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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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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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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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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04,545

작성
19.06.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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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WHO!!!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13 WHO...



택시기사는 한사코 자신의 집 근처의 막걸리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세 사람은 기사가 사는 아파트 근처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가게 안은 퇴근하고 들른 직장인들로 인해 빈자리가 없었다. 세 사람은 사람이 나가고 아직 치우지 않은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빈 그릇을 포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강 형사는 밖으로 나가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새로 들어온 신입 경사가 전화를 받았다.


“내 컴퓨터 안에 민현진이라고 성폭행 사건으로 자살한 여자 파일이 있어. 거기 주변인 진술 중에 친하게 지낸 여자 친구가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전화 진술만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친구 주민증 사진을 내 폰으로 보내줘. 30분 안에 보내라. 안 그러면 시말서 날린다.”


전화를 끊고 강 형사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경찰서로 찾아온 여학생이 아까 그 여자가 말했던 여학생과 동일인물이라면 가닥이 조금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사가 태운 승객과도 일치한다면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야. 어떻게 상해를 입혔을까.


담배를 다 피우고 들어오니 삼겹살이 보기 좋게 구워지고 두 사람은 이미 술을 한잔씩 한 상태였다. 강 형사는 앉자마자 급하게 고기를 몇 점 입에 넣었다. 박 형사가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한 잔 마시고 다시 고기를 서너 점 집어먹었다.


“선배님, 배가 많이 고프셨나봐요.”

“나도 몰랐는데 그랬나봐. 고기 맛있네. 너도 먹어.”


택시기사가 두 형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였다. 강 형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기사에게 술을 권했다.


“배가 고파서 실례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기사는 막걸리를 쑥 마시고 강 형사에게 빈 잔을 내밀었다.


“저한테 알고 싶은 거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기억나는 대로 전부 말하겠습니다. 그 전에 부탁이 한 가지 있는데요.”


두 형사가 동시에 기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기사는 무안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뭐 그리 어려운 건 아니고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될까요?”

“사진은 왜요?”

“형사님들이랑 술 먹은 기념으로 말이죠.”

“저희랑 술 먹은 기념사진이 왜 필요하신지?”


강 형사의 싸늘한 말투에 기사가 움찔 놀라며 자세를 바르게 했다.


“아니...사실은······.”

“솔직히 말씀하세요.”


강 형사는 막걸리 집에서 만나자고 고집을 부린 기사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앉자마자 속내를 드러내는 기사를 보니 기분이 상했다.


“아니, 제가 체구가 좀 작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깔보는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손님이며, 지인들이며, 하다못해 마누라에 애들까지 무시합니다. 아니, 내가 술 먹고 실수 좀 했기로서니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더듬거리며 하소연을 하는 기사의 말에 박 형사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강 형사는 진진한 얼굴로 기사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사실, 여기 강 형사님은 신문에도 나오고 저번에는 티비에도 나오고. 좀 유명한 분이잖습니까. 그래서 그런 거지.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도대체 술을 먹고 무슨 실수를 하셨길래 가족까지 그럽니까? 실수가 한 두 번이 아니죠?”


박 형사의 물음에 기사는 감정이 상한 듯 거칠게 고기를 뒤집었다.


“싫으면 관두십시오. 내가 뭐가 아쉽다고.”


강 형사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아버지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어깨를 늘어뜨린 소시민이었다. 그런 어깨에 가장이라는 짐이 더해졌으니 몇 배로 힘들었을 것이다.


강 형사는 막걸리를 죽 들이켜고 빈 잔을 기사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운아. 사진 좀 찍어라. 셋 다 나오게.”


잔을 받아드는 기사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박 형사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세 사람이 모두 나오는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기사의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사진을 본 기사는 빙그레 웃으며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으셨습니까?”


그때 강 형사의 휴대전화에 알림이 울렸다. 강 형사는 전화기를 꺼내 전송된 사진을 보았다. 주민증에 붙어 있는 얼굴은 일전에 자신을 찾아왔던 그 여학생이 분명했다.


강 형사는 사진을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이 학생...아니지.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 학생은 아니고. 아무튼 이 아가씨 본 적이 있습니까?”


기사가 전화기를 가져가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돌려주었다.


“하도 많은 손님을 태우니까 확실히...그런데 어디선가 봤는데. 어딘지 모르겠네요.”

“혹시 체로키를 쫓아가던 날에 태운 손님 아닙니까?”

“아. 맞아요. 내가 그 놈 쫓아가면서 깜빡 잊었지 뭡니까.”

“잊었다니 뭘요?”

“손님 태운 걸요. 내 밥줄을 냅다 처박고 도망치는데 순간, 꼭지가 돌지 뭡니까. 그래서 손님한테 양해도 못 구하고 냅다 쫓아갔죠.”

“그럼 그때 아가씨는 뭘 했습니까?”

“뭘 하긴요. 뒤에서 숨도 못 쉬고 있었겠죠.”


강 형사는 예순이 넘는 자그마한 기사를 바라보았다. 소심한 사람이 뜻밖의 상황에서 헐크처럼 변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었다. 아마도 그래서 술의 기운을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아가씨는 어디서 내렸습니까?”

“체로키가 가로수를 처박은 후에야 뒷자리에 손님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안하다고 하니까 자기는 괜찮다며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강 형사는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따져 보았다.


그날은 가족을 죽인 범인의 현장검증이 있던 날이다. 그는 현장검증을 마치고 나오다가 미스터리한 무언가에 의해 죽었다. 증거라고는 가슴에 남은 화상자국 뿐이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두 사건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것을 무슨 뜻으로 해석을 해야 할까?


강 형사는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순식간에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째서 그 아가씨가 자꾸만 걸리는 것일까.


“박 형사, 내일 그 택시를 찾아보자. 주변의 CCTV와 차량들의 블랙박스를 뒤져야겠어.”


그러자 기사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 기사 내가 알아요. 같은 회사거든.”


***


방문을 걸고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조명을 약하게 한 뒤 상자를 들고 침대 중간에 앉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말라는 현진이 엄마의 말을 명심하고 다짐했는데도 두근거림은 점점 심해졌다.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노트 몇 권과 수첩3개, 작은 인형, 열쇠고리, 응원 타월, 편지, 필기도구 등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침대에 놓았다. 열쇠고리 등의 자잘한 물건들을 손 안에 넣으니 현진이가 느껴는 것 같아 눈물이 고였다. 응원타월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 광장에 나가 둘렀던 것이었다. 나는 타월을 목에 걸고 다른 물건을 살펴보았다.


수첩은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2 학년 때 쓰던 다이어리였다.

현진이는 나와 달리 꼼꼼한 성격이었다. 나는 볼펜의 삼색 외엔 관심이 없었는데 현진이는 분홍, 초록, 갈색 등의 볼펜으로 수첩을 아기자기하게 장식했다.


수첩을 넘겨보니 그날 만난 사람과 했던 일과 감상들이 각기 다른 색의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친구 누구와 떡볶이를 먹고 PC 방에서 게임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는 등의 하루 일과였다.


수첩에 적혀있는 이름은 내가 거의 아는 친구들이었다. 나도 가끔 어울려 놀곤 했다. 거기에는 나와 혜서도 있었다.


모르는 이름도 몇 명 보였는데,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그 아이들을 만나서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는가를 조사하는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진이 엄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마라.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수첩을 더 넘겨보았다.


다양한 색의 볼펜은 현진이가 자살을 하기 보름 전에 멈추어 있었다. 그 후로 빈 종이가 이어지다가 자살하기 일주일 전의 날짜에 단 글자만 적혀 있었다.


WHO!!!!!!!!


힘껏 눌러 쓴 느낌표가 처절하게 다가왔다.


뒤이어 노트를 살펴보았다. 노트는 주로 학교생활에 필요한 사항들을 적은 것이었다. 준비물, 학습계획, 과제물, 부모에게 전달할 사항들이 역시 색색의 볼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 역시 현진이가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멈추어 있다.


그렇다면 현진이가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한 날짜가 죽기 보름 전이라는 것인데, 현진이는 그때 누구를 만난 것일까.


그리고 WHO는 무슨 의미일까. WHO ARE YOU를 적다가 그만 둔 것일까?


그때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방을 쳐다보았다. 가방의 빈틈으로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안개 모양의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마치 갑갑증에 걸린 사람처럼 가방은 아우라의 흐름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다.


내 몸 역시 떨리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감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강렬하게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 순환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는 게 어려울 정도로 극도의 긴장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나는 침대에서 뛰어 내려가 가방을 잡았다. 손이 닿는 순간 아우라가 서서히 사라지며 가방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갑자기 푹신한 잔디에 맨 발을 디딘 듯한 아늑한 안도감이 전신을 감싸는 듯했다.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나른한 기운이 스르르 번져갔다.


나는 서둘러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가방을 메고 방을 나갔다. 동생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만 일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줌마는 이미 퇴근한 후였고, 부모님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나는 집을 나가 빠른 걸음으로 도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제일 먼저 보이는 택시를 잡았다.


“** 시장으로 가주세요.”


***


밤 9시의 시장은 사람이 빠져 나간 해변의 오후처럼 적막과 함께 코를 자극하는 냄새로 가득했다. 낮 동안 팔려나간 생선, 짜장면, 통닭튀김 등등의 영혼이 공기 중에 떠도는 듯했다. 장사를 마친 시장의 밤은 무척 생소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시장 안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보니 덕자상회에는 다행히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덕자상회가 잘 보이는 곳에 몸을 숨기고 사기꾼 여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술에 취한 사람과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잠시 후 덕자상회의 문이 열렸다. 두 여자가 안에서 나왔다. 뚱뚱한 여자가 발을 들고 유리문 위로 손을 뻗어 문을 잠갔다. 두 사람인 것이 좀 걸리지만 분명히 기회는 올 것이다.


나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 활을 꼭 쥐었다. 언제든 적당한 상황이 오면 화살을 날리고 재빨리 몸을 숨기면 된다. 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우리 동네에는 사방에 CCTV가 있지만 어두운 재래시장에는 CCTV가 없다. 내가 발각될 염려는 거의 희박하다.


두 여자는 셔터를 내린 가게마다 천막으로 물건을 덮은 탓에 낮보다 더 어둡고 좁아진 시장 통로로 나란히 걸어갔다. 통로를 벗어나면 밝은 대로가 나온다. 그전에 일을 마쳐야 하는데,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덕자상회의 뚱뚱한 주인여자 옆에서 걸어가는 날씬한 여자의 걸음걸이가 어딘지 낯이 익었다.


두 여자가 통로 끝의 전봇대 앞을 지나갈 때였다. 희미한 가로등이 두 여자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보았다.


덕자상회 여자 옆에서 걸어가는 여자는 아줌마였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살펴보았다. 분명히 내게 토스트를 구워주고 건강을 걱정해 주고 엄마보다 더 신경을 써주던 우리 집 아줌마였다!


나도 모르게 후다닥 가방에는 손을 뺐다. 그때 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요한 밤의 시장에서 활의 철 프레임이 떨어지는 소리는 유난히 컸다.


두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얼른 천막 사이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보니 두 여자는 대로로 나가 밝은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활을 집어 들고 서서 작아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활이 점점 뜨거워졌다. 내 맥박도 활과 같은 온도로 뛰고 있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아줌마는 내게 거짓말을 했다. 누구보다 믿었던 아줌마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가방 끈을 움켜쥐고 그들이 걸어간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내 얼굴은 어느 때보다 더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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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배신 19.06.27 8 0 12쪽
» WHO!!! 19.06.26 8 0 13쪽
12 유품 19.06.25 8 0 11쪽
11 투명인간 19.06.24 8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3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3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2 실전 19.06.11 51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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