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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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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41
추천수 :
1
글자수 :
104,545

작성
19.06.10 16:50
조회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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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목소리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1. 목소리



“그것이 너의 소원이냐?”


목소리가 물었다.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형체가 없다. 나는 어둠 속을 두리번거렸다. 로르샤흐 테스트의 나비 그림처럼 어떤 형상이 보이는 것도, 아닌 것도 같았다.


“물론 너는 내게 묻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네게 묻는다. 그 남자를 죽이는 게 너의 소원이냐?”


목소리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심쩍고 불안한 마음 때문에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다. 그게 너의 진심이냐?”


마지막이라는 목소리에 조바심이 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어둠 속에서 내 행동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네.”


“이것은 너의 꿈이다. 그러나 꿈이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너의 마음이다. 넌 누구보다 절실하다. 그것을 나는 느꼈다.”


“누...누구세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이것을 준다. 이것은 너의 소원을 이뤄주는 동시에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어둠 속에서 상자 하나가 나타나 둥둥 뜬 채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갈등에 휩싸였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파멸로 이끄는 상자를 잡아야 할 것인지, 거부해야 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더 이상 나는 네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유혹이었다. 내 마음 속의 깊은 증오를 뛰어 넘는 유혹이었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상자를 잡았다.


“앗, 뜨거!”


화상을 입을 정도의 뜨거움에 놀라는 동시에, 몸뚱이가 깊은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꿈이었다. 손바닥을 들어 보았다. 두 손은 평소와 똑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뒤척이다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책상 위의 스탠드가 켜져 있다. 전구가 나가서 한동안 켜지 않았는데? 엄마가 고쳤나?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엄마는 내게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아줌마가?


일어나 스탠드로 다가갔다.

전원 버튼이 꺼짐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도 불이 들어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스탠드 뒤편의 희미한 어둠 속에 놓여 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저 물건은 내 것이 아니다. 동생이 갖다 둔 것도 아니다. 난 항상 문을 걸고 자니까.


그러나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갑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꿈에서 들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 것이다.


목소리가 현실에서도 들리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노트 크기의 상자를 들었다. 상자는 무겁고 차가웠다. 그것을 들고 침대로 돌아가 가장자리에 앉았다. 손이 떨렸다. 누가 갖다 놓은 것일까.


이 집에 있는 사람이라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거나 일 때문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와 내게 관심이 없는 어머니와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남동생과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줌마뿐이다. 더구나 아줌마는 어제 휴무였기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 방에 나 몰래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따르륵. 따르륵.


뚜껑은 오르골을 돌리는 것처럼 일정한 소리를 내며 90도로 올라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빙하에서 불어오는 듯한 시린 바람이 아주 짧은 순간 내 머리카락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잠잠해졌다.


바람이 지나간 뒤 들여다 본 어두운 상자 안에는 활이 있었다.


-활?


그것은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없는 견고한 철재로 만들어진 활이었다. 활 옆에는 작은 화살 하나가 있었다.


활은 내게 낯선 물건이 아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까지 학교 양궁부 소속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활은 보통의 활보다 서너 배는 더 작은 것이다. 마치 아이들 장난감 같았다.


나는 활을 들고 시위를 당겨보았다. 늘어난 고무줄 같은 시위가 내 손끝에서 핑, 소리를 내며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뭐야, 정말 장난감이잖아?


기대가 한풀 꺾여 실망감을 느끼면서도 활을 당기던 선수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람을 맞으며 과녁을 노려보던 그때의 감정이 오랜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손이 부르트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초반을 지나 과녁에 적응 한 뒤부터 나는 과녁을 보며 사람을 연상하곤 했다. 부모님, 남동생, 친구, 선생님 등등.


화살을 들고 시위에 걸어보았다. 고무줄 같은 시위에 화살을 올리고 오른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시위를 팽팽하게 늘렸다.


두 팔에 잔뜩 힘을 주었지만 활과 화살은 힘겹게 내 손 끝에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무런 의지도, 끈기도 없는 나약함 그 자체였다.


실망스러운 상태에 인상이 찡그려지고 한숨이 나왔다.


-누군가 내 모습을 본다면 장난감을 갖고 노는 철없는 여자라고 하겠지.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늦은 아침을 먹으라는 아줌마일 것이다. 우리 집에서 내 끼니를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는 문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그리고 시위에 걸려 있는 화살을 당겨 쏘았다.


쉬이익!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 갑자기 힘이 붙고 가속이 붙더니 순식간에 나무문을 뚫어버렸다.


“으악!”


아줌마가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내 입에서도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놀라서 후다닥 침대로 튀어 올라갔다. 그리고 어른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문을 쳐다보았다. 나무의 거친 결이 그대로 드러난 구멍 저쪽에서 아줌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주야! 이게 무슨 일이야! 너, 총 쐈니?”


아줌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문으로 달려갔다. 구멍 뚫린 문 너머로 아줌마의 사색이 된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아줌마보다 활의 위력이 놀라웠다. 늘어진 고무줄 같은 활이 시위를 떠나면서 강력한 무기가 되 넋이다.


끼이익.


문을 열었다. 아줌마의 얼굴 옆에는 시위를 떠난 화살이 나무 벽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화살은 내가 놀란 눈으로 아줌마를 보는 동안 서서히 사라졌다. 검은 안개 줄기 하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상자로 달려갔다. 상자 안에는 또 다른 화살이 들어 있었다.


쏜 화살이 사라지고 새로운 화살 하나가 생긴 것이다. 나는 상자를 덮고 아줌마에게로 다시 갔다.


“너, 몰래 총 샀어?”

“아니야.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사.”

“그럼 이건 어떻게 된 거야?”


아줌마가 문을 가리켰다. 그녀의 눈에는 처리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는 곤혹스러움이 스쳐갔다. 나는 아줌마의 맑은 눈을 쳐다보았다.


-아줌마는 화살을 못 봤구나.


확신이 든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은 내가 꿈에서 들은 목소리와 날아가면서 급변한 화살과 화살을 감지하지 못한 아줌마를 스쳐 미치도록 죽이고 싶은 한 남자에게서 멈추었다.


그때, 복도 끝 방에서 쌍둥이인 남동생이 나와 우리를 힐끔 보더니 한 마디 던지고 계단을 내려갔다.


“드디어 미쳤구나. 아줌마, 나 학교 가요."


***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양궁부에 들어간 이유는 오로지 현진이 때문이었다. 또래보다 키가 큰 그 아이는, 예쁘장하면서도 보이쉬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평범한 아이였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학교 성적에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은 성격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적을 두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고 못 사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왕따를 당할 가능성이 높은 부류였다.


그러나 내가 왕따를 당하지 않은 이유는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내 아버지가 검사이고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한 교수라는 집안 배경을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내가 잘못을 하면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려고 애를 썼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웃어 넘겼고, 커닝을 해도 교칙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우는 다른 아이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아이들은 아직 어린애일 뿐이었다. 선생이 아무런 제제를 하지 않으므로 초등학생인 아이들 힘으로 나를 어쩌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시시하게 여겨졌고, 거의 상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진이는 달랐다. 전학을 와 한동안의 적응 기간을 거친 현진이는 특유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동급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런 현진이를 나 또한 좋아했다. 운동을 좋아한 현진이가 양궁에 관심을 보이고 재능을 보이면서 나도 은근슬쩍 양궁부에 들어갔다. 실력은 없었지만 내 배경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현진이는 솔직한 아이였고, 생각 외로 순진한 아이였다.


나는 현진이의 말투를 따라했고, 걸음걸이를 따라했다. 그 애가 먹는 음식을 즐겨 찾았고, 그 애가 들고 다니는 학용품을 구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쌍둥이처럼 비슷해졌다.


다른 아이들이 뒤에서 우리를 향해 레즈비언이라고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았다. 나에겐 그런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 배경이 있었고, 현진이에겐 특유의 활발한 성격이 있었다.


그러던, 고등학교 3학년 어느 가을이었다. 우리는 양궁부를 그만 두었지만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현진이가 늦은 밤 나를 찾아왔다. 지금껏 현진이를 만나면서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전화를 받고 나간 집 앞 공원에서 현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무나 슬픈 표정이었기에 먼저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어?”

“...가볍게 생각 정도는 해 봤어. 왜?”

“우리 집안에는 자살을 한 사람이 둘이나 있어.”

“······.”

“할머니가 그랬고, 막내 삼촌이 그랬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너 자살하고 싶니?”

“그거...유전일까?”

“뭐가?”

“너무 우울해서 죽고 싶은 감정 말야. 그것도 유전일까?”

“유전은 병으로만 이어지는 거 아냐?”

“감정도 시들면 병이 되잖아.”

“너 지금 감정이 시들었어?”


내 말에 현진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가 검사라면 어땠을까?”

“난 네 아빠가 더 좋아.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서 딸에게 용돈 주는 아빠가. 우리 아빠는 얼굴보기 힘들어.”

“그게 난 더 슬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말을 해.”

“나중에 말해줄게.”


그날 현진이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나는 현진이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나중에 말해준다는 말을 굳게 믿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현진이는 그날 밤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그 충격으로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3학년의 남은 기간 내내 학교에 가지 않았지만 졸업장은 받았다. 내 배경이 졸업장을 준 것이다.


나는 매일 꿈에서 현진이의 부서진 몸뚱이가 차가운 바닥에 흩어져 피를 쏟는 장면을 보았다. 꿈은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에 번진 피가 증오로 변해갔다. 꿈에서도 나는 복수를 생각했다. 그것은 점점 확고하게 굳어져서 어떤 것으로도 깨트릴 수 없는 견고한 덩어리가 되었다. 덩어리는 점점 거대해졌다.


그때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현진이를 죽게 만든 그 남자를 죽이고 싶다는 바람을 목소리가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활을 주었다. 목소리는 내게 허락을 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하라고 말이다. 그것이 비록 파멸로 떨어지더라도.


-파멸? 상관없어. 어차피 하루하루가 파멸이야.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다.


“수리 기사를 불러야겠지?”


아줌마가 물었다.


“그냥 놔둬. 가리면 돼.”


활발해진 내 목소리가 내 스스로도 놀라웠다. 아줌마가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근래 들어 처음 보는 모습에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줌마를 향해 싱긋 웃었다.


나는 활이 내게 온 소명을 이룰 것이다. 반드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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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WHO!!! 19.06.26 7 0 13쪽
12 유품 19.06.25 7 0 11쪽
11 투명인간 19.06.24 8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3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2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1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3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3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2 실전 19.06.11 50 0 13쪽
» 목소리 +1 19.06.10 9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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