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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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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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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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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로잔_아수라장

DUMMY

시향여의 집 마당에는 해무찬과 아순치가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들마루 위 낮은 식탁에는 잠시 종적을 감춘 두 사람 몫도 나란히 놓였다.


사로잔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자 해무찬은 숟가락을 소리 내어 내려놓았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아, 배고파. 일단 밥부터 먹자.”

사로잔은 달려들어 숟가락부터 들었다. 다루영도 그녀 옆에 앉아 물을 들이켰다.


“많이 걱정했어. 대체 무슨 일이야?”

아순치가 핀잔을 주면서도 그들 가까이 반찬을 밀어주었다.


해무찬은 다루영이 무사한지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루한테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질 거야? 어?”

“응. 내가 책임지면 돼? 넌?”

사로잔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해무찬이 당황해서 씩씩거리는 것도 모르고 다루영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중얼거렸다.

“아까 무휼이 뭐라고 했어?”

“무휼은 또 누구야? 너희들···. 어, 어디 갔다 온 거야?”

해무찬이 숟가락을 든 채 노려보았다.


사로잔이 씨익 웃었다.

“괴물에 대한 정보가 있어.”

세 사람의 눈이 그녀에게 모였다.


무휼과 약초원 주인에게 들은 소식을 알려주자 해무찬과 아순치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해무찬이 숟가락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그냥 수상한 정도가 아니구나. 어쩌냐? 현상금 사냥꾼들은 벌써 몰려갔는데.”

“일단 기다려야지. 그렇게 떼로 몰려갔으니 무언가 수확이 있겠지.”

아순치는 어느새 유리구슬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사로잔이 한 수저 가득 밥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치, 요귀에 대해 얘기 좀 해봐. 요귀는 뭐고, 괴물은 뭐야?”

“요귀는 크게 정귀와 반귀로 나뉘어. 정귀는 딱 두 마리야. 암귀모와 반파홍귀.”

반파홍귀라는 이름을 듣자 다루영의 손이 멈추었다. 아순치에게도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 외는 모두 반귀야. 정귀가 없으면 힘을 못 쓰니까. 요귀에게 조종당하는 동물은 타랑귀, 사람은 사음귀이지. 보통은 다 괴물이라고 해.”

“홍석산의 괴물도 요귀의 수작인가?”

해무찬이 코를 킁킁거렸다.


“그걸 모르겠어. 사람들은 이상하면 모두 괴물이라고 하니까.”

“아치는 그런 정보를 어디서 구했대?”

“왜 이래? 나 아순치라고. 너른벌에서 가장 많은 스승을 모셨을걸?”

“으흠. 잡다한 지식이 많다 이 말이군.”

사로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순치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봐, 먼저 물어본 건 자네야. 그럼 백사귀파는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네?”

“가믄고원에서 봤던 그 백사귀파! 그건 안다오.”

사로잔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순치가 설명을 덧붙였다.

“백사귀도 두 파로 나뉜다고 했어. 정귀가 두 마리이니 그들끼리도 치열하겠지.”

“어쨌거나 우리의 적이라는 건 분명해.”

해무찬이 주먹을 꽉 쥐었다.


*


사로잔은 다루영의 손을 끌고 폐허가 된 약초밭으로 나갔다. 다루영은 끌려가면서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갑자기 왜?”

“시향여가 무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자고. 치료한다고 알려도 되는지 말이야.”


시향여는 약초밭에서 돌을 골라내며 고랑을 만들고 있었다. 빠른 손놀림에서 오랫동안 밭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로잔도 돕겠다고 나섰지만 땀만 흘릴 뿐 손이 서툴러 다루영의 반도 쫓아가지 못했다.


고랑은 몇 개 만들지도 못하고 땀을 닦으며 숨을 돌렸다.

“우리가 홍석산을 넘을 때 안내해줄 사람이 있겠소?”

“글쎄요. 제가 아는 사람들은 다 떠나서···.”

“어쩌다 무휼을 알게 되었는데 무술이 뛰어나더군. 그분께 부탁하면 어떻겠소?”


사로잔의 질문에 시향여의 손이 멈추었다. 뭐라고 대답할지 망설이다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호미를 움직였지만,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그분은 돌봐야 할 가족이 있어요.”

“혹시 아는 사람이오?”

“네. 이곳에 정착하고 해가 바뀌었으니까요.”


시향여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볕을 쬐고 앉아있기 적당한 날씨였다.

“월영국 사람이에요. 떠돌이 장사꾼이었죠. 몇 해 전부터 오기 시작했는데 수완이 없으니 장사도 서툴렀지요. 착하고 성실한 분이에요.”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에 빠져 손도 멈추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다루영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월영국에서 이주한 거라면 대단한 결심을 한 거네요. 분명 무슨 계기가 있겠죠.”


다루영은 호미질로 시름을 잊으려는 사람처럼 퍽퍽 땅을 고르는 일에만 몰두했다.

노인을 치료하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지만, 외면할 수도 없었다. 시향여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었다.


*


사로잔은 농사꾼 아녀자처럼 꾸미고 저잣거리를 돌아보았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이 남아있는지 본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현월의 사정과 괴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거리는 한산했다. 상점마다 물건도 적고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다니는 사람은 적었지만, 시위대를 만나 한담을 나누며 그나마 있는 대로 소문을 수집했다.


*


그녀가 돌아왔을 때, 다루영은 방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손때 묻은 것을 보니 아도대사의 약초보감일 것이다.


“약초가 없어서 산야초로 가능한지 찾고 있어.”

“만들기 어려워?”

“꿩 대신 닭이라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찾아야지.”

다루영은 뭔가를 찾았는지 바삐 옮겨 적었다.


사로잔은 벽에 기대앉아 움직이는 붓끝을 바라보았다.

“무휼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그 정도 실력이라면 도움이 되지.”

다루영은 책을 뒤적이며 옮겨 적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


“처음 여기 온 것이 사 년 전이래. 아버지를 모시고 귀화한 건 작년이고. 시향여와 혼인하러 왔다는 걸 사람들이 다 알더라고”

다루영의 손이 멈추었다. 가만히 붓을 내려놓았다.


자세를 고쳐 앉고 사로잔을 바라보았다.

“무휼의 아버지를 보고 시향여의 마음이 바뀌었겠네?”


“시향여의 어머니 야율이 죽은 건 육 년 전이야. 홍석산 자락에서 죽어있는 걸 상인들이 수습했다고 했어. 시향여의 아버지가 괴물에 당한 건 재작년이고.”

“불쌍한 시향여···.”

다루영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율은 홍석산에 왜 갔을까? 그것도 혼자. 거기서 월영국 군사들과 만난 걸까? 기억나? 무휼의 집에 있던 옥패. 그건 월영국에서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리는 거야. 수비대원 정도의 무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무휼은 야율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구나.”

“국경에서 전투가 있었던 걸까···.”

머릿속에 월영국과 올뫼국의 국경 지도가 그려졌다.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지나갔다. 소명장군까지 오르는 과정에서도 얼마나 많은 전투를 겪었던가.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거기 사람은 없어. 비명과 몸부림만 있지. 전쟁은 어쩔 수 없는 비극을 만들어.”


사로잔의 말에 다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휼의 아버지가 사사로이 용족을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뭔가 사연이 있을 거야.”

“그럼, 무휼에게 부탁한다?”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무휼과 시향여를 도와주려고. 이런 걸 보고 가만히 있으면 사로가 아니지.”

“어떻게?”

“마리와 지탈이 다퉜을 때 타내 대모가 쓴 방법이야. 난 그때 두 사람이 헤어질 줄 알았지만. 타내 대모는 딱 한 마디 했어. 지탈을 초루산 호랑이 사냥에 보낸다고.”

“초루산에 호랑이가 있었나?”


“호랑이는 무슨 호랑이. 그런데 예상 밖으로 마차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지탈이 다치긴 했어. 마리는 울고불고, 지탈이 나을 때까지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어.”

“아하! 알겠다. 좋아, 좋아. 어차피 우리도 도움이 필요한 처지이니.”


다루영은 배시시 웃으며 붓을 들었다. 사로잔이 말하면 무엇이든 그대로 될 것 같았다. 무휼과 시향여도, 허신도, 괴물도, 현월도.

그녀가 할 일은 단검의 주인을 성심성의껏 돕는 것이다. 붓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신음과 비명, 발을 끌거나 저는 발소리가 뒤섞여 소리만으로도 아수라장을 연상시켰다.


아침에 나갔던 현상금 사냥꾼들이었다. 대부분 부상이 심해 제대로 걷지 못했다. 다치지 않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부축하느라 비틀거렸다.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부상자 중 하나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사람들이 달려가 일으켰으나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비참한 행렬의 끝에서는 해무찬과 아순치가 부상자들을 도왔다. 현상금 사냥꾼들의 전력을 알아보기 위해 일찌감치 나갔던 두 사람이 이들을 발견한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도 마침내 합세하여 부상자를 옮겼다.


다친 사람을 보고 가만히 앉아있을 다루영이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성주원으로.”

그녀도 성주원으로 출발했다. 해무찬은 당연히 다루영을 따라갔다.


그들을 따라가려는 아순치의 옷자락을 사로잔이 잡아 세웠다.

“죽은 사람은 몇이나 돼?”

“없었어. 그러고 보니···.”

“사냥꾼이 칠십 명 정도라고 했지? 저기 가는 사람들은 사십도 안 돼.”

“그럼, 괴물이 시신을 먹···.”

아순치는 끔찍한 생각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

사로잔이 주먹을 꼭 쥐며 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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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아랑누_금협 시장 22.06.14 46 1 13쪽
63 아랑누_예인 길가온 22.06.14 42 1 13쪽
62 아랑누_바다 위에서 22.06.13 43 1 15쪽
61 아랑누_금협의 사정 22.06.13 43 1 10쪽
60 아랑누_매수인 22.06.12 45 1 11쪽
59 아랑누_뱃삯 22.06.12 44 1 12쪽
58 사로잔_새로운 주인 22.06.11 43 1 13쪽
57 사로잔_고대 유적 22.06.11 43 1 11쪽
56 사로잔_독지린의 진실 22.06.10 43 1 12쪽
55 사로잔_괴물의 정체 22.06.10 42 1 10쪽
54 사로잔_진혼곡 22.06.09 43 1 12쪽
» 사로잔_아수라장 22.06.09 49 1 10쪽
52 사로잔_장사꾼 무휼 22.06.08 43 1 9쪽
51 사로잔_용족 혼혈 시향여 22.06.08 43 1 13쪽
50 사로잔_올뫼국 현월성 22.06.07 46 1 11쪽
49 사로잔_주명산 22.06.07 45 1 12쪽
48 사로잔_청옥선원 22.06.06 47 1 11쪽
47 사로잔_도리사 해협 22.06.06 43 1 10쪽
46 선계_진백성 율명 22.06.05 46 1 11쪽
45 선계_선인 부녹 22.06.05 43 1 12쪽
44 아랑누_길잡이 구름 22.06.04 44 1 9쪽
43 아랑누_무시궁 22.06.04 46 1 10쪽
42 아랑누_사막의 혼 22.06.03 44 1 12쪽
41 아랑누_다른 공간 22.06.03 42 1 12쪽
40 아랑누_사막의 혼 사원 22.06.02 46 1 10쪽
39 아랑누_바위산 돌안 22.06.02 46 1 13쪽
38 아랑누_요마족 혹은 사다녜 22.06.01 46 1 11쪽
37 아랑누_이별의 밤 22.06.01 44 1 10쪽
36 아랑누_마딘 수미원 22.05.31 45 1 14쪽
35 아랑누_까마귀 도조 22.05.31 4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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