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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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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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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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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04,545

작성
19.06.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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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실전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2. 실전


자주 들고 다니는 크로스백의 안을 비웠다. 불필요한 물건은 활을 꺼내는 시간만 잡아먹을 것이다. 가방에는 활, 휴대전화, 지갑, 휴지만 넣었다.


아줌마는 아침을 먹고 나가라고 했지만 지금은 점심때이다. 입맛이 없다고 하자 아줌마는 토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오늘은 어디 가니? 매일 집에만 있더니.”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끼니 거르지 마. 그러다 건강이 나빠질까 걱정이다.”


진정으로 나를 걱정하는 말투였다. 나는 토스트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아줌마는 이뻐.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아저씨를 만났어?”

“어려서 그랬지. 지금이라면 거들떠도 안 볼 텐데.”

“지금이라도 헤어지지?”

“애들이 있잖아. 애들 결혼시키고 나면 그럴 참이야. 황혼 이혼.”


나는 아줌마의 자식들이 부러웠다. 엄마가 부엌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자식에게 먹이는 일은, 기억이라는 걸 인지한 이후로 내겐 없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가방을 드는데 어제와 다른 감정이 가슴을 꽉 채웠다.


나는 아줌마에게 말했다.


“혹시 나한테 일이 생기더라도 이것만은 알아줘. 난 엄마보다 아줌마가 더 좋아.”

“고마운 말이지만 무사히 돌아와. 수제비 끓여줄게.”


***


거리로 나왔지만 어디로 먼저 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현진이를 성폭행하고 자살로 내 몬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나는 현진이 외엔 친구가 없다. 누구를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걸으며 생각한 끝에 현진이 아버지를 만나기로 결정했다.


휴대전화를 꺼내 주소록을 살펴보았다. 아저씨 번호가 있다.


그러나 아저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조금만 시간을 내 주세요. 제발요. 물어볼 게 있어요.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예전에 현진이와 함께 찾아갔던 현진이 아버지의 공장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분명히 버스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간 것 같은데 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공장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고 뒷자리에 올랐다.


“현성 공장으로 가 주세요.”


현성이라는 이름은 현진이와 동생 성진이를 합친 것이라고 했다.


“그게 어디 있는 겁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냥 네비 찍어서 나오는 곳 모두 가주세요.”

“그러려면 요금이 꽤 나올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가 내게 준 카드는 한도가 높다. 내가 택시를 타고 전국을 누빈다 해도 승인이 떨어질 것이다.


중년의 퉁퉁한 기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네비게이션에 글자를 입력했다.


“꽤 많은데. 대충의 위치라도 알면 좋은데.”


기사의 말투는 점점 비신사적으로 변해갔다. 나는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활이 있는 위치에 손을 놓았다.


“시내에 있는 건 아니었어요. 외곽으로 버스를 타고 갔으니까요.”


내 말에 기사는 핸들을 돌렸다.


한참을 달려 도심을 벗어난 택시는 공장지대와 변두리를 돌아다녔다. 몇 군데를 다녀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공장의 이미지와 비슷한 곳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택시를 대절하면서 가지? 부잣집 아가씨가?”


국도를 달리며 기사가 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사의 힐끔거리는 모습과 능글맞은 말투는 정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내 손은 가방의 지퍼를 열고 활의 차가운 프레임을 꼭 쥐고 있었다. 아무리 기사가 내게 도발적인 질문을 하고 거친 행동을 해도 마음은 들판으로 피크닉이라도 가는 것처럼 편안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아버지가 뭐하시지?”

“검사예요.”

“거짓말하지 말고.”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검사예요.”

“어이쿠, 무서워라.”


능글거리는 기사를 한참 노려보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너른 밭 너머로 창고형 공장이 눈에 띄었다. 둥그런 공장 지붕과 숙소로 쓰는 뒤편의 빨간 기와집 지붕이 야구 모자를 돌려쓴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저기예요. 저기로 들어가 주세요.”

“쩝. 생각보다 빨리 찾았군.”


10만원 가까이 나온 금액을 카드로 결제하며 기사는 입을 쩝쩝거렸다. 먼지를 일으키며 되돌아가는 택시를 보며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천장이 높은 창고형 공장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예전에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활발하던 곳이었다.


공장의 출입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공장 옆 공터에 서 있는 트럭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나는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한다고 했던 뒤편의 기와집으로 가보았다. 그곳의 대문 역시 닫혀 있었다.


공장으로 걸어 나오며 아저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겁이 나기도 했다. 현진이 사건 이후 아저씨와 몇 차례의 통화를 한 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는 몰라도 문이 닫힌 공장을 보니 그동안의 비극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저씨였다. 숙소에 있으니 그쪽으로 오라고 했다.


다시 공장 뒤편 숙소로 가니 이번에는 대문이 열려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에 술병과 함께 마구 뒤엉킨 건축 자제들이 눈에 띄었다. 쓰레기를 피해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리 들어와라.”


쉰 듯한 남자 목소리가 방문 안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가방을 꼭 쥐고 방으로 가 문을 열었다.


아저씨는 전보다 더 마르고 초췌한 모습으로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방은 바깥과 다름없었다. 어디에 앉아야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아저씨는 깔고 앉았던 이불을 걷어내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왜 그렇게 날 찾아대냐?”


메마른 얼굴을 덮고 있는 거칠고 덥수룩한 수염을 보자 눈물이 맺혔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

“나도 모른다. 경찰도 모른다. 그 놈은 투명인간이야. 숨어서 나오질 않아.”

“일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일기엔 그런 내용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병원 기록 때문에 그 녀석이 그런 일을 당한 걸 알았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잖냐.”

“그래도 누군가 의심되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경찰은요?”

“그걸 알았으면 내가 이렇게 있겠냐? 그만 가라. 집안이 박살났어. 애들 엄마는 성진이 데리고 처가에 갔고, 공장은 난장판이 됐고, 직원은 모두 떠났어. 이 공장도 곧 다른 사람한테 넘어갈 거다. 이제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


아저씨가 말할 때마다 술 냄새가 풍겨왔다.


“아저씨, 저도 힘들어요. 범인을 잡아서 죽여 버리고 싶어요.”


내 말에 아저씨는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탁한 회색빛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런 말 하지마라. 그만 가. 다신 여기 오지 마.”


초췌한 얼굴과 달리 아저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


버스를 타고 그곳을 떠나 도심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토스트 한 개가 오늘 먹은 것의 전부였기에 배가 고팠다.


삼각김밥과 우유를 들고 거리가 환히 내다보이는 유리창 앞에 앉았다.


김밥을 먹고 우유를 마시며 나는 현진이의 예전 기사를 다시 검색했다. 수없이 본 것이지만 혹시 새로운 소식이 올라왔을까, 기대를 했다. 그러나 기사는 투신자살을 한 여고생의 기사에 머물러 있다.


기사에는 형사의 인터뷰도 있었다.


-이렇게 철저히 숨은 범인은 드물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범인의 DNA는 나오지 않았다. 자칫하면 장기사건으로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범인을 아는 사람은 제보를 바란다.


“상습범이네. 면식범일 가능성도 높고. 넌 신경 쓰지 마라. 불똥 튈라.”


사건이 나고 며칠 후, 아버지는 출근을 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현진이가 내 친구라는 걸 알고는 한마디 한 것이다.


형사는 현진이 주위의 모든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내게도 전화가 한 번 왔었다. 그러나 나를 만나러 오지는 않았다. 내 아버지가 검사라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검사의 자녀를 건들지 않으려는 숨은 의도인 것이다.


나는 형사와의 통화에서, 그날 저녁 나를 찾아온 현진이와 공원에서 몇 마디 나누었고,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누지 않았다고 대답 했다.


김밥을 다 먹고 비닐을 정리하는데 유리 밖으로 덩치가 큰 남자가 여자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주변에 있던 몇 사람이 남자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남자는 험악한 표정으로 무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람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남자는 여자를 끌고 편의점 옆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머리채를 잡힌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골목 끝에서 여자를 마구잡이로 패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딴 놈을 만나? 그 놈 누구야? 이름 대! 다 죽여 버린다.”


“아악!”


나도 모르게 한 발이 나갔다. 그러자 나를 발견한 남자가 내게 소리쳤다.


“오지 마! 가! 신고하면 죽을 줄 알아!”


그러는 와중에도 남자는 여자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고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희미한 가로등 빛 속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의 모습을 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재빨리 가방을 열고 활을 꺼냈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골목에는 남녀뿐이고 내 뒤로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옮기는 척 움직이다가 남자가 방심한 틈을 타 골목 안에 있는 안마시술소 입간판 뒤에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리고 활시위에 화살을 얹었다.


나는 양궁부에서 5년 가까이 활을 쏘았다. 저 정도의 거리는 문제없다. 단지 어두워서 정확성은 떨어질 것이다.


나는 활을 눈높이까지 들었다.


그리고 힘껏 화살을 쏘았다.


쉬이익.


시위를 떠나 힘없이 날아가던 화살에 갑자기 가속이 붙더니 순식간에 남자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으악!”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악! 씨발, 이게 뭐야. 누구야?”


놀란 여자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악! 다리야! 나 죽네. 누구야!”


남자의 외침소리에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119불러! 씨발, 빨리!”


남자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린 여자는 온 몸을 덜덜 떨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남자는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다리를 휘감은 피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통화를 마친 여자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는 쓰러진 남자의 배를 하이힐로 강하게 걷어찼다.


“개 같은 새끼!”


나는 터질 듯한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몇 번이나 남자를 걷어찬 뒤 여자는 헉헉거리며 골목을 나왔다. 나는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튀어나가 비틀거리는 여자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세요? 괜찮으세요?”

“죽을 뻔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아요?”

“모...몰라요.”

“정말 이상한 일이네.”


그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여자는 남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여자의 팔을 잡았다.


“어디 가세요?”

“옆에 있어야죠. 나중에 깨서 없으면 난리 칠 텐데.”


여자는 황당한 표정의 나를 두고 비틀거리며 다시 남자에게로 갔다.


곧 구급대원들이 달려왔다. 나는 얼른 그곳을 떠났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여자의 어이없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뭐야, 저런 게 사랑이야?


걸어가며 가방 안의 활을 만져보았다. 여전히 차가운 프레임이 손가락에 느껴졌다. 옆을 더듬자 새로운 화살 하나가 만져졌다.


-어두워서 화살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지 못했어. 그런데 새로운 화살이 생겼어. 화살이 없어지면 화살 하나가 다시 생긴다, 이건가? 그렇다면 남자의 몸에 박힌 화살이 사라진 직후에 생겼다는 말인데······.


사람에게 화살을 쏜 경우는 처음이어서 집으로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편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현진이를 죽게 만든 범인을 잡아내 복수하고 싶었다. 현진이는 세상에 없는데 그 놈은 거리를 활보하며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현진이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아저씨는 주저앉고 말았지만 나에겐 활이 있어. 활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범인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죽여야 한다. 내 삶이 파멸로 끝난다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재밌는 삶도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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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지막... 19.07.11 6 0 11쪽
19 범인은.... 19.07.07 10 0 13쪽
18 놀라운 증언 19.07.03 10 0 12쪽
17 또 다른 계획. 19.07.02 8 0 9쪽
16 후? 19.07.01 10 0 10쪽
15 형사의 촉 19.06.30 8 0 14쪽
14 배신 19.06.27 8 0 12쪽
13 WHO!!! 19.06.26 7 0 13쪽
12 유품 19.06.25 7 0 11쪽
11 투명인간 19.06.24 8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3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3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 실전 19.06.11 51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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