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초보 글쟁이 나카브의 공방

글로 인화한 사진첩

웹소설 > 일반연재 > 시·수필

나카브
작품등록일 :
2013.03.27 15:09
최근연재일 :
2016.03.02 04:4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697
추천수 :
51
글자수 :
5,823

작성
13.04.04 23:17
조회
218
추천
3
글자
2쪽

정월 대보름

DUMMY

메마른 삭정이 얼어붙는 계절의 끝에

어둠이 으슥한 밤공기에 얼어가는 하루의 끝에

나는 시간의 끝에 매달려 손을 뻗어봅니다.


그곳은 심연의 흑해가 끊임없이 넘실대는 곳

뒤집힌 천구의 그릇에서 쏟아지는 어둠의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간 손이 닿고자 하는 곳에는


심연에서 끌어올리는 두레박이 햇볕에 찰랑이는 것처럼

은은한 빛을 함뿍 담은 달이 있습니다.


아, 눈 감아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빛인지


아, 눈 감아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위안인지.



정월의 오롯한 달조차 어둠을 완연히 살라내지 못합니다.

수없이 떠오르는 액연과 깨어지는 부럼과

원을 그리며 맹렬히 타오르는 불빛,

그런 약속할 수 없는 기원들만들이 스러져갈 뿐.


그리고 수많은 기원으로도 차마 묻어버릴 수 없어

잊어도 내치지 못할 내일의 불안이 보름달 대신 차오릅니다.


아아, 두렵습니다. 깨달을까봐 두렵습니다.

기원이 클수록 불안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달이 클수록 지금 이 시간이 밤이라는 것을 자각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지금은 그저 기다리겠습니다.

계절의 끝에 되돌아오는 계절의 시작을

밤이 지나 찾아올 환한 태양을.


그러니 심연의 바다에 목을 주린 나는

한동이 두레박 물도 달게 받겠습니다.


메마른 얼음땅이 녹아 풀릴 계절이 오기 전에

여명(黎明)조차 대로로 만들 어둠이 깔린 하루가 밝아지기 전에

시간의 첨단에 올라서서 힘껏 두레박 줄을 당길 것입니다.


그 줄 끝에는

분명 나의 슬픔을 비워 채운

둥그런 보름달이 찰랑일 것입니다.


작가의말

정월대보름. 음력 1월 15일.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1년의 운세를 점쳐 보는 날. 불운을 떨치고 건강을 기원하기 위한 액연 띄우기, 더위팔기, 부럼 깨물기 등의 풍속이 있는 날.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농경사회였던 옛날, 한 해를 시작하는 달에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상상 말이죠. 올해 농사는 어떻게 될지, 가뭄이 들지 않을지 홍수가 나지 않을지, 수확철까지 비축한 양식이 버텨줄 것인지 등등등.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많이 드는데, 그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을 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절기에 맞춰 땅을 갈고 파종하고 물 대고 해야 하지, 자기가 불안하다고 해서 때를 맞추지 않고 이것저것 할 수 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근질근질한 손을 달래기 위해 정월대보름에 이런 풍속들을 즐긴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2006년 9월 10일, 학과 공부도 하고 취업 준비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몸이 군대에 있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때였습니다. 


어찌 보자면 제 처지를 표현하기 위한 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월 대보름에 대한 상상을 정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요.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먼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요. 그래서 그런지 옛날에 쓴 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시를 읊을 때마다 감회가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읊을 때마다 또 다시 다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할 날이 오기 전, 현재를 착실하게 살아서 미래에 거둬야 할 결실을 미리 거두도록 준비해야겠다고요. 


그를 위해 시간의 첨단 끝에 올라선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게 하루를 부지런히 살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글로 인화한 사진첩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후회 16.03.02 149 2 1쪽
15 신록 16.03.02 128 2 1쪽
14 그림자 지지 않는 냇가 +1 13.04.08 281 5 1쪽
13 미련 13.04.07 170 2 1쪽
12 돌탑 13.04.06 170 5 1쪽
11 짝사랑 +1 13.04.05 233 5 1쪽
» 정월 대보름 13.04.04 219 3 2쪽
9 석상 +1 13.04.04 147 5 1쪽
8 수평선 +2 13.04.03 300 4 1쪽
7 상아 +1 13.04.02 196 1 1쪽
6 13.04.01 196 2 1쪽
5 +1 13.04.01 170 1 1쪽
4 온기 13.03.31 291 2 2쪽
3 석양 +1 13.03.30 245 3 1쪽
2 비가 오면... +1 13.03.28 291 4 1쪽
1 바람 +6 13.03.27 460 5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