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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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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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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04,545

작성
19.06.1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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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카타르시스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7. 카타르시스



-그것은 너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암흑 속에서 들리는 깊고 굵은 소리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번에는 처음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말했던 파멸이라는 단어가 그동안 나를 괴롭혔기에 분명한 답을 얻고 싶었다.


-파멸은 너도 모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스스로.......


스스로, 스스로, 라는 말이 스르르 몸 위를 기어갔다. 섬찟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흐릿한 방안의 공기 속에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동생을 발견했다.


동생의 손이 책상 위의 가방으로 가는 순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아, 누나. 깼어?”


잘못하다 걸리면 그제야 누나라고 하는 녀석은 내 지갑에 몇 번 손을 댄 적이 있었다.


“또 돈 훔치려고?”

“아...아니야.”


손을 거두는 동생의 얼굴에 낭패의 기운이 역력했다.


“너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어?”


동생의 습관적인 도벽 때문에 항상 문을 걸고 자는데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동생의 등을 세게 때렸다.


“너, 왜 그래! 다신 안 그러겠다고 했잖아!”

“문을 잠그지 않은 네 잘못이야! 나한테 그런 병이 있는 걸 안다면 문단속을 잘해야지!”

“뭐야. 내 탓이라고? 니가 도둑질하는 게 내 탓이야?”

“도둑질, 도둑질, 하지 마!”

“니가 하는 게 도둑질이 아니면 뭔데!”


우리는 서로 지지 않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때 이층 계단으로 쿵쿵쿵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이 우리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니들 또 왜 그러니?”


열린 문으로 들어오며 아버지가 대뜸 고함을 질렀다. 엄마는 아버지 밀치고 재빨리 방으로 들어와 동생을 안았다. 엄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동생 품에 엄마는 폭 안겼다.


“우리 아들이 또 마음에 바람이 일었나보구나.”

“엄마. 누나가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했어.”


나는 어이가 없어 동생을 노려보았다.


“너 말 하부로 하지 마. 동생한테 그게 무슨 소리니?”

“엄마가 자꾸 감싸니까 지가 잘못한 줄 모르잖아.”

“너, 엄마한테도 목소리 높일래? 자꾸 그러면 카드 뺏는다.”


나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엄마가 내게 자주 하는 협박이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대들었다가 정말로 카드를 뺏긴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나섰다.


“당신은 왜 자꾸 온후만 감싸고돌아? 그러니까 남자애가 기백이 없고 비리비리 하지. 딸내미는 거세지고!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좀 조용히 자자. 사건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데 집안 꼴이 이게 뭐야? 밖에서 일하는 사람 좀 생각해줘. 아무튼 또 큰 소리 내면 둘 다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말을 마친 아버지는 쿵쿵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자기만 밖에서 일하나? 나도 힘들다고.”


엄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동생을 한 번 더 안아주고는 내 앞을 쌩하고 지나갔다.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지!”


내가 소리치자 엄마는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도 나를 스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한 번만 내 눈에 띄면 너 죽을 줄 알아!”


나는 소리를 꽥 지르고 방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동생은 마치 여자들이 생리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도벽처럼 가끔 누군가의 물건을 훔쳤다. 그것 때문에 엄마가 학교에도 갔지만 징계는 받지 않았다. 부모님의 위치도 그렇거니와 공부를 꽤 잘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이미 달아난 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의 일이 휘몰아친 뒤 생각은 다시 목소리로 움직였다.


파멸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젯밤의 결심이 흔들리는 건 아니다. 현진이를 파멸로 몰고 간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어떤 파멸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


깜박 졸다가 휴대전화 진동소리에 잠이 깼다.


가방을 열어 휴대전화를 꺼내는데 뭔가 이상했다. 안을 살펴보니 화살이 없다.


나는 동생 방으로 달려갔다. 동생은 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내놔!”

“뭘?”

“화살 말이야!”


내 험악한 얼굴을 보자 동생은 심각성을 느꼈는지 책상 서랍에서 화살을 꺼내 순순히 건넸다.


“너, 이 새끼!”


나는 주먹을 동생의 얼굴 바로 앞까지 힘껏 뻗었다. 동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쁜 새끼.”


방으로 돌아와 화살을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 넣은 뒤 휴대전화를 보았다. 전에 같이 양궁을 했던 친구에게서 온 문자였다. 시간이 있으면 오후에 만나자고 한다.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일층으로 내려갔다. 막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축 쳐진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쟤는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런 병이 생겼을까?”


부엌으로 가 아침상을 치우는 아줌마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동생과 부모님이 함께 아침을 먹었는지 수저가 세벌 놓여 있다.


“잘 잤어? 온후가 왜?”

“또 내 물건에 손댔어. 나 아침 먹을래.”

“그래. 국 좀 데우고.”


나는 거실로 나가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채널을 찾아 누르고 앉아 어제의 기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종교분쟁 국가의 자살 폭탄 테러와 국내 정치인들의 삭발식이 끝나고 뒤이어 어제 사망한 살인범의 소식이 나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현장검증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한 A씨의 일차 부검 결과 예리한 물건이 가슴을 관통한 것으로 보이며 다른 특이한 사항은 정밀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국과수에서 밝혔습니다. 기자가 좀 더 사건을 취재한 결과 가슴에 작은 구멍이 나있고 구멍 주위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았다고 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억지가 있습니다만, 같은 날 사고를 당한 지프 체로키 운전자가 있는데요. 운전자의 어깨에도 불에 그을린 자국과 함께 예리한 무언가가 어깨를 관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체로키 차량에 불이 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런 상처가 났을까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기자의 취재는 꽤 날카로웠다. 하루 동안 일어나 두 사건을 같은 식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더 신중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었다.


[체로키 차량의 운전자는 다행히 고비를 넘겼습니다. 경찰은 회복이 되는 대로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주야, 밥 먹어.”


아줌마가 말했다.


“잠깐. 이것만 보고 갈게.”


[그러나 현장과 피해자 주변 어디에도 증거가 없어 수사는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목격자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합니다. 혹시 미상의 물건을 목격하신 분은 아래 전화로 제보바랍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부엌으로 갔다.


화살이 사라지면서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신체에 그을린 자국을 남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목격자가 없다면 아무도 범인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인즉, 몸을 잘 숨겨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고 김치를 얹어 먹는 내내 두 사람을 향해 화살을 날렸던 장면을 생각했다. 처음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남자에게 화살을 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카타르시스가 횟수가 늘어갈수록 더 강하게 느껴졌다.


-죄책감을 느끼는 게 정상일까?


그러나 체로키 운전자를 그대로 두었다면 더 큰 일이 생겼을 것이다.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을 테고 누군가 더 크게 다치거나 사망했을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범인의 파렴치한 말을 듣고도 그대로 있었다면 범인은 사형제도가 없어진 교도소에서 일생을 편안하게 살았을 것이다. 행여 가석방이 되어 나오게 된다면 유족을 먼저 찾아갈지도 모른다. 두 손에 움켜쥐고 태어난 악랄한 천성은 언제든 발현할 테니까.


“오늘따라 조용하네?”

“생각할 게 있어서. 뭇국 맛있다. 좀 더 줘.”

“검사님도 두 그릇 먹고 갔어.”


그릇에 국을 담는 아줌마를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아줌마는 혹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이 있어?”

“물론 있지.”


국그릇을 내 앞에 놓고 아줌마는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 애들이 어릴 때 어떤 여자한테 사기를 당했어. 우리가 원래는 잘살았다고 말했지? 너희 집 보다야 한참 아래지만. 아무튼 그 여자 때문에 가난뱅이가 됐어.”

“그 여자는 지금 뭐해?”

“교도소 갔다 나와서 재래시장에서 옷가게 해.”

“돈 받았어?”

“웬 걸. 죗값을 받았기 때문에 돈 안줘도 된다고 배 째라더라. 얼마나 그악스러운지. 우리 남편도 그 여자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못됐다.”

“정말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쏴 죽이고 싶어.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여자가 악랄한 여지인지 몰라. 아마 거기서도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지.”

“경찰에 신고하지?”

“소용없어. 차용증이 있기를 해, 증인이 있기를 해. 턱에 커다란 점이 있는데 말발이 거기서 나오는지 아주 달변이야. 홀딱 속아 넘어가. 그 말발에 속아서 그런 거 하나 없이 그냥 보증을 섰으니 내가 미쳤지.”


아줌마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얼굴이 붉히며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밥을 먹고 이층으로 올라가 오후가 되도록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


카페에 들어가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여자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쪽으로 걸어가는 내 눈에 비친 여자는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서와. 나 혜서야. 몰라보겠어?”

“아?”


중학교를 졸업하고 4년 만에 만난 혜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씩씩하고 덩치가 큰 선머슴 같던 이미지는 하나도 없고 날씬하고 예쁘장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너 많이 예뻐졌다.”

“그래? 사실 몇 군데 고쳤어.”

“어쩐지. 수술 잘 됐다야.”

“소개해줄까?”

“아냐. 난 이대로가 좋아.”

“너도 코 좀 높이고 턱 좀 깎으면 좋겠다.”

“너 무슨 일 해?”

“성형외과 매니저. 잘 어울리지? 너는?”

“아...그렇구나. 난 백수야.”

“너희 집이야 평생 백수해도 상관없지.”

“그런데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장 코치님한테 연락이 왔더라. 너가 찾는다고.”

“응. 현진이 일 때문에.”

“나도 그 얘기 들었어. 많이 놀랐고.”

“혹시 현진이에게 내가 모르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넌 아는 거 없어?”


혜서는 대답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인조속눈썹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혜서의 눈을 쳐다보았다. 혜서는 나를 향해 입술을 모으고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자주 보았던 그녀의 습관이었다. 어색하고 낯선 감정이 예전 습관을 보자 조금 누그러졌다.


“사실, 그것 때문에 너한테 전화를 했어.”


혜서가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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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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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 카타르시스 19.06.18 14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2 실전 19.06.11 51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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