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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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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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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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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로잔_합류

DUMMY

“난 아순치라 하오.”

“혹시 찬을 미행한?”

“미행이라기보다는 따라왔소.”

아순치는 당당하게 정자로 올라와 사로잔 앞에 앉았다.


그가 자신의 명패를 내보였다.

“거대상단 소단주요. 이 보석을 좋은 가격으로 사고 싶은데.”

“당신을 어떻게 믿고?”

해무찬이 조심스럽게 장검을 내려놓았다.


“염려 마시오. 거대상단은 신의를 무기로 여태까지 성장했으니. 값은 넉넉히 쳐주겠소.”

그의 시선을 따라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일행인 듯 여러 명이 수레 두 대를 에워쌌다. 그중 두 명이 정자로 올라오고 있었다.


사로잔은 천천히 아순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잊기 어려운 얼굴과 목소리였다.

하지만, 왠지 그 이전에 만난 것 같았다. 아주 오래전, 어디선가.


해무찬 역시 눈썹을 찡그리며 아순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혹시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 낯이 익은데.”

아순치가 반색하며 해무찬을 향해 오른손 검지와 엄지를 튕겼다.

“기억나시오? 지곡대사님께 심부름도 갔었다오.”


해무찬이 경계를 풀고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래, 기억난다. 춥다고 난리 부리면서 나더러 땔감을 찾아오라고 했던 그 약골!”

“어허···. 그런 얘기를. 흠흠.”

“그때는 아낙거사의 제자라고 했는데?”

“제자라기보다는···. 잠깐 머물렀소.”


해무찬은 다루영에게 그때 약골이 어땠는지 알려주었다. 춥다고, 배고프다고, 목마르다고,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린 이야기이며 수련할 때도 요령만 부렸다는 험담이었다.


아순치는 난처한 얼굴로 사로잔에게 눈짓했으나 그녀는 눈만 깜빡거렸다.

‘아닌데. 더 오래전에 봤는데. 어디선가···.’

사로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사로는 모를 거야. 넌 다른 작전 때문에 초루산에 없었거든.”

“그런가?”

애매하게 얼버무렸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그 이전, 어디선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도 어디서 만난 것 같아.”

다루영이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기억하시오? 약차를 같이 마셨잖소?”

아순치가 싱글거렸다.


“다루, 이 사람과 차도 같이 마셨어?”

해무찬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순치를 가리켰다.

“아니야, 그 사람은 아가씨였어. 아리수라고.”


아순치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일이 있을 때는 잠깐씩 여장을 하지. 그때는 아리수라 부른다오.”

다루영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앉은 채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사로잔이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왜 우리를 따라왔소?”

“나도 끼워주시오. 당신들 일에.”

아순치는 천천히 사로잔과 해무찬, 다루영을 돌아보았다.


“당신들이 부망에 들어올 때부터 알아보았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부터 우리를 감시했다 이거군.”

해무찬이 어깨를 떡 벌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아순치는 그런 해무찬의 태도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상장로를 처리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소. 거기에 당신들이 숟가락을 얹었달까?”

아순치가 정자 아래에서 기다리는 하인 두 명 중 한 명에게 손짓했다.

“막개야.”


덩치 좋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하인이 싱글거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가 허리를 숙이기에 사로잔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의 얼굴을 보고는 입이 벌어졌다.


‘저 사람은···.’

능삼의 집에 잠입했을 때 손님방을 알려준 바로 그 하인이었다.

‘어쩐지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싶더니···.’

구태여 뒤채에 가지 말라고 강조했던 이유가 그것이구나.


사로잔이 아순치를 바라보았다. 그는 평온하게 웃음 지었다.

“아낙거사 밑에서 수련했다면 이곤과 알던 사이요? 거사의 제자라던데.”

“난 잠깐 숨어있었을 뿐이오. 그가 아낙거사의 제자인 것은 몰랐소.”


아순치는 그동안 상장로를 잡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는지 설명했지만 사로잔에게는 어떤 말도 닿지 않았다.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늘에 커다란 눈이 있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아도대사의 유언, 단검 휼과 나침반, 주인을 찾는 보석, 자신에게 스며든 빛의 구슬이 하나의 맥락을 이루었다.


해무찬의ㅣ 장검을 잡았을 때 펼쳐졌던 환영이 떠올랐다.

그곳이 어디인지, 파소연랑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와 이야기한 사람은 분명 자신이었다.


사로잔의 눈길이 해무찬의 붉은 머리카락으로 옮겨갔다. 환상으로 보았던 붉은 머리카락이 오묘하게 겹쳐졌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아순치.


사로잔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삐딱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줄 알고?”

“지금은 몰라도 알아 가면 되지 않소?”

아순치는 눈웃음을 지으며 싱글거렸다. 반달 같은 눈웃음에 악의는 없어 보였다.


“우리는 거리의 악사요. 함께 다니려면 악기를 다뤄야 할 텐데?”

해무찬은 은근히 아순치가 포기하기를 바랐다.

다루영과의 즐거운 여행에 불청객이 들어오다니. 게다가 하인까지 데리고 다니겠다는 건가.


아순치는 우아한 손짓으로 품에서 피리를 꺼냈다.


그의 연주를 들으니 머리가 맑아지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 사람은 어느새 피리 연주에 빠져들었다.

모두 알 수 있었다. 그가 평범한 상인이 아님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성물이 이끄는 사람임을.


한 곡을 끝내자 아순치는 피리를 품에 넣었다. 그의 웃음에 해무찬이 헛기침을 했다.

“험, 험. 굉장한 연주였소. 그런데 하인까지 데려가려고?”

“아니. 당신들과 함께 할 사람은 나 혼자요.”


“좋소. 그럼 함께 다니지요. 나는 용각국의 소명장군 사로잔이오.”

사로잔이 자신을 밝히자 아순치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소명장군! 가믄고원에서 우리 상인들을 구해준 바로 그 장군 아니오?”

“그리 놀랄 정도는 아니오. 무사라면 누구라도 그리했을 테니.”


아순치가 두 손을 모아 턱 앞으로 올렸다.

“고마웠소. 우리 상인들을 지키느라 상처를 입었다고 들었는데.”

“이 년 전 일이오. 무사에게 상처는 훈장 같은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이 은혜는 여행하면서 천천히 갚겠소.”

끝까지 여행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이게 하늘의 성물이고, 주인을 찾는 영물이라면 상단에게 맡기는 게 옳은 일일까?”

사로잔이 팔짱을 끼고 바닥에 쌓인 보석을 바라보았다.


“사로, 스승님이 말씀하셨어. 하늘은 사람의 손을 빌려 일한다고. 이것도 그렇지 않을까?”

“다루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야. 영물이든 뭐든 주인을 찾으려면 일단 사람을 만나야 할 거 아냐?”

해무찬은 말하면서 다시 주공을 꽉 쥐었다.


아순치가 보석 하나를 집어 들었다.

“주인을 찾아주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경매에 내놓는 것이오. 그가 주인이든, 그에게 선물을 받는 사람이 주인이든 말이오.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돈이든 마음이든 관계를 따라 흐른다오.”

“그럴듯하군. 거대상단은 세 개의 대륙에 지부가 있을 테니 성물을 맡아주시오.”

“좋소.”

아순치가 흔쾌히 대답했다.


사로잔이 앞치마 위에 쌓인 보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용각국의 가족이 생각났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또르르 보석 세 개가 굴러와 무릎 앞에 멈춰 섰다.

‘이건 마음도 알아듣는가?’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는 성물이라니. 기특하구나.


보석 세 개를 아순치에게 건넸다.

“이걸 용각국의 거모부 대로에게 전해주시오. 비르삼과 뫄한 장군과도 나누도록 편지를 쓰겠소. 우리가 잘 지낸다는 것을 아시겠지. 그리고···.”

사로잔이 다루영을 바라보았다.


“우린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니 여행자금만 남기고 구휼소에 넘기는 것이 어떨까?”

다루영은 웃으며 사로잔의 손을 잡았다. 역시 그때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는구나.


“난 무조건 단검의 주인을 따를 거야. 약값이라도 보태면 좋겠어.”

“사로, 너를 보니 타내 대모님이 생각난다. 기특하구나. 나도 통과!”

맞은편에 앉은 해무찬도 사로잔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로잔은 단검 휼과 수정 막대기에 손을 얹었다.

여행은 오래전부터 준비했지만, 성물을 찾기로 목적이 바뀐 이유는 나침반과 단검이 자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성물이 다루영과 해무찬을 찾아냈다. 다음은 누구인가. 그녀의 시선이 해맑게 웃는 아순치에게로 향했다.


아순치는 정자 아래로 내려가 막개를 불렀다. 큰 꾸러미와 작은 주머니를 건네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삼인방이 번갈아 따라오너라. 시간차를 두고.”

“삼보와 훤화에게 알리겠습니다.”

막개가 호숫가로 내려가자 아순치는 정자에 둘러앉은 동행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시작인가.’

아순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얼마나 기다린 순간인가. 거대한 새가 남긴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가 되었다.


거대상단의 하인들이 수레를 끌고 떠나자 사로잔은 나침반을 열어 방향을 확인했다.

“여기서 더 서쪽이야. 서쪽으로 가면 뭐가 있지?”

“도리사 해협.”

아순치가 대답했다.

“해협을 건너면 아치대륙이오.”


다루영과 해무찬도 자신에게 찾아온 성물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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