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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931님의 서재입니다.

축복받은 패륜아 공작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기하학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4
최근연재일 :
2022.09.04 22:18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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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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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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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806

작성
22.05.1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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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 어제의 적이 내일의 아군 - 2

DUMMY

1.


세상을 비추던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사방에 벌레들의 울음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늦은 밤, 푸라그 시 밖 외곽의 한 창고 안에서 비밀스러운 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동을 이끈 건 황제의 명에 따라 갈리폴리의 농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발렌베르 공작과 농민군 중 농노들을 대표하는 요백파의 월트 타일러였다.


“반갑습니다. 타일러 경. 발렌베르의 새로운 공작이 된 아서 발렌베르라고 합니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


“저 같은 별볼일 없는 늙은이에게 경칭을 쓰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공작님.”


“하하, 그럴 순 없죠. 제 아버지가 졸업한 볼로냐 대학의 선배이자, 제국의 관리를 맡아 농민들을 위해 봉사하셨던 분인데 제가 어찌 무례를 저지르겠습니까.”


“...”


‘어떻게 내 정체를?’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나름 유명했다곤 하나, 60살에 이르기 까지 평생을 지방 세무관으로 일했던 그는 유명인사가 아니었고, 요백파의 실질적인 리더를 맡고 있는 것 역시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더 더욱 아니었다.


어떻게든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정찰기사대의 압도적인 정보수집 능력에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허나 아서의 카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소문은 들으셨을 겁니다. 타르프시파가 우리와의 협상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않고 있다고. 예. 소문은 사실입니다.”


“허허, 이 늙은이가 아무리 무지하다 한들, 적들이 얘기하는 바를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어리석진 않습니다.”


“현실은 때때로 믿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니까요. 믿지 않으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평화를 만들기 위해 만난 것이니까요.”


“평화 말씀입니까? 저희는 아직 전쟁에서지지 않았습니다.”


“하하, 전쟁은 단순히 머릿수로 판단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여러분들이 점차 저항의 의지가 꺾여가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황제의 복수가 두려워 끝까지 항쟁을 멈추지 못하고 있을 뿐, 제국의 주인에게 반기를 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우리의 숭고한 의지는 이정도의 고난으로..”


“이런, 서로 허세는 그만 두죠. 포로들을 통해 이미 들었습니다. 농노군은 물론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건 말이죠. 결국 농노군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안정된 삶을 위해서 아닙니까.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인 고난 앞에선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죠. 안 그런가요?”


긴 세월동안 관리로 일해 왔기에 월트는 중앙정계에서 내려온 뱀같이 교활한 귀족들을 수도 없이 겪어왔다.


허나 그 누구도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젊은 청년과 같지 않았다.


자신을 꿰뚫어 보는 냉철한 눈, 여유가 느껴지는 태도, 그리고 자신을 현혹시키는 말까지.


‘정녕 눈앞에 저 남자가 19살이 맞는 건가?’


인간이 아닌, 마치 악마의 손아귀에 갇힌 불쌍한 영혼이 된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월트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후우..그래서 공작님은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대중들은 저보고 권력에 미쳐 아버지도 죽인 놈이라 손가락질 하지만, 저는 평화를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황제폐하와 농노들 사이의 평화를 제가 가져다 드리죠.”


평화라니, 황제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을 용납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얼마 전까지 황제와 대립하던 발렌베르 공작이 그를 설득 할 수 있다고?


“이런, 네까짓 게? 라는 얼굴이군요.”


“그런 무례한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뭐, 사실은 사실입니다. 제 가문은 이미 명성만 남은 이빨 빠진 맹수죠. 하지만 이번에 제가 황제폐하의 사위가 돼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양측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요. 당신들이 개인의 자유와 명예를 안위와 타협할 수 있다면 제가 양측의 화해를 가져다 드릴 수 있습니다.”


“후우..”


자신을 향해 속삭이는 공작의 말에 점차 설득되는 자신을 보며, 월트는 성경 속 악마의 꾐에 빠져 목숨을 잃은 어리석은 자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스스로 상대에게 완전히 현혹 당했다는 걸 알면서도 월트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자유를 위해 일어선 농노들을 더 이상 전쟁을 치르기에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농노들은 배고픈 자유 대신 배부른 돼지가 되길 선택했다.


2.


약 3시간에 걸친 양측의 협상은 아서의 계획대로, 아니 계획 이상으로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


반란이 장기화 되면서 지난 가을 밀농사는 이미 망친지 오래였음에도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 농민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하루 빨리 갈리폴리 지역이 정상화되길 원하고 있었고.


2시간의 회의를 끝내고 1시간 만에 합의를 도출해낸 양 측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서류에 사인을 마쳤다.


반란의 대가로 그들은 세금과 징집등 여러 방면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지만, 과거와 같은 아사자는 더 이상 생기지 않으리라.


“자유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자유만으론 행복을 살 수 없는 법이죠. 누군가에겐 거친 자유민의 삶보다 노예 생활이 주는 편안함이 더 행복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공작님은 황제폐하께 무릎을 꿇은 겁니까?”


오랜 생활 공직에 있었던 만큼, 월트는 공작이 아버지를 살해한 게 소문처럼 단순히 권력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서가 악수와 함께 건넨 말이 공작 스스로의 상황에 대한 말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흠, 저야 제 행복이 문제가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제 자존심을 팔아 가족과 영지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야.”


“부럽군요. 당신의 지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새롭게 부임할 갈리폴리의 임시 총독인 테레사님도 좋은 지배자니까, 너무 상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렀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 라니에 가문의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공작님과 마찬가지로.”


아서의 말에 고개를 저은 그는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수행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흥, 건방진 놈이군요. 공작님에 대한 예의가 없었습니다.”


“하하, 핸리 경은 제가 왜 이렇게 적들의 편의를 봐주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 가보군요.”


아서의 호위로 차출된 선봉대의 젊은 기사는 자신의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예. 미천한 농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살려주었더니, 결국 이득을 보는 건 황제와 그 딸이지 않습니까. 문제를 해결한 건 공작님인데..”


“핸리 경.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남은 게 거의 없는 발렌베르에 남은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음..기사단입니까?”


“맞습니다. 자랑스러운 검은 날개가 남아있죠. 그리고 또 하나 남은 게 바로 명성입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전통과 더불어, 황제의 검으로서 제국 각지에서 나타난 외부의 적들을 막아낸 발렌베르의 명성은 제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


황제의 부름에 제국 동쪽에서 달려와 자신들을 보호해주며, 엄격한 군기 아래 현지의 주민들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 기사단은 제국의 평민들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족들이야 우릴 황제폐하의 사냥개로 여긴다지만, 부유한 상인들도 자유민들도 심지어 한낱 농노들조차도 우리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죠. 대중들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 이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혼란스러운 제국 밖의 세상과 달리, 제국 내부는 오랜 기간 평화에 젖어있었다.


그 결과 제국을 지키던 수호신은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말았고.


하나 피할 수 없는 불길이 제국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몇 년 안에 제국의 전역이 불길에 휩싸이리라.


그 순간이 바로 발렌베르가 다시 날아오를 기회였다.


'제국인들이 흘린 피, 그리고 발렌베르가 쌓아올린 명성을 발판삼아 가문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리라.'


아서의 설명에도 핸리 경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말에 오르며, 아서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밤하늘 속 별들을 바라보았다.


발렌베르 지방에는 영웅이 죽으면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전설이 있었다.


‘아버지와 스승님은 별이 될 자격을 갖추었을까?’


비록 지금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언젠가 우리가 다시 세상을 향해 도약할 때 사람들의 지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아서는 가문을 성장시켜야 했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를 자신의 두 손으로 이루기 위해.


호위와 함께 진형으로 돌아가는 아서를 위해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나아갈 길을 비춰주었다.


3.


아서와 요백파 사이의 협정된 비밀 조약은 곧바로 기사단의 고위 간부들 사이에 전해졌다.


그리고 아서에게 반기를 들었던 부기사단장 보르덴 자작 역시, 조약에 대해 전해들은 고위 간부 중 하나였다.


“벌써 전쟁이 끝난다고? 젠장, 아직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비록 저번 회의에서 아서에게 불만을 들어냈지만, 그는 지금 당장은 그를 상대로 수작을 펼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 당장은 전쟁으로 인해 공작의 힘이 막강할 시기였기에, 그는 우선 기사단 내에서 자신의 파벌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비록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었으나, 그는 뇌물의 힘을 믿고 있었기에 단원들을 매수하려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번 전쟁에서도 한 몫 단단히 잡아 단원들에게 약탈품을 건네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주인은 약탈을 금지했다.


“그 빌어먹을 공작 놈 같으니. 어차피 황실에 반기를 든 반역자들인데 약탈 좀 하는 게 뭐가 나쁘다고!”


검은 날개는 약탈을 하지 않는다는 규율을 자작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젠장, 이미 공작에게 단단히 찍혀있을 텐데..”


공작이라고는 하나, 현재 공작가에 남은 유일한 재산은 결국 기사단뿐이었다.


그랬기에 부기사단장으로서 기사단 내부를 장악하면 손쉽게 공작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아무리 돈으로 유혹한들 기사단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자작 본인은 눈치 채지 못했으나, 이미 기사단원들은 공작가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부기사단장에 대한 신뢰와 충성을 버린 지 오래였다.


상황이 그렇게 까지 갔음에도, 그는 더 많은 돈이라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지 못했다.


한때 발렌베르를 지키던 고귀한 기사가 돈에 눈이 멀어 변해보린 모습은 추함, 그 자체였으나 그래도 보르덴 역시 한때는 기사단의 미래를 책임질 거란 말을 들을 정도로 유망한 기사였다.


“이대로라면..음? 이건..혹시?”


합의문 사본 속 몇 가지 구절을 읽던 그는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모든 마을과 도시가 황실에 항복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고, 몇몇 도시는 회의를 거쳐 추후 항복을 결정하겠다고 적혀있었다.


“그렇다면..이 마을들은.”


한때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빛나던 그의 재능이, 농민들의 재산을 골수까지 빼먹기 위해 빛나고 있었다.


작가의말

휴전이 오는듯 하나, 아직 폭풍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글을 찾아주신 독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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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0. 꿈 - 2 +3 22.06.01 374 8 9쪽
30 10. 꿈 - 1 +3 22.05.31 393 8 10쪽
29 9. 새로운 물결 - 4 +3 22.05.30 392 7 9쪽
28 9. 새로운 물결 - 3 +3 22.05.30 398 10 9쪽
27 9. 새로운 물결 - 2 +1 22.05.29 427 8 9쪽
26 9. 새로운 물결 - 1 +3 22.05.28 448 7 9쪽
25 8. 결투는 신중히 - 1 +2 22.05.27 430 12 9쪽
24 7. 축배 - 3 +4 22.05.27 435 9 10쪽
23 7.축배 - 2 +7 22.05.26 445 9 9쪽
22 7. 축배 - 1 +5 22.05.25 471 9 10쪽
21 6. 집안 정리 - 2 +5 22.05.24 510 10 11쪽
20 6. 집안 정리 - 1 +3 22.05.23 515 10 10쪽
19 5. 부활의 신호탄 - 2 +1 22.05.22 498 9 10쪽
18 5. 부활의 신호탄 - 1 +1 22.05.21 494 12 9쪽
17 4. 매가 약이다. - 4 +1 22.05.20 479 9 10쪽
16 4. 매가 약이다. - 3 +4 22.05.19 484 9 9쪽
15 4. 매가 약이다. - 2 +3 22.05.17 503 12 11쪽
14 4. 매가 약이다. - 1 +1 22.05.17 525 10 12쪽
13 3. 어제의 적이 내일의 아군 - 3 +2 22.05.16 536 13 10쪽
» 3. 어제의 적이 내일의 아군 - 2 +4 22.05.16 541 14 11쪽
11 3. 어제의 적이 내일의 아군 - 1 +2 22.05.15 578 12 10쪽
10 2. 바보야, 문제는 식량이야! - 5 +3 22.05.14 585 13 11쪽
9 2. 바보야, 문제는 식량이야! - 4 +1 22.05.14 595 13 11쪽
8 2. 바보야, 문제는 식량이야! - 3 +1 22.05.13 635 11 10쪽
7 2. 바보야, 문제는 식량이야! - 2 +1 22.05.13 717 11 9쪽
6 2. 바보야, 문제는 식량이야! - 1 +5 22.05.12 830 18 11쪽
5 1. 아버지가 죽었다. 오늘, 아니 어제. - 4 +4 22.05.11 960 22 10쪽
4 1. 아버지가 죽었다. 오늘, 아니 어제. - 3 (내용 수정) +2 22.05.11 1,010 29 12쪽
3 1. 아버지가 죽었다. 오늘, 아니 어제. - 2 +2 22.05.11 1,233 3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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