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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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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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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88
글자수 :
1,063,745

작성
22.06.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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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아랑누_사막의 혼 사원

DUMMY

“이루다, 너 진짜 안 갈 거야?”

이연이 묻자 이루다는 우물쭈물 몸을 비틀었다.

“다들 날 싫어해. 비웃기만 하고 날 보지도 않았어. 내가 가면 분명 싫어할 거야.”


“사다녜 중에서도 바람에서 태어나는 건 아주 드물대. 넌 아주 귀한 아이일 텐데···.”

이연이 사방으로 튀어나온 초록빛 머리카락을 두건 아래 가지런히 밀어 넣었다. 곁눈질로 바라보니 이루다는 발끝으로 자갈을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누님이 그랬어.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안 하려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고. 사다녜들이 아주 위험하다니까. 잘 생각해봐.”

이연은 이루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나귀 보리를 살피러 나갔다.


*


온설지는 아랑누를 찾아 바위산 돌안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그늘에 앉아 사막을 바라보는 아랑누를 찾아냈다.

“그러고 있으니 꼭 눈이 있는 사람 같네.”


“사막에 오니 영안이 시원해. 아무것도 없어서인가. 깨끗하고 맑아. 어지럽게 섞인 기운도 없고, 혼란스러운 소용돌이도 없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어.”

“그건 너만 할 수 있는 말이야.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두려워하거든. 그게 돈이든, 사람이든.”


“온형도 자유롭잖아?”

“내가? 이 몸이 자유로운 것 같아?”

아랑누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빙그레 웃었다.


온설지는 사막을 한참 바라보다가 뒤늦게 자신이 아랑누를 찾아다닌 이유를 기억해냈다.

“아누, 이루다가 왜 저러는 거야?”


아랑누가 씁쓸하게 웃었다.

“사다녜는 자연의 원소와 대기의 정기가 만나는 찰나에 태어나. 보통은 흙이나 물, 나무에서 태어나는데 바람에서 태어나는 건 아주 드물거든. 다른 사다녜들이 어려워했을 거야.”


“그래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난리친 거야?”

“사람이 되면 차별받지 않을 거로 생각하나 봐.”

“순진하네. 사람이 더 심할걸?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공격하잖아. 끼리끼리 뭉쳐서 무시하면서 살인까지 벌이는 건 모르나 보지?”


온설지는 입안이 썼다.

자신도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애온 대선사에게 맡겨지지 않았던가. 해가 지면 도망치듯 산으로 가야 했다. 힘들게 버텨온 시간을 떠올리니 가슴이 따끔거렸다.

마주 앉은 아랑누의 눈가리개조차 유독 검게 보였다.


함께 여행하는 길동무 중에 정상이라 할 만한 사람은 이연밖에 없었다.

아랑누는 영안으로 보는 데다 몸이 여리여리한 게 꽃잎 한 장 같고, 갑자기 나타난 도조는 신조다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만 하고, 머리는 사람으로 바꾸지만 보는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까마귀로만 보였다.


나귀에 짐을 싣는 이연과 나귀 등에 앉은 도조가 보였다.

‘어째 이 조합 아주 이상하네. 설마 꼬마는 보통 사람 맞겠지? 어쨌든! 여기선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

온설지는 어설픈 웃음으로 마음을 다독이며 이연과 나귀에게로 다가갔다.


*


해가 저물려면 더 기다려야 했지만, 마음이 급해 앉아있을 수 없었다. 아랑누가 지팡이를 잡고 일어섰다.

떠나기 전 다시 이루다를 돌아보았다.

“이루다, 넌 바람이 선택한 아이야. 네가 태어난 것도, 우리와 만난 것도 선택받았다는 증거란다. 하지만 함께 가자고 강요하지 않을게. 그건 네 자유니까.”


그녀가 이루다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마. 결과가 어떻든 이게 너의 최선이니까. 언제나 너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 알았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길잡이 구름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할 일을 먼저 해야지.


“가자, 도조!”

아랑누의 부름을 신호로 도조는 곧장 높이 날아올랐다.


사막의 혼 사원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야론의 물방울이 띄엄띄엄 길을 만들었다. 도조는 희고 투명한 방울을 따라 방향을 잡았다.


아랑누와 이연은 나귀를 끌고, 온설지는 그들의 뒤를 따라 보라사막을 건넜다.


*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온설지가 일행에서 떨어져 뒤로 물러섰다.

이연이 돌아보았다.

“형님이 그 하얀 호랑이 맞죠?”

“음. 무섭니?”


“그래서 그렇게 밤마다 사라졌군요. 난 또 누님이랑 같은 방 쓰기 부끄러워 도망친 줄 알았네요.”

“뭐라고? 허, 맹랑한 꼬마일세.”

“그래도 다행이에요. 호설이 지켜준다고 생각하니 엄청 든든해요.”

이연이 배시시 웃었다.


온설지는 이연의 두건을 흩트리며 껄껄 웃었다.

“나도 든든하고 멋지지 않냐?”

“에이, 비교할 걸 하세요. 호설이 얼마나 근사한데요, 멋지고 위엄 있고.”


온설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몸에서 빛이 뿜어 나왔다. 기다릴 여유가 없는지 호설이 튀어올랐다.


호설이 아랑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요귀의 기운이다. 내가 보고 오마.”

하얗게 빛나는 호랑이는 물결이 흐르듯 가볍고 빠르게 앞으로 내달았다.


도조는 부르르 떨며 나귀 등에 바짝 엎드렸지만, 이연은 호설의 모습과 목소리에 푹 빠져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아야론의 물방울을 따라가는데 포효소리와 함께 호설이 돌아왔다.

“사다녜들이 위험하다.”


호설이 아랑누 앞에 엎드렸다.

“혼을 묶였어. 더 늦으면 사음귀가 되고 말 거다. 타라.”

아랑누가 앉자마자 호설은 바람보다 빨리 내달았다.


“그럼, 나도!”

도조도 날개를 쫙 펴고 호설을 따라 날아갔다.


뒤에 남은 이연은 보리의 고삐를 잡고 종종거렸다.

“어, 누님! 저는요! 누님!”

까마득히 멀어진 아랑누를 향해 소리쳤지만, 소리는 곧 사막에 삼켜졌다. 아야론의 물방울만이 이연을 기다렸다.


*


보름삭 빛이 구름에 반사되자 폐허가 된 사원이 일그러져 보였다. 자갈 밟는 소리만 자그락자그락 귓가에 울렸다.


영안을 가진 아랑누에게는 사원의 윤곽과 거기 매달린 사다녜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다.

호설도, 도조도 어둠에 방해받지 않으므로 밤의 시간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사원에 가까이 갈수록 괴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수백수천의 괴령이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사원을 가렸다. 길 잃은 망령이 아니라 요귀가 만들어낸 영이었다.


“요귀는 사람의 욕망을 먹고 산다며? 왜 사다녜들이지?”

“마딘의 사람들이 불러들였겠지. 하지만, 요귀는 더 좋은 먹잇감으로 눈을 돌린 거다. 사람보다 영력이 강하거든. 혼에 강한 힘이 실려 있다.”


사원 벽을 따라 사다녜들이 기둥처럼 붙들렸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공을 응시한 채 굳어 있었다.

말린 과일처럼 비쩍 말라 뼈와 가죽으로만 보였다. 입술이며 피부가 마른 바닥처럼 허옇게 버석거렸다.


“혼을 빼앗겼어. 괴령에 빨려들어 요귀의 힘을 키웠어.”

아랑누에게는 사다녜들의 고통이 함께 보여 현기증이 일어났다.

도조는 사원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괴령 덩어리가 심장을 둘러싼 핏줄처럼 사원 주위에 머물렀다. 요귀는 그 속에서 이들을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

괴령 덩어리는 더 많은 기운을 삼키려고 쿨렁거렸다.


“인간세는 왜 이 모양이야? 왜 이렇게 말썽이냐고!”

도조는 요귀의 기운에 밀려 휘청거리다 아랑누 뒤에 내려앉았다.


“호설, 어떻게 하지?”

“내가 공격하면 사다녜들은 죽고 말 거다. 요귀와의 줄을 끊고 저들을 빼내야 해. 그때 내가 요귀를 잡겠다.”


아랑누는 꿈틀거리는 귀령 덩어리에 영안을 맞추었다. 지금까지 요귀를 본 적도 없었다. 너른벌에 요귀를 퇴치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그녀가 망설이자 호설이 그녀의 지팡이를 툭 쳤다.

“저것은 반귀에 불과해. 연결고리만 끊으면 된다.”

“아···. 그래, 고민할 시간이 없지. 망설이는 만큼 사다녜들의 고통만 커지니까.”


아랑누는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나서 허공에 빛나는 문양을 그렸다.

”혼돈의 틈에서 생겨난 영이여, 어지러운 전장에서 벗어나 근원으로 돌아가라!“


주문을 외우자 허공의 문양이 빛을 뿜으며 사방으로 펼쳐졌다. 빛이 닿자 꽤애액 흉측한 소리를 내며 괴령이 사그라졌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자리에 다른 괴령이 들어찼다. 다시 모인 괴령은 수많은 화살과 장창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괴령 덩어리는 아랑누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랑누가 비틀거리자 호설이 그녀를 태우고 펄쩍 날아올랐다. 괴령 덩어리는 그들을 쫓아 달려들었다.


“아랑누님의 영력에 반응하잖아! 빨리 어떻게 해봐!“

도조가 펄쩍거리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다시 주문을 외웠지만, 이번에도 사그라졌다가 다시 뭉쳤다.

“사다녜의 영력이 너무 강해.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사다녜들이 먼저 소멸할 거야.“


아랑누가 주문을 멈추자 괴령 덩어리도 멈추었다.

괴령의 창끝이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새로운 공격 대상을 발견한 사냥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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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아랑누_금협 시장 22.06.14 46 1 13쪽
63 아랑누_예인 길가온 22.06.14 42 1 13쪽
62 아랑누_바다 위에서 22.06.13 43 1 15쪽
61 아랑누_금협의 사정 22.06.13 43 1 10쪽
60 아랑누_매수인 22.06.12 45 1 11쪽
59 아랑누_뱃삯 22.06.12 45 1 12쪽
58 사로잔_새로운 주인 22.06.11 46 1 13쪽
57 사로잔_고대 유적 22.06.11 44 1 11쪽
56 사로잔_독지린의 진실 22.06.10 43 1 12쪽
55 사로잔_괴물의 정체 22.06.10 42 1 10쪽
54 사로잔_진혼곡 22.06.09 43 1 12쪽
53 사로잔_아수라장 22.06.09 4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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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사로잔_청옥선원 22.06.06 48 1 11쪽
47 사로잔_도리사 해협 22.06.06 44 1 10쪽
46 선계_진백성 율명 22.06.05 46 1 11쪽
45 선계_선인 부녹 22.06.05 43 1 12쪽
44 아랑누_길잡이 구름 22.06.04 44 1 9쪽
43 아랑누_무시궁 22.06.04 47 1 10쪽
42 아랑누_사막의 혼 22.06.03 45 1 12쪽
41 아랑누_다른 공간 22.06.03 43 1 12쪽
» 아랑누_사막의 혼 사원 22.06.02 47 1 10쪽
39 아랑누_바위산 돌안 22.06.02 47 1 13쪽
38 아랑누_요마족 혹은 사다녜 22.06.01 47 1 11쪽
37 아랑누_이별의 밤 22.06.01 45 1 10쪽
36 아랑누_마딘 수미원 22.05.31 48 1 14쪽
35 아랑누_까마귀 도조 22.05.31 5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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