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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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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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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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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45

작성
19.06.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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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공공의 증오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3. 공공의 증오



현진이가 세상을 떠난 후의 내 모습은 비관의 굴을 깊이 파고 들어가 침잠한 두더지였다.


그 아이와 함께 했던 날들이 사라질까봐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며 눈물만 흘렸었다.


범인은 당연히 경찰이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은 무능했다.


-용의자조차 알아내지 못하다니.


그런데 활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달라졌다. 마치 세상과 동등한 입장에 선 것 같았다. 세상이 내게 펀치를 날리면 나도 같이 날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 뒤 눈을 뜬 시간은 놀랍게도 아침 9시였다.


이 시간에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어리둥절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다 어제 저녁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얼른 침대 발치의 벽걸이 텔레비전을 켰다.


[다음 소식입니다. 어제 서울 모처에서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던 A씨의 다리에 무언가가 날아와 관통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즉시 병원에 옮겨져 검사를 받았지만 A씨의 다리를 관통한 물건이 무엇인지 추정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경찰과 의사의 말을 차례로 들어보겠습니다.]


[의사: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정확한 검사는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상세불명의 흉기가 환자의 다리를 녹였고...]


그러자 기자가 끼어들었다.


[녹였다고 하셨습니까?]


[그렇게밖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 신경과 조직이 녹아서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에 빨리 왔지만 상태는 이미 진행된 후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저희도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경찰: 주변에 있던 CCTV와 목격자를 중심으로 범인을 밝혀낼 것입니다. 혹시 이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 중에서 범인을 보셨거나 알고 있는 사람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화살이 관통하고 사라지면서 그 부위를 녹인다는 말인가?


나는 책상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활이 들어있는 가방이 있다. 그리고 안에는 새로 생성된 화살이 있다. 활과 화살은 내 생각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 문을 열고 어제 화살이 꽂혔던 나무 벽을 살펴보았다. 역시 그 부분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게 타 있었다.


손가락으로 검은 부분을 만져보았다. 화상을 입은 환자의 표피처럼 중간은 반들거렸고 가장자리는 오톨도톨했다. 그 순간의 뜨거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얼른 손가락을 접었다.


그때 방에서 남동생이 나왔다. 학교에 가는 차림이었다. 법학과 1학년인 동생은 부모의 기대를 한껏 흡수한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한 녀석이다. 나와는 2분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이다.


“이젠 방문도 부수냐?”


“내 방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지. 쓸데없는 참견 말고 가던 길이나 가셔.”


“미쳤어.”


동생이 가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활의 위력을 알았으니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을 알아내는 것과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다.


어제의 일을 보면 화살은 금방 사라지므로 흉기가 발견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 존재이다. 만약 범인을 죽인 범인이 나라는 게 밝혀지면 나는 경찰과 수많은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 활에 대해 말해봐야 믿지 않을 테니까 말을 하지 않는 게 내겐 더 유리할 것이다. 경찰과 언론은 거머리처럼 내 살갗을 물고 놓지 않겠지. 그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다.


나는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게 싫다. 관심을 받는 건 더더욱 싫다. 내겐 그런 성향이 없다. 나는 스스로 쪼그라들고 말 것이다.


어쩌면 목소리가 말한 파멸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나는 엑소시스트의 여주인공처럼 극도의 불안증으로 죽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내 유일한 친구였던 현진이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고 그 아이의 증오가 곧 내 복수이므로.


나는 양궁부에서 같이 운동했던 동창들의 연락처를 찾아보았다.


예전부터 갖고 있던 수첩과 운동 노트와 졸업앨범 어디에도 그들의 연락처는 없었다. 누구에게도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고 받지 않았던 내 성향이 가져온 고립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졸업한 중학교를 찾아가 연락처를 알아내는 방법밖엔 없다.


준비를 마치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부모님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 아줌마도 출근해서 거실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오늘도 나가니?”

“네.”

“자주 나가네? 어젠 왜 수제비 안 먹었어? 온후는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그 자식 일은 알고 싶지 않아.”

“같은 날에 태어났는데 사이좋게 지내지 그러냐. 부모님도 바쁜데.”

“그 자식이 먼저 나를 무시하니까 그렇지. 나 토스트 먹고 갈래.”

“으이그, 또? 잠깐 기다려.”


아줌마가 부엌에서 토스트를 만드는 동안 나는 거실의 텔레비전을 켰다. 리모컨을 눌러 뉴스가 나오는 채널에 고정했다. 분쟁국가의 흑인 아이들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파리가 앉은 아이의 눈동자는 세파에 찌든 늙은 노인 같았다. 아이 뒤편에서 폭탄이 터졌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계란 프라이도 곁들여주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뉴스는 다른 사건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A씨의 다리는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누가 어떤 식으로 A씨의 다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오리무중이라고 밝혔습니다. A씨와 같이 있던 B씨도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미스테리한 사건을 풀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아주 소설을 쓰는구나.


콧방귀가 나왔다.


“든든하게 먹고 가. 혹시 나쁜 일을 하러 나가는 건 아니지?”


토스트, 계란프라이, 우유가 담긴 쟁반을 들고 아줌마가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잘 먹을게.”

“머리가 많이 길었네?”

“좀 잘라야겠지?”

“지금도 이쁜데 뭐.”


나는 아줌마와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좋다. 우리 집으로 출근한 지 3년 정도 된 아줌마는 처음부터 내게 스스럼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에게서 느끼지 못한 일상의 소소함을 아줌마를 통해 느끼고 있었다.


“나도 저 뉴스 봤어. 별 일이 다 있지?”

“글쎄, 누군지 모르지만 할 일 했다고 보이는데. 이제 저 남자는 누군가를 팰 수 없게 됐잖아. 다리 한쪽이 없어졌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마.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데.”

“그럼 저 놈에게 맞은 여자들은? 진정한 피해자는 그 여자들이야. 내 생각은 그래. 잘 먹었어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와 졸업을 한 중학교로 가는 대신, 나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 남자의 상황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활의 위력을 직접 느끼고 싶었다.


***


병원에 도착해 정형외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간호사와 보호자들이 오가는 복도에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든 기자 몇 명이 수런수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휴게실에 앉아서 맞은편 유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꺼내 마시고 드라마를 힐끔 거리며 끈질기게 자리를 지킨 지 한 시간 정도 흐르자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A씨를 볼 수 있었다. 그의 뒤에는 어제 저녁에 본 여자B씨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남자는 앞에 있는 무엇이라도 금방 박살낼 듯 험악한 표정이었고, 여자는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콧노래라도 부르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엔 여전히 멍 자국이 있었다.


나는 휴게실을 나와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긴 복도에는 병원 특유의 냄새를 없애려고 무자비하게 뿌려댄 헤이즐럿 커피향 방향제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천천히 따라 가는데 갑자기 휠체어가 뒤를 돌았다. 그 때문에 부딪힐 뻔 했다. 여자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머, 미안...어? 우리 어제 만나지 않았어요?”


나는 단박에 날 알아보는 여자에게 거부감이 일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연기를 했다.


“아...어제 편의점······.”

“맞아요. 어젠 학생 덕분에 이 사람을 구할 수 있었어요.”


응? 내 덕분에? 그게 무슨 말이지? 이 여자는 알고 있는 걸까?


“자기야, 여기 이 학생이 나를 도와줬어. 정신이 없는 나한테 119에 전화 하라고 일러주고 부축도 해주고.”


여자는 내게 눈을 찡긋했다. 아마도 남자의 배를 걷어찬 것을 의식해서 그런 거짓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러자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거,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배가 아프니까 빨리 간호사한테 데려다 달라고. 좀!”


“어머, 자기야. 나한테 화내는 거야? 가만 있어봐. 나 갑자기 급한 약속이 생길 것 같은데.”


“아...알았어. 화내지 않을게. 배가 너무 아파서 그래. 그런데 왜 배에 멍이 들었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긴 거지?”


“너무 걱정 마. 내일 수술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 질 거야.”


“수술하면 다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남자는 짜증을 내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여자에게 말했다. 나는 남자의 기가 꺾인 모습에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여자는 내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다.


남자는 평생 의족이나 휠체어나 다른 보조기구에 의지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남자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어제 활을 쏘지 않았다면 남자는 여자나 때리고 사는 나쁜 인간으로 평생을 살지도 모른다.


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런 생각들이 무슨 소용이람.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내 손에는 활이 있다. 그것만 생각하자. 현진이만 생각하자.


병원을 나와 택시를 탔다.


“XX여자 중학교로 가 주세요.”


***


학교는 4년 전과 똑같았다. 운동장 주변의 나무도 운동기구도 건물도 모두 그대로였다. 교정을 따라 죽 이어진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4년 전인데도 왠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서무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익은 서무관이 아는 체 했다.


“가만, 양궁부 선수 아니었어? 아버지가 검사고?”

“맞아요.”

“내 기억력이 아직 죽지 않았네. 하하하.”


그는 나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내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학교에서 아버지는 나보다 유명했다.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고 내가 커닝을 했을 때 학교에 찾아와 여러 선생님들과 인사를 한 적도 있었다.


“어쩐 일이야?”

“같이 양궁했던 친구들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왜? 너한테 전화번호 없어?”

“네.”

“그거, 곤란해. 무슨 법에 걸린다고 하더군. 아버지가 검사니까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그럼 장 코치님 연락처도 알 수 없어요?”

“그 사람이라면 굳이 연락처가 왜 필요해. 오늘도 나와서 애들 가르치는데.”

“아직 이 학교에 계세요?”

“그럼.”


나는 오지랖이 주특기인 서무관에게 인사하고 체육관으로 갔다.


실내 체육관 역시 예전 그대로였다. 트랙 가장자리에 학생 몇 명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우리 때도 저렇게 몸을 푼 다음에 운동장으로 나가 과녁에 활을 쏘았다.


내 모습을 본 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무어라 지시하고는 내게 달려왔다.


“미주 아니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

“그렇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설마 날 만나러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야?”

“부탁이 있어요.”

“그래? 그럼 나가지.”


우리는 교정의 벤치에 앉았다.


“5월에 있을 소년체전 예선 때문에 좀 바쁘다. 그래 무슨 부탁?”

“저랑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 연락처를 알고 싶어서 왔는데 서무과에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혹시 선생님은 아시는지 여쭤보려구요.”

“그때 애들 연락처? 글쎄, 찾아봐야 하는데. 왜? 무슨 일로?”

“현진이 일 때문에요.”

“현진이? 그래. 나도 그 얘기 들었다. 정말 슬픈 일이지.”

“경찰이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고 해서 제가 좀 알아보려구요.”

“네가? 어떻게?”

“경찰이 잡을 때까지 가만히 있다간 병이 날 것 같아요. 현진이 억울한 거 풀어주고도 싶고.”

“위험하지 않을까?”

“그래도 시도해볼 거예요. 그 아이들에게서 혹시 내가 모르는 현진이의 다른 면을 알지도 몰라요. 그렇게 차근차근 알아가다 보면 범인을 잡을 수도 있구요. 연락처를 꼭 알고 싶어요.”

“네 마음은 알겠다만...네가 위험해질까봐 걱정인데.”

“제 아빠가 검사예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맞다. 네 아버지가 검사였지.”


선생님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입고 있는 반바지 위에 수북이 나 있는 거친 털을 바라보았다. 다리 위에 올려놓은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을 보자 현진이와 함께 운동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나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내가 집에 가서 연락처를 찾아보고 전화할게. 휴대전화 줘봐.”


선생님은 내 휴대전화에 자신의 번호를 찍었다.


선생님과 헤어진 후 나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운동장 한 가운데 서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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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지막... 19.07.11 6 0 11쪽
19 범인은.... 19.07.07 10 0 13쪽
18 놀라운 증언 19.07.03 10 0 12쪽
17 또 다른 계획. 19.07.02 8 0 9쪽
16 후? 19.07.01 10 0 10쪽
15 형사의 촉 19.06.30 9 0 14쪽
14 배신 19.06.27 8 0 12쪽
13 WHO!!! 19.06.26 8 0 13쪽
12 유품 19.06.25 8 0 11쪽
11 투명인간 19.06.24 9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3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4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 공공의 증오 19.06.12 28 0 14쪽
2 실전 19.06.11 51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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