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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무림에 인방이 생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영등포구민
작품등록일 :
2020.06.01 21:04
최근연재일 :
2020.07.24 16: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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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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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3화 이건 좀 이상한데? (1)

DUMMY

다시 밤이 찾아왔다. 지난 하루는 정말 정신없이 돌아갔다. 당장 백수련을 구한 게 열두 시진 전이다. 옆집에 넘어가 그녀를 구한 것. 그리고 오늘이 되어 개방에 정보를 찾으러 간 사이 집이 부서지고 유명세와 백수련이 납치당한 것. 다시 종사회로 쳐들어가 동산일을 깨부수고 둘을 구출한 것.


유현인은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을 따라온 항주의 군중, 그리고 방송에 접속한 수천 명의 시청자들 앞에서 보여준 자신의 무대. 그 순간의 짜릿함은 벼락같이 강렬했다.


하지만 이제 무대는 막을 내렸다.


‘잠이 안 오네······.’


유현인은 정원으로 나와 기다란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녹림 소탕에서 희미하게 느꼈던 감정이 오늘도 다시 느껴졌다. 사람들의 시선, 환호. 다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희열. 하지만 진짜 자신을 자극하는 건 그런 자아실현의 욕구가 아니었다. 바로 항상 낯선 세계를 살아간다고 느껴진 그 이질감이 내공 대래비를 통해 사라졌다는 것.


유현인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은 현대와 비슷한 내공 대래비를 통해 전생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내공 대래비가 이방인인 자신과 이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고리라는 것을.


‘나는 왜 환생했을까? 왜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현대 문명의 산물들이 여기서 다시 나타났을까?


유현인은 달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알 수 없다.


“유 소협?”


그 때 등 뒤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유현인은 뒤를 살짝 돌아봤다. 유현인의 입이 열렸다.


“백 소저. 안 주무시나요?”


다가온 사람은 백수련이었다. 생활용품이나 옷가지가 이 집에 하나도 없는 관계로 백수련은 유현인의 무명옷을 빌려 입고 있었다. 흰 옷감에 달빛이 반사되어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예, 많은 일을 겪고 나니 쉽게 잠이 오지 않네요. 잠시 앉아도 될까요?”


유현인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련은 사뿐사뿐 다가와 유현인의 옆에 살포시 앉았다. 백수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 소협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예, 제가 좀 대단하긴 하죠.”


뻔뻔한 유현인의 대답에 백수련이 피식 웃는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아요.


“지금 일이 꿈만 같네요. 그저께 밤만 해도 바로 옆 집에서 울고 있었는데.”


“유 소협, 오라버니라 불러도 될까요?”


유현인이 그 말에 백수련을 쳐다보자 그녀가 작게 덧붙인다.


“유명세 소협과 같은 성씨를 쓰잖아요. 둘 다 유 소협이라 부르니 헷갈릴 것 같아서······. 말도 편하게 해주셔도 돼요.”


유현인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백수련의 입이 살짝 떨어졌다 다시 닫힌다. 뭐라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듯했다. 유현인은 그런 낌새를 눈치챘지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숨을 고르며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힌 백수련이 마침내 말했다.


“오라버니는 저를 왜 구해주신 건가요?”


“······”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오라버니가 저를 구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해주셨죠. 그 과정에서 유명세 소협이 납치당하고 집도 부서졌고요. 그렇게 여러 가지를 감수하고 행동하신 이유가 있을 텐데 저는 그걸 알고 싶어요.”


백수련은 한 호흡도 쉬지 않고 단번에 긴 문장을 모두 내뱉었다. 뭐라 말할지 오랫동안 준비한 것 같았다. 유현인은 고개를 돌려 백수련을 쳐다보았다. 화장을 지운 민얼굴은 이틀 전 밤에 봤던 것처럼 퇴폐미가 넘쳤지만, 자세히 보니 그 안에는 아직 앳됨이 남아 있었다.


유현인이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백수련이 얼굴을 바닥으로 떨군다.


“제 몸을 원하신다면···”


백수련이 그렇게 말하려는 찰나 유현인이 입을 열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저는 괜···.. 네?”


백수련이 다시 유현인을 쳐다봤다. 그녀의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었다. 이때까지 백수련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종사회, 그리고 종사회가 붙여준 기녀들의 교육에 따르면 항상 사내는 여자를 원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수련아, 너는 분명 아름다워. 얼굴도, 몸도. 너 같은 미녀가 동침하자면 나는 환영이야.”


유현인이 씩 웃는다. 노골적인 표현에 백수련의 얼굴이 붉어진다.


“하지만 그게 너를 구한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야. 네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사실대로 말했으니까 그걸 이해하는 건 이제 네 몫이야.”


“그런가요······.”


백수련은 생각했다. 옆에 있는 이 잘생긴 오라버니는 정말 이상하다. 바깥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본 건 아니지만 자신이 알던 그 누구와도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이상한 오라버니가 없었다면 자신은 다시 진심으로 웃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라버니는 옛 설화에서 나오는 어린 신선 같네요.”


“신선?”


“네.


유현인이 문득 말했다. 그의 눈은 밤하늘을 향해 있지만, 시선은 하늘 너머 다른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수련아, 너는 오백 년 전의 과거 중원이 어땠는지 알고 있어?”


“오백 년 전이요?”


백수련은 풍류를 즐긴다는 사내들과 대화하려면 역사에도 해박해야 된다는 기녀의 말에 따라 책을 열심히 읽었었다. 백수련의 기억이 원, 송, 오대십국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오백년 전의 왕조에 다다른다.


“당(唐) 대 아닌가요?”


유현인이 말했다.


“맞아. 당 제국이지.”


“당대(唐代)와 비교해 지금의 대명(大明)은 얼마나 바뀐 것 같아?”


“글쎄요···. 천자도 바뀌었고 중원의 영역도 훨씬 넓어졌죠. 저희가 있는 이 항주도 당대에는 시골이었다 들었어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건 바뀌지 않았지.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자라난 곳에서 떠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머물러. 해가 뜨면 날이 밝아지고, 해가 지면 어둠이 찾아오고.”


백수련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요? 그래도 내공 대래비가 생긴 덕분에 지금은 항주에서도 북경에 장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바로 볼 수 있답니다.”


“그건 그래.”


유현인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오백 년 뒤의 미래는 어떨 것 같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백수련이 잠시 고민했다.


“대명(大明)은 강성하니 오백 년 뒤의 미래에도 황조를 이어가지 않을까요?”


유현인이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에 저 멀리 왜(倭) 너머 사만 리에 달하는 거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고 바다를 건너면 중원만한 새로운 대륙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네?”


“하늘을 나는 거대한 강철관을 타고 하루 안에 사만 리를 이동할 수 있다면?”


“······. 역시 아까 말한 대로 오라버니는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네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상상 하지 않아요. 무인들은 무공 이야기, 서생들은 옛 글귀 이야기만 하죠.”


유현인이 픽 웃었다.


“글쎄. 그런 생각이 많이 나네. 이제 들어가서 자자. 너무 늦었어.”


“네, 오라버니.”








며칠 뒤 유가장


유현인은 자신의 집에 유가장(劉家莊)이름을 붙였다. 유씨 두 명이 사니 유가장이란 단순한 이유였다. 망가진 건물은 사람을 불러 다시 원래대로 고쳤고 부서진 집기들은 원래 샀던 물건들을 다시 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현인이 가진 돈은 한 푼도 나가지 않았다. 비용을 그대로 종사회에 청구했으니까.


그 전과 달라진 점은 식구가 하나 늘었다는 것. 어차피 둘이 살기에 원래 넓은 집이다. 남는 방 하나에 백수련이 들어와 살기로 했다.


어제도 저녁에 술을 거나하게 먹은 탓인지 유현인은 늦게 일어났다.


“아이고 머리야······”


사실 숙취는 없다. 그만큼 단련된 육체와 내공의 소유자에게 숙취가 있을 리가. 하지만 유현인은 그렇게 같이 어울리고 즐기는 게 즐거웠다. 괜한 엄살을 부리는 것도.


정방(正房)에는 유명세와 백수련이 수정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현인이 배를 긁적이며 나오자 정신없이 내공 대래비를 보던 둘이 고개를 들고 인사한다.


“공자님, 일어나셨어요?”


“오라버니, 좋은 아침이에요.”


“하암··· 너희는 안 피곤하니? 아침부터 수정구 보고. 자꾸 가까운 것 보면 시력 나빠진다?”


유현인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침이 아니라 대낮인데요?”


유명세의 대꾸에 유현인은 정원에 보이는 하늘을 쳐다본다. 그렇다.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그러냐?”


머쓱하게 대꾸한 유현인은 둘이 앉아있는 탁상에 자기도 끼어 앉는다.


“대낮부터 뭘 그리 재밌게 보니?”


유명세가 수정구의 각도를 돌려 유현인도 같이 볼 수 있게 준비했다.


“이번 달 절강십대사건에 공자님이 들어갔습니다!”


“절강십대사건?”


유명세가 목을 가다듬는다. 크흠 하는 소리는 그가 설명하기 전 준비하는 신호였다.


“목위기문(木暐記門)의 부문주인 지낭룡(智囊龍) 하문진(荷雯振)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유현인은 당연하게도 고개를 저었다.


“목위기문은 개방이나 하오문 정도로 전 중원에 지부를 둔 방파는 아니지만 절강성과 강소성을 비롯한 동남지방 곳곳에 세력을 확장한 정보문파입니다. 다만 돈을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하오문이나 일종의 첩보활동을 하는 개방과 다르게,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정보 그 자체가 좋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할까요? 일종의 광(狂)이죠.”


“그런데?”


“그 부문주 하문진은 지낭룡이란 별호답게 대단한 오성을 지녔다고 해요. 하지만 그를 다른 무림인들과 차별화시켜주는 건 탁월한 현상 파악 능력입니다.”


“그래서?”


“에, 아무튼 그 하문진은 자신의 내공 대래비 방송에서 무림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에 관해 이야기하곤 하거든요. 그 중 하나가 매월 한 번씩 진행하는 절강십대사건입니다. 말 그대로 절강성에서 일어난 사건 중 영향력이 크거나 중요한 사건들을 정해서 발표하는 거에요.”


그렇게 말한 유명세는 수정구를 유현인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이 여러가지 종이가 붙어있는 판을 뒤에 두고 이리저리 설명하고 있었다.


-······ 이 진선생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그가 첫 방송을 진행한 곳은 항주 동쪽에 있는 영파라는 작은 곳입니다. 하지만······


그의 방송 전언창은 유현인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지낭룡이 말하는 거면 신뢰도 몇 할 정도 되느냐?

-그런데 확실히 신기하긴 하네. 사파의 무공은 아닌 것 같은데 항주 근처에 이런 젊은 고수를 길러 낼만한 곳이 있나?

-반로환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무공 수준과 외모의 괴리가 너무 심함.

-반로환동은 니미, 마지막 반로환동 사례가 이백 년 전임. 그게 그리 쉽게 튀어나오는 경지인 줄 아시나.


백수련이 말했다.


“저도 이 방송은 알아요. 제가 받는 사연에도 이런 유명한 사건에 관련된 것들이 종종 들어있거든요.”


“그래?”


그때였다.


쾅쾅!


누군가 유가장의 대문을 크게 두드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외침.


“진선생 유현인 댁 맞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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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5) +3 20.06.10 744 30 12쪽
10 9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4) +2 20.06.09 760 36 11쪽
9 8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3) +3 20.06.08 785 29 12쪽
8 7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2) 20.06.07 806 29 12쪽
7 6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1) +1 20.06.07 835 39 11쪽
6 5화 은거고수 +5 20.06.06 878 29 13쪽
5 4화 내공 대래비 (2) +5 20.06.05 907 34 11쪽
4 3화 내공 대래비 (1) +6 20.06.04 951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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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화 - 바뀌어버린 무림 (1) +4 20.06.02 1,178 34 11쪽
1 서장 +2 20.06.01 1,487 3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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