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길드
어떤 차원 어떤 우주의 이야기
- 주인님이 사냥한 걸 이렇게 써먹다니! 비겁하고 교활한 년!
삼순이가 울부짖었다.
허나, 최강현은 울부짖는 삼순이를 뒤로하고 앞에 펼쳐진 어둡고 조용한 숲을 응시했다.
서유리가 향한 숲은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익숙한 숲이었다.
헌터들이 죽고 그가 그녀를 구했던 숲이다.
- 아우! 주인님, 어떻게 좀 해보세요!
- 뭘 어떻게 해?
- 지금 파티원들 이끌고 복수하러 가는 거잖아요! 막아야죠!
- 무슨 소리야. 우리는 서유리의 삽질을 막으러 온 게 아니라 고병수 때문에 온 거야. 목적을 제대로 알아야지.
- 그래도! 저 년이 우리더러 상도덕 없는 쌍놈이라잖아요.
- 야, 삼순아. 진정해. 어?
이미 숲으로 들어선 그는 삼순이를 진정시켰다. 흥분해봤자 쓸데없는데다 머릿속만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다른데 관심이 있었다.
-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서대철하고 박수진이가 서유리의 목적을 아는 것 같애?
- 제가요? 두뇌플레이는 주인님 전공 아니었나요?
- 훗, 아부가 늘었다? 어쨌든 두 사람 심장 박동이나 체크해줘. 알고 있다면 뭔가 변화가 있을거야.
- 네! 역시 주인님.
그때, 앞에서 고병수가 강현을 불렀다.
“형님! 이거 좀 보세요!”
꽤나 호들갑스런 목소리에 걸음을 빨리 해서 가보니 아는 장소였다.
“여기서 누가 싸웠나봐요.”
헌터 다섯이 순식간에 터져 죽어버린 현장이었다. 몬스터들이 처리했는지 사람 시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옷가지와 장비들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서유리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 헌터들이네요. 누굴가요? 흔적을 보니까 거미들한테 당한 것 같은데··· 안타깝네요. 버스기사 없이 들어왔었나봐요.”
마치 처음 봤다는 뻔뻔한 표정과 말투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저기 나무 위에서 몰래 봤다고 실토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일단 고병수의 말에 뼈를 숨겨서 대답했다.
“그런데 몬스터의 흔적은 없네. 탄피가 이렇게 많은데.”
이 정도면 약간 놀랄 법도 했건만 서유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아마 밤이었을 거예요. 소리는 들리는데 몬스터는 안보이니까 무작정 갈겼겠죠. 저기! 수류탄 자국도 있네요.”
그에게는 변명처럼 들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서유리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니까 사건을 재구성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강현은 서유리의 연기력에 혀를 내두르며 삼순이를 불렀다.
- 삼순아, 확인해봤어?
- 네, 서대철도 박수진도 긴장한 낌새는 없어요. 고병수도요.
- 그렇군. 서유리는 어때?
- 훗, 아까 주인님께서 말했을때 잠깐 박동이 빨라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네요.
- 대단한 여자야.
내심 감탄하고 있자 서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혹시 대인 전투는 해보셨나요? 각성자가 꼭 몬스터만 잡는 건 아니랍니다? 던전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거든요. 정산 문제로 파티 멤버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다른 파티와 사냥터를 놓고 다투기도 한답니다? ······”
이어지는 주제에 그는 속으로 두 손을 들었다.
대인전투.
그녀는 지금 밑밥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르는 조직원의 등장에 파티원들이 놀라지 않도록.
듣고 있던 삼순이가 말했다.
- 자기가 뭐라고 대인전투를 말하는거죠? 겨우 두 대 엊어 맞고 뒤질뻔한 주제에?
- 삼순아, 진정해.
아무래도 서유리는 삼순이에게 단단히 찍힌 것 같았다.
*****
20층은 돈이 된다.
바다에도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에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듯 헌터들의 최상층과 각성자들이 만나는 20층은 돈이 넘치는 곳이다.
헌터들이 인생 역전을 위해 많은 피를 흘리는 곳이고, 또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버스기사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곳.
그럼에도 헌터 사망률 5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악명에 가려져 20층에 돈이 모인다는 사실은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다.
자고로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미친놈이 꼬이는 법.
한동안 정체되었던 20층에 새로운 지각 변동이 시작되었니 그 진원지는 바로 요즘 떠오른다는 뚝배기 길드였다.
뚝배기 길드 대구 지부.
지부 건물 중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구석에 위치한 사무실. 드나드는 사람도 별로 없어 언제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사무실에 문이 열렸다.
“형님! 찾았답니다.”
머리를 자주색으로 물들인 20대 초반의 남자가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며 외치듯 말했다. 그러자 소파에 누워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남자 하나가 스르륵 상체를 일으켰다.
“뭐를?”
“그 여자요. 그 날아다니는 여자 있지 않습니까? 도망간 여자요.”
“그래—, 잘 감시하고 이따가 보고해라.”
귀찮다는 듯 말한 남자는 필름이 거꾸로 돌아가듯 소파에 스르륵 누워버렸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작업하다 놓친 여자를 대구던전 입구에서 찾았다는 연락이 왔고, 게이트 안내자에게 뇌물을 먹이고 쫓아갔더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만 실컷 구경하고 돌아왔었다.
그때의 기억이 났던지 형님이라고 불린 남자는 담배를 한껏 빨아들였다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다소 맥빠지는 반응에도 자주색 머리를 한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침을 튀기며 말했다.
“형님, 이번엔 다르다니까요?”
“뭐가?”
“파티하고 같이 있답니다.”
“뭐?”
남자의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그동안 여자를 잡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혼자서 신출귀몰하게 20층을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파티로 들어간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도전장이나 다름없었다.
재떨이에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끈 남자는 자주색 머리의 남자에게 명령했다.
“욱진이 데려오고, 거 뭐냐 몬튜브 찍는 애기들도 몇 데려와라. 얼른! 이번에 잡으면 곱게 안 죽일 거니까.”
“네! 형님.”
자주색 머리의 남자가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나갔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남자는 소파에서 일어나 사무실에 있는 케비넷을 열고 전투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뚝배기 길드가 전국 각지의 던전에 지부를 설립하고 가장 먼저 손을 댄 사업이 바로 20층 버스기사 사업이다.
지금까지는 대형 길드는 버스기사 사업에 손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버스기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드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들어가지 못한 각성자들이 생계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천한 일이라는 인식이 각성자들 사이에 암암리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태생부터 남다른 뚝배기 길드는 달랐다. 다른 대형 길드와는 다르게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세간의 시선을 끌었고 이제는 무주공산인 20층을 노리고 있었다. 다른 유명 길드는 꿈도 못 꿀 생각이었다.
철컥—.
팡! 팡!
장비를 착용하고 두 맨주먹을 서로 박력있게 부딪친 남자는 그 여자와 파티원들을 잡으면 어떻게 가지고 놀 것인가를 생각했다.
오랜 경험으로 짧은 시간에도 수 십 가지 이상의 즐거운 ‘놀이’들이 떠오르자 남자의 입술이 귓가에 걸리며 흡연으로 누렇게 된 이빨이 드러났다.
“크흐흐흐흐···”
잠시후,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형님, 부르셨습니까.”
“오면서 들었지? 바로 출발할 거니까 장비 챙겨라.”
*****
짝—!
“······ 자, 그러면 한번 연습해 볼까요?”
대인전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던 서유리가 박수를 치며 말 끝을 올렸다.
그러자 흥미롭게 지켜보던 서대철이 나섰다.
“그거 좋지. 대인전이야 말로 각성자들의 필수 교양 과목 아니겠나. 거기 고병수랬나? 이리 와보게.”
지목당한 고병수가 엉거주춤하자 서유리가 최강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최강현씨도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어요? 처음이라 무서우시면 어쩔 수 없고요.”
속 보이는 도발이었지만 강현은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각성자들과의 대련이라니 돈 주고도 얻기 힘든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발 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죠. 그런데 지금은 제 능력을 쓰기 힘든데요.”
“테이밍이랬죠? 근처에 몬스터가 없어서 아쉽네요. 많은 건 바라지 않으니까 그냥 고병수씨 옆에 붙어있기만 하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그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강현과 고병수가 나란히 서고 맞은편에는 서대철이 자리를 잡았다.
서대철이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들었다. 검신의 길이만 1미터 20을 넘고 폭은 20센치나 됐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검을 들어 땅에 찍은 서대철은 재미난 놀이기구를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을 지으며 강현과 고병수를 재촉했다.
이에 그는 무기시장에서 급하게 마련한 검을 잡았고 고병수는 채찍을 풀었다.
준비는 끝났다.
서유리는 자기가 심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간에 서서 손을 높이 들고 말했다.
“연습이니까 서로 다치지 않게 조심하게요. 아시겠죠?”
“허허, 그렇다마다.”
“예, 알겠습니다.”
“네.”
서대철, 고병수, 최강현이 차례대로 대답하자 서유리는 손을 내렸다.
시작! 이라고 서유리가 외치는 순간.
“흐이얍—!!”
서대철의 거구가 쇄도했고 땅에 박혀있던 대검은 어느 순간 그의 두툼한 손에 들려 있었다.
“어어!!”
고병수는 채찍을 휘두르지도 못했고.
“연습인데!!”
외마디 외침과 함께 강현은 검을 앞에 곧추세우고 뒤로 물러났다.
서대철의 돌진은 빠르고 패도적이고 강맹했다.
10미터였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서대철이 휘두른 대검이 거센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고병수를 덮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났다.
연습인 걸 알면서도 야수처럼 덮쳐오던 서대철의 기세에 그는 고병수가 두 동강이 되는 끔찍한 장면을 상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검의 옆면에 맞은 고병수가 억 소리를 내면서 두 발자국을 밀려나는 것이 전부였다.
고병수를 밀친 서대철은 어느덧 다섯 발자국은 떨어져 있는 최강현을 보며 말했다.
“재빠른 친구구만. 쉽게 죽지는 않겠어. 허허헛!”
그리고 고병수를 보고도 말했다.
“그정도로 다치진 않았겠지? 실전은 이보다 더 심하다네. 누가 시작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니까 말이야.”
고병수는 황망한 듯 말했다.
“너무 빨랐습니다. 게다가 대인전은 처음이라··· 방패라도 들어야 할까요? 채찍으론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모범생 다운 말이었다. 마치 선생님께 풀지 못한 문제를 질문하는 학생 같지 않은가?
서대철이 흐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대답했다.
“글러먹었어!”
“네?”
“방패는 무슨! 공격을 해야지 방어를 왜 생각해!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도 몰라? 남자가 공격할 생각부터 해야지! 에잉! 쯧쯧.”
버럭 역정을 낸 서대철은 고병수와 최강현을 번갈아 보더니 대검을 들고 공격하기 전의 자리도 돌아가 버렸다.
서유리가 나섰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맞는 말이긴 해요. 병수씨는 채찍이니까 방어보단 공격 우선이거든요. 채찍으로 먼저 공격하고 그게 안 먹히면 위협하면서 물러서야해요.”
최강현이 비록 서유리를 고깝지 않게 봤지만 이 말 만큼은 고병수에게 필요한 조언이었다. 그래서 그도 거들었다.
“병수야, 그 말이 맞아. 아까 먼저 채찍을 휘두르면서 능력을 썼다면 대철 형님도 쉽게 접근하지 못했을꺼야.”
“정말이요?”
그의 격려 섞인 말에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병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최강현이 서유리의 말을 거들자 그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시 해볼까요? 어때요?”
강현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뜬금없이 벌어진 이 대련이 그녀의 큰 그림이든 아니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승락하자 고병수도 동의했고 맞은편의 서대철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미 대검을 잡고 있었다.
다시 그녀가 중간에서 손을 들어올렸다.
그때, 삼순이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주인님! 각성자요! 그때 그놈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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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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