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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35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3.04.04 18:22
조회
78
추천
2
글자
11쪽

177. 진심 주먹질

DUMMY

테노부스가 항상 페트라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 페트라. 언제까지 그 힘에 휘둘리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넌 네가 흡수한 힘에 네 의지를 실을 필요가 있다.

- 그러니까 그게 안되니까 이러는 거 아니에요. 바보부스 아저씨.

- 이름 이상하게 바꿔서 부르지 마라.

- 아저씨. 저는 이걸 다루고 싶지 않아요. 이걸 끊어내고 싶다니까요.


따악


테노부스가 손가락을 튕겨 어린 페트라의 이마를 때렸다.


- 아! 진짜! 아파요.

- 네가 이걸 끊어낼 수 있다면 나도 이러고 있지 않겠지.


그는 손바닥을 들어 어린 페트라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엉긴 묵색의 히펠이 그의 손에서 꿈틀댔다.


- 네놈의 몸은 이걸 쉬지도 않고 끌어모으지 않더냐.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배워서 꾸준히 뿜어내야 한다.


테노부스가 주워온 아이는 단순히 재능이 넘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영웅왕의 비전서를 줍기 전부터 이미 히펠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우연히 주운 비전서를 통해 힘을 몸에 흡수하는 법을 배운 이후부터는 단순히 들러붙던 히펠이 아주 그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고 말이다.


평범한 기사에게 이런 재능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페트라에게는 아니었다.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힘은 그가 감히 통제할 수 없는 혼돈이었고 이때의 기억에 사로잡힌 그는 저 스스로를 괴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암만 테노부스가 페트라에게 '넌 괴물이 아니다.'라고 말해도 그 말이 페트라의 가슴에 와닿는 일은 없었다.

결국 그가 페트라에게 가르칠 수 있는 일은 묵색의 혼돈을 통제하고 꾸준히 배출시키는 일이었다.

히펠을 다루다 보면 그의 의지가 개입하기 마련이고 언젠가 그 의지가 더 단단해지면 어쩌면 특성 자체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최선의 수였다.


- 자. 이걸 봐라.


테노부스가 페트라처럼 세상에서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하자 페트라와 같은 묵색 히펠이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꿈틀대는 혼돈이 그의 몸 속에서 난장을 피우는 것 같았지만 결국 그의 몸 속에 들어온 묵색 히펠은 그의 원래 히펠과 동화되어 차츰 안정되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그가 다시 히펠을 끄집어내자 묵색 히펠은 금색 히펠로, 금색 히펠은 다시 단단한 바위 덩어리로 바뀌었다.


- 혼돈도 결국 힘의 집약체일 뿐이다. 너라는 사람을 거치면서 방향이 없던 힘이 어디로 향할지 정해지는 것이지.


그러니 페트라야.


- 이 막대한 힘에 죄없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도록 해라.


이때 들은 테노부스의 말은 항상 페트라의 가슴에 족쇄처럼 남아있었다.


***


어지러이 얽히고설키는 혼돈.

모든 게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오직 공허함만이 자리한 곳에 홀로 남은 페트라는 울고 있었다.


그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인연이.

어설프게 인간 행세를 하고 있던 제 모습이.

꿈틀거리는 묵색 괴물 위에 위태롭게 서있던 그의 모든 소망들이 그가 흘리는 눈물과 함께 기어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덩치도 산만한 어른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것을 보면 디르앤이 뭐라고 했을 테지만 그에게 잔소리할 디르앤은 더이상 그의 곁에 없었다.


심장이 찢어진 사람은 죽는다.

그게 아무리 강인한 기사라고 하더라도 이는 똑같이 적용되는 사실이었다.

제사장의 손에 디르앤의 심장이 찢어졌으니 이제 그녀는 죽을 것이었다.

생기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그는 지독한 통증이 그의 가슴에 틀어박히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의 심장도 디르앤의 심장과 함께 찢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가슴이 아플 리가 없었다.


문득 후회가 그의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가 진작 검을 휘둘렀다면.'


마르체호라에게 몸이 묶인 순간 바로 알았다.

그가 그의 몸 속의 묵색 괴물을 깨운다면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라페에서 그가 일으켰던 참상을 생각하면 그는 선뜻 제 몸 속의 괴물을 다시 부릴 수 없었다.

괴물이 또 다시 그의 통제를 벗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때도 라페에서처럼 운이 좋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 두려워 가만히 있었더니 그 대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 정말이지 지독한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잃으며 살아야 한다면 내가 이 힘을 참을 필요가 있나?'


주변 사람을 잃을 것이 두려워 언제나 전전긍긍하며 힘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그였다.


'여기서 이 힘을 꺼낸다면 적어도 디르앤의 복수를 해줄 수 있잖아.'

'아니지 그걸로는 부족하지.'

'그럼?'

'왜 옛날부터 바보부스가 하던 말 있잖아.'


너는 누구인가?

너는 이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힘이 뭐가 그리 두려운 거야?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무서워하지 말고 받아들여.'

'그러면?'

'넌 너의 것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가 될 거야. 이 정도의 힘을 다룬다면 글쎄... 제사장이 뭐야. 용도 벨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바보같이 두려움에 잃기만 하지말고 너의 것은 너 스스로 지켜내.

이 혼돈에 너만의 질서를 부여하는 거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페트라는 마침내 손을 뻗어 그를 뒤덮고 있던 어둠을 움켜쥐었다.


***


"끄아아악!"


새까만 힘이 마르체호라의 손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페트라의 몸에서 줄기줄기 솟아난 히펠이 수많은 칼날로 바뀌어 마르체호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검날들이 마르체호라를 덮치기 직전.


"마르. 정신차려."


마르 뒤로 삐쩍마른 여인이 나타나더니 검은 힘에 잡혀있는 마르체호라의 손을 끊어냈다.

여인의 등장에 정신을 차린 마르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 누구도 감히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였지만 그녀가 물러난 자리에는 어느새 페트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왼쪽 팔로 막고 머리를 날려."


페트라가 휘두르는 디스탕시온에는 새까만 히펠이 줄기줄기 엮여있었다.

안그래도 큰 대검이 더 커다란 검이 되어 마르체호라에게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마르는 여인의 말대로 손목이 잘려나간 왼팔로 대검을 막고 오른팔을 내질러 페트라의 얼굴을 부쉈다.


머리가 사라지고 우뚝 선 페트라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여인이 말했다.


"달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레플루앙시? 내 팔이 왜 재생되지 않은 거냐?"

"설명은 나중에.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부터 마르가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여기서 도망쳐야 해."

"... 알겠다."


그 사이, 페트라의 목 위로 검은 힘들이 몰려들더니 그의 머리가 다시 복구되었다.

머리가 되돌아온 페트라는 멀어지는 두 제사장을 보았다.

마르는 머리가 재생되는 페트라를 보며 마치 자신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굳이 저 모습뿐만이 아니다.

저 자가 뿜어내는 힘은 확실히 제사장과 같았다.


"저 자도 우리처럼 힘을 받아들인 거냐?"

"바보 마르. 저걸 볼 시간이 어딨어!"

"아니 같은 편이라면..."

"너도 제사장인가?"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에 레플루가 얼굴을 구기며 마르의 몸을 잡아 당겼다.

어느새 페트라가 그들 아래에 있었다.


"빌어먹을."


검은 힘이 터지며 두 제사장을 덮쳤다.

검은 광선은 제사장들을 덮친 것으로 모자라 쭉 뻗어나가 하늘을 가르며 불길한 궤적을 남겼다.

궤적 안의 마르와 레플루는 망신창이였다.


"커헉. 어떻게 나보다 빠른..."

"바보 마르. 지금 그딴 걸 따질 때야!"


레플루앙시의 두 눈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하... 정말."


그녀는 마르 앞으로 나가 까만 힘을 제 몸 주위에 둘렀다.

곧 그녀 앞으로 페트라가 불쑥 나타났다.


크가각


비록 그녀가 두른 까만 힘이 깨지기는 했지만 그녀는 페트라가 휘두른 디스탕시온을 흘려내는 것에 성공했다.

검을 다 빗겨내기 무섭게 레플루는 제 머리 위에 까만 힘을 모았다.

디스탕시온이 빗겨나가자 페트라는 다시 그녀 위로 검을 내리쳤다.


콰아앙


레플루의 머리 위로 새까만 힘이 폭발하였다.

검이 닿기 직전에 몸을 가까스로 비튼 레플루는 상반신의 왼쪽을 통째로 날리긴 했지만 살 수 있었다.


"아파."


페트라는 부상을 입고 도망치지 못한 레플루를 끝장내려고 했지만.


키이이잉


땅에서 붉은 광선이 날아와 페트라의 머리를 꿰뚫었다.

페트라의 정신이 잠깐 멈췄지만 디스탕시온은 이미 그녀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마르체호라는 레플루를 낚아채 검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 같이 머리를 노려."


키이이이잉

키이잉

키이이잉


그 사이 땅에서는 연속적으로 시뻘건 광선이 날아와 페트라의 머리를 꿰뚫었다.

마르는 붉은 광선과 함께 빠르게 재생되는 페트라의 머리를 공격했다.


붉은 광선의 주인은 아돌 앙귀스였다.

그는 사슴의 복부를 찌르며 연보라 꽃밭에서 빠져나왔고 그를 마저 끝장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제사장들이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그들을 돕기 위해 달려온 참이었다.


"나에게 한대륙을 통째로 넘겨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너희 제사장들을 믿어도 되는 건가?"

"닥쳐라. 죽여버리기 전에."

"지금 누가 누굴 봐주고 있는지 모르나본데..."


아돌과 마르가 서로 으르렁대자 레플루가 그들을 말리며 나섰다.


"둘 다 그만. 다시 온다."


레플루의 말대로 머리가 부숴지던 페트라의 주변으로 검은 힘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죽음의 힘을 쓰면 이미 이전의 영혼은 먹힌 상태일텐데..."


마르는 그녀가 제사장이 되던 순간을 떠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파편이었던 그녀가 원래 육체의 영혼을 집어삼키고 완전히 몸을 차지한 순간을 말이다.

완전히 몸을 차지하고 나서야 그녀는 제 힘을 온전히 끌어다 쓸 수 있었다.


마르체호라는 제사장이 된지 오래되었음에도 현재 페트라가 쓰는 힘만큼 압도적인 힘을 쓰지 못하는데 저 인간은 아직 온전히 파편에 먹힌 것이 아님에도 그녀를 능가하는 힘을 쓰고 있었다.


"정말 괴물이라도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다음은 뭐냐. 레플루앙시."

"이제 힘을 합쳐서 싸워야지 뭐."

"우리로는 무리다."

"응. 무리지."

"?"


아돌과 마르체호라가 쏟아내는 공격이 슬슬 막히는가 싶더니 사라졌던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온 페트라가 등장했다.

페트라가 디스탕시온을 들어 마르체호라를 겨누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멀리서 날아온 까만 광선이 페트라를 덮쳤다.


"나랑! 나랑 싸워!"


천진한 미소를 한 남자 아이였다.


"칼리다비스!"


까만 광선이 찢어짐과 동시에 페트라의 대검이 남자 아이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강하네. 아저씨."


카가가각


"나돈데. 히히."


대검을 막아낸 꼬맹이가 웃으며 주먹을 내뻗었다.


콰아아앙


꼬마의 주먹을 막은 페트라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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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47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5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5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5 2 12쪽
179 179. 잠깐이면 돼 +1 23.04.10 70 2 11쪽
178 178. 당당히 고개를 들게 친구여 23.04.05 52 2 13쪽
» 177. 진심 주먹질 23.04.04 79 2 11쪽
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175 175. 제사장이다 꼼짝마 +1 23.03.29 28 2 11쪽
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9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8 2 11쪽
171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30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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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167 167. 기억 하나 23.03.15 2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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