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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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 너머 높이 솟은 서산에는
오늘도 뺨이 발갛게 상기된 양치기 하나가
빠끔한 틈새로 말간 얼굴을 삐죽 내민다.
이려, 이 못된 어린양아 어디에서 놀고 왔길래 너만 외떨어졌니.
양지바른 곳이라고 너만 뛰어노는 곳인 줄 아니.
동굴에서 늦잠을 자다 따스함에 굶주린 검푸른 이리떼가
너를 삼키러 올 줄을 모르는거니.
이리 오렴, 내 어린양아 어스름한 빛을 낯설어 하지 말고.
이 울타리 너머는 우릴 위한 쉼터
하루의 피로를 따스히 녹일 모닥불에 앉아 새근새근 잠을 청해야지.
아침이 머물렀던 곳이라 해서 저녁까지 뜬 눈으로 있지 말고
맨 처음 아침을 반겼듯이 오늘도 일찍 자고
내일의 아침을 일찍 반겨야지-
그렇게 산 너머 붉게 물든 평원에는
오늘도 늦깍이 어린양 하나가 양치기 호통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뚱거리며 따라오는데,
먼저 들어간 양들의 털은 새하얗기만 하고
양치기 속만 썩이는 이 어린양만
황금빛 양모를 빛내며 따라오고 있더라.
- 작가의말
- 여전히 글자크기 14pt에 최적화돼 있는 글입니다.중학생일 적, 당시 담임 선생님이 저를 굉장히 아껴줬습니다. 저는 그게 의아하게 여겨졌어요. 당시 저는 성적도 썩 좋지 않고 행동도 굼뜨고 허술했거든요. 유일한 장점은 말 잘 듣고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남들보다 늘 뒤쳐지는 결과만 보였죠. 그런 제가 뭐가 예쁘다고 선생님이 아껴주는지, 고마워하면서도 늘 궁금해했습니다.그리고 대학생이 된 저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그룹 스터디를 맡게 됐습니다. 똑똑한 아이도 있었고, 약은 아이도 있었고, 어릴 적 저처럼 노력은 하고 있는데 다른 아이보다 뒤쳐지는 모습을 보이는 애도 있었습니다.정작 그룹 스터디가 끝날 즈음, 다른 누구보다 제가 아낀 아이는 똑똑한 아이가 아닌 뒤쳐지던 아이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준다면 애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가 뒤쳐지는 애라고 내가 관심을 끊어버리면 애가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 애타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따라오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요.그런 생각을 하며 스터디가 끝나서 집에 돌아갈 무렵 버스 창 너머에 비친 노을을 봤습니다. 그 날 유난히 양떼구름이 많은 날이었는데 점심 때만 해도 한가득 있었던 양떼구름은 어디로 가고 자그마한 조각 구름들만 노을빛으로 빛나고 있더군요.그걸 보고 혼자서 뒤쳐지던 구름이 도리어 먼저 제 갈 길을 간 구름보다 이쁘게 보이는구나, 그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운이 좋아서 쓸 수 있었던 시였던 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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