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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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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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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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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45

작성
19.06.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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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맹수, 내게 깃들다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5. 맹수, 내게 깃들다



택시는 경찰서의 정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 멈추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정문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때문에 그곳에 설 수 없었다. 나는 바깥을 살펴보았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가 들어오려는 차량들을 제지하자 언론사 로고가 찍힌 승합차 여러 대가 무질서하게 정차했고, 안에서 사람들이 내려 경찰서 건물로 달려갔다. 그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있거나 작은 사다리를 든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봐요?”


내 물음에 택시기사는 내가 건네준 카드를 리더기에 꽂으며 대답했다.


“그 사건 몰라요? 마누라와 애들을 죽인 미친놈이 오늘 현장 검증하러 간다는데?”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뉴스를 달구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죽이고 학교에서 돌아온 두 딸까지 죽인 무자비한 살인사건이었다.


기사가 결제를 마치고 카드를 주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정문과 건물 사이의 공터를 걸어가는 도중에도 정문 앞에 차들이 멈추었고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피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나도 그들 틈에 섞이고 말았다.


출입문으로 올라가는 몇 개의 계단 아래에 경찰 승합차가 서 있고 주변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몸을 부대끼며 몰려 있었다.


나는 그들 틈에 섞여 서서 계단 위의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범인의 얼굴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포승줄을 찬 남자가 형사에게 양 팔을 잡힌 채 출입문으로 나왔다.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신상 공개 승인 후 처음으로 범인은 얼굴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기자들이 휴대전화를 범인 쪽으로 내밀고는 서로 고함에 가까운 질문을 쏟아냈다. 때문에 질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기자들에게 치이면서도 까치발을 하고 범인을 쳐다보았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체격이 좋은 남자는 몰려든 기자들의 모습에 잠깐 움츠러들었지만 곧 얼굴을 쳐들고 기자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죽은 가족에게 할 말이 없습니까?”


“······.”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형사들에게 이끌려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승합차로 걸어가면서도 그는 미소를 잊지 않았다. 내 뒤에 있던 누군가 탄식에 가까운 욕설을 내뱉었다.


“웃음이 나와? 저런 새끼는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한 기자가 다시 큰 목소리로 물었다.


“유족에게 할 말은 없습니까?”


그러자 범인은 걸음을 멈추고 질문이 나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죽어 마땅한 것들을 죽였을 뿐이야.”


범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듣지 못한 사람은 옆 사람에게 확인을 하느라 잠시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형사가 범인을 잡아끌었다.


그때 고개를 돌리던 범인과 눈이 마주쳤다.


“예쁘게 생겼네?”


나는 너무 놀라 가방을 꼭 쥐고서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때 한 기자가 나를 뒤로 밀치며 범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형사들이 범인을 승합차 안으로 던지듯 밀어 넣었다. 범인은 승합차에 올라가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에 나를 향해 윙크를 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지옥에서 환생한 괴물이 다음은 네 차례다, 하고 말하는 듯한 섬뜩한 눈빛이었다.


기자들은 정문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 승합차를 뒤따라가 갔다. 나는 썰물에 남겨진 돌멩이처럼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남자의 눈빛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범인은 죽어 마땅한 사람을 죽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에게 가족은 그런 존재였던 것일까. 어떻게 힘없는 식구들 모두 죽이고도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걸까.


그때 택시 한 대가 정문에 섰다. 나는 얼른 택시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승객이 내리자마자 앞자리에 올랐다.


“아저씨, 저기 앞에 있는 봉고차를 따라가 주세요.”

“오케이. 이번 달만 세 번째 추격전이네. 이 맛에 택시 한다니까.”


기사는 짐짓 콧노래라도 부르는 듯 리드미컬하게 말하며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범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내 가슴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면서도 내면의 깊은 곳은 점점 더 짧은 진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사냥감을 앞에 두고 달려갈 타이밍을 노리면서 미동도 않은 채 먹잇감의 동태를 살피는 맹수의 고요함과 그 맹수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긴박감이 이제야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게다가, 죽여 마땅한 인간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범인의 무지가 나를 강하게 자극했다.


-죽어 마땅하다고? 좋아. 그 말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두고 보겠어.


내 마음은 이미 하나의 결심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승합차가 언덕에 위치한 낡은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자 뒤를 따라던 언론사의 차량들도 뒤를 따라갔다. 택시도 일행처럼 꽁무니에 매달렸다.


“골목이 좁고 차가 많아서 더 이상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택시 기사의 말에 나는 계산을 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언론사의 차들도 좁은 골목으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에 차를 세웠다. 안에서 기자들이 내렸다. 나는 일행인척 그들을 따라 위로 걸어갔다.


주민들과 초췌한 모습의 유족들이 낡은 연립주택 앞에 모여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경찰 몇 명이 그들 앞에 노란 끈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서 사람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골목을 겨우 빠져 나온 승합차는 연립주택의 작은 주차장에 멈추었다. 안에서 형사가 내려 동선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제복을 입은 경찰에게 무어라 지시를 한 뒤 승합차 뒷문으로 갔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범인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이었다. 죄책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야비한 미소였다.


남자가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고성을 질렀다.


“살인마! 죽어라!”

“내 딸 살려내! 애들을 살려내! 이 악마야!”


머리가 희끗한 중년 여자가 범인을 보자마자 악을 썼다. 옆에서 여자를 잡고 있던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쓰러질 듯한 여자를 부축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범인을 향해 고함을 쳤다.


“천벌을 받을 새끼!”

“악마는 죽어라!”


범인은 소리 나는 쪽을 힐끔 보더니 입술을 찌그러트리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기자들은 분주하게 범인을 찍고 주민들을 찍고 유족을 찍었다.


범인의 비열한 미소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점점 격해졌다.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누군가 물병을 던졌다. 물병은 범인 근처에 못가고 중간에 있던 형사의 손에 걸리고 말았다. 형사는 물병을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언덕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 앞의 주차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함을 치고 물건을 던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달리 태연하게 연립 안으로 들어가는 범인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범인이 2층의 현장으로 사라진 후 유족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통곡을 쏟아냈다. 주민들은 그들을 동정하는 사이사이 구호를 외쳤다.


“사형! 사형! 사형!”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언덕에 위치한 동네에는 낡은 연립주택과 같은 모양의 크고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층부터 삼층까지 다양한 주택 중에서 몇 군데는 사람이 얼굴을 내밀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반대로 아무도 없는 주택도 있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3층 연립주택으로 걸어갔다.


낡은 주택가는 CCTV가 없다. 그리고 사람들의 신경은 온통 극악무도하고 뻔뻔한 범인에게 가 있다. 그러므로 조금만 신경 쓰면 들키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죽어 마땅한 놈은 너야. 자식을 낳아준 엄마를 죽이고, 그 자식마저 죽인 놈은 살 자격이 없어. 네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줄게. 조금만 기다려라.


3층의 옥상으로 올라가며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옥상의 철문을 열자 거주자들이 만들어 놓은 텃밭이 푸르게 펼쳐졌다. 나는 오이, 방울토마토, 깻잎, 상추 따위가 막 자라기 시작하는 텃밭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옥상으로 올라올 동안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옥상에도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범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연립주택의 주차장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려다보니 사람들과 차량들이 장난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뒤이어 가방에서 활과 화살을 꺼내 즉시 쏠 수 있게끔 손에 쥐었다. 그리고 행여나 내 정체가 드러날까 봐 셔츠의 단추를 풀고 밑 부분을 끌어올려 머리에 뒤집어썼다. 조금 불편한 자세가 되었다.


-모자를 넣고 다녀야겠어. 정체가 탄로 나면 곤란하니까. 마스크도.


에어리즘 브라 캐미솔 속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봄의 끝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나는 범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내부를 채우기 시작한 내 감정에 정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보장은 없다. 활은 내 안에 맹수를 집어넣었다. 그 맹수는 점점 더 거대해질지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감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봄을 몰아낸 초여름 햇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한참을 기다린 끝에 밖으로 나온 범인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체감으로는 한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나는 활을 들었다. 마른 침이 나도 모르게 꿀꺽 넘어갔다.


그러나 형사들과 승합차 때문에 구도를 잡기 어려웠다. 나는 범인을 겨눈 조준이 명확해지기를 끈질기게 기다렸다. 여전히 주민들과 유족들은 범인을 향해 고함을 쳤고, 기자들은 그런 현장의 모습을 찍느라 승합차로 이동하는 범인과 형사들의 길을 가로막았다. 형사가 기자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그때 한 기자의 휴대전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형사와 기자가 휴대전화를 주우려고 동시에 허리를 숙였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힘껏 화살을 쏘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터보엔진처럼 순식간에 극강의 속도로 사람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날아가 그대로 범인의 왼쪽 가슴에 꽂혔다.


범인이 포승줄로 묶인 두 손을 가슴께로 올리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치 가슴 쪽에 앉은 파리를 쫓아내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뒤이어 범인의 허리가 빠르게 꺾어졌다.


처음에는 그의 모습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기자들의 질문과 플래시를 피하기 위한 행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외마디 소리도 없이 범인이 바닥에 쓰러지고 입가에 피가 배어 나오자 고함을 치던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피다!”


형사가 황급히 범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그는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일어나지 못했다. 형사가 무릎을 굽히고 범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셔츠를 내리며 일어났다.


그때였다.


“여기서 뭐 해? 학생?”


고개를 들어보니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등골에 땀이 솟아올랐다. 나는 얼른 손을 뒤로 돌려 가방에 활을 집어넣었다.


“아, 저기...저 사람들 구경하느라······.”

“저런 놈을 뭐 하러 구경해. 인간도 아닌 놈을.”


할머니는 별다른 의심 없이 내 옆에 있는 작물로 가 앉았다. 그리고는 아기 다루듯 상추를 쓰다듬었다.


“햇빛이 좋아서 금방 자랐구나.”


나는 서둘러 가방을 들고 계단으로 내달렸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거친 내 발소리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지상으로 내려가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뒤로하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도로로 나와 택시를 찾는데 멀리서 구급차가 달려와 나를 스쳐 현장으로 올라갔다.


나는 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긴 호흡으로 진정시키며 언덕을 돌아보았다. 그곳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죽었을까?


두 번의 경험으로 짐작하건데, 이번에 쏜 화살의 감정이 가장 지독했다.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의 극심한 감정이 치밀었었다.


지퍼를 열고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활 옆에 화살 하나가 생겨나 있다. 그렇다면 범인의 몸에 꽂힌 화살은 사라졌다는 말이 된다. 증거가 사라졌다.


나는 택시를 잡았다.


“**경찰서로 가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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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지막... 19.07.11 6 0 11쪽
19 범인은.... 19.07.07 9 0 13쪽
18 놀라운 증언 19.07.03 10 0 12쪽
17 또 다른 계획. 19.07.02 8 0 9쪽
16 후? 19.07.01 10 0 10쪽
15 형사의 촉 19.06.30 8 0 14쪽
14 배신 19.06.27 8 0 12쪽
13 WHO!!! 19.06.26 7 0 13쪽
12 유품 19.06.25 7 0 11쪽
11 투명인간 19.06.24 8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2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3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2 실전 19.06.11 50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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