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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무림에 인방이 생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영등포구민
작품등록일 :
2020.06.01 21:04
최근연재일 :
2020.07.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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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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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화 은거고수

DUMMY

“그런 기능이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송출용 수정구를 제대로 보여 드린 적은 없는데······”


유명세는 갸웃하며 자신의 송출용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송출용 수정구에는 실시간으로 방송을 송출하는 기능 외에도 이때까지 자기가 했던 방송들을 저장하고 재생해볼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유명세는 자신이 했던 방송 중 마지막 계림의 녹화분을 틀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광서성 계림이구요. 오늘의 방송은 대협님들과 함께 은거기인이 숨겨놓은 비급, 기연, 영약을 찾아다니는 기연 탐방 방송입니다. 애호(愛好)와 구독! 눌러주시는 대협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그가 바위산을 뻘뻘 거리며 올라가는 모습. 이런저런 대사를 읊는 모습. 실수로 접속했다던 안휘지산무산일호의 무심한 전언까지 수정구에서 재생된다.


유현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가는 걸 본 유명세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시청자가 하나도 없을 때 혼자 떠드는 게 보기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며 살아가는 동물인데 반응 없는 허공에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냥 재미가 너무 없다.”


“······”


“자, 네 생각에 누가 네 방송을 볼 것 같은데?”


유명세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별로 생각한 적이 없던 주제다.


“고수가 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요? 다들 기연을 찾아서 고수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에 그런 걸 실제로 찾아낸 적이 있어?”


“없습니다.”


“그럼 방송을 하기 전에 어디서 어떻게 찾는 걸 방송하겠다고 계획은 세웠고?”


“아뇨······.”


“무작정 기연을 찾겠다고 방송을 키고 돌아다녔다고?”


“네······.”


유명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진다.


“사람들이 방송을 왜 본다고 생각해?”


“음··· 재밌으니까요.”


“근데 네 방송은 재미가 하나도 없지. 비재이가 이름있는 문파급도 아니고 호기심에 시청하고 싶지도 않아. 뭔가 사람들을 끌어당길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럼 일단 제목부터 바꿔보자.”







날이 어두워지고 둘은 산속에서 야영 준비를 했다.


[방송이 시작됩니다.]

[방송명 :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은거고수가 구해준 썰 푼다]


“저··· 근데 이게 맞는 걸까요? ”


“지금 너한테 뭐가 있냐? 일단 해봐. 손해 볼 거 없잖아.”


“그거야 그렇죠.”


유명세는 유현인이 하는 말에 서서히 끌려가는 자신을 느꼈다. 눈앞의 잘생긴 공자는 첫 등장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계림의 절벽 사이 동굴, 잘생긴 외모, 수준을 벗어난 경공술. 거기다 분명 내공 대래비를 자신을 통해 처음 접한 게 틀림없건만 그가 툭툭 던지는 말은 유현인에게 어떤 통찰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유현인도 나름 생각한 바가 있었다. 처음 환생하고 난 다음에는 정말 혼란스러웠었다. 하지만 기연을 찾아다니다 동굴에 갇히기 전, 그러니까 약 15년 정도의 시간 동안 한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바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그건 과거나 현재나 변함이 없다는 것. 내공 대래비 역시 소름 끼칠 만큼 현대의 인터넷방송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속칭 ‘어그로’ 요소들은 분명 여기서도 통용될 것이다.


방송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유명세가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유명세는 반신반의했지만 내심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젊은 은거기인이든 뭐든 내공 대래비 방송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유현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반 다경(약 7분)이 지나고 마침내 시청자 수가 공(空)에서 일(一)로 바뀌었다. 유현인의 첫 시청자다. 주장탕초육(注醬糖醋肉)이란 별호를 가진 첫 시청자는 들어오자마자 전언을 보냈다. 


-와, 외모 무엇? 이 공자님 완전 옥안(玉顔)이시네. 근데 은거고수는 어딨죠?


방송제목에 혹해 들어온 시청자인 모양이다. 유명세가 대답했다.


“아, 네. 제 옆에 있는 이 미공자가 바로 은거고수십니다. 제가 계림에 있는 호암(呼岩) 쪽의 봉우리에서 떨어질 때 이 공자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죠.”


-???? 저 공자가 은거고수라고요?


짧은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도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목 신기하네. 은거고수?

-아니, 제대로 된 설명 좀.

-저 젊은 공자가 고수라는데?

-이립도 안되어 보이는데 고수?



자신이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시청자들의 전언. 유명세는 처음 접해보는 여러 사람의 관심과 일방적인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뻘뻘 땀을 흘리며 이런 저런 설명을 해보려 하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말은 버벅였다. 하지만 유현인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듯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다.


시청자들은 그런 상황이 답답했는지 전언들의 어조가 호기심에서 비난으로 변해갔다.


-무락(無樂)이네. 헛소리할 거면 나간다.

-제목조어(釣漁) 아님?


시청자 수가 열 명이 넘고 스무 명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유현인은 지금이 서사구조의 위기 단계라 직감했다. 호기심 끄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야기의 전개는 유명세의 약간 덜떨어진 모습을 통해 전개되었다. 시청자들이 점점 더 들어오고 제목조어에 분노한 시청자들은 방송을 이탈하기 전이다. 이제 위기가 해소되고 이야기가 절정에 이를 차례다.


유현인이 말했다.


“내가 은거고수 맞아. 십이 년 동안 계림에 처박혀서 폐관 수련하다 이 녀석이 내가 있는 절벽으로 떨어진 거고.”


처음 입을 연 유현인에게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분위기가 웅성웅성한 와중에 시청자 하나가 공격적으로 전언을 보냈다.


-아 그래서 님이 누군데요?


“나? 유현인.”


-님이 은거고수라고요? 허여멀건 게 고수와는 거리가 아주아주 멀어 보이는데. 말도 안 되는 견음(犬音) 그만 하시고 악성조어(惡性釣漁)로 아부리가에 신고합니다.


유현인이 유명세에게 귓속말했다.


“조어가 뭐냐?”


“물고기를 낚는다는 뜻으로 일부러 미끼를 뿌려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겁니다. 어떡하죠? 아부리가에서 신고가 많이 들어온 비재이는 방송 일시정지를 내릴 수도 있는데.”


“기다려 봐.”


유현인이 말했다. 공격적인 시청자의 별호는 ‘북극절정지존’이었다.


“북극절정지존,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가 진짜라고 납득하겠나?”


-님이 십이년 폐관수련한 은거고수라면 검강은 그냥 뽑아내시겠죠? 님 보니까 허리춤에 그래도 검이라도 차고 있는 것 같은데 검강 보여주면 내가 저잣거리 나가서 뇌려타곤 하면서 멍멍 짖을게요. 못하면 유명세, 유현인 둘 다 동행에 기고해 박제할 거고.


동행은 ‘내공동행’의 줄임말로 내공 대래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 그리고 소감문과 시청자들의 의견이 실어지는 일종의 잡지였다. 역시 아부리가와 협력하는 각종 상단들을 통해 전 중원에 유통되고 있었다. 만약 어떤 비재이의 큰 실수나 사고가 내공동행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면 그 비재이의 인기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등 이 잡지는 내공 대래비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곤 했다.


유명세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그러는 중에 시청자들은 점점 들어와 어느새 오십 명을 돌파했다.


-소협들 이게 무슨 상황?

-저 앞에 잘생긴 공자가 은거고수라는데요? 평범남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걸 구해줬대요.

-딱 봐도 이립도 안되어 보이는데 은거고수? 무슨 반로환동이라도 했나?

-그래서 지금 내기 걸렸잖소. 저 북극절정지존이 이기면 ‘동행’에 박제. 저 허여멀건 한 미공자가 이기면 시청자가 저잣거리에서 뇌려타곤에 멍멍 짖기로.

-哈哈哈哈哈哈哈哈哈哈. 꿀잼(蜂樂, 봉락)이구려.


북극절정지존이 전언을 보냈다.


-열부터 하나까지 센다. 그 전에 증명 못하면 동행에 박제야.


“저, 공자님. 어떡합니까? 동행에 박제되면 앞으로 방송 켤 때마다 조리돌림 하러 악성 시청자들이 찾아올 겁니다. 이대로 비재이 인생을 끝내고 싶진 않아요.”


유명세가 쥐죽은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유현인의 표정은 미동도 없다.


-삼

-이

-哈哈哈哈哈哈哈哈 넌 잘못 걸렸다 잘가라.

-일


시청자들의 수읽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유현인이 벼락과 같은 속도로 발검술을 펼쳤고 동시에 한 척(尺)이나 되는 푸르스름한 검강이 검을 타고 형성되었다.


-헐······


“헐······.”


시청자들과 유명세의 입에서 단 한 어절만이 흘러나왔다. 북극절정지존도 애처로운 한마디를 뱉었다.


-아······.


그러고는 애써 현실부정을 하며 발악한다.


-아니, 저거 조작일 수도 있지 않나? 따로 특수장비를 준비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진짜 검강이 아닐 수도 있지. 증명해봐 증명.


유현인은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검강이 뻗어나온 검을 눈앞에 펼쳐진 숲을 향해 겨냥했다. 공격은 느리지만 빨랐다. 일부러 시청자들이 검을 볼 수 있게 천천히 휘둘렀지만,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쾌(快)가 녹아 있었다.


소리없는 유현인의 일초에 맞은 숲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날카롭게 절단당한 나무들이 단면을 통해 미끄러지더니 우지끈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전방 반경 다섯 장의 모든 나무가.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누군가 말했다.


-대박······.






하남성 허창에 사는 주진경은 내공 대래비의 극렬 애호가였다. 선대(先代)로부터 대대손손 금수저를 물려받아 안 해본 게 없고 못해본 게 없는 집안의 아들. 질리지 않는 주색잡기도 질려가는 와중 무림에 나타난 내공 대래비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온갖 상위권 비재이들의 방송을 섭렵하는 것도 모자라 여러 개의 시청용 수정구를 두고 새로 등장하거나 떠오르는 하고(下庫) 비재이들의 방송까지 시청하는 주진경. 그는 평소와 같이 시청자 수 백 명 미만으로 조건식을 걸어둔 상태로 방송 목록을 훑어보고 있었다.


[전은래의 검법수련]

[비재이 : 전은래]

[시청자 수 : 일(一)명]


[하동의 내공단련]

[비재이 : 하동]

[시청자 수 : 공(空)]


[한주선의 마보자세]

[비재이 : 한주선]

[시청자 수 : 삼(三)]


‘와, 진짜 볼 거 없네. 역시 하고 비재이들은 어쩔 수 없나.’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수정구 화면을 쓱쓱 넘기는 주진경이다. 매번 이런 식이다. 제대로 된 문파도 없고 재주도 없는 뜨내기들이 내공낭비를 하며 아무도 봐주지 않는 방송을 송출한다.


‘내공이 아깝다 내공이.’


하지만 주진경은 습관적으로 하루에 몇번씩 살펴보고 있었다. 정말 가끔가다 등장하는 대형 신인들을 누구보다 먼저 자신이 감상할 수 있으니까. 자신의 안목으로 골라낸 신인 비재이가 중견문파나 대문파 급으로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주진경의 낙이었다.


그때였다. 특이한 방송명 하나가 주진경의 눈에 들어왔다. 방송을 송출한 지 얼마 안 됐는지 새 신(新) 표시가 대표 그림에 붙어있다.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은거고수가 구해준 썰 푼다]

[비재이 : 유명세]


“뭐야 이건?”


이때까지 본 적 없는 방송명이 주진경의 시선을 잡아끈다. 주진경은 홀린 듯 유명세의 방송에 접속했다. 평범한 산에 잘생긴 젊은 남자와 평범하게 생긴 남자 두 명이 앉아있다. 미공자는 무심한 태도였고 평범한 남자는 약간 긴장한 듯 굳어 있었다.


“얼굴 수준이 반안이나 송옥 뺨치겠구만.”


주진경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 이 방송이 뭘 하는 방송인지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설마 저 옥안공자가 은거고수라는 건 아닐 거고, 뭐하자는 거지?”


비슷한 심리상태를 가진 시청자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곧 전언 창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이거 악성조어(惡性釣漁)냐는 둥 뭐하는 방송이냐는 둥. 하지만 이어지는 일련의 소동과 유현인이 선보인 검강에 전언창은 말 그대로 얼어버렸다. 주진경의 몸도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대박이다!!!!’


바로 이거다. 저 옥안의 고수가 누구에게 사사하였는지 사문이 어떤지 그딴건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저 남자는 무조건 뜬다.


주진경은 확신했다. 그리고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종이와 붓을 꺼내 뭔가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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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은거고수 +5 20.06.06 877 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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