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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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를 넘나드는 마님은 워낙에 소박하셔서
빛깔 하나 없는 무색 저고리와 무색 치마폭을 두르고 계셔요.
하지만 당당하게 가슴을 편 저고리는
하늘의 청빛을 담고
풍성히 열린 과실을 모두 거둘만큼 너른 치마폭은
들판의 쪽빛을 머금으니
소박해도 소박하다 할 사람 없고
소박한들 아름답다 하지 않을 사람 없죠.
저 하늘의 병풍을 접는 마님은 워낙에 너그러우셔서
오는 먹구름 가는 비구름할 것 없이 모두 품어버리죠.
하지만 마님의 호령에 해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먹구름 없고
마님의 질책에 흩어지지 않을 비구름 없으니
너그러우셔도 대쪽 같으시고, 너그럽다한들 무르다 할 사람 없죠.
저 갈 길을 재촉하는 마님은 워낙에 빠른지라
하늘을 땅 딛는 듯 가로지르는 천마라 한들 따라잡을 수가 없죠.
하지만 뉘 하나 가릴 것 없이 이마의 구슬땀을 닦아주시고
뉘 자식 가릴 것 없이 그 머리를 보듬어주시니
걸음을 재촉해도 빠짐이 없으시고, 재촉한들 야박하다 할 사람 없죠.
마님, 그래도 바쁜 걸음 잠시 쉬고 초가에 들어오소서.
칼칼해진 목 축이시게 뒷뜰의 우물물을 길어와
청빛 저고리와 쪽빛 치마폭을 손수 정성스럽게 빨아드리겠나이다.
- 작가의말
2006년 4월 16일작. 의인화 연습한다고 썼군요. 고전적인 문체를 좋아하던 시절이라 옛스런 표현을 흉내낸 것인지, 지금 와서 보니 저 자신도 낯설게 보이네요.
글자크기 14pt로 보면 딱 맞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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