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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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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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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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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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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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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놀라운 증언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18. 놀라운 증언





가방을 모아둔 창고를 뒤졌다. 학교 다닐 때 쓰던 백팩이 대부분이었다. 등에서 가방을 내려 활을 꺼내기엔 불편한 종류였다.


맨 밑에서 다른 것을 겨우 찾아냈다. 유치원 때 쓰던 하늘색 가방인데 작은 끈과 긴 끈이 있어 손으로도, 크로스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가방을 꺼내 만지고 있으려니 묘한 향수가 일어났다.


유치원에 다닐 당시 동생은 아직 어려서 아이 봐주는 아주머니가 집에 상주했고 나는 출근하는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갔다. 꽤 고가의 사립 유치원이었는데 그다지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친구나 선생님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손을 잡고 갔던 그 온기만은 아직도 손끝에 남은 듯했다. 아마도 그때가 엄마의 손을 잡은 마지막 시절이어서 그럴 것이다.


동생이 공부에 재능을 보이면서 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양궁을 하면서부터는 아예 관심 밖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반항도 하고 애교도 떨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그것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사고치는 아이들보다 더 조신하게 학교를 다녔다. 간섭을 받지 않으니 모든 유희가 시시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하늘색 가방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자에서 활과 화살을 꺼내 가방에 넣고 모자와 휴지, 휴대전화, 지갑을 넣었다.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가방에서 활을 꺼내는 연습을 해보았다. 입구가 넓어서 갈색 가방보다 훨씬 쉽게 꺼낼 수 있었다.


오늘은 남편이 출근한 사이 내연남을 불러들이고 그 상황에 방해가 되는 아이를 잔인하게 죽인 계모의 재판이 열리는 날이다. 오전 11시 전까지 법원으로 가야한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일층으로 내려가니 아줌마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나가니? 가방 바꿨네?”


아줌마가 청소기를 끄고 살갑게 말했지만 나는 대답 없이 아줌마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내겐 아직도 아줌마를 향한 어색하고 섭섭한 기운이 남아있었다.


골목을 나가 택시를 탔다.


“중앙지방법원요.”


***


강 형사는 책상에 앉아 수첩을 들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배미주는 처음부터 한 장이 찢어져 있었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그가 민현진 엄마에게서 그 상자를 받았을 때 수첩이 있었고, 말짱한 상태였다.


강 형사는 찢겨나간 종이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해내려고 오전 내내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나도 이제 늙은 모양이야. 생각이 나지 않으니.


박 형사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에는 두 사람 뿐이었다.


“모두 재판장에 나가서 사무실이 적적하네요.”

“무슨 재판이라고 했지?”

“계모 사건요.”


강 형사는 커피를 마시며 눈으로 수첩을 가리켰다.


“저 수첩 기어나? 민현진 유품인데.”

“물론이죠. 하도 봐서 볼펜 색깔까지 기억나는 걸요.”

“내용은 기억해?”

“대충요.”


강 형사가 커피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허리를 세웠다.


“그럼 찢어진 부분에 뭐가 있었는지도 기억나?”

“찢어진 부분요?”


박 형사가 수첩을 들고 휘리릭 넘기다 찢어진 부분에서 멈추었다. 그의 표정 역시 강 형사처럼 일그러졌다.


“너도 기억 안 나지?”

“좀 희미하긴 한데...한글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

“아...잠깐만 생각해 볼게요.”


박 형사는 수첩과 커피 잔을 들고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회색의 네모난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강 형사는 볼펜을 담배처럼 입에 물고 깊은 생각에 잠겼고 박 형사는 수첩을 넘기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남자의 목소리가 맞부딪쳤다.


“후 아 유!”

“후!”


강 형사가 일어나 박 형사의 책상으로 갔다.


“민현진 씨가 자살하기 며칠 전에 쓴 단 하나의 문장이었어. 우린 후 아 유를 쓰다가 만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 지도 몰라. 민현진이 남긴 다잉 메시지 같은.”

“선배님 말씀은 후라는 글자가 사람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말인가요?”

“그래. 그걸 염두에 두고 민현진이 주변 인물들을 조사해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때 신입 형사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강 형사님. 팩스가 왔습니다.”


종이를 받아들며 강 형사가 신입에게 물었다.


“넌 왜 법원에 지원 안 갔어?”

“비공개라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서류작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래? 계모 사건이 결국 비공개로 결정 됐군. 수고했어. 일 봐.”


강 형사는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읽어 내려가는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또 이상한 화상 환자가 들어왔다는 병원 팩스야. 여길 먼저 가보자.”


두 형사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


재판이 열리는 법원 일층의 10B는 비공개였다.


법원 경비가 문을 막고 서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멀리서 살펴보다가 돌아섰다.


법원 로비에는 역시나 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낭패감에 젖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로비는 미끄러질 듯 반들거렸고, 곳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숨어서 활을 쏠 만한 장소가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나오는 여자의 면상에 대고 활살을 날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계모의 목숨 줄을 끊고 싶었다. 아이가 겪은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혼자의 몸이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겠지만 내겐 활이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막히고 말았다.


계모는 오늘 재판을 받고 유치장으로 돌아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거기에 있다가 교도소로 이감 될 것이다. 그 말인즉 다시는 바깥에서 계모를 볼 기회가 없다는 뜻이 된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크로스로 멘 가방 안에서 활이 미약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활의 사명이 내 마음과 같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로비를 배회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


6인 병실에 들어간 강 형사와 박 형사는 엎드려서 자신들을 보고 눈을 껌벅이는 뚱뚱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다른 침상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박 형사는 커튼을 쳤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형사입니다.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자 덕자상회 주인여자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아주머니 사기 사건 때문에 온 건 아니니까 걱정 마십시오.”


박 형사의 말에 여자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물이 너무 먹고 싶은데 먹지 말라고 하네요. 정말 이러다 죽겠어. 아파서 죽기 전에 목이 말라서 죽겠어.”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냥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등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엄청 뜨겁지 뭡니까. 불이 붙은 돌덩이에 맞은 줄 알았다니까요. 도깨비 방망이 아시죠? 거기에 불을 붙여서 등짝을 후려친 것 같더라니까.”


아프다는 하소연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 여자는 누가 끊지 않으면 계속 떠들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누가 그랬는지 전혀 모르시나요?”

“그럼요. 내가 많은 사람을 알지만 나한테 그런 짓을 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내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강 형사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조사에 의하면 몇 명 정도 원한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을 텐데요. 아주머니의 돈 사건 말이죠.”


그러자 여자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혼자가 아니었다고 하던데 누구와 있었습니까?”

“아는 동생요. 점심때쯤 온다고 했는데.”

“그 분도 못 봤습니까?”

“네.”


그때 간호사가 커튼을 젖혔다. 그녀의 손에는 의료기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트레이가 있었다. 덕자상회 주인 여자는 간호사를 보자마자 언제 물을 마시면 좋은지, 밥은 언제 먹는지 연신 물었다. 두 형사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간호사가 엎드린 환자의 환자복을 올리다 말고 뒤돌아 두 형사에게 말했다.


“검사 때문에 등을 제모 해야 하니까 두 분은 나가주시겠어요?”


두 형사는 머쓱한 표정으로 병실을 나가 복도를 서성거렸다. 간호사가 나오는 걸 기다리며 말없이 병실을 보고 있으려니 한 여자가 다가와 병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강 형사는 직감적으로 그 여자가 덕자상회 주인여자와 그날 밤 같이 있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채고 말을 걸었다.


“혹시 덕자상회 환자분 병문안 오셨나요?”


여자가 놀란 얼굴로 형사들을 쳐다보았다.


“저희는 형사입니다. 그날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실까요?”


병실 복도를 오가는 환자와 간호사가 신경 쓰였는지 강 형사는 여자를 휴게실로 안내했다.


세 사람은 휴게실의 둥근 탁자에 앉았다.


“환자분과 어떤 사이입니까?”


강 형사가 물었다.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는 동생이에요.”

“그날 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씀 해주시겠어요?”

“언니와 같이 덕자상회에 있다가 나가는 길이었어요. 시장 근처에 파전을 잘하는 집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해서.”

“그래서요?”

“시장을 막 벗어나는데 언니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어요. 처음에는 쥐 때문에 놀라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언니가 그 자리에 쓰러지는 거예요. 언니를 살펴보니 옷에 불이 붙은 것처럼 새빨갛게 변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손으로 불을 끄려고 등을 탁탁 쳤죠. 그런데 불이 아니었어요.”

“불이 아니면 뭐였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성냥에 불이 붙었다가 순식간에 꺼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혹시 누가 그랬는지 봤습니까?”

“아니요. 사람이라곤 우리 둘 밖엔 없었어요.”


강 형사는 현장검증부터 시작된 일련의 화상 사건이 불가사의한 어떤 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화상을 입은 사람들 모두 같은 진술이었다. 아무도 못 보았지만 상처는 남았다. 그런 논리가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이번에는 박 형사가 질문했다.


“직장에 다니십니까?”

“도우미 일을 하고 있어요. 출퇴근으로.”

“그럼 오늘은 쉬는 날이세요?”

“아니요. 교수님한테 일찍 들어가겠다고 말했어요. 언니 병문안도 할 겸해서.”

“집 주인이 교수인가 봅니다.”

“아니요. 집 주인은 검사고, 부인이 교수예요.”


여자의 말에 강 형사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집안 환경이었다. 설마. 강 형사는 시선을 내렸다.


그때 여자가 우물쭈물 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될는지······.”

“괜찮습니다. 편하게 하십시오.”


타이르는 듯한 박 형사의 말에 여자는 잠시 주저하더니 말을 이었다.


“언니를 막 흔드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누군가 시장 저쪽으로 막 뛰어가고 있더군요. 어두워서 누군지 정확히 못 봤지만 그건 분명히 봤어요.”

“무얼요?”


강 형사가 예쁘장한 여자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가방요.”

“가방?”

“네. 늘 보던 가방이었어요. 갈색 소가죽 가방. 제가 일하는 집 딸이 들고 다니던 그 가방.”


강 형사와 박 형사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두웠다면서요?”


강 형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러자 여자가 몸을 움찔했다.


“아, 미안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계속 말씀해주세요.”

“그래서 처음에 그랬잖아요.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고요. 일하는 집 얘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가방에서 빛나던 그 불빛도 그렇고······.”

“불빛?”

“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불이 번쩍 하는 걸 봤어요. 그 불빛 때문에 그 가방인줄 알았던 거예요.”

“불빛을 봤다구요?”

“네. 정말 짧은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 가방을 잊겠어요. 매일 보다시피 하는 건데요.”

“매일 본다구요?”

“네. 거의 매일 만나는 사람이니까요.”

“그럼 그 가방 주인이 혹시 배미주?”

“어머, 그걸 어떻게 아세요?”


여자가 놀란 눈으로 두 형사를 보았고, 두 형사는 더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


나는 겨우 몸을 숨기고 활을 쏠만한 장소를 발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들키지 않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나는 가방을 꼭 쥐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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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배신 19.06.27 8 0 12쪽
13 WHO!!! 19.06.26 8 0 13쪽
12 유품 19.06.25 8 0 11쪽
11 투명인간 19.06.24 9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3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4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8 0 14쪽
2 실전 19.06.11 51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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