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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글쟁이 나카브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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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브
작품등록일 :
2013.03.27 15:09
최근연재일 :
2016.03.02 04:4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705
추천수 :
51
글자수 :
5,823

작성
13.03.30 16:32
조회
245
추천
3
글자
1쪽

석양

DUMMY

평원 너머 높이 솟은 서산에는

오늘도 뺨이 발갛게 상기된 양치기 하나가

빠끔한 틈새로 말간 얼굴을 삐죽 내민다.


이려, 이 못된 어린양아 어디에서 놀고 왔길래 너만 외떨어졌니.

양지바른 곳이라고 너만 뛰어노는 곳인 줄 아니.

동굴에서 늦잠을 자다 따스함에 굶주린 검푸른 이리떼가

너를 삼키러 올 줄을 모르는거니.


이리 오렴, 내 어린양아 어스름한 빛을 낯설어 하지 말고.

이 울타리 너머는 우릴 위한 쉼터

하루의 피로를 따스히 녹일 모닥불에 앉아 새근새근 잠을 청해야지.

아침이 머물렀던 곳이라 해서 저녁까지 뜬 눈으로 있지 말고

맨 처음 아침을 반겼듯이 오늘도 일찍 자고

내일의 아침을 일찍 반겨야지-


그렇게 산 너머 붉게 물든 평원에는

오늘도 늦깍이 어린양 하나가 양치기 호통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뚱거리며 따라오는데,

먼저 들어간 양들의 털은 새하얗기만 하고

양치기 속만 썩이는 이 어린양만

황금빛 양모를 빛내며 따라오고 있더라.


작가의말
여전히 글자크기 14pt에 최적화돼 있는 글입니다. 


중학생일 적, 당시 담임 선생님이 저를 굉장히 아껴줬습니다. 저는 그게 의아하게 여겨졌어요. 당시 저는 성적도 썩 좋지 않고 행동도 굼뜨고 허술했거든요. 유일한 장점은 말 잘 듣고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남들보다 늘 뒤쳐지는 결과만 보였죠. 그런 제가 뭐가 예쁘다고 선생님이 아껴주는지, 고마워하면서도 늘 궁금해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저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그룹 스터디를 맡게 됐습니다. 똑똑한 아이도 있었고, 약은 아이도 있었고, 어릴 적 저처럼 노력은 하고 있는데 다른 아이보다 뒤쳐지는 모습을 보이는 애도 있었습니다. 

정작 그룹 스터디가 끝날 즈음, 다른 누구보다 제가 아낀 아이는 똑똑한 아이가 아닌 뒤쳐지던 아이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준다면 애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가 뒤쳐지는 애라고 내가 관심을 끊어버리면 애가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 애타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따라오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요. 

그런 생각을 하며 스터디가 끝나서 집에 돌아갈 무렵 버스 창 너머에 비친 노을을 봤습니다. 그 날 유난히 양떼구름이 많은 날이었는데 점심 때만 해도 한가득 있었던 양떼구름은 어디로 가고 자그마한 조각 구름들만 노을빛으로 빛나고 있더군요. 

그걸 보고 혼자서 뒤쳐지던 구름이 도리어 먼저 제 갈 길을 간 구름보다 이쁘게 보이는구나, 그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운이 좋아서 쓸 수 있었던 시였던 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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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59 굶주리다
    작성일
    13.04.03 16:56
    No. 1

    늦저녁의 고요한 평원 위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아름답다는 기분이 드는 것 하나만으로도 절로 즐거워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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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후회 16.03.02 150 2 1쪽
15 신록 16.03.02 128 2 1쪽
14 그림자 지지 않는 냇가 +1 13.04.08 282 5 1쪽
13 미련 13.04.07 170 2 1쪽
12 돌탑 13.04.06 170 5 1쪽
11 짝사랑 +1 13.04.05 234 5 1쪽
10 정월 대보름 13.04.04 219 3 2쪽
9 석상 +1 13.04.04 147 5 1쪽
8 수평선 +2 13.04.03 300 4 1쪽
7 상아 +1 13.04.02 196 1 1쪽
6 13.04.01 197 2 1쪽
5 +1 13.04.01 170 1 1쪽
4 온기 13.03.31 292 2 2쪽
» 석양 +1 13.03.30 246 3 1쪽
2 비가 오면... +1 13.03.28 292 4 1쪽
1 바람 +6 13.03.27 461 5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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