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10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6.18 08:01
조회
70
추천
2
글자
13쪽

그믐_그믐밤의 모임

DUMMY

숨돌릴 틈 없이 하루가 지나가다니!

그믐 외출에서 벌써 이틀이 지났다. 가온에게 붙잡혀있다가는 수명환이고 뭐고 정신을 차리기도 어렵겠어.


’그나저나 바나는 뭘 하고 있나?‘

빌라 옥상에 오르자 바나에 대한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옥상 구석에 장난감 성 같은 작은 집이 있었다.

삽살이와 참새의 집이었다. 푹신한 깔개와 아늑한 내부가 아이 방을 작게 만든 것 같았다.


바나는 나를 보고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았나 보다. 화들짝 놀라서 내게 달려왔다.

“왈, 나한테 주인님이 있었어라. 참, 참.”


“기운이 넘치는구나? 여기 계속 있었어?”

“왕왕, 돌아다녔어라. 정보를 수집하는 거여라.”

“구경이 아니고?”


바나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빨을 드러내고 씨익 웃었다.

“주인님 모시려면 인간세를 알아야지라. 왈왈.”

“그래, 그 말 믿어줄게.”


옥상 가운데 테이블을 펼치던 가온이 손을 멈추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바나를 불렀다.

“바나? 그러다 네 주인한테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왕, 천사님이 계시니 걱정 없어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나는 내 옆에 딱 붙어 섰다.

“지금부터는 제가 지켜드릴 거라. 왈.”


그러나 삽살이가 부르자 곧 말이 바뀌었다.


“왕왕, 지금은 아니어라.”

바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삽살이와 참새가 기다리는 집으로 뛰어갔다.


갑자기 뜀박질을 멈추고 흘끗 돌아보았다. 내가 계속 지켜보자 비틀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인간세를 조사하느라 녹초가 되었어라. 왈, 쉬어야지라.”


가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다, 알았어. 준비 끝나면 갖다줄게. 푹 쉬어.”

“왕왕, 역시 천사님이어라!”


바나가 삽살이에게로 돌아가자 나도 가온을 도와 접시를 날랐다.


그믐의 손님은 보통 해시에 방문하는데, 오늘은 손님이 없으므로 저녁 식사로 대신한다고 했다.


테이블 위에 접시와 젓가락이 여섯 세트 놓였다. 차원의 문지기가 몇 명이기에?

“여섯? 차원의 문지기가 다섯 명이야?”


“문지기는 네 명이야. 오늘은 너랑 또 다른 손님이 있어. 아까 말한 용병. 널 데려다준 사람.”

“지새늬?”

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계에 대해 더 듣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오다니. 완전 행운인걸.

“다른 문지기는 어떤 존재야?”


“은서님은 정령의 후예. 아버지가 나무 정령이야. 삼십 년쯤 전에 태어났을 거야. 지금은 괴기 소설을 써. 만화방에서 알바하고.”

은서도 특이한 사람이구나. 하긴, 평범한 사람은 차원의 문에 머물 수 없지.


“바우는 해밀의 차원에서 온 문지기야. 그룹 갤럭시에서 드럼을 쳐. 갤럭시의 연주는 꼭 들어봐.”

“그렇게 잘해?”


“잘하는 정도가 아니야. 갤럭시 멤버가 모두 해밀의 차원에서 넘어온 여행자들이야. 거기서 넘어온 음악은 근원을 건드려. 과거를 다시 보게 하고 가까운 미래를 느끼게 해줘.”


가온은 무언가를 생각하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도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천사장이 봉인한 기억을 찾았어.”

“그 정도야?”

갤럭시의 연주를 꼭 듣고 싶었다.


이번 그믐에 들으면 좋겠는데.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영영 못 올지도 모르고.


“그 정도라면 위험하지 않아? 차원의 문지기는 사람들 모르게 지내야 하잖아?”

“걱정 마. 사람의 귀로는 못 들어. 사람은 들을 수 있는 소리만 들으니까. 그들에게는 갤럭시의 연주도 평범하게 들려.”


그렇구나. 그래서 하륜도, 가온도, 차원의 문도 들키지 않는구나.


“재미있는 사람들이네. 여기서 함께 살면 즐겁겠다.”

“응. 차원의 문지기도 좋은 자리야.”

가온은 가져온 음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주먹밥, 김밥, 샌드위치, 떡과 과일이 가득했다. 차와 음료, 과자도 여러 가지였다. 모두 하륜 선위가 만들었으니 맛은 보장할 수 있겠다.


그믐 외출에서 이렇게 푸짐한 대접을 받은 적 없는데, 이번에는 진짜 휴가 같았다.


“천계보다 훨씬 흥미로워. 천계는 그날이 그날이라 똑같지만, 인간세는 하루하루 빠르게 달라져.”

“담아도 그러더라. 사람들은 수명이 짧아서 더 뜨겁게 산다고.”


가온은 옥상에 결계를 치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널 위해 장식할게.”


가온이 손을 들어 허공을 저으니 결계 안의 공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잠시 후 결계 안은 마음숲이 되었다.


우리는 아날빛숨 지붕 위에 앉아있었다.


발아래 혼알방과 위즐증가가 있고, 멀리 그림터와 혜존각도 보였다. 광장과 장터, 놀뫼마당도 내려다보였다. 까마득히 새놀산과 달해산까지 보이다니!


가온은 자기 짝을 데려오겠다며 내려가고, 나는 혼자 앉아 혼알방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사는 곳인데 여기서 보니 그립고 애틋했다.


멀리 바래강과 반다강이 흘러가 배웅문 가까이에서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보였다. 강물은 그렇게 시작한 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창 생각에 잠겨있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귀와 사념체로는 역부족이야. 피천귀가 얼마나 강한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부릴 수도 없어.”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독특했다.


바닷속 동굴을 울리고 물결을 타고 나오는 소리 같았다.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해밀의 차원에서 넘어온 문지기임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이귀와 사념체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심지아 뿐이라고. 아, 지새늬라고 해야지.”

젊은 여인의 말을 듣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새늬가 온 것이다.


지새늬도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천계의 여행자님!”


옥상으로 올라온 세 사람은 구태여 소개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은서는 나무 정령의 후예답게 싱그러운 숲의 향기가 풍겼다.

짧은 머리카락을 억지로 올려 묶어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작고 통통한 몸집에 둥근 얼굴이라 이제 갓 스물이라 해도 믿을 만했다.


동글동글한 얼굴, 커다란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겼다. 볼살이 도톰하고 입술도 도톰해 귀여운 다람쥐 같았다.


바우는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이었다.

머리카락부터 몹시 신비로웠다. 바다색인데, 연한 파랑에서 검푸른 빛까지 섞여 있었다. 허리를 넘는 긴 머리카락을 목덜미 근처에서 대충 묶어 색깔이 그대로 드러났다.


낯빛은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돌았다.

그를 보니 상산대감 백하가 떠올랐다. 외모는 다르지만 어딘지 분위기가 비슷했다.


지새늬가 뛰어와 내 손을 잡았다.

“사빈님! 가온님과 친구라고요? 천사인 줄 몰랐어요.”


“천사는 아니고요. 마음숲을 맡은 마고에요.”

“마고라고요?”

지새늬는 놀라며 내 손을 더 꽉 쥐었다.


“어머, 마고가 진짜 있어요?”

지새늬는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가 처음 출연한 연극이 마고 이야기였어요. 마고의 게스트하우스라고 혼이 머무는 곳 이야기였거든요. 우와, 그게 정말 있군요?”


은서가 붙잡아 앉힐 때까지 지새늬는 내 이마에서 발까지 훑으며 신기해했다.


“내가 말했잖아. 사람이 상상하는 것이 진짜 상상일 수도 있지만, 있는 것을 느낀다고. 그래서 진짜 상상 중에서 아주 특별한 것만 상상계에 생긴다고.”


은서가 말을 마치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전 은서예요. 소설을 쓰고, 만화방에서 알바도 해요. 마고님, 환영해요.”


“바우입니다.”

은서와 바우, 지새늬와 내가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온과 하륜이 올라왔다.


식사하는 동안 차원의 문지기들은 그동안 인간세에서 보고 들은 일을 나누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가온과 하륜의 기운은 평화롭고 아늑했다. 가온이 애타게 찾던 빛의 사람과 함께 있어서일까.


하륜 선위도 그녀를 오래도록 찾아다녔다니 그들의 기운은 중앙성천 다움성만큼이나 따뜻했다.


은서와 바우도 비슷했다. 둘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기운에 내 마음도 녹아내렸다. 인간세에 지친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다들 즐거워 보여.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대화는 주변의 사소한 이야기에서 피천귀로 넘어갔다. 지새늬가 그동안 상대한 피천귀에 대해 설명했다.


지새늬의 몸을 이어받은 심지아가 상상계에서 꽤나 유능한 주술사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주술이 가능하구나.’


어둠 속에서 혼자 피천귀를 상대하던 주문과 술법이 생각났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귀와 사념체를 동료로 다루는 것도 그녀가 차원의 문지기가 아니라 상상계에서 넘어온 덕분이었다.


듣다 보니 지새늬에 대해서도 대충 알게 되었다.


술법을 증폭시켰던 지팡이는 가온이 만든 것이다.

피천귀를 사로잡던 유리공은 해밀의 차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른 차원의 것이니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지.


‘상상계에서 주술사였다고 해도···. 실증계에서도 그 능력을 쓸 수 있다니!’

너무나 신기해서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은서가 나를 보더니 팔을 툭툭 두드렸다.

“사빈님도 지새늬 팬클럽 하세요. 공식 팬클럽도 있어요. 새늬하늬라고.”


가온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그 아이 여전히 열혈팬이야?”

“그럼요. 꼬마 신사 말이죠? 닉네임이 후니후니예요. 저도 알 정도라니까요.”

지새늬 팬클럽에 은서가 더 열심이었다.


은서가 눈을 반짝였다.

“초등학생인데요, 정성이 대단해요. 매일 게시판에 인사 달고, 새늬가 글 올리면 댓글도 꼬박꼬박 달고, 하트도 꼭 올리고.”


“내년에는 중학생이니까 그때는 달라질 거예요.”

지새늬가 손을 휘저었다.


“그럴 것 같지 않던데···? 아, 사빈님도 이귀를 부리나요?”

“아뇨. 지박령 영감들이 도와줘요. 이귀를 보면 천사를 불러야죠.”

그래서인지 이귀들은 마고를 피해 다닌다.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을 때는 거꾸로 찾아오지만.


“오!”

은서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는 영감이 있다는 건 느끼는데 보지는 못해요. 부를 수도 없고요. 저한테는 너무 큰 존재라. 그래도 몇몇 동물들하고는 얘기해요. 제 말을 알아듣는 동물이 있거든요.”


그사이 가온이 내게 샐러드를 덜어주었다. 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듯 내 손을 툭 쳤다.

“사빈아, 다음에는 바우의 콘서트에 맞춰서 와.”

“콘서트? 언제 하는데?”


바우에 대해 얘기하는데, 은서의 눈빛이 반짝였다.


“정식 콘서트는 일 년에 한두 번이니 시간 맞추기 어려울 테고···. 병원에서 하는 미니 콘서트가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이니까 그건 가능하시죠?”

그녀는 자기 일처럼 신나서 설명했다.


“인기가 아주 좋아요.”

“해밀의 차원에서 온 음악이라니 꼭 듣고 싶어요.”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어. 나는 기대에 부풀어 대답했다.


“병원에는 피천귀가 많아.”

조용히 식사만 하던 바우가 입을 열었다.

“환자나 가족이 피천귀를 만들기도 하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괜찮다면.”


“당연히 괜찮죠. 저 마고잖아요? 마음숲에서 이천 년이나 묵었어요.”

다들 큰 소리로 웃었지만, 선위 하륜만은 웃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사그라들자 하륜이 낮은 소리로 나를 불렀다.

“사빈님.”


그의 부름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하륜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이제 하고 싶은 말 하세요.”


내가 계속 망설이는 것을 알아차렸나 보다. 그의 눈빛은 어딘지 예사달 할머니와 닮았다.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한다는 눈빛.


비록 그믐의 손님은 아니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나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은···, 부탁할 것이 있어요.”


“부탁? 마고 사빈이 우리에게?”

가온이 눈썹을 찡그리며 장난스레 물었다.


“어리화가 피었어.”

“어리화?”

가온은 젓가락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벌써? 왜, 왜? 아직 이천 년밖에 안 되었는데?”

가온은 허! 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뭐라든 어리화는 이미 피었고, 혼자서는 인간세에서 다음 마고를 찾기 어려웠다.

아홉 번의 그믐에서 세 번째 그믐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날빛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0 그믐_배낭 메고 새벽 산책 23.06.21 69 2 10쪽
59 그믐_짱짱 만화방 23.06.20 69 2 14쪽
58 그믐_하륜 선위의 충고 23.06.20 68 2 12쪽
57 그믐_달숲의 작은 천사 23.06.19 69 2 11쪽
» 그믐_그믐밤의 모임 23.06.18 71 2 13쪽
55 그믐_가온의 손님이 되다 23.06.17 73 2 14쪽
54 그믐_파라다이스 빌라 23.06.16 80 2 11쪽
53 그믐_피천귀 사냥 23.06.15 83 2 13쪽
52 천계_다훤 아저씨 23.06.14 82 2 12쪽
51 천계_차미의 의심 23.06.13 87 2 13쪽
50 천계_예사달의 조언 23.06.12 88 2 13쪽
49 천계_귀물씨앗이 들어오다 23.06.11 88 2 12쪽
48 천계_또 다른 비밀 23.06.11 90 2 11쪽
47 천계_숨은 혼을 찾아서 23.06.10 90 2 11쪽
46 천계_새로운 동료 바나 23.06.09 92 2 13쪽
45 천계_한요재의 초대 23.06.08 91 2 12쪽
44 천계_마음숲 키움차사들 23.06.08 91 2 12쪽
43 천계_공방의 고민거리 23.06.07 91 2 11쪽
42 천계_돋움다로차 23.06.06 98 2 12쪽
41 천계_다른 곳 같은 뜻 23.06.06 97 2 13쪽
40 그믐_라온향낭 23.06.05 97 2 12쪽
39 그믐_반계의 다른 모습 23.06.05 96 2 12쪽
38 그믐_버림받은 영혼 23.06.04 97 2 12쪽
37 그믐_불천수 대나무숲 23.06.03 97 2 13쪽
36 그믐_현재의 겹 23.06.03 99 2 12쪽
35 그믐_그림의 주인 23.06.02 98 2 10쪽
34 그믐_동굴 속의 그림 23.06.02 99 2 12쪽
33 천계_얄리장터의 등불 23.06.01 101 2 13쪽
32 천계_알 수 없는 일들 23.06.01 101 2 12쪽
31 천계_대부와 대자 23.05.31 100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