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추리

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45
추천수 :
1
글자수 :
104,545

작성
19.06.27 14:35
조회
7
추천
0
글자
12쪽

배신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14. 배신



다음 날, 강 형사는 출근을 하자마자 어제 만난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에게 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택시기사가 확인해준 아가씨와 그녀가 우연히 만났다는 여학생이 동일인물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만약 동일인물이라면 보이지 않는 실마리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게다가 가족을 죽인 파렴치한이지만 불시에 살해를 당한 것이라면 미상의 범인 역시 반드시 죗값을 받아야 한다.


문자를 전송한 뒤 강 형사는 경찰 미디어 담당이 찍은 현장검증 사진을 노트북으로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돌려보다가 크게 확대해서 구석구석 찬찬히 살펴보았다.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치켜든 기자들, 고함을 치는 주민들, 얼빠진 표정의 유족들, 물병을 던지는 중년 남자, 범인을 둘러싼 자신과 다른 형사들, 멀리 있는 건물에서 현장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진 속에 있었다.


강 형사는 스크롤을 움직여 사진의 끄트머리까지 들여다보았다.


어른들 뒤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와 손으로 차양을 만든 노인을 지나 그의 시선은 사람들 틈으로 작게 보이는 정수리에 머물렀다. 정수리 위로 햇살이 부서져 갈색머리카락에 빛이 났다.


현장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중년이거나 노인이었다. 아니면 할머니와 같이 나온 아이들뿐이었다. 젊은 사람을 굳이 찾자면 피해자의 엄마 옆에서 부축하는 아들 정도였다. 그런데 정수리는 젊은 여자의 느낌이 강했다.


그는 현장에서 젊은 여자를 보지 못했다. 경찰차를 둘러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눈에는 모두 동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슷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들 틈에서 젊은 여자를 보았다면 예리한 그의 눈이 그 여자를 놓쳤을 리 없다. 여자는 의도적으로 사람들 틈에 숨어서 현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강 형사는 다른 사진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멀리 있는 건물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건물 아래쪽을 보았다. 골목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살펴보던 강 형사의 눈이 한 사람의 뒷모습에 멈추었다. 요즘 학생들이 즐겨 입는 평범한 후드티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정지된 사진에서 강 형사는 여학생의 어깨에 걸려있는 가방의 아주 작은 조각을 발견했다.


강 형사는 스크롤을 가방 쪽으로 움직여 사진을 확대 했다. 후드티를 여학생의 모습은 그 사진 외엔 없었다. 각도가 맞지 않은데다가 건물들에 가려져서 그 후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어깨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그는 사진에서 눈을 떼고 기지개를 작게 켰다. 강력반의 회색빛 사무실에는 그를 비롯해 네 명의 형사가 일을 하고 있다. 강 형사는 그들의 정수리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방 끈의 짙은 갈색이 그의 눈에 포착된 후 그동안 가슴에 걸려있던 무언가가 살짝 아래로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그 위에 새로운 무언가가 걸려 숨통을 막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강 형사는 가방이 나온 부분과 다른 사진 몇 장을 복사했다. 복사기에서 인쇄되어 나온 사진을 집어 드는데 문자가 왔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이었다.


-맞아요. 그 여학생이에요.


강 형사는 사진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박 형사 어디 갔어?”


***


12시 20분에 눈을 떴다. 평소와 달리 나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 똑바로 앉았다. 그리고 어제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지난밤, 덕자상회 주인여자와 함께 있는 아줌마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떠오른 기억은 뒤에서 활을 쏘았다는 것이다.


나는 잠을 털어내려고 머리를 흔들며 지난밤을 되짚어보았다.


아줌마와 덕자상회 여자는 시장을 벗어나 네온이 환한 상점가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즐거운 손짓을 하며.


나는 배신감에 부들부들 손을 떨며 활을 꺼내고 화살을 시위에 올렸다. 그리고 내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 어두운 곳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화살을 쏘았다.


쏘는 순간 가속이 붙은 화살은 순식간에 날아가 덕자상회 아줌마의 등에 꽂혔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화살을 맞고도 두세 걸음 더 걸어갔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그러나 곧 그녀는 맥없이 풀썩 자리에 쓰러졌다. 아줌마가 놀라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시장이 들썩거릴 정도로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여기. 여기 도와주세요. 119! 119!”


밝은 곳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에게로 몰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얼른 몸을 돌려 어두운 시장 저편으로 달려갔다.


기억들을 모두 떠올린 후 책상 위 가방을 보았다. 짙은 갈색 가방은 여전히 음험한 안개 빛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 내면 속에서도 지난밤 가졌던 극도의 배신과 그것에 대한 응징이 아우라처럼 흘러넘치고 있었다. 맹수가 내 안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그깟 맹수. 어차피 예상한 일이잖아. 겁먹지 말자. 활이 이끄는 대로 가자.


침대에서 내려와 지난밤에 정리해 두었던 현진이의 상자를 들고 왔다. 다시 살펴보았지만 어제와 다른 것은 없었다.


수첩을 꺼내 앞에서 뒤까지 후르륵 넘겨보았다. 낯선 인물의 연락처가 혹시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때, 종이 한 장이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 부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되돌아보았다.


분명히 현진이가 죽기 보름 전에 다이어리 필기는 멈추었고, 그 몇 장 뒤에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WHO!!!!!


이것을 찢어간 사람은 우리 집에 한명밖엔 없다.


나는 그대로 일어나 동생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동생은 없었다.


나는 동생의 책상과 옷장, 컴퓨터 주변과 서랍장을 뒤졌다. 종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 자식이 내 방에 또 들어온 거다. 그리고 침대 위에 어질러져 있던 물건 중에서 그것을 보고 찢어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왜 그 장만 찢어 갔을까?


도벽이 있는 동생의 도둑질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이유라고 내민 것이 다만 눈에 띄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내 생리대와 지갑과 브래지어를 훔쳐 갔냐! 나는 동생이 가져간 물건들을 나열하며 소리를 질렀었다.


도벽이 반복되자 엄마는 동생과 함께 청소년정신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성장기의 학생이 공부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렇게 표출이 된다며 이런 경우가 많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안도를 했고, 동생은 명분을 얻었다. 만약 동생이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면 의사의 진단은 헛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전교 1등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넌 들어오면 나한테 죽었어.


동생 방에서 나와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서 한동안 망설였다.


아줌마를 보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마음속의 맹수가 나를 부추겼다.


-배신을 한 사람은 네가 아니다. 비난을 받을 사람도 네가 아니다.


일층으로 내려갔다.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몇 가지 반찬과 밥을 한 접시에 담고 거실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뉴스 채널을 누르자 분쟁 국가의 아이에게 후원을 바란다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광고가 지나가고 뉴스가 시작되었다. 정치 문제가 먼저 나오고 뒤이어 사회 뉴스가 나왔다.


나는 밥을 먹다말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일전에 현장검증을 하다가 돌연 사망한 ***씨의 부검 결과가 나왔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남았습니다. 사인은 흉부 열상에 의한 심정지로 나왔는데요, 경찰은 아직도 흉기가 무엇인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아무도 범인을 보지 못한데다 그 짧은 순간에 총이 아닌 미상의 흉기가 사람들 사이로 날아와 범인의 가슴을 가격하는 일은 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경찰의 시름이 깊어지는 대목입니다.]


“밥 먹니?”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엄마가 머리를 만지며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엄마, 왜 집에 있어?”

“휴강이야.”


엄마는 내 옆에 앉아 하품을 했다.


“아줌마는?”

“친척이 아파서 오늘은 못 온대. 내일 오겠지.”

“친척 누구?”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나는 접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밥맛이 달아나버렸다.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온지 얼마 됐어?”

“이년 정도 되지 않았니? 왜?”

“아줌마 요즘 이상하지 않았어?”

“글쎄다. 하긴 요즘 집안일에 소홀하긴 했지. 전에는 시키지 않아도 척척 했는데 요즘엔 시키는 일만 하는 것 같아. 하지만 그 정도야 누구나 겪는 매너리즘 아니겠니?”

“아줌마가 돈 얘기 한적 없어?”

“돈?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 어디에 투자한다면서 나보고 같이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 집은 관리해주는 회계사가 있으니까.”

“엄마는 아줌마가 맘에 들어?”

“그럭저럭. 별 탈이 없잖니. 그리고 요즘 사람 구하기 힘들어. 그런데 너 왜 자꾸 아줌마에 대해서 물어?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냥 오래 같이 있었으니까 궁금해서.”


뉴스에서 다른 소식이 나왔다.


[같은 날 벌어진 사건 중에서 난폭운전으로 도주하던 체로키 운전자가 있었는데요. 오늘 사망했다고 합니다. 난폭운전은 지양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죽었어? 무언가가 머리를 강타한 것처럼 눈 뒤쪽에서 띵, 하는 소리가 났다.


이제 화살을 맞고 죽은 사람이 2명으로 늘어났다.


헌데 이상한 일이다. 체로키 운전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내려갔다는 뉴스를 인터넷으로 봤는데 갑자기 사망했다니?


[지난밤에 재래시장에서 괴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시장 상인인데 귀가하는 길에 뒤에서 습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없어진 물건은 없으며 습격을 한 사람의 그림자조차도 못 보았다고 합니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근처의 CCTV와 목격자를 조사하고 있는데요. 어두운 곳이고 CCTV가 드물게 있는 재래시장이라 쉽지 않아 보입니다. 피해자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며 자세한 내용은 검사가 끝나봐야 안다고 합니다.]


화면에는 병실 침대에 엎드려 있는 퉁퉁한 여자와 보호자의 허리부분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다.


나는 숨을 참으며 뉴스를 쳐다보았다.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체로키 운전자와 비교를 해본다면 덕자상회 여자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녀의 상황보다 아줌마가 더 괘씸했다. 나는 아줌마가 항상 내 편이며 나를 친딸처럼 여기고 아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는 얘길 하거나 부모님 흉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줌마는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내게 커다란 배신이었다.


“오늘은 엄마 친구들이 온다고 했는데 넌 집에 있을 거니?”


-그 말인즉 나가라는 뜻이겠지. 엄마의 자랑은 아들이니까.


“아냐. 약속이 있어. 좀 있다 나갈 거야.”

“그래. 나가는 김에 미용실도 다녀와. 머리가 까치집 같아.”

“그럴 생각이었어.”


나는 접시를 싱크대에 넣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수첩에 적힌 낯선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나는 수첩을 가방에 넣다말고 반짝거리는 활을 바라보았다.


-활은 두고 가자. 오늘은 활을 쏠 일이 없으니까.


활과 화살을 꺼내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침대 밑에 넣었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선한 짓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마지막... 19.07.11 6 0 11쪽
19 범인은.... 19.07.07 9 0 13쪽
18 놀라운 증언 19.07.03 10 0 12쪽
17 또 다른 계획. 19.07.02 8 0 9쪽
16 후? 19.07.01 10 0 10쪽
15 형사의 촉 19.06.30 8 0 14쪽
» 배신 19.06.27 8 0 12쪽
13 WHO!!! 19.06.26 7 0 13쪽
12 유품 19.06.25 7 0 11쪽
11 투명인간 19.06.24 8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2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3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3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2 실전 19.06.11 50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7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