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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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귓불에 언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김 서린 입김 호호 손에 불던 어느 겨울-
지친 발걸음, 외로이 한 줄 자욱을 남기는 것을 시작으로
저마다 옮기는 삶의 무게가 나란히 긁은 아픔을 새기니
그 날
소중한 말 한마디가 눈보다 차가운 아스팔트 먹선에
찍, 하고 그어져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 손을 비벼줄 손길 하나 있으면...’라는 그 아쉬움,
그것을 달랠 시간조차 없이 똑바로 걸을 수밖에 없는 어느 하루-
만나지 않는 선은, 면 하나 이루지 않아도 우습게 따스한 말 지우고
차라리 헝클어진 선이었으면, 라는 최후의 위안조차 냉정하게 자르는데
그 시각
귓전을 때리는 지하철 굉음에 맞춰 한걸음 딛는 구두소리가
더 이상 미련 갖지 말라고 뒤돌아서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엇갈리는 지하철의 달리는 혹한에 재킷을 바짝 죄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등 돌리는 구두소리 내며 열차에 몸을 맡기는 그 시간-
빌릴 어깨 없이 쓸쓸히 흔들려 어지러운 시야는 나 홀로만이 창에 비치고
이리 저리 치이며 멍드는 마음이 아파 손을 뻗치는데,
그 찰나
싸늘한 손에 잡힌 손잡이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온기가 잡히고,
고인 피가 맥동하여 그 자취와 맥을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희미한 온기, 이 얼음장 같은 손으로 쥘수록 식는다는 사실도
그 어렴풋한 온기, 꾹 움켜쥘수록 도망간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매달리는 그 찰나
쿵, 하고 뛰는 맥동이 가슴에서 팔로, 팔에서 손으로 흘러
덜컹거리는 지하철 소리에 묻힌 와중에도 남몰래 내 자취를 남긴다.
아, 그리하여
사람은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따스했던 존재라는 것을
식어버린 손길로나마 찾아쥐는 미련함에 안도했다.
- 작가의말
- 한겨울철에 취업 준비를 위해 영어 공부를 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지하철을 통해 학원과 집을 오갔는데, 얼어붙은 손으로 지하철 손잡이를 잡아보니 손이 녹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에요. 다른 사람이 붙잡아서 온기가 남아있었던 거죠. 그 느낌이 묘하게 신기하게 여겨지길래 글로 남겨보자 해서 썼던 겁니다. 이것도 2006년에 쓴 구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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