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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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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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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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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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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_마음숲 키움차사들

DUMMY

향긋한 나무 냄새 덕에 소소공방에는 숲의 기운이 가득 했다.

목예는 가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응접실 문을 닫았다.


마음숲의 키움차사는 네 명으로, 공방에서는 그들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모두 사빈이 마고가 되기 훨씬 전부터 수련생들을 가르쳤다.


요선이 왔음을 증명하듯 탁자에는 요리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주로 과자와 떡, 음료 같은 간식이었다.


그사이 대화가 무르익었음을 알려주듯 접시마다 반쯤 비어있었다.


목예는 사빈을 자리에 앉히고 그 옆에 자리 잡았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다른 선생들을 돌아보았다.


“사빈아, 우리에게 할 말 없니?”

그녀는 동생을 어르듯 말을 굴렸다.


사빈은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 목예를 바라보았다.

‘물건이 안 팔린 것 때문인가? 아니면, 이번 그믐에 어디 갔었는지, 그 얘기인가?’


사빈이 대답을 못 하자 목예는 허리를 세우고 두 손을 모았다.

“마음숲의 기운이 흔들리는 거, 나만 느끼나?”


“저 봐, 또 그런다, 또. 내가 말했잖아. 너무 예민하다고. 위화님이랑 똑같애.”

지나실이 손수건으로 살포시 자신의 손을 문질렀다.


옷과 장신구를 다루는 보듬공방의 선생답게 그의 철릭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소매 끝과 바짓단에 수놓은 문양도 아주 정교했다.


그가 무슨 얘기를 더 하려고 하자 석보가 눈짓했다. 치켜 올라간 눈썹과 큰 눈 때문에 가벼운 눈짓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나실은 그를 보며 새초롬하게 입을 다물었다.


소소공방의 응접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바깥의 소리가 멈추더니 선생들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빈아, 혹시 어리화가 나왔니?”

목예의 물음에 다른 선생들이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무슨! 벌써? 사빈이 마고가 된지 얼마나 지났다고?”

요선이 어깨를 들썩이자 석보가 그녀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어제 느꼈던 공기의 떨림이 그럼?”

석보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웅웅 응접실을 울렸다.

오랫동안 검새공방에서 돌과 쇠를 다루어서인지 동굴 속을 울리는 소리 같았다.


“오호? 그래, 그거였네.”

지나실도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였다.


“염색이 잘 안 되더라니까. 물과 바람이 아주 중요하거든. 눈에는 안 보여도 어딘지 이상했다고.”

지나실이 고개를 들고 사빈을 바라보았다.


사빈은 네 명의 선생들에 둘러싸여 탁자 위 접시만 바라보았다.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더는 못 숨기겠어.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사빈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리화가 피었고···, 그믐이 두 번 지났어요.”


“헉!”

“저런!”

선생들은 저마다 외마디 소리를 쏟아냈다.


“벌써 두 번이나 지났다고?”

요선이 큰 몸집을 흔들며 사빈을 향해 비스듬히 자세를 바꾸었다.

“다음 마고는? 아직 못 찾았어?”


“못 찾았으니까 사빈이 여기 있지. 찾았으면 벌써 다른 마고가 와있겠지.”

목예가 자신의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건 그러네. 마고가 바뀔 때라 마음숲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거구나?”

“어머, 사빈아, 왜 여태 말 안 했어? 그런 중대한 문제를.”

지나실이 입을 씰룩거렸다.


“바로 찾을 줄 알았어요. 미리 걱정하는 것보다는··· 데려와서 인사하려고 했는데···.”

사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고가 바뀔 때면 마음숲의 대기가 불안해진다. 사람의 혼은 작은 일에도 두려움을 느끼니 미리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다.


혼들이 불안해하면 그 기운 때문에 마음숲은 더 흔들리고, 대기가 심하게 요동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어디가 어떻게 흔들릴지 모르니 무엇을 준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단서는 찾았느냐?”

석보가 탁자 위의 과자를 사빈에게 건넸다.


과자를 먹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사빈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

“인간세에 있다는 것은 알아냈어요. 실증계에 있을 테니 다음 그믐에 가보려고요.”


“그렇게 찾아다니기엔 인간세가 너무 넓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없지 않으냐?”

석보가 질문하자 지나실이 그의 앞을 손으로 막았다.


“석보! 사빈도 얼마나 답답하겠어? 안 그래?”

“내 말이 그 걸세. 방법을 고민하자는 거지.”


“아효, 여기서 우리가 고민한다고 나타날 마고도 아니고.”

석보와 지나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요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란이 떠나기 전에 어땠는지 기억하시오들?”

“사빈한테 마고를 물려준 그 아란 말이지?”


목예가 옛일을 기억해내려 눈을 위로 떴다. 과거의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가만히 허공의 한 곳을 쳐다보았다.


“첫 번째 그믐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 두 번째 그믐이 가까워지자 혼들이 혼알방을 못 찾아 길을 잃고 헤맸지. 두 번째 만에 찾아서 정말 다행이었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예전에는 훨씬 심각했다고.”

요선이 진저리치며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몸짓을 따라 의자가 덩달아 요동쳤다.


“뭐야? 그렇게 따지면 아직 괜찮은 거네. 큰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지나실이 손수건을 흔들었다.


석보도 턱을 끄덕였다.

“그믐이 두 번이나 지난 것 치고는 조용하군.”


요선은 접시 위의 다식을 선생들에게 나누고 사빈에게도 하나 건넸다.


“일단 먹으면서 생각해. 배가 든든해야 머리도 돌아가지.”

그녀는 온종일 굶은 사람처럼 맛있게 과자를 씹기 시작했다.


“이거 보라고. 이번 장날에 제일 많이 팔린 거야.”

요선이 맛을 자랑하자 다른 선생들도 한입 베어 물고는 맛을 감상했다.


“좋네. 과연 고샅공방일세.”

석보가 칭찬하자 요선은 어깨를 들썩이며 무지개떡 접시를 내밀었다.


갑자기 두런거리는 선생들과 달리 사빈은 숨이 턱 막혔다.

‘조금 전까지 어리화를 걱정하시더니?’


머릿속이 어지럽고 가슴은 답답했다. 두 손을 맞잡고 손가락 끝을 눌렀다.

‘내가 찾은 단서는 미미하고, 아득한데. 찾으러 다닐 수도 없고···.’


공방의 선생들은 소풍 나온 아이처럼 순식간에 과자와 떡으로 빠져들었다.


사빈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어리화 말고도 걱정할 일이 더 있었다.

“위즐증가에서 왔었어요. 이번 장날에 물건이 안 팔려서 식재료를 못 구했다는데···.”


사빈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목예가 빙긋이 웃었다.

“정인은 이런 일이 처음이지?”


“웅, 그렇지. 이백 년밖에 안 되었으니.”

요선이 손가락으로 시간을 셈해 보았다.


“공방의 작품이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란다. 수련혼의 실력이 빠르게 좋아지니 저절로 해결될 거야. 그때까지··· 위즐증가에서 좀 번거롭겠구나.”


“고샅은 걱정하지 마. 상생농장에서 나오는 것들로 바꾸면 되니까.”

요선이 싱글거렸다.


지나실이 손수건으로 입술을 닦았다.

“보듬공방에는 고운실이 남았단다. 자수며 바느질이며 아주 잘해. 다른 혼도 열심히 배우고 있고.”


석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쩌겠나. 그러려니 해야지.”


“우리 고샅에도 다예가 있기는 한데, 이 아이는 어째 만드는 것보다 먹는 게 더 많아. 그래도 솜씨는 좋아.”

요선은 찻주전자를 들고 흔들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주전자에는 따뜻한 물이 차올랐다.


“다담님이 정인과 소린을 보냈다던데요? 사정이 안 좋으니 그런 거 아닐까요?”

사빈이 걱정스레 묻자 목예가 까르르 소리를 냈다.


“그야 도우미들을 훈련해야 하니까. 마냥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잖니?”


사빈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아, 그런 거였군요.”


“일단 알았으니 됐다.”

목예가 사빈의 손을 잡았다.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만약을 대비해 마음숲을 지켜야 하니까.”


“마고를 못 찾으면 그믐이 지날 때마다 더 심해지겠죠?”

사빈이 묻자 지나실이 코웃음을 쳤다.


“어머, 당연하지. 지난번에는 바닥이 흔들렸잖아? 아란이 오기 전에 누구더라···.”

“나뢰? 아니, 하늬?”

석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내려 애썼다.


“혼알방이 뒤섞이고, 상생농장이 흙더미에 묻혔지만, 그래도 여섯 번째 그믐 안에 찾았어. 허허, 다음 마고가 오니까 알아서 자리를 찾아가더군.”


요선은 찻잔을 높이 들었다.

“걱정 마라, 마음숲은 무너지지 않아. 우리를 믿어. 그 사이 마고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나면 별거 아냐.”


“인간세 어디에 있는지···. 빨리 찾아야 할 텐데요.”

사빈은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려고 차를 한 모금 삼켰다.


“마음숲이 뒤집혀도 무너진 적은 없어. 새하가 사라졌을 때도 살아남았잖니?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목예가 사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살짝 두드렸다.


요선이 사빈의 손에 약과를 집어주었다.

“일단 먹고 힘내라. 공방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마.”


“넌 다음 마고를 찾는 일에 전념하거라. 마음숲에는 우리도 있고, 상산대도 있으니까.”

석보도 찻잔을 들어 올렸다.


지나실이 사빈의 찻잔에도 차를 채워주었다.

“그래도 도우미들에게는 알리지 말아. 알지? 그 애들도 혼이니까. 혼들이 동요하면 큰일이야. 다음 마고 정도는 금방 찾아낼 테니.”


“그러니까! 사빈이 낙원으로 들어갈 때 환송회를 어떻게 할지 그거나 고민하자고.”

요선은 잔치를 준비한다는 생각에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빈이 낙원으로 간대?”

“낙원 아닐까?”

“앞으로는 낙원에서 사빈을 볼 수 있겠네?”


사빈은 울컥 솟는 눈물을 삼켰다. 선생들을 보니 꾹꾹 눌러 온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굳었던 마음이 녹아내리자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사빈은 약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혀를 맴돌며 목으로 넘어가는 찰나, 공방 문밖에서 누군가 사빈을 불렀다.


“사빈님! 사빈님! 여기 계시오?”


“저 목소리는 부루 아닌가?”

석보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밖에서 부루는 다시 사빈을 불렀다.

“대감이 오라는디. 급한가벼.”


“예. 지금 나가요.”

사빈은 서둘러 남은 약과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목예가 웃으며 사빈에게 차를 건넸다. 그러나 눈길은 요선을 향해있었다.

“그건가 보네. 그거.”


요선이 손뼉을 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대감이 드디어 결심?”


석보와 지나실은 두 선생을 번갈아 보며 눈짓했다.

“뭘 말인가?”


“대차사 중에도 있지 않아? 두모랑 얀다, 웅비랑 이수, 다림과 아투. 알겠어?”

“아, 그거···! 좋지. 좋은 일이네.”


석보는 어깨를 뒤로 펴면서 껄껄 웃었다. 지나실은 손수건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찾았다.


선생들의 표정이 밝아지니 사빈의 마음도 가벼웠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설레고 따뜻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들어올 때는 걱정이 한가득하였는데, 지금은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사빈이 나가자 지나실이 소곤거렸다.

“사빈은 모르나 보지?”


“쉿! 구경이나 하자고.”

선생들의 웃음소리가 응접실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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