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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31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3.03.2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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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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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171. 마음만은 청춘

DUMMY

꽃 피는 사슴, 디르지트 페룸이 영주로 있는 영지 루베오.


붉다는 뜻의 루베오는 과연 그 이름에 걸맞게 영지 곳곳에 붉은 꽃이 만개해 있었다.

루베오퓸, 한 겨울에도 지지않는 이 꽃은 이곳 루베오의 명물로 달큰한 맛과 향이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 케르타를 제외하면 요엠가움에서 가장 큰 6대 영지에 속한 루베오는 현 사슴의 입지가 줄어들며 덩달아 그 위상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루베오퓸으로 담그는 꽃술은 루베오뿐 아니라 요엠가움 내에서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거 참... 이리도 우리를 환대해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가벼운 차림을 한 백발의 노인은 페룸가의 집사가 가져온 엄청난 양의 꽃술과 음식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말씀 마십시요. 성하의 명성을 생각하면 변변찮은 것들 뿐이라 되려 송구할 따름입니다."


집사의 말에 백발의 노인이 허허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얀 피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맺혔다.

누가 봐도 인상 좋은 노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집사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눈앞의 노인의 이름은 숨 가드나, 프로토케의 왕이자 제사장이 바로 그다.


집사는 눈을 슬쩍 돌려 주변을 살폈다.

숨 가드나 주변으로 기사들이, 그리고 그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3만의 병사.

프로토케 군이 루베오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침략전을 벌이던 나라들이 하나로 뭉쳐 용의 군세를 대적하는 세기의 사건, 연합전.

프로토케가 연합전이 벌어질 승리의 벽으로 가기 위해서는 프로토케의 경계를 지키고 있는 루베오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 원래대로면 우리 기사단이 왕을 맞아야겠지만... 얼토당토 않는 임무를 받는 바람에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니 집사께서는 왕을 대접하는 데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세요.


아무리 상황이 특별하다고 해도 영지를 보호할 최소한의 무력단체도 없이 타국인을, 그것도 3만에 달하는 병사들을 영지 내로 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수호수들의 견제로 인해 영지를 지킴과 동시에 프로토케를 승리의 벽으로 인도할 나무뿔사슴단은 카밀로테로 보낼 선물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고 현재에 이른 것이다.


숨 가드나는 검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할 것처럼 얇은 팔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약해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는 그 강하다는 요엠가움의 왕이 결판을 짓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전적은 사이좋게 7승 7패.

어느순간부터 요엠가움과 프로토케의 충돌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두 사람의 전투도 그쳤기에 결판이 나지 않은 상태이기에 누가 더 강한지에 대한 논쟁은 기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주제 중 하나였다.


물론 두 사람의 마지막 전투가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고 아흔 살을 넘기며 건장하던 숨 가드나의 몸이 급격히 수척해졌기에 가장 강한 자는 테노부스라는 것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긴 하다.

이에 요엠가움의 기사 중 더러는 숨 가드나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 숨 그 노인네가 강했던 건 무식하게 큰 근육 때문이 아니었네.


테노부스가 사석에서 한 말이 알음알음 퍼지며 사람들이 숨 가드나에게 갖고 있는 경외심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 있었다.

페룸가에서 오랫동안 일한 노집사 역시 숨 가드나의 놀라운 업적들을 들으며 자란 자였다.

영지의 주인이자 히펠렌스인 사슴도 없는 상황에서 숨이 날뛰기라도 한다면 루베오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기에 집사는 제 행실을 조심 또 조심하는 중이었다.


"허허허.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 과인은 여기 루베오는 물론 승리의 벽으로 향하는 동안 요엠가움의 백성들에게 그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니."

"... 송구합니다! 이 미천한 것이 감히 성하를 의심하였습니다."

"에헤이. 이 사람이. 그만 하게. 무엇보다 과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땅을 왜 망가뜨리겠는가."


숨은 자리에서 일어나 꽃술이 담긴 술통을 땄다.

향긋한 주향이 퍼져나갔다.


"자. 같이 술이나 같이 하지. 여기 잔을 세 잔... 아니. 네 잔 가져오도록 해라."


그의 명에 누군가 잔을 가져왔고 잔에 자주색의 투명한 액체가 담겼다.


"흐으음. 향이 아주 좋구먼. 루베오퓸으로 담근 꽃술은 과인이 있는 곳에서는 구하기가 힘들어서 말이야."

"... 예. 예."


어떨결에 프로토케의 왕과 대작하게 된 집사는 발발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았다.

그 사이 숨은 자주색 술을 가볍게 입에 털어넣었다.


"크흐. 좋다. 그거 아는가? 루베오퓸이 다른 곳에서는 저주받이꽃이라고도 불린다더군. 이해가 가나? 이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에 그런 이름을 짓다니 말이야."


그는 딱히 대꾸를 바란 것이 아니었는지 저 혼자 클클 거리며 웃더니 다시 술을 잔에 채워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숨은 마시고 집사는 가끔 맞장구를 치는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저..."


위엣것이 아랫것에게 편하게 있으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아랫것은 그럴 수 없는 것이 만국 공통의 진리인 법.

어설프게 맞장구나 치고 있던 집사는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무감에 질문을 던졌다.


"다른 두 잔은 왜 준비시키신 것인지요?"


탁자에는 총 네 잔의 술잔이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왕과 집사 말고 다른 사람도 앉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는지 시간이 꽤나 흐를 동안에도 잔에 담긴 술은 그대로였다.


"아. 그거 말인가."


숨은 집사의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슬슬 올 때가 되었을 것이야.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시야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이지."


술이 들어가며 말이 없어졌던 그가 나이 먹으면 서럽다며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였다.

밤하늘에 박힌 별이라 생각했던 것이 크기를 부풀리더니 어느새 룬처럼 커져있었다.

프로토케에서 기사 생활을 좀 오래했다면 저 빛을 모를 수 없었다.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던 기사들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고 있었다.


콰아아앙


"왔구먼. 다들 괜찮으니 앉거라."


숨 가드나는 프로토케 한 가운데에 거칠게 내려앉은 테노부스를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테노부스의 손에 붙들려있던 어린 기사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 살았다."


카리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이 테노부스가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군."

"거. 아이가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어찌 그리 험하게 데리고 다니는게야. 아이야 괜찮으냐?"


한가로이 꽃술을 입에 털어넣은 숨 가드나를 향해 테노부스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노인네. 그쪽 도움이 필요하네. 지금 한 대륙에..."

"제사장들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겠지."

"... 보고 있었군."


숨은 고생했다며 집사를 돌려보내고는 테노부스와 도통 일어서질 못하는 어린 기사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

"우리는. 여기서 우리란 자네와 나를 말하는 것일세...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 나도 기분이 별로니. 하여튼 간에. 우리는 제사장을 쫓아서는 안 되네."


숨이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은 테노부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세 방향으로 흩어진 제사장들을 쫓아 죽이기에는 테노부스는 몸이 하나였다.

그와 함께 제사장을 쫓을 실력자가 절실한 상황.

수호수가 제사장의 상대가 되지 않는 시점에 테노부스의 머리에 남아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중 한 명인 숨 가드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그는 이곳 루베오를 들리는 수고를 한 것이다.


"노망이 나기라도 한 것인가? 제사장이라는 것이 그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네."

"거 나이도 한참 어린 것이 말하는 본새 하고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왜 그들이 먼저 움직였는지는 생각해봤나?"


100년에 한 번씩 있는 연합전.

전쟁의 기간은 매번 달랐지만 적어도 그 시작일은 언제나 일정했다.

용의 군세는 100년이 되는 해의 첫째 날 진군을 시작하고 정확히 90일 후 승리의 벽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기간이 틀어졌다.


"노인네 설마... 또 어둠의 땅을 본 것인가?"

"그렇게 보지 말래도. 사내녀석에게 뜨거운 시선을 받아봐야 기분이 좋지 않아."

"농담이 나오나? 이미 그 눈은 한계이니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쯧. 잔소리는 그만. 중요한 건 용이 깨어났고 용의 군세는 이미 진군을 시작했다는 것이지. 우리는 제사장들을 쫓을 시간이 없어. 전쟁을 준비해야 하네."


돌아가는 상황을 본다면 아마도 그 어느 때보다 처절한 전쟁이 될 것이야.

씁쓸한 얼굴로 뒷말을 덧붙인 숨은 이윽고 조그마한 막사 앞에 멈췄다.


"자. 그러면 이미 한대륙에 들어온 제사장들이 문제라 말하고 싶겠지?"


숨은 답지않게 조심스러운 어투로 막사 안에 기별을 넣었다.


"저기. 누님. 숨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누님?

아흔이 넘은 양반이 누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테노부스의 의문에 답하듯 막사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십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누님."


테노부스는 프로토케의 왕이라는 자가 이렇게까지 조심스레 대하는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숨을 따라 막사에 들어가니 겉보기와 다르게 실내는 의외로 넓고 쾌적했다.


막사 안에는 세 사람이 앉아있었다.

양 팔이 없는 사내.

사내의 휑한 어깨에 빛을 흩뿌리는 여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쪽 다리가 없는 노년의 여인까지.


"왕의 뒤에 있는 아이가 영웅왕의 재래라고 불리는 그 아이인 겝니까?"

"네. 누님."

"흠... 강하다고 했던거 같은데."


노년의 여인은 테노부스의 어깨 상처를 보고 있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움츠러들지 않는 테노부스였지만 그녀의 시선을 받은 그는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여인은 몸을 일으켜 테노부스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에 감겨있는 붕대를 풀었다.

뚫어져라 상흔을 살피는 노년의 여성을 보며 테노부스는 저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놨다.


"이. 이건. 제가 상대한 자가 강한..."

"겨우 유스티티엔에게 당할 정도라면..."

"겨우라뇨! 그 자는 엄청 강했단 말입니다. 아니 그보다 그걸 어떻게?"

"일단 앉으시죠. 테노부스 알랑케 요엠가움, 영웅왕의 재래라 불리는 왕이여."


저기 가운데에서 빛을 흩뿌리는 여인을 보면 저들은 마법사가 맞았다.

테노부스는 왜 이단이 프로토케 막사에 숨어있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의 힘 역시 이단의 그것과 맞닿아있기에 대현자가 뒤가 구리다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단이란 존재는 오히려 그들이 지키고 보호해야할 자들이었다.


그가 놀란 부분은 그가 입은 검상을 보고 그 주인이 누구인지 노년의 여인이 단번에 맞혔다는 것이었다.

테노부스의 놀란 표정을 보며 숨 가드나가 킬킬 거렸다.


"누님께서는 이전 연합전에 참전하셨던 마법사이시네."

"이전 연합전이라면..."


도대체 몇 살이라는 거야?


"카밀로테 정규군 일번대 대장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혁명단을 이끌고 있는... 오르디나 이레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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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196.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23.05.11 2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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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190.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1 23.05.01 30 2 12쪽
189 189. 권능자님 한 명 더 갑니다 23.04.27 42 2 11쪽
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47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5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5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5 2 12쪽
179 179. 잠깐이면 돼 +1 23.04.10 70 2 11쪽
178 178. 당당히 고개를 들게 친구여 23.04.05 52 2 13쪽
177 177. 진심 주먹질 23.04.04 78 2 11쪽
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175 175. 제사장이다 꼼짝마 +1 23.03.29 28 2 11쪽
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8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8 2 11쪽
»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30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3 2 11쪽
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167 167. 기억 하나 23.03.15 2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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