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연(3)
제국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의 중심부에 위치한 '프리드리히스 라인', 제국의 핵심 기관들이 위치한 이곳의 한쪽엔 군부대신이 관장하는 총사령부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제국군을 이끌어 가고 있던 제국군 참모본부가 란데스후트 주(州)에 위치해 있었다면, 제국군의 총사령관직을 겸임한 황제가 머무르고 있던 황성엔 이렇게 총사령부 건물이 버젓이 위치해 있었다.
때마침 황실에서 주관하는 승전연이 예정되어 있던 가운데, 지금 총사령부 건물 안에선 군부대신의 주관 하에 논공행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침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는 바람에 대규모 포상이 예정되어 있던 참이었다.
" 제2군 사령관 베르티 폰 술라 남작입니다! 총 9개 군단을 완벽하게 통솔하여 벨지크 왕국을 성공적으로 점령하였으며, 적국의 중앙군을 격파함과 동시에 왕성 네벨레스를 함락시키는 쾌거까지 이루어낸 끝에 전쟁의 승리에 보탬이 되는 크나큰 공훈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각 벽면마다 황실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가 장대하게 새겨진 거대한 홀 안에서 군부대신 비요크 백작의 전속 비서가 큰 목소리로 외치며 술라 남작의 전공을 알렸다. 그리고 기라성 같은 제국군 장성들과 참모들이 부동자세로 지켜보고 있던 가운데, 제2군 사령관 술라 남작이 군부대신 비요크 백작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 무척이나 훌륭한 전공이었네, 술라 남작! 군신(軍神)의 가호를 받는 귀관이 이런 훌륭한 공훈을 세운 것은 우리 튜튼 제국에게 있어서도 커다란 행운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야! 황제 폐하께서도 귀관의 활약에 크나큰 만족을 표하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폐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게나! "
" 감사드립니다, 군부대신 각하!"
그렇게 의례적인 치하 뒤에 비요크 백작이 엄숙한 태도로 제국군의 훈장 중 최고 등급이라는 제국 대십자장(大十字章)을 술라 남작의 제복 가슴에 부착해 주었다. 마침 찬란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훈장을 수여받은 술라 남작은 과분한 영광이라는 의례적인 말을 마친 뒤 그 뒤로 살짝 물러섰고, 그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마침 자신의 순서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비요크 백작 앞으로 성큼 다가서기에 이르렀다.
" 73연대장 비다르 폰 트롬스 대령입니다! 벨지크 왕국 뵈르네 지방의 국경 요새인 르와예를 점령하였으며, 또한 샤또 빌레에서 브루기아 공국군을 격파한 바 있습니다! 곧이어 비헬르에서 아라곤 왕국군을 섬멸한 것도 모자라 벨지크 왕국의 서부 국경 요충지라 할 수 있는 몽스까지 함락시켜 플람스를 도모하는 데에 크나큰 이바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군부대신의 전속 비서가 비다르의 전공을 술술 읊어대자, 비요크 백작이 고개를 끄떡이며 마찬가지로 비다르의 제복 가슴 부분에 제국 대십자장을 부착해 주었다.
" 마침 황제 폐하께서 귀관의 활약에 크나큰 만족을 표해주시었네! 그러니 결코 폐하의 은공을 잊지 말고 제국의 성세에 크나큰 기여를 하길 바라겠네!"
" 명심하겠습니다, 군부대신 각하!"
" 그리고..."
잠시 말문을 멈춘 비요크 백작이 비다르의 제복에 부착된 은빛 계급장과 휘장을 훑어보더니 이내 전속 비서에게서 건네받은 금빛 계급장과 휘장으로 교체해 주었다.
" 크나큰 전공을 세웠으니 진급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 물론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진급 속도를 보인 귀관의 경우엔 다소 논란이 있긴 했지만 폐하의 뜻에 따라 귀관의 진급이 결정될 수 있었네! 그러니 부디 황제 폐하의 은혜를 망각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야!"
그렇게 장성으로 진급하게 된 비다르의 은빛 망토마저 금빛 자수가 새겨진 망토로 교체되어 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국군 장성들과 참모들이 놀라움과 부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비다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기 어린 시선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도 간혹 있긴 했지만, 비다르가 단순히 귀족 사관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런 특전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다수 장교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비다르의 훈장과 진급에 대해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할 수 있었다.
" 아주 잘 어울리는군, 비다르 장군. 곧 그 계급에 어울리는 '보직' 또한 부여될 터이니 기대하고 있게나."
그렇게 비요크 백작이 금빛 계급장과 휘장, 금빛 자수가 새겨진 망토를 두른 비다르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군단장 보직을 살짝 암시해 주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을 위해 훈장 수여식이 진행되고 있던 가운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프란츠는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 란데스후트에서 만났던 만네르하임 장군의 '은십자장'을 욕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던 프란츠는 저 훈장이야말로 명예의 표본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국의 정식 군인이 아닌 프란츠는 안타깝게도 훈장 수여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남부의 영지군을 이끌고 전쟁의 승리에 이바지했다고는 하지만 귀족들이 이끄는 영지군을 향한 역차별에 관해 군부의 대다수 군인들은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칠 뿐이었고, 프란츠 역시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황실과 남부의 대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인가...
프란츠는 이곳에 오는 것을 거부하고 남부의 크로센 공작령 바르텐슈타인 주(州)로 되돌아간 오스발트 남작을 떠올리며 어쩌면 자신 역시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살짝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제복에 훈장을 단 뮐러 폰 다르케멘 중령이 프란츠 곁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마침 그의 감청색 제복 가슴 부분엔 금강석이 박힌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이 부착되어 있었다.
" 훈장을 받지 못해 서운해 보이는구려, 프란츠 남작."
이처럼 술주정뱅이답지 않게 프란츠의 감정을 예리하게 알아챈 뮐러 중령을 힐끔 바라보며 프란츠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저 역시 이곳에 오지 않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뮐러 중령."
" 하지만 아직 '진짜'가 남아 있지 않소, 황궁에서 열리는 '승전연' 말이오? 이깟 훈장 하나 받는다고 해서 귀족 사회에서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소이다."
그렇게 뮐러 중령이 승전연 이야기를 꺼내며 프란츠의 마음을 다독여 주려는 듯하자, 마침 황실에서 주관하는 승전연에 참석하기 위해 쾨니히스베르크에 도착한 로트링겐 공작과 이복형인 베른하르트 백작을 떠올리며 프란츠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것이 훈장을 받는 것보다는 더욱 가치가 있다고 여긴 프란츠는, 마침 서훈식이 끝나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던 비다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기이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계급과 복장을 갖추어 어색해 보일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비다르에겐 그 모든 것이 잘 어울려 보였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정복자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듯 비다르의 패도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금빛 계급장과 휘장, 금빛 망토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프란츠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비다르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주었다.
" 진급을 축하드립니다, 비다르 경. 이처럼 영광의 길로 들어섰으니, 경의 가문에서도 크게 기뻐할 것이 분명합니다."
" 과연 트롬스 가문에서 기뻐하려 하겠소? 마침 작위와 영지를 받게 된다면 새로운 성씨를 부여받게 될 터인데 말이오."
마침 뮐러 중령이 비다르의 작위 수여식을 언급하고 나서자, 프란츠가 다소 놀란 눈빛으로 비다르와 뮐러 중령을 번갈아 바라봤다.
" 이번에 작위까지 받으신다는 말입니까? 이거 정말 영예로운 일입니다, 비다르 경!"
그렇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던 프란츠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비다르가 프란츠와 뮐러 중령에게 물었다.
" 마침 오늘 저녁에 있을 황실 승전연에 우리 세 사람 모두 참석하게 되겠군요."
" 사실상 술라 남작과 군부대신 각하, 그리고 우리 세 사람 이렇게 다섯 명뿐이라 할 수 있겠지. 마침 3군 사령관 알트마르크 남작은 알메리아에 틀어박힌 채 나오질 않고 있으니, 승전연에 참석할만한 귀족 사관은 이게 전부라 할 수 있소이다."
그렇게 뮐러 중령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전쟁과 관련하여 승전연에 참석할 수 있는 군인은 이 다섯 명뿐이라 할 수 있었다. 황실 연회에 들어갈 수 있는 평민은 사실상 시종과 시녀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분 질서가 확립된 이 세상에서, 아무리 공을 세운 평민 장교라 해도 황실에서 주관하는 승전연에는 참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참, 그전까지 시간도 남고 하니... 저희 가문의 저택을 방문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희 아버님께서도 두 분을 기꺼이 환영해 주실 겁니다."
이처럼 프란츠가 두 사람을 가문의 저택으로 초대하고 나서자 비다르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정중히 사양의 뜻을 밝혔다.
" 죄송합니다만 급하게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제게 큰 도움을 준 '친구'가 있어서 말입니다."
" '몽스'를 뜬금없는 인물에게 빼앗긴 소감이 어떤가?"
서훈식이 끝난 이후 군부대신이 주관하는 작은 연회가 열린 가운데, 제복의 가슴에 '금십자장'을 부착한 4군단장 안톤 바이센베르거 장군이 2군단장 마르틴 마리우스에게 다가와 장난스레 물었다. 마침 마리우스 장군의 제복에도 '금십자장'이 부착되어 있었다.
" 유감스럽게도 저 '검은 머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자네 덕분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리우스 장군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멀찍이 떨어져 있던 비다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사실상 바이센베르거 장군의 통제에서 벗어나 막무가내로 몽스까지 진격해 보인 비다르에게 전공을 빼앗겼다 생각하고 있던 마리우스 장군은 하급자를 꽉 잡지 못한 바이센베르거 장군에게 내심 원망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마리우스 장군을 바라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바이센베르거 장군이 갑자기 몸을 기울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 지금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참모차장과 함께 파펜 장군을 찾아뵐 생각이네."
" 파펜 장군을...?"
군부 내 혁명파 장성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파펜 장군은 현재 황립 사관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며 은퇴 수순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먼 과거에 자신을 디아스 대륙으로 파견보냈었던 존재를 떠올리며 마리우스가 바이센베르거에게 은밀한 태도로 물었다.
" 그쪽 일은 대체 어찌 되어가고 있다 하던가? 우리가 병력을 꽉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일을 벌여야 승산이 있을 터인데..."
" '평민 의회'라는 조직과 계속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감성'이 부족한 사람들과 일을 함께 도모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네. 그 거창한 조직명과는 달리 토론이나 할 줄 아는 민간인들에겐 대담성과 배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렇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바이센베르거 장군조차도 기회를 포착하여 일을 진행시킬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평민 의회'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 자네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내 전혀 몰랐네. 그러게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세상을 뒤엎어버리는 일은 우리 같은 군인들만으로도 족하다고 말이야."
" 아니, 세상이 그리 단순한 것이었다면 내 일찌감치 자네의 의견에 동조했을 것이네. 우리 행동에 명분과 정당성이 부여되려면 반드시 그들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지, 그들의 느려터진 행동과는 별개로 말이야."
그렇게 여전히 평민 의회를 필요로 하는 듯한 바이센베르거 장군에게 마리우스 장군이 시큰둥한 태도로 입을 열어 말했다.
" 이렇게 그자들과 함께 발을 맞추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간 곧 우리마저도 은퇴하고 말 것이네. 더욱이 우리 다음 세대의 사관들 중엔 황제를 추종하는 이들이 제법 적지 않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단 말일세."
그렇게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던 비다르와 뮐러 중령,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주던 루돌프 슈타이너 대령과 페터 레바테인 대령을 가리키며 마리우스 장군이 말했다.
" '기회'란 것은 항상 과감한 자를 사랑하는 법이지. 부디 평민 의회의 의원이라는 자들이 어려움에 봉착한 가운데서도 기회를 기막히게 포착하길 바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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