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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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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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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45

작성
19.06.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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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12. 유품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해 영업하는 쌈밥집은 손님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나는 골목 어귀에 서서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가게를 주시했다. 아무래도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워보였다. 보는 눈이 많으면 발각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일단 덕자상회는 잠시 뒤로 미루고 현진이 사건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진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한 번에 받았다.


현진이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으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자로 번호를 찍어주었다.


곧바로 현진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머니는 경기도 외곽의 친정집에 있다고 했다. 만나고 싶다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곳은 택시를 타고 가기엔 너무 멀다. 나는 휴대전화의 연락처 목록을 뒤지다가 번호 하나를 눌렀다.


“여보세요. 승후야. 혹시 운전 가능해?”

“운전은 가능해. 그런데 어디로?”

“현진이 엄마 만나려고. 여기 **시장으로 빨리 올 수 있어?”

“지금 출발 할게.”


나는 시장 입구로 걸어갔다.


시장이 문을 닫기 전까지 돌아와야 한다. 활은 이미 덕자상회의 사기꾼을 겨누고 있다. 아우라가 내 몸에 스며든 뒤부터 활의 강력한 사명감과 집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덕자상회 여자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활은 나를 닦달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활을 닦달할지도 모른다.


***


강 형사는 데이트폭력을 당한 여자의 집 근처 공원에서 그녀를 만났다. 처음에는 나오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끈질긴 강 형상의 요구에 여자는 마지못해 나왔다.


“질문 몇 가지만 하면 됩니다. 다시는 아가씨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귀찮게 하지 않을 겁니다.”


강 형사의 간곡하게 부탁을 하자 여자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등나무가 얽혀 있는 벤치에 여자와 강 형사가 앉았고, 박 형사는 수첩을 들고 강 형사의 뒤편에 섰다.


“남자 분은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다리는 살렸지만 상태는 좋지 않아요. 걷는 게 예전 같지 않으니까 물건을 던지고 화만 내고. 그래서 헤어졌어요. 예전 같으면 헤어지자는 말에 주먹이 먼저 나왔겠지만 지금은 주먹에 힘이 빠져서 멍청이 같은 표정으로 보기만 하더군요.”

“목격자가 없다고 했는데 혹시 그 와중에도 누군가 생각나는 사람이 없습니까? 아주 미약한 기억이라도 좋습니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못 봤어요. 저도 정말 궁금해요. 누가 무엇으로 그런 상처를 냈는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습니까?”

“지나가는 사람?”


여자는 생각에 잠겼다. 등나무 덩굴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 여자의 염색한 머리 위로 떨어졌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은 윤기가 없는 옥수수수염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눈썹이 팔(八)자로 찡그려졌다. 강 형사와 박 형사가 동시에 마른 침을 삼켰다.


“골목 입구에서 지나가는 여학생을 봤어요.”

“여학생이라면 이상한 게 아니잖습니까? 하교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물론 그게 이상하다는 게 아니에요. 그 여학생을 병원에서 다시 만난 게 이상하다는 거죠.”

“병원에서 만났다구요?”

“네.”

“그 얘기를 경찰에 했습니까?”

“아뇨. 그땐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수많은 우연 중에서 하나일 거리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생각이?”

“우리 집 고양이가요.”


갑작스런 고양이 얘기에 두 형사는 어이가 없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자가 느낄 정도로 크게 내지는 않았다. 구슬리고 구슬려 겨우 나온 여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얼 하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 아세요? 공포영화를 보면 꼭 나오는 그런 거요. 그런 느낌이 들어서 돌아보면 우리 집 고양이가 문 뒤에 숨어서 눈 하나만 내민 채 나를 보고 있어요. 고양이 눈 아시죠? 특히 우리 고양이는 심술 맞은 눈이라서 그 느낌이 더 묘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츄르 간식을 주곤 하죠.”

“아....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박 형사가 끼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간식 때문에 나를 노려본 것 같은데, 아무튼 여학생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죠.”


여자의 말이 강 형사의 뇌리에 강렬하게 꽂혔다.


“그 여학생 인상착의가 어떻게 됩니까?”


강 형사의 질문에 여자는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강 형사는 박 형사를 돌아보며 눈짓을 했다. 내용을 빠짐없이 적으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박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조금 덮는 갈색 머리에 마르고 예쁘장한 얼굴이었어요. 키는 165정도? 그리고...가방을 크로스로 매고 있었어요. 짙은 갈색인데 소가죽으로 된 명품 가방이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 형사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


내비게이션에 찍혀있는 도착 시간은 앞으로 20분이었다.


며칠 만에 만난 승후는 좀 야위었고, 의기소침해 보였다.


“군대는 언제 가?”

“입대자가 많아서 지연되고 있대. 아마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쯤 갈 것 같아.”


남동생은 2학년 올라가자마자 휴학을 하고 군대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했다. 어쩌면 둘 다 같은 시기에 갈지도 모르겠다.


“너 좀 달라 보인다. 아직도 몸이 안 좋아?”

“몸도 그렇지만 생각이 많아졌어.”

“무슨 생각?”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상자국이 생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야. 아무런 의욕도 없고.”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힘이 없는 승후를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사실을 말할 순 없다. 활을 배신할 수 없다.


“너 정말 아무 것도 못 봤어?”

“봤으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나도 너만큼이나 궁금해.”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하고 궁리를 해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승후야, 혹시 그 모텔 침대에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거 많잖아. 몰래카메라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럴까? 전선에 오류가 나서 그렇게 된 걸까? 그렇다 하더라도 왜 나만······.”


갑자기 승후가 말끝을 흐렸다.


“미안해. 내가 널 거기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긴 그런 생각이 들더라. 죗값을 받는 거라고. 경찰을 대신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한 죗값 말야.”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승후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방만 어루만졌다.


승후의 소형차는 시골의 좁은 시멘트 길을 달려가 어느 기와집 앞에 멈추었다.


차에서 내려 쳐다보니 현진이의 외가는 십 몇 채의 기와집과 축사, 그리고 논과 밭이 동그랗게 마을을 둘러싼 작은 시골이었다.


대문 앞에는 현진이 엄마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검고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어서와. 힘들었지?”

“아녜요. 불쑥 온다고 해서 죄송해요. 여긴 친구 승후예요.”


승후가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집에는 아주머니와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우리는 마루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시원한 음료를 가지러 부엌에 갔다. 열려있는 방문 사이로 우리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신가?”

“현진이 친구예요.”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 손주는 왜 같이 안 왔어?”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부엌을 쳐다보았다. 음료수를 들고 오던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작게 저었다.


“지나가다가 들렀대. 아버지, 커피 줄까?”

“아녀. 잠 못 자.”

“아버지, 티비 봐요. 재밌는 거 나올 거야”


아주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끙, 하며 방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몰라. 현진이 없어진 거.”


음료수 잔을 내려놓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성진이는요?”

“학교 갔어. 여기 중학교로 전학을 했어.”

“아저씨는······.”

“그 인간 얼굴 보면 애가 생각나서 같이 살 수가 있겠더냐. 언제 다시 같이 살지는 모르지만 성진이라도 잘 키우려면 떨어져 사는 게 맞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렇게 와 주니 고맙다만, 범인도 못 잡았는데 친구들을 보는 게 괴롭다. 다신 오지 마.”


나는 눈물을 닦고 아주머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경찰은 너무 무능해요. 그래서 제가 나서 보려구요.”

“네가 어떻게?”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서 범인을 잡고 싶어요. 혹시 현진이가 남긴 물건들을 볼 수 있을까요?”

“그 애 물건은 경찰이 모두 여기로 갖다 줬어. 나도 아빠도 몇 번씩은 살펴봤단다. 아무 것도 없었어. 정말 보고 싶니?”

“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그 마음 안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마. 너무 실망하지도 말고.”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당을 바라보았다.


화단에는 꽃이 없고, 수돗가와 창고에는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다. 황량하고 어수선한 그 광경이 아주머니의 마음 같아 기분이 울적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중간크기의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일기장과 노트와 수첩이 들어 있는데, 그걸 다 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가져갔다가 다 보면 돌려줘. 굳이 오지 말고 택배로 보내. 내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네.”

“매일 절에 간단다. 현진이 범인 잡게 해달라고 빌고, 현진이 극락왕생 하게 해달라고 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야. 상자 어딘가에 주소가 있을 거야. 그만 돌아가.”


힘이 없으면서도 단호한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우리는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었다.


차를 타고 좁은 시멘트 길을 나오면서 룸미러를 보니 아주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대문 안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나는 무릎 위의 상자를 쓰다듬었다. 여기서 무엇이든 건져야 한다.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집으로 가?”


승후가 물었다.


계획대로라면 덕자상회로 가야 한다. 하지만 상자가 있어 택시로 움직이기 어렵다. 일단 오늘은 집으로 가자. 덕자상회는 어쩔 수 없이 내일로 미뤄야 한다.


“응. 집으로.”


***


고양이 얘기에 열을 올리는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강 형사와 박 형사는 공원을 떠났다.


두 사람은 미리 연락을 해놓은 택시운전사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조수석에 앉은 강 형사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나 불을 붙이지 않고 인상을 구기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박 형사 역시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했다. 그는 강 형사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관내 범인 검거율 1위로 표창장에 승진까지 승승장구로 올라간 그의 고집스러운 습관이었다.


만약 눈치 없는 누군가 그런 분위기를 깬다면 눈빛으로 살해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강 형사의 눈빛은 매서웠다.


도시에 어둠이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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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놀라운 증언 19.07.03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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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투명인간 19.06.24 8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3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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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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