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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님의 서재입니다.

선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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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19.06.10 16:41
최근연재일 :
2019.07.11 14:57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54
추천수 :
1
글자수 :
104,545

작성
19.06.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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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투명인간

누구든 화살을 맞을 수 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DUMMY

11. 투명인간



눈을 뜨니 아침 7시30분이었다.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는데 몸 상태가 어제와 달랐다. 무심코 먹은 약이 내게 딱 맞아 완벽한 효능을 준 것처럼 정신 또한 또렷했다.


오늘부터 나는 활을 따라갈 것이다. 활은 이제 내 무의식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일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던 아버지, 엄마, 남동생이 귀신이 나타난 것처럼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줌마도 놀란 얼굴이었다.


“어? 해가 어디서 떴냐?”


아버지가 물었다.


“동쪽.”


나는 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줌마가 준 생태탕을 한 입 떠먹었다.


“와, 맛있다.”

“너, 돈 필요하니?”


동생이 물었다.


“내가 넌 줄 아니? 난 용돈에 불만 없어.”

“당연하지. 집에서 노는 애한테는 많은 돈이야. 게다가 카드도 갖고 있잖아.”

“고마워. 엄마.”

“고맙다라니...너, 뭔가 달라 보인다?”

“우리 몰래 종교에 귀의라도 한 거야?”


동생이 이죽거렸다. 나는 동생을 노려보았다.


“엄마는 내가 항상 고인 물처럼 괴괴하게 썩었으면 좋겠어?”

“얘는 내가 꼭 계모라도 되는 것처럼 말해. 난 네 친 엄마야. 아줌마, 숭늉 좀 줘요. 아침부터 깜짝 놀랐더니 목이 칼칼하네.”


생태탕의 국물만 떠먹는 아버지에게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빠.”

“응?”

“나도 재판을 방청할 수 있어?”

“그럼. 법원에 가서 재판 일정 보고 들어가면 돼. 재판장이 비공개로 하지 않으면 모든 재판은 구경할 수 있지. 왜? 뭘 보고 싶은데?”

“그냥 아무 거나.”


아버지는 밥을 반 이상 남기고 수저를 놓았다.


“너도 이제 장래를 생각해라. 언제까지 놀 순 없잖아. 아빠 얼굴도 좀 생각해주고. 비교하기 싫은데 다른 집 애들은...아니다, 아냐.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운동을 다시 하든가.”

“생각 중이야.”


그러자 동생이 또 이죽거렸다.


“오, 생각이라는 걸 해? 아무 생각 없이 만날 게임만 하는 줄 알았는데?”

“공부 잘해서 법대 갔다고 나 같은 일반 사람 무시하는 거 아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흘겨보았다.


“아빠는 빼고.”

“그런데, 너 요즘 택시 많이 타던데, 어딜 그렇게 다니니?”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문자로 오니까 알지. 간섭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서 그런다.”

“뭘 좀 배울까 싶어서 알아보러 다니는 거야. 법을 어기는 짓은 안 해.”

“아이고, 고맙구나.”


아침을 먹고 이층으로 올라와 외출 준비를 하고 다시 일층으로 내려오니 집에는 아줌마 혼자뿐이었다. 아줌마도 외출 복장이었다.


“어디 가?”

“응. 시장에. 교수님이 소꼬리 좀 고아 달라고 해서. 검사님은 명태 코다리찜이 먹고 싶다 하시고.”

“우리 엄마 아빠 식성이 완전 딴판이지. 같이 나가자. 나도 시장 구경하고 싶어.”

“어디 나가려던 거 아니었어?”

“급한 건 아니야.”


법원에 가서 의붓아들을 죽인 여자의 재판 일정을 알아보려던 참이었지만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다. 당장 내일 열리는 재판이 아니므로.


우리는 집을 나와 나란히 재래시장으로 걸어갔다.


“아줌마가 전에 말했던 그 사기꾼 여자가 이 동네 시장에 있어?”

“아냐. 다른 시장에서 장사해.”

“그럼 거기 가자. 내가 택시비 낼게.”

“왜? 그냥 여기 시장 가자.”

“아직 한참 걸어 가야하잖아. 택시 타기엔 거리가 애매하고. 차라리 택시 타고 거기 시장 앞까지 가자. 올 때는 짐이 있으니까 택시 타기도 편하고.”

“이유를 모르겠네. 그럼 맘대로 해.”


우리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우리 동네와 멀리 떨어진 시장으로 갔다.


오전에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시장은 복잡했다. 더운 바람이 사람들 사이로 스쳐갔다. 아줌마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필요한 물건을 샀다.


소꼬리를 사고 꾸덕하게 마른 코다리를 넣자 커다란 천으로 된 시장바구니가 퉁퉁해졌다.


나는 장보기를 마친 아줌마를 끌고 분식을 파는 가게로 갔다. 오랜만에 시장 분식을 먹고 싶었다. 떡볶이 일인분을 주문한 뒤 가게 입구의 어묵 냄비 앞에 서서 뜨거운 어묵을 입으로 불며 먹는데 아줌마가 말했다.


“저기, 덕자상회 보이지?”


아줌마가 가리킨 곳에는 상가 오피스텔 건물의 일층에 나란히 붙어 있는 몇 개의 상점이 있었다. 가게마다 과일, 옷가지, 공산품 등의 물건들을 내놓아서 지저분해 보였다.


“응.”

“그 여자 가게야. 꼭 자기처럼 온갖 잡다한 물건은 다 팔아.”

“가 볼까?”

“싫다. 저 여자만 보면 십 년 전에 먹은 것도 올라올 지경이야.”


나는 아직도 치를 떠는 아줌마를 보다가 덕자상회로 눈을 돌렸다. 가게 안으로 여자들이 드나들었다.


분식가게 주인아줌마가 떡볶이를 접시에 담아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참견을 했다.


“덕자상회가 이 동네 사랑방이에요. 주인여자가 얼마나 인심이 좋고 말을 잘하는지. 근방의 가게 주인들이 계돈을 모두 덕자네로 넣고 있죠.”


주인의 말을 듣은 아줌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내고 있는 돈의 끝을 알고도 남는다는 표정이었다.


분식으로 배를 채우고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탔다.


집 앞에 도착해 나는 약속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말하고 아줌마를 내려주었다.


핸들을 돌리는 택시 기사에게 아까 우리가 탔던 곳으로 다시 데려다 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이상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속도를 높였다.


시장에 도착해 덕자상회가 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이층에서 본 덕자상회에는 분식집 아줌마의 말처럼 다양한 여자들이 들어가고 나왔다.


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가져온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현진이 사건에 관해 메모해둔 파일을 열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렇다 할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장 코치는 연락이 안 되고, 승후는 현진이와 딱 한 번 만난 것뿐이다. 현진이 아버지는 범인을 찾는 것도, 생활도 포기한 상태이다. 내가 만나지 않은 사람은 현진이 엄마밖엔 없다. 그 외에 누구라도 나타나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하면 좋겠지만 수사력이 없는 내겐 진전이라는 단어를 쓸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형사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은 답답하고 불가항력인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내면에는 활의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활은 세상에 나온 사명감을 나를 통해 이루려고 한다. 물론, 나도 동참한다.


오늘의 사명은 덕자상회이다. 또 다른 범죄를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다. 그녀가 많은 돈을 만진다는 것은 또 다시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반증이다.


나는 노트북을 보는 틈틈이 창밖을 주시했다.


***


강 형사는 수첩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박 형사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팀장님, 왜 그러세요?”

“뭔가 이상해. 어째서 화상 자국이 자기도 모르게 생긴 걸까. 그리고 그걸 본 사람과 증거가 전혀 없어. 아무 것도 없어서 더 이상하단 말야.”


중얼거리듯 말하며 강 형사는 수첩의 낱장을 거칠게 넘겼다. 거기에 적힌 화상 피해자들의 상황을 꼼꼼히 읽던 강 형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맨 처음 화상 피해자는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던 양아치 놈이었고, 두 번째는 체로키 난폭 운전자, 세 번째는 살인범, 마지막은 젊은 남자야. 죽은 사람은 살인범 한 명이야. 둘은 퇴원했고, 체로키 운전자는 아직 입원 중이고. 너, 혹시 느끼는 거 없어?”


박 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곧 눈을 크게 떴다.


“어릴 적에 본 만화영화가 생각나네요.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

“그래. 같은 생각이야. 마지막의 젊은 피해자도 거짓말을 하고 있어. 물에 데었다면 절대 그런 상처가 생기지 않아. 그렇다면 이 사건들에게 공통점이······.”

“화상 자국이죠.”

“그거 말고 다른 공통점. 모두 남자라는 것도 빼. 처음에는 여자도 있었어. 애인이라고 했지? 그 여자도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전혀 못 봤다고 했어. 우리가 지금 투명인간을 쫓고 있는 거야?”

“살인범의 유족은 어때요? 저번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는데.”

“그 후론 연락이 없어. 국가를 상대로 돈 좀 뜯어내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봐야 지들만 손해야. 여론이 잘 죽었다고 흘러가는데 어떤 판검사가 비상식적인 유족의 말을 들어주겠어.”


강 형사가 수첩을 책상 위에 던지며 말했다. 이번에는 박 형사가 수첩을 들어 몇 장을 넘기며 살펴보았다.


강 형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


강력반 사무실 안에는 용의자와 형사의 진술서 작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잡혀온 용의자들은 고개를 숙이며 형사가 하는 질문에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그런데 겉보기에도 험악해 보이는 덩치 큰 남자는 다른 용의자들과 달리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아! 씨발. 증거가 있냐고요. 증거를 대봐. 나한테서 증거가 나오길 기대하지 말고!”


강 형사는 그런 남자를 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아무리 투명인간이라고 해도 자신의 발자국은 남길 것이다. 화상을 입힐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면 실낱같은 단서 하나쯤은 의도치 않게 남았을 것이다. 지구에 중력이 존재하는 이상에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런 증거가 없다.


“혹시, 스나이퍼처럼 멀리서 무언가를 쏘았다면?”


강 형사의 말에 박 형사가 수첩에서 눈을 떼었다.


그때 험악한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강 형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 씨발. 무슨 구경났어? 왜 쳐다봐.”


그러자 앞에 있던 형사가 서류를 들고 일어나 남자의 정수리를 살짝 때렸다.


“욕하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팀장님한테 뭔 짓이야. 너, 팀장님한테 진술 받을래? 관내 1등 수사관 표창을 받은 베테랑한테?”

“아, 씨.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강 형사는 피식 웃으며 박 형사와 함께 강력반 사무실을 나갔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피해자들을 모두 만나봐야겠어. 이 사건도 미결이 되면 골치 아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일단 가보자.”


***


두 시간 정도 커피숍에 앉아 기다리자니 배가 고팠다. 나는 치즈 조각케잌과 카모마일 차를 주문했다. 점심때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덕자상회를 보고 있으려니 드디어 여자들이 가게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나온 뚱뚱한 여자가 가게 문에 종이를 붙이고 문을 걸었다. 그 여자가 주인이 모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마주 오는 여자들을 지나치는 척하며 가게를 보았다. 종이에는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잡담을 하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세 여자를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다.


기회가 오면 바로 실행할 수 있게 손을 가방 가까이에 두었다. 오늘은 노트북이 있어 조금 무겁지만 활을 꺼내는 것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자들은 골목을 걸어가 허름하지만 손님으로 꽉 찬 쌈밥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골목 입구에 서서 어떻게 할까, 고민에 빠졌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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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지막... 19.07.11 6 0 11쪽
19 범인은.... 19.07.07 10 0 13쪽
18 놀라운 증언 19.07.03 10 0 12쪽
17 또 다른 계획. 19.07.02 8 0 9쪽
16 후? 19.07.01 10 0 10쪽
15 형사의 촉 19.06.30 8 0 14쪽
14 배신 19.06.27 8 0 12쪽
13 WHO!!! 19.06.26 8 0 13쪽
12 유품 19.06.25 8 0 11쪽
» 투명인간 19.06.24 9 0 11쪽
10 활, 그리고 아우라! 19.06.23 14 0 9쪽
9 뜻밖의 만남 19.06.20 13 0 11쪽
8 화살, 화상 19.06.19 12 0 12쪽
7 카타르시스 19.06.18 14 0 11쪽
6 NEWS 19.06.17 12 0 12쪽
5 맹수, 내게 깃들다 19.06.16 14 0 12쪽
4 극강의 활 19.06.13 15 0 8쪽
3 공공의 증오 19.06.12 27 0 14쪽
2 실전 19.06.11 51 0 13쪽
1 목소리 +1 19.06.10 9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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