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45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6.11 08:42
조회
90
추천
2
글자
11쪽

천계_또 다른 비밀

DUMMY

사빈을 알아보고도 두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눈만 가늘게 뜨고 있을 뿐 돌처럼 굳은 것 같았다.


“마고님···.”

두타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두타, 왜 여기 있어요?”

사빈이 다가가도 두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뒤에 서 있는 백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숲에서 혼이 문제를 일으키면 영천옥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혼을 돌려보낼지, 율도학당에서 수련할지는 상산대에서 결정한다. 씻김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영천옥으로 돌려보낸다.


대개는 한요재에 있는 명상의 방에서 며칠 보내지만, 두타가 두려워하는 것은 설화옥이었다.


그곳은 회향미곡 아래, 신음과 울음만 울려 퍼지는 차갑고 무시무시한 감옥이었다. 그곳으로 보내지면 다시는 마음숲에 돌아올 수도, 인간세에서 수련할 수도 없게 된다.


설화옥에는 사람의 혼을 보내지 않지만, 혼들 사이에 소문이 널리 퍼져서 그들에게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사빈이 백하를 돌아보았다.

백하는 그 눈빛을 알아보고 훌쩍 뒤로 물러섰다.


혼들은 상산대를 따르면서도 두려워했다. 상산대 역시 중앙황천의 차사들이니까.

그래서 마고가 혼과 이야기할 때면 상산대원들은 조금 떨어져 기다린다. 그들이 가까이 있으면 속엣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백하는 얼음대감이라 불리니 두타가 얼어붙을 수밖에.


백하가 물러서자 바나도 그를 따라 뒤로 돌아섰다. 바나는 그의 장화에 귀를 부비며 끼깅거렸다. 백하는 코웃음을 내뱉으면서도 바나를 안아 올렸다.


그는 바나의 하얀 털을 쓰다듬으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사빈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사이 하얀 뺨이 발그레해졌다.


백하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사빈은 두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만히 기다렸다.


“마고님, 무서워요.”

두타가 사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괴물이 나타났어요! 마음숲에 괴물이 있다고요.”


“어떤 괴물이요? 어디서 봤어요?”

사빈은 두타의 손을 토닥이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두타는 주위를 흘끗거리며 목을 움츠렸다.

“그 괴물이··· 제 옆방에 살아요. 눈이 하나였어요. 머리도 길쭉하고, 팔다리가 휘청거렸어요.”


“혼알방에 괴물이 산다고요? 원래 주인은요?”

사빈은 놀란 마음을 누르고 애써 다정하게 물었다.


“얼마 전까지는 진짜 주인이 있었는데···. 그 혼은 아직 떠날 순서가 아니라고요.”

두타의 어깨가 몹시 떨렸다. 혼알방의 가짜 주인을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갑자기 바뀌었어요. 다른 괴물이 살아요.”

“잘못 본 건 아니에요?”

“온천도 같이 다니고, 아날빛숨에도 같이 다녀서 잘 알아요.”

두타가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느라 입을 꼭 다물었다.


사빈은 잠시 말을 멈추고 두타의 손을 잡았다.

“주인이 바뀌면 혼알방이 반응해요. 이상한 신호는 없었어요.”


“진짜예요. 주인이 없어지고, 괴물이 산다고요.”

두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혼알방도 그게 진짜 주인인 줄 아는 거예요.”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 괴물이 그랬어요. 인간세에는 피천귀가 많으니 거기 가면 잡아먹힐 거래요.”

두타가 사빈의 팔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고님, 무서워요.”


“피천귀에게 잡아먹히면 어떡해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상산대가 괴물을 찾아낼 거예요. 걱정 말아요.”


사빈은 두타 옆에 바짝 다가앉아 그녀의 어깨를 한쪽 팔로 감싸 안았다.

“너무 무서워요. 혼알방에도, 인간세에도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요. 아직은 때가 아니니 편하게 있어요.”


사빈은 두타를 위해 조그맣게 노래를 불렀다.

몇 마디 가락이 반복되는 단순한 자장가이지만, 마고의 힘이 깃든 노래였다. 사람의 혼이 그 노래를 들으면 기분 좋은 정도로 몽롱해지다가 금방 잠에 빠져든다.


사빈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어지럽게 떠다녔지만, 혼란한 마음이 두타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노래에 집중했다.


두타가 눈을 반쯤 감고 중얼거렸다.

“인간세는 지옥이래요.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죽어간대요. 그런 곳에 왜···.”


두타의 눈이 실낱만큼 남겨놓고 거의 다 감겼다. 입맛을 다시며 숨을 들이마셨다.

“차라리 영천옥으로 돌아가려고···.”


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긋장벽을 찾아다녔어요. 안 들키려고 멀리 돌아서···.”


사빈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마고의 반지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혼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다.

“두타, 그 방은 정화에 들어가서 그래요. 온천에서 쉬다가 깨어나면 그때 자기 방으로 돌아가요.”


두타는 곤히 잠들었다. 새근새근 낮은 숨소리를 냈다.


사빈이 손짓하자 백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대감, 온천으로 보내주세요.”


“알았소. 전언도 함께 보내겠소.”

백하가 두타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며칠 지나면 모로매 온천의 소상각 침대에서 깨어날 것이다.


“들었소. 혼알방에 머무는 괴물.”

“주인이 아닌 다른 것이 혼알방에 산다니. 어떻게 된 걸까요?”


“공명이 같다면 혼알방은 누구든 그를 주인으로 알 것이오.”

백하는 머리 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빼곡하게 들어찬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었다. 굵은 나무 기둥을 타고 넝쿨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다른 무언가 주인 행세를 해도 모르겠군요.”

“그것이 무엇이든 공명이 약한 혼을 골라 베꼈을 거요.”


사빈은 눈을 내리뜨고 생각에 잠겼다.

‘피천귀는 마음숲에 못 들어오는데···?’


“혼알방을 빼앗겼다면, 원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요?”

“집을 잃은 혼은 없었소. 그동안 다른 신호도 나오지 않았는데···.”

백하는 팔짱을 끼고 사빈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빈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바나는 하품을 하다가 그녀의 발치에 엎드렸다.


‘모습이 바뀌었다고···?’

중천에서 보았던 비뢰수와 고사목이 떠올랐다. 그들은 귀물씨앗을 삼키고 모습이 바뀌었다.

‘혼알방의 혼이 귀물싸앗을 삼켰다면···?’


백하는 기다릴 수 없었다.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라 움직일 때였다.

“지금 당장 혼알방을 수색하겠소.”


그가 사빈과 바나를 공중에 띄워 올렸다.


“잠깐, 잠깐만요. 대감. 할 얘기가 있어요.”

사빈은 두 손을 버둥거렸다.


“무슨 일이오?

“귀물씨앗이 들어온 것 같아요.”


“중천에 떠다닌다는?”

사빈이 떠있는 허공으로 백하도 올라섰다.


“대차사 훼님께 들었어요. 결계가 아무리 두꺼워도 귀물씨앗이 들어온다고요. 대명천에도 구멍이 있잖아요?”

“천기공?”

“예. 아무래도 귀물씨앗 같아요.”


백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생각한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 가장 그럴듯했다.

“귀물씨앗이든 뭐든 마음숲에 침입한 것은 확실하니 모두 수색하겠소. 천기공도 살펴보겠소. 만일을 대비해서.”


“고맙습니다. 대감.”

“상산대의 임무요. 고마워할 것 없소.”


“예. 그렇다고 안 고마워할 수는 없잖아요?”

사빈의 말에 백하는 껄껄 웃었다.


“반드시 찾아내 소멸시키겠소. 사빈님을 위해서라도.”

백하의 주먹에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피천귀 뿐만 아니라 귀물씨앗 하나도 용납하지 않겠소.”


그가 바람을 일으키자, 사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순간 사빈은 아날빛숨 앞에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바나는 공처럼 바닥을 굴렀다. 휘청거리며 일어선 바나의 눈빛은 오히려 반짝거렸다.

공처럼 구르는 것이 재미있는지 똑바로 앉았다가 몸을 웅크려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혼알판 사이로 상산대원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혼알방의 기운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다른 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태연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상산대는 공명이 틀어졌을 때나 알아낸다. 주인과 제대로 공명하는 이상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마고인 사빈도 마찬가지였다.


사빈 역시 개울을 따라 혼알판 사이를 돌아보았다.


‘빨리 찾아내야 할 텐데.’

마음숲에 귀물씨앗이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녀의 생각은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에서 씨앗을 삼킨 혼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로 옮겨갔다.


귀물씨앗을 삼켰다면 원래 혼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상산대가 처리하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음이 다급하여 심장이 콩닥거렸다.

‘예사달 할머니는 아실 거야. 귀물씨앗을 막는 방법도, 혼을 되돌리는 방법도.’


예사달은 한동안 마음숲에 머문다고 했다. 혜존각에 머물며 온천을 즐기겠다고.

사빈은 가슴을 폈다. 예사달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마를 긁적이며 뒤돌아서는데, 이마에서 문득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보호의 인!’


중앙황제 현원이 새겨준 인이었다. 이마에 손을 대자 그날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현원이 손가락으로 선을 그을 때, 사빈은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술법의 힘을 키워준다고 하셨는데? 지혜와 용기도 더불어.’

사빈은 손바닥을 살펴보고 팔과 허리,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딱히 강해진 것 같지 않은데?’


다시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제는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호의 인은 어떤 표시도 남지 않지만,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다음 마고를 찾기 위해 강해진다는 건가?’

아날빛숨 앞에 이르자 사빈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 마고···. 그게 문제였구나. 빨리 찾지 못하면, 혼알방이 모두 바뀔지 몰라.’


사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에게는 천기공이 보이지 않았다. 구멍 따위 없는 듯 온통 푸르고 맑았다.

‘저기 어디로 귀물씨앗이 들어온다고? 설마··· 피천귀도 들어올까?’


아날빛숨 앞을 서성이던 바나가 사빈을 보고 뛰어왔다.

“왕, 주인님. 잃어버린 줄 알았어라.”


사빈은 풀썩거리며 공처럼 뛰어온 바나를 안아 들었다.

“여태 굴러다녔니?”

“구르기가 재미있어라.”


아날빛숨 안에서 초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돌봄차사 초연이 소리 내어 웃는다면 인도자 대취가 왔다는 뜻이다.

‘한얼도 왔을까?’


사빈이 열린 문을 향해 걸어가자 바나가 움찔거렸다.

“왈, 여기가 주인님 집이어라?”


사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나는 훌쩍 뛰어내렸다. 쏜살같이 아날빛숨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날빛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0 그믐_배낭 메고 새벽 산책 23.06.21 69 2 10쪽
59 그믐_짱짱 만화방 23.06.20 69 2 14쪽
58 그믐_하륜 선위의 충고 23.06.20 68 2 12쪽
57 그믐_달숲의 작은 천사 23.06.19 69 2 11쪽
56 그믐_그믐밤의 모임 23.06.18 71 2 13쪽
55 그믐_가온의 손님이 되다 23.06.17 73 2 14쪽
54 그믐_파라다이스 빌라 23.06.16 80 2 11쪽
53 그믐_피천귀 사냥 23.06.15 83 2 13쪽
52 천계_다훤 아저씨 23.06.14 82 2 12쪽
51 천계_차미의 의심 23.06.13 87 2 13쪽
50 천계_예사달의 조언 23.06.12 88 2 13쪽
49 천계_귀물씨앗이 들어오다 23.06.11 88 2 12쪽
» 천계_또 다른 비밀 23.06.11 91 2 11쪽
47 천계_숨은 혼을 찾아서 23.06.10 91 2 11쪽
46 천계_새로운 동료 바나 23.06.09 92 2 13쪽
45 천계_한요재의 초대 23.06.08 91 2 12쪽
44 천계_마음숲 키움차사들 23.06.08 92 2 12쪽
43 천계_공방의 고민거리 23.06.07 91 2 11쪽
42 천계_돋움다로차 23.06.06 98 2 12쪽
41 천계_다른 곳 같은 뜻 23.06.06 97 2 13쪽
40 그믐_라온향낭 23.06.05 97 2 12쪽
39 그믐_반계의 다른 모습 23.06.05 96 2 12쪽
38 그믐_버림받은 영혼 23.06.04 97 2 12쪽
37 그믐_불천수 대나무숲 23.06.03 97 2 13쪽
36 그믐_현재의 겹 23.06.03 100 2 12쪽
35 그믐_그림의 주인 23.06.02 98 2 10쪽
34 그믐_동굴 속의 그림 23.06.02 99 2 12쪽
33 천계_얄리장터의 등불 23.06.01 101 2 13쪽
32 천계_알 수 없는 일들 23.06.01 101 2 12쪽
31 천계_대부와 대자 23.05.31 100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