 싶지 않아...

- 흐...

- 이 와중에 좋다고 웃음이 나와! 이 멍청아!


추측컨대 이 순간을 기점으로 듀시아에게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물론 당시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은 없고 말이다.

다만 그 마음을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는 가끔 하고 있었다.


뭐가 되었든 입 속에 들어온 빵을 다시 뱉는 것도 못할 짓인지라 넷은 듀시아가 먹여주는 빵을 그대로 받아 먹었다.


바삭


음.

맛있다!


빵이 넷의 입 속으로 다 사라지고 나서야 듀시아가 멀어졌다.


"넌 몸 진짜 괜찮은 거야?"


듀시아는 저번 전투에서 작은 용에 의해 배가 뚫렸었다.

고열 덩어리에 뚫린 배는 상처가 꽤나 심각했다.

사실 혁명단에서도 죽은 사람만 없었지 위중한 상처를 입은 사람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듀시아를 비롯해 혁명단의 사람들은 모두 위기를 넘겼고 말이다.


"응. 율레 치료사님께서 고쳐주셨는데 완전 멀쩡해."


물론 아무리 치료가 잘 되었다고 해도 단기간에 듀시아처럼 마음대로 걸어다닐 정도로 좋아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뵈나 율레 치료사의 덕이었다.


그녀가 죽음의 숲에서 배운 마법은 신체의 수복이라고 했다.

현재 그녀의 수준으로는 며칠에 한 번씩만 재현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었지만 어쨌든 놀라운 마법임은 변함이 없었다.


당장 데클락 정상에 갇혀있는 호위군을 생각해도 그렇고 카밀로테의 출입이 대현자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간 이동 마법이었다.

그런데 마침 듀시아가 공간 이동 마법을 펼칠 수 있으니 그를 제일 먼저 치료한 것이다.


듀시아는 넷이 저를 빤히 보는 것을 제 말을 믿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나보다.


"못 믿겠으면 한 번 볼래?"


그가 배를 까려는 것을 넷이 다급하게 막았다.

다만 부목을 여기저기 대고 있는 넷은 둔했고 그렇기에 웃통을 들추는 그를 제때 막아내지 못했다.

슬쩍 드러난 듀시아의 배를 본 넷이 얼굴을 붉혔다.


'훈련을... 진짜 열심히 했나보네.'


듀시아의 몸에 탄탄한 근육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언뜻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문득 넷의 시선이 자신의 배로 향했다.


"이씨... 너 이거 다 가져가."


넷은 신경질적으로 탁자 위에 쌓인 간식들을 가리켰다.

그 모습이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웃긴 것인지 듀시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유는 몰라도 기분이 나빴기에 넷은 제일 딱딱한 빵을 들어 듀시아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뭐 이런식으로 투덕거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중간에 '우리 듀시아'를 찾아 들어왔던 하람이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말과 함께 음흉한 시선으로 자리를 비켜주고 나서야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저녁 시간 다 되어 간다. 너도 슬슬 저녁 먹으러 돌..."

"넷. 너 대현자 할 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물론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그가 이걸 물은 것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가주들 사이에서 넷이 대현자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우려를 표했으니 말이다.


"글쎄..."


처음 대현자가 될 것이냐는 물음을 들었을 때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제 머리위에 느닷없이 벼락을 떨어뜨린 기분이었다.


사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빨간 머리가 대현자가 된다니 말이다.


트리아트 셋을 따르는 자라고 자처하는 혁명단이 이번에 작은 용을 죽였다고 해서 저주받은 마법사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스승님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사람들 가운데에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에 비단 트리아트 셋에 대한 인식의 문제만도 아닌 것이 2000년 가까운 시간동안 빨간 머리는 부정한 것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 시작은 당연히 저주받은 마법사였지만 이후 쌓인 모든 차별과 핍박은 빨간 머리 가문에 행해진 것이다.

오랜 시간 쌓여온 인식은 바꾸기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넷이 대현자가 된다고 한다면 그녀가 마주해야할 수많은 상황들이 눈에 보이니까 듀시아도 걱정을 하는 것이고 말이다.


"난 사실 지금으로도 만족해...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내 노력이 인정 받아 이런 호사도 누려보고 말이야. 아마 이번 사건으로 우리 가문에 대한 인식도 차차 나아지겠지."


대현자도 그녀에게 차기 대현자를 제안했었다.

물론 그 안에는 다른 속셈도 함께 있었던 듯하지만 적어도 그 당시 대현자가 넷에게 했던 말들은 넷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었다.

가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차별 없는 나라를 만드는.


분명 그 당시만 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야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작은 용을 죽이면서 멀기만 했던 일이, 꿈만 꿨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정말이지 그녀는 지금으로도 족했다.


- 저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검증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가주 회의에서 넷을 추천한 호위군 대장이 했던 말이라고 했다.


- 카밀로테의 전력은 급감하였고 그나마도 서로를 온전히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연합전은 코앞으로 다가왔죠.


이제 출정까지 1년도 남지 않았으며 용해를 건너 침략해 올 용의 군세를 맞기까지는 그보다 고작 반년 더 남았을 뿐이다.


- 군도 군이지만 연합전에서 대현자라는 존재는 필수불가결합니다.


연합전마다 용을 막아낸 자가 대현자였다.

사실 연합전의 승패는 여기에 달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인간 측 연합군이 얼마나 많은 아룡을 죽이든, 얼마나 많은 광신도를 죽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을 부리는 용.

그 용을 물러가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사실 연합전의 전부였다.


- 어쩌다 이번 대의 대현자님께서 파편이라는 용의 수하에게 넘어갔는지는 몰라도 오히려 다행이죠. 하마터면 적을 데리고 연합전에 나설 뻔 했으니.


오히려 그 전에 파편의 존재를 없앨 수 있었으니 정말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 더군다나 마침 저희가 찾는 대현자의 조건에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파편을 죽임으로서 자격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그 강대한 파편을 마무리 할 정도로 높은 위력의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사람들이 내가 필요하대."


- 시기를 생각해도, 자격을 생각해도. 지금 대현자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트리아트 넷. 그 아이 말고는 없습니다.


"내가 용을 물리치지 않으면... 한대륙은 엉망이 될 거래. 그렇게 되면 카밀로테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을 거야."


딱히 정의감이 투철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 희생을 하고자 함도 아니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니 나... 아무래도 대현자가 되어야겠어."


넷의 결심을 들은 듀시아는 어쩐지 슬픈 얼굴이었다.


***


넷의 병실에서 나온 듀시아는 곧장 이레의 병실로 향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소리는 딜람의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배신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말이 안 되잖아요. 몇 명이 죽었는데! 자그마치 삼백이에요. 삼백 명이 죽었다고요."


작은 용의 모습으로 죽인 것은 100명 정도였지만 그 전에 치안군과 일반인을 쓸어버린 불 마법 역시 대현자의 소행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대현자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위력이었다.


딜람은 성벽의 힘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줄곧 전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싸우고 싶었지만 그녀가 성벽 마법을 풀어버리는 순간 작은 용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작은 용에게 나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 압도적인 힘이... 고작 일부라고요?"


그녀의 절망어린 물음에 오르디나 이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거의 확실하다."

"이유는요?"


세슈람의 질문이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이겼기 때문이다."


아니 이 양반아.

딜람이 하는 말 못들었어?

300명이 죽었다잖아.

그런데 그걸 쉽게 이겼다고 말하는 게 맞아?


세슈람이 속으로 한참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이레가 말을 이어갔다.


"딜람. 넌 왜 살아있지?"


이 양반... 선 넘네? 그치?

미간을 찌푸린 세슈람이 동의를 구하듯 딜람을 쳐다봤다.


"..."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다르게 딜람은 이레의 질문에 무엇인가 깨달은 모양이었다.


"설마...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무슨 대화가 이래.

세슈람은 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트나가 나섰다.

다분히 세슈람을 배려한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이레님 말씀은 파편이 일부러 졌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잖아요?"


딜람의 성벽이 자신을 약하게 한다면 파편은 당연히 딜람을 먼저 죽여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파편에게 그럴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굳이 이게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진짜 용의 힘을 경험하고 그런 용을 막아낸 대현자의 힘을 경험한 이레는 알고 있었다.

그 가벼운 손짓만으로도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은 소멸했을 것이라고.


"딜람 네 말대로 파편에게 제 목숨을 바쳐가면서 질 이유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가장 오래된 파편이 살아있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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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8. 장난 그만해 진짜 재미없어 +1 22.11.01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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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6. 개벽 22.10.27 44 2 12쪽
105 105. 내 옆에 계속 있어 22.10.26 149 1 12쪽
104 104.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22.10.25 46 2 12쪽
103 103. 검은 용이 울부짖었다 +1 22.10.24 39 2 12쪽
102 102. 민낯에 자신 있는 편 22.10.20 54 2 12쪽
101 101. 빛이 어둠에 비치되 22.10.19 45 2 11쪽
100 100. 도입부는 빠르고 힘차게 +1 22.10.18 56 1 12쪽
99 99. 실패의 이유 22.10.17 45 2 12쪽
98 98.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22.10.13 51 2 12쪽
97 97. 악으로 깡으로 22.10.12 43 2 12쪽
96 96. 내가 누군지 아니 22.10.11 42 2 12쪽
95 95.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22.10.10 40 3 12쪽
94 94.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22.10.06 45 2 12쪽
93 93.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22.10.05 59 1 12쪽
92 92. 누구인가 누가 소리를 내었어 22.10.04 46 1 12쪽
91 91. 맨날 술이야 22.10.03 44 2 12쪽
90 90.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22.09.29 57 2 13쪽
89 89.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22.09.28 52 2 12쪽
88 88. 아님 아무튼 아님 22.09.26 48 2 12쪽
87 87. 끼잉 22.09.22 49 3 12쪽
86 86. 오 오오옷 이 맛은 22.09.21 62 3 12쪽
85 85. 구라 치다 걸리면 22.09.20 43 3 12쪽
84 84. 조금만 나에게 힘을 나눠 줘 +1 22.09.19 47 3 12쪽
83 83. 한 번 봐준다 22.09.15 50 2 11쪽
82 82. 넌 이미 함정에 빠져 있다 22.09.14 49 2 12쪽
81 81. 이젠 가망이 없어 +1 22.09.13 53 2 12쪽
80 80. 산들바람에 바다가 마르고 22.09.12 5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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