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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무림에 인방이 생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영등포구민
작품등록일 :
2020.06.01 21:04
최근연재일 :
2020.07.24 16:05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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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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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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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 여(女) 비재이 구하기 (2)

DUMMY

서호(西湖)는 단순히 서쪽에 있는 호수란 뜻이다. 간단한 이름답게 중원에 있는 서호만 기백 개에 달한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에 있는 것이었다.


항주 서호. 춘추시대 전설적인 미녀, 서시의 이름에서 따와 지어졌으며 소동파가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도 했다. 남송(南宋)의 명장, 악비(岳飛)의 묘인 악왕묘(岳王?), 그 유명한 서호용정차(西湖?井茶)를 생산하는 차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북의 북경이든 섬서의 장안이든 그 거리와 상관없이 풍류를 즐긴다 하는 사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닐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서호였다.


유현인 역시 항주에 오자마자 서호와 사랑에 빠졌다. 어릴 적에 기연을 찾는답시고 중원의 유명한 산들은 웬만하면 다 찾아다닌 유현인이지만 서호가 가져다주는 감성은 그에게도 특별했다. 오늘도 유현인은 서호 주변을 별 목적 없이 거닐다 집에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유현인은 이제 도로로 접어들었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 게 보였다.


“뭐지?”


어차피 그쪽이 유현인이 가는 방향이다. 유현인은 슬렁슬렁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하나의 싸움판이었다. 덩치 큰 근육질의 거한과 평범한 체구의 사내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사람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거한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그건 그냥 실수였소! 분명 사과하지 않았소!”


유현인은 상대편을 보았다. 평범한 체구에 겉으로 봐서는 별로 특이한 건 없지만 묘하게 음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가 비웃듯 거한을 조롱한다.


“아니 아니지. 이미 벌어진 일에 사과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벌써 종사회의 이름은 모욕당했거늘.”


거한이 자신의 이빨로 입술을 짓이긴다. 상대편은 이미 대화로 상황을 풀어나갈 생각이 없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비무지. 무인끼리 할 대화는 그것밖에 없지 않나?”


종사회(從邪會) 소속의 남자는 비열하게 웃는다.


“크크큭. 하지만 내 자비를 베풀어 병장기는 사용하지 않아 주마.”


그러더니 자신의 양손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린다.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몸짓이었다. ‘너 따위는 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거기에 담긴 조롱의 의미를 깨달은 거한의 얼굴에 분노가 어린다.


“좋소. 선공은 양보하겠소. 오시오.”


거한은 방어자세를 취했다. 종사회의 남자가 양 주먹을 쥐더니 보법을 밟으며 거한에게 접근했다.


주먹과 주먹, 발과 발이 교차하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거한은 외가계통의 무공을 익혔는지 근육을 활용해 전개하는 초식이 제법 패도적이고 기세가 강렬했다. 하지만 종사회의 남자는 평범한 체구임에도 거한의 공격을 거침없이 흘려냈다.


처음에는 전투가 호각으로 진행되는가 했더니 점점 종사회의 남자가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모양이다. 거한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고 종사회의 남자가 전개하는 공격은 거한이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로 충분한 타격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공의 차이였다.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유현인은 종사회의 남자의 얼굴, 그리고 목소리를 어디선가 한번 겪어본 것 같았다. 그는 전투를 감상하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며칠 전, 잠시 스쳐 지나갔던 무리가 떠올랐다.


‘홍희루에서 돌아오던 날 마주쳤던 무인 중 한 명이잖아?’


수련으로 얻은 뛰어난 기억력은 한순간 스쳐 지나갔던 남자를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저 종사회란 곳의 남자는 기루에서 돌아오던 날 스쳐 지나갔던 무리 중 한명이 분명하다. 그 순간에도 싸움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거한은 확연한 수세에 몰려 방어하기에 급급했고 종사회의 남자는 그런 거한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내공에 비해 초식의 숙련도가 너무 허접한데?’


겉으로 보기에는 종사회의 남자가 훨씬 뛰어난 무공으로 거한을 몰아붙이고 있다. 하지만 유현인의 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거한은 분명 이류 수준의 외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하는 종사회 사내의 초식 수준도 이류를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류 수준을 뛰어넘는 내공이 초식에 담겨 원래 무공 수준을 숨겨주고 있었다.


‘다리 한 짝은 통나무인데 한 짝은 젓가락 같은 꼴이군.’


내공과 초식은 서로 도와가며 같이 성장해야 한다. 균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유현인의 눈에는 거슬렸다.


“욱..!”


거한이 마침내 각혈했다. 내공이 담긴 종사회의 주먹질, 발길질을 그의 외공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무너지는 거한에게 무자비한 구타가 가해진다.


퍼버벅하고 육신을 두들기는 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진다.


“가벼운 시비 정도면 어련히 넘어갈만 하건만 종사회는 정말 자비가 없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거 참. 쯧쯧”


주변에 몰린 사람들의 반응은 종사회가 너무하다는 것이었으나 폭력을 가하는 사내에게 그런 것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쓰러진 거한의 눈이 뒤집어지고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종사회의 남자는 그제야 폭력을 멈췄다. 그리고는 거한에게 침을 퉤 뱉었다.


“흥, 감히 종사회(從邪會)에게 건방지게 굴다니. 목숨만 붙여주는 걸 나의 큰 자비로 알아라.”


그러고는 유유히 자리를 뜬다. 비무를 가장한 구타는 그렇게 끝났다. 모여든 군중은 흩어졌고 공터에는 유현인, 그리고 기절한 거한만이 남아 있었다.


“에휴.”


유현인은 한숨을 쉬었다. 앞뒤 사정을 모르는 아까는 멋대로 끼어들기 그랬다. 자신이 아는 사람도 아니고. 하지만 이렇게 홀로 얻어터져 기절한 거한을 보니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이야기나 들어보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아무 사연이라도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인은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서호로 갔다. 그리고 호숫가에 열린 박 중 아무거나 대충 파내 호숫물을 담아 거한에게 뿌렸다.


거한의 입에서 흘러나온 거품이 호숫물에 씻겨나간다. 차가운 수기(水氣)에 거한이 정신을 차린다. 눈을 끔뻑끔뻑하던 거한의 눈에 유현인이 들어왔다. 거한이 말했다.


“소협께서 저를 깨워주셨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백주대낮에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시비가 걸려 싸우나요?”


유현인이 물었다. 종사회를 떠올린 거한의 얼굴에 분개가 떠오른다.


“종사회는 다 개자식들입니다!”


“종사회?”








유명세도 항주에 온 뒤로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이번 절강성에서 기연애호가님이 보내주셨어요. 어머. 이 사연은 보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네요. 그러면 낭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명세의 앞에는 내공 대래비 수정구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아리따운 여인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여인을 바라보는 유명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랬다. 유명세의 새로운 취미는 여촬 시청이었다.


[저는 이번에 새로 항주에 이사 왔습니다···.]


“저도 항주에 산답니다. 항주에 오신 걸 환영해요.”


[원래 떠돌이처럼 중원 곳곳을 떠돌아다니다 우연히 행운을 만나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주 물가가 좀 비싸지만 행운 덕분에 충분히 감당할 정도는 되고요.]


“아 정말요? 도대체 어떤 행운을 만나셨길래? 정말 궁금해요.”


여촬, 비취화(翡翠花) 백수련은 유명세가 보낸 사연을 읽으며 자신의 의견과 반응을 덧붙였다. 시청자는 팔백 명 정도로 소문파급인 비재이였지만 특유의 상냥하고 조곤조곤한 말투 덕분에 고정적인 추종자층이 탄탄했다.


“아, 이 좋은 걸 내가 왜 예전에는 외면했을까?”


유명세가 중얼거렸다. 실제로 유현인과 처음 만났을 땐 그는 여촬을 싫어했다. 별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타고난 외모와 성별로 자신보다 훨씬 잘나가는 모습에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유현인 덕분이었다. 여촬? 뭐 어때. 자신이 모시는 공자님은 그 방송하는 소저들보다 방송 잠재력이 무궁무진한데. 본격적인 첫 방송에서 천 명에 가까운 시청자를 끌어모은 게 유현인이다. 자신이 모시는 공자님이 그녀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느낀 유명세는 더는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


항주로 온 다음 유명세도 유현인을 따라 내공 대래비 시청을 하며 시장조사를 도왔다.


‘명세야, 평소에 너가 보지 않는 방송도 다양하게 살펴봐. 그러다가 좋은 발상이 떠오를 수도 있잖아?’


유현인의 말에 유명세는 자신이 보지 않던 여촬을 이리저리 구경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 비취화, 백수련이라는 비재이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내공 대래비 수정구를 침 흘리며 바라보는 유명세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뭐 보냐?”


“히엑!”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돌아보는 유명세. 거기에는 유현인이 있었다.


“또 걔 보냐?”


유명세는 머쓱하게 웃었다.


“예..예.. 보다 보니 이게 은근 재밌네요. 같은 항주에 산다니까 동질감 같은 거도 느껴지고요.”


“그래?


“그런데 공자님, 방송은 언제 다시 하실 예정이십니까?”


유명세가 물었다. 유현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딱히 마땅히 방송할만한 내용이 없네.”


“그냥 방송 켜는 건 어떨까요?”


유현인이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듯 유명세를 쳐다봤다.


“그, 제가 여촬을 보면서 느낀 건데요. 딱히 뭔가를 안 해도 예쁜 사람은 보게 되더라고요. 공자님도 엄청 잘생기셨잖아요. 계속 쉬기도 좀 그러시면 무작정 켜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흐음.”


유명세가 덧붙인다.


“저번에 청랑채 소탕 뒤로 공자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을걸요? 근황도 말해주고, 시청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걸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어보거나, 의뢰를 받거나 해도 되고요.”


일리있는 말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삼일 안에 한번 방송 한번 켜 보자. 도시랑 호수 구경도 이만하면 충분히 한 것 같아.”


“넵!!”


“그런데 명세야, 혹시 종사회라고 들어봤니?”


“종사회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너, 홍희루에 갔던 날 기억하니?”


“헤헤. 당연히 기억하죠. 참 좋았었는데.”


“그러면 그 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스쳐 지나갔던 무인 무리도 혹시 기억해?”


“아뇨···. 사실 홍희루에서 나오고 난 다음은 술에 취해서 잘 기억이 안 나요.”


유현인은 일련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날 밤 스쳐 지나가며 들었던 여자와 폭력에 관한 대화. 그리고 그 무리 중 하나가 오늘 서호에서 벌인 비무를 빙자한 구타.


유명세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름을 보아하니 사파인 것 같은데. 왠지 느낌이 썩 좋지는 않네요. 사파가 다 그렇지만.”


“그렇지? 나도 뭔가 불쾌하더라니까.”





밤이 되어 유명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현인은 자신의 방이 아닌 지붕의 용마루로 올라갔다. 주변 건물보다 높게 지어져 있는 자신의 집에서 구경하는 항주의 밤은 참 아름답다.


유현인은 용마루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잠들지 않는 항주의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네.”


그 때 문 열리는 소리와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유현인의 귀가 방향을 순식간에 파악한다. 바로 옆집이다. 그쪽의 정원을 가로지른 발소리는 대문 열리는 끼이익 소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자의 흐느끼는 울음 소리.


“흑··· 흑···.”


홍희루에서 돌아오던 날 옆 집 앞에서 울고 있던 그 소저다.


‘이 밤에 도대체 뭐야?’


그냥 모르는 척하고 넘기기엔 유현인의 청각은 너무 예민하다. 유현인은 신형이 용마루에서 솟구치더니 대문 앞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요란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흑··· 끄윽···”


풀어헤친 머리의 소저는 여전히 울고 있다. 유현인은 유명세가 그날 했던 것처럼 말을 걸었다.


“소저?”


작가의말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으면 추천과 댓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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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여(女) 비재이 구하기 (1) +1 20.06.13 704 33 11쪽
13 12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7) +4 20.06.12 728 32 12쪽
12 11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6) +3 20.06.11 721 35 11쪽
11 10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5) +3 20.06.10 742 30 12쪽
10 9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4) +2 20.06.09 759 36 11쪽
9 8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3) +3 20.06.08 782 29 12쪽
8 7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2) 20.06.07 804 29 12쪽
7 6화 첫 방송은 녹림소탕 (1) +1 20.06.07 833 39 11쪽
6 5화 은거고수 +5 20.06.06 876 29 13쪽
5 4화 내공 대래비 (2) +5 20.06.05 904 34 11쪽
4 3화 내공 대래비 (1) +6 20.06.04 949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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