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13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6.10 11:56
조회
90
추천
2
글자
11쪽

천계_숨은 혼을 찾아서

DUMMY

운와는 달라진 맞이방을 보고 멈칫거렸다. 그러나 다소곳이 앉아있는 사빈을 보자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그는 탁자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날듯이 다가왔다.

“오, 모심장터의!”

겨우내떡을 들어 맛을 보고는 으흠 소리를 냈다. 그의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지나갔다.


맛있게 간식을 먹는 표정과는 달리 그가 한 말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두타가 사라졌습니다.”


“예?”

사빈은 입안에 머금은 정과수를 뿜을 뻔 하다가 간신히 삼켰다.


이전에도 가끔 혼이 사라지곤 했다. 공명력이 약한 혼은 자주 길을 잃었다,


혼알방은 주인 혼과 공명하기에 혼이 극도로 불안하거나 공명이 끊어지면 파장이 달라진다.

주인을 찾느라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데 상산대원들은 이 신호를 바로 알아차렸다.


문제는 불안정한 파장이 계속되면 다른 혼알방이 덩달아 반응하는 것이다. 주위의 혼까지 불안해하니 빨리 찾아야 했다.


운와가 튀김을 삼키다 켁켁거리자 사빈이 재빨리 샛바람물을 따라주었다.

“두타가 사라졌다고요?”

“신호가 끊어졌어요.”


“아무리 멀리 가도 마음숲 안이겠지요.”

사빈이 일어서자 강아지 바나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쪼르르 문 앞으로 가더니 머리를 꼿꼿이 들고 멈춰 섰다.


“출동이어라?”

“그래. 우리도 찾아보자.”


차미가 빙검을 집어 들었다.

“그런 건 우리가 해야죠. 전 동쪽을 맡을 테니, 부루는 남쪽으로 가요.”


상산대원은 훈련과 실전에서만 검을 뽑지만, 빙검을 차기만 해도 혼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쓸데없는 말을 반으로 줄여주었다.


“뭐시여. 대원들이 벌써 찾고 있겄제.”

부루도 일어섰다.


상산대 삼인행에게는 정해진 구역이 있다. 차미는 동쪽, 부루는 남쪽, 운와는 서쪽의 상산대원들을 이끌었다.


“난 북쪽으로 가겠네.”

백하도 일어섰다.


“그럼, 전 나도마중에 가볼게요. 마중길 근처를 헤맬지도 몰라요.”

“모셔다드리겠소. 안내소도 북쪽이니.”

백하가 사빈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의 눈초리는 매서웠지만, 입꼬리는 살짝 떨렸다.


*


사빈은 백하와 나란히 혼알판 사이를 지나며 두타의 흔적이 남았는지 둘러보았다.


어디를 지나갔든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온기나 냄새만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남아있다.


강아지 바나는 코를 킁킁대며 사빈의 옆자리를 지켰다.

두타의 냄새를 모르니 아무리 킁킁대도 소용없건만, 혼 찌꺼기에 남은 흔적 때문이었다.


바나가 왕왕거리며 사빈을 불렀다.

“혼알방이 신호를 보낸다고라? 왕왕, 배웅문으로 떠나는 혼은 어쩌라?”


“배웅문을 통해 떠나면 공명이 마무리돼. 다른 혼을 맞기 위해 정화에 들어가.”

“그런 거여라. 와왕.”


아무리 혼이 쏟아져 들어와도 혼알방에는 남는 방이 있기 마련이다. 정화에 필요한 시간은 충분했다.


나도마중까지는 먼 거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나는 힘겹게 걸었다.

삼도천에서 만들어진 후로 처음 세상에 나왔으니 그 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빈은 휘청거리는 바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


안내소 나도마중은 마음숲의 가장 북쪽에 있었다.


영천옥에서 나온 혼들은 한긋장벽을 지나 두루천을 건넌다. 두루천에서 마중길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나도마중이었다.


모든 혼은 이곳에서 자신의 혼알방을 배정받는다. 마음숲의 길을 찾아가는 공명법도 배운다.


나도마중은 구불구불한 바위가 벽이 되고, 울창한 나무가 지붕을 이루니 혼알방의 분위기가 어떤지 한눈에 알려주었다.


마음숲의 모든 것을 무한정 이용하는 한 달 치 수명, 숨꼭지도 여기서 받는다.


거의 모든 숨꼭지는 곧바로 아날빛숨의 아롱재로 옮겨가지만, 혼의 공명력이 약하면 나도마중 근처에서 맴돌기도 한다.


안내소 도우미인 아리영은 그런 숨꼭지를 모아 사빈에게 건네는 일도 맡았다.


사빈이 나도마중 앞에 이르자 아리영이 반갑게 뛰어나왔다.

그녀는 작고 아담한 몸집이지만, 이백 년 가까이 안내소를 맡았으니 경험이 많았다. 생글거리는 눈빛과 활짝 웃는 입매가 상대를 기분 좋게 했다.


“마고님! 어쩐 일이세요?”

“누구를 찾으려고요.”

“또 길 잃은 혼이 생겼나요?”

아리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방긋 웃었다.


아리영은 소맷자락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마고님, 이거···.”


거친 광목으로 짠 주머니 속에서 숨꼭지들이 희미한 빛을 내뿜었다. 아롱재 천장으로 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숨꼭지였다.


“고마워. 혹시 여기 두타가 지나가지 않았어?”

“두타요?”

두타가 누구인지, 본 기억이 있는지 생각하느라 아리영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두타라면 지가 안당게요.”

나도마중 안에서 삼을라가 뛰어나왔다. 몸집은 커도 목소리는 새처럼 가늘었다.


호기롭게 뛰어나오던 삼을라는 백하를 보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대, 대감···.”


그의 얼굴에 환희가 넘쳤다. 입을 다물지 못해 금방이라도 침이 떨어질 것 같았다.


삼을라는 마음숲에 들어선 첫날부터 상산대에 푹 빠져들었다. 상산대원을 흉내 낸다고 복건에 깃털도 꽂고 다녔다.

그런 삼을라가 상산대감을 눈앞에 두었으니 흥분할 수밖에.


“삼을라, 두타를 어디서 봤어?”

사빈은 그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그제야 삼을라는 백하에게 박혀있던 눈길을 돌렸다.


“무서운 걸 봤다고 했거들랑요. 저어짝으로 뛰어 가든디, 수건도 떨어뜨리구.”

삼을라는 손을 들어 새놀산으로 이어진 길을 가리켰다.


“무서운 거? 뭘 봤대?”

“그건 말 안했시랑.”

삼을라는 안내소 창문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수건을 하나 꺼냈다.


모로매 온천에서 사용하는 수건이었다. 사빈 옆에 서 있던 바나가 코를 킁킁거렸다.


“왕왕, 주인님! 지가 할 거여라.”

바나는 삼을라를 보고 왈왈 짖어 댔다.

“왈, 그 수건 주셔라. 냄새를 쫓을 거라.”


바나가 왕왕거리자 삼을라는 수건을 들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허, 고거 맹랑한 녀석일세.”


“어머, 마고님. 강아지는 언제 구하셨어요? 너무 귀여워요.”

아리영도 바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바나는 도우미들의 손길에는 개의치 않고 수건에 코를 대고 문질렀다.


“앙앙, 알았어라. 따라오셔라.”

바나는 뒤뚱거리며 새놀산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모양만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진짜 강아지구나!”

사빈이 칭찬하자 바나는 머리를 반짝 들었다.


“앙, 주인님 지키려면 당연하지라. 인간세에 가면 한얼님 힘도 빌릴 수 있어라.”

바나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그래. 한얼이 준 강아지라면···.’

사빈은 수건을 들고 바나 뒤를 따라갔다.


*


백하가 떠난 뒤에도 삼을라는 나도마중 앞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몽롱한 눈빛으로 감탄만 쏟아냈다.

“흐미, 정말 멋지당게. 상산대두, 상산대감님···.”


“삼을라? 삼을라? 정신 차려.”

아리영이 몸집이 큰 삼을라를 잡아끄느라 낑낑거렸다


*


금방이라도 새놀산을 향해 뛰어들 듯 의기양양하던 바나는 뛰는지 헤엄치는지 네 발을 허우적거렸다.


바나를 바라보던 백하가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급하게 만들었군. 너는 한얼의 천력을 받았다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느냐?”


서늘한 백하의 눈초리에 바나가 목을 움츠렸다.

“왕, 여기는 인간세가 아니여라. 마음숲에서는 위험한 일 없다고 했어라.”


바나가 혀를 쑥 내밀고 헥헥거렸다. 뛰려고 하니 다리가 더 많이 흐느적거렸다.


“이게 아니어라. 왈, 주인님, 그냥 걸으셔라.”

휘청거리던 바나가 간절한 눈으로 사빈을 올려다보았다.


“한얼이 제법 천력이 높긴 하나···.”

백하는 팔짱을 끼고 바나를 내려다보았다.

“진짜와 같을 수는 없소.”


백하가 차갑게 바라보자 바나는 켁켁 기침을 해댔다.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사빈의 치마 뒤로 슬금슬금 돌아갔다.


사빈이 바나를 안으려고 허리를 숙이자 백하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기다리시오.”


사빈이 비켜서자 바나는 작은 몸을 진저리쳤다.


그런 바나를 보며 백하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빈님을 지켜준다니···. 그 능력은 내가 주마. 인간세에서도 도움이 될 거다.”


백하의 손가락 끝에 푸른빛이 서리며 눈 부신 빛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둥근 빛은 곧장 바나의 몸으로 날아 들어갔다.


바나의 몸이 빛에 감싸였다가 점차 스며들었다.

강아지의 기운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 억세고 곧은 힘이 느껴졌다.


“어라? 얼음대장이 착했어라? 헹.”

바나는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훌훌 털며 제자리에서 깡충거렸다.


듬성듬성하고 힘없던 털은 풍성하게 바뀌었다. 뽀얀 털이 보슬보슬 일어났다. 머리에 비해 작은 몸통도 제법 커졌고, 다리도 튼튼해졌다.


바나는 신이 나서 새놀산을 향해 날듯이 뛰어갔다.


“고맙습니다. 바나가 완전히 달라졌네요.”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여 도와준 거요. 인간세에서는 너무 강해도 위험하니 저 정도가 적당하오.”


“바나도 대감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사빈의 인사에 백하는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보시오. 사빈님에게는 내가 꼭 필요하지 않소?”

“당연하지요. 늘 고마운 분이시죠.”

사빈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대감도 어린아이 같을 때가 있네? 한얼도 그렇지만.’

그래서 둘이 만나면 으르렁대는 걸까. 반가움을 감추려고?


‘어쩜 그리 아이 같은지···.’

사빈은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바나는 거친 오르막도 단숨에 뛰어올랐다.

가볍게 뛰어가는 바나를 따라 새놀산 중턱에 다다랐다.


새놀산은 경관이 수려한 만큼 높고 험했다.

마음숲 북쪽을 양옆에서 지키는 새놀산과 달해산은 두 번째 대혼란 때 뒤집힌 그대로여서 산이 가파르고 굴곡이 심했다.


산 중턱에 서니 꿈틀대는 한긋장벽이 눈앞에 바짝 다가와 보였다.

한긋장벽은 두꺼운 구름으로 이루어진 장벽으로, 이곳의 구름은 다른 곳보다 더 촘촘하고 어두웠다.


바나가 코를 킁킁대며 사빈을 이끌었다. 이끼 낀 바위 앞에서 사빈을 돌아보았다.

“왈, 주인님, 여기어라.”


오래 묵은 나무와 바위가 뒤섞여 둥지처럼 움푹 팬 곳에 두타가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날빛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0 그믐_배낭 메고 새벽 산책 23.06.21 69 2 10쪽
59 그믐_짱짱 만화방 23.06.20 69 2 14쪽
58 그믐_하륜 선위의 충고 23.06.20 68 2 12쪽
57 그믐_달숲의 작은 천사 23.06.19 69 2 11쪽
56 그믐_그믐밤의 모임 23.06.18 71 2 13쪽
55 그믐_가온의 손님이 되다 23.06.17 73 2 14쪽
54 그믐_파라다이스 빌라 23.06.16 80 2 11쪽
53 그믐_피천귀 사냥 23.06.15 83 2 13쪽
52 천계_다훤 아저씨 23.06.14 82 2 12쪽
51 천계_차미의 의심 23.06.13 87 2 13쪽
50 천계_예사달의 조언 23.06.12 88 2 13쪽
49 천계_귀물씨앗이 들어오다 23.06.11 88 2 12쪽
48 천계_또 다른 비밀 23.06.11 90 2 11쪽
» 천계_숨은 혼을 찾아서 23.06.10 91 2 11쪽
46 천계_새로운 동료 바나 23.06.09 92 2 13쪽
45 천계_한요재의 초대 23.06.08 91 2 12쪽
44 천계_마음숲 키움차사들 23.06.08 91 2 12쪽
43 천계_공방의 고민거리 23.06.07 91 2 11쪽
42 천계_돋움다로차 23.06.06 98 2 12쪽
41 천계_다른 곳 같은 뜻 23.06.06 97 2 13쪽
40 그믐_라온향낭 23.06.05 97 2 12쪽
39 그믐_반계의 다른 모습 23.06.05 96 2 12쪽
38 그믐_버림받은 영혼 23.06.04 97 2 12쪽
37 그믐_불천수 대나무숲 23.06.03 97 2 13쪽
36 그믐_현재의 겹 23.06.03 99 2 12쪽
35 그믐_그림의 주인 23.06.02 98 2 10쪽
34 그믐_동굴 속의 그림 23.06.02 99 2 12쪽
33 천계_얄리장터의 등불 23.06.01 101 2 13쪽
32 천계_알 수 없는 일들 23.06.01 101 2 12쪽
31 천계_대부와 대자 23.05.31 100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