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 인방이 생김

나는 무림세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현대인의 기억을 가진 채로.

어딘지는 묻지 마라. 들어도 모를 이름없는 곳이니까. 무협 세상은 낯설고 발달이 덜 되어있고 아주아주 불편했지만 그런대로 살아갈만 했다.

화장실은 죄다 대소변이 발효되는 썩은 내로 그득하고 제대로 씻기 위한 세신 도구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인터넷도 없고 PC게임도 없고 내가 즐겨보던 너튜브, 아메리카티비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공이 있으니까.

아, 무공. 현생에서 제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무공이지. 대자연의 기를 받아들여 자신에게 저장하고 농축하여 인간의 타고난 한계를 돌파해 뻗어나가는 그 힘!

솔직히 현대에서 무협 소설을 읽을때만 해도 말도 안되는 동양 판타지라며 콧방귀를 뀌고 했지만 실제로 무사들의 비무를 봤을 땐 도저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공실존(內功實存)! 수련유득(修練有得)! 노력불배(努力不背)!

내공은 실존한다! 수련하면 성취를 얻으리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무림의 유명한 사자성어다.

거짓말, 다 구라다. 뼈대있는 문파의 제자로 어릴 때부터 정순한 내공, 현심한 무학을 배우고 자라던가. 그도 아니면 남을 다 씹어먹을 재능을 타고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던가.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둘 다 아니라면 너도나도 익히는 길거리 무공 정도를 익히다 그저 그런 무사로 무생(武生)을 끝마치는 게 무림의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 집은 무림세가긴 했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별다른 가전무공은 없었다. 유가검법, 유가보법이라고 있긴 했지만 이름만 그럴듯 하지 삼재검법, 육합검법 등과 그렇게 다르지도 않다. 가문의 기골이 선천적으로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크긴 해서 싸움을 조금 더 잘할 뿐이다.

나는 결심했다. 이대로 시골 깡촌의 범부로 늙어 죽을 순 없다. 모름지기 남자로 태어났다면 이름 한번쯤은 세상에 알리고 죽는 게 모든 이의 희망사항 아니던가? 그래서 기연을 찾아 떠났다.

성과? 있었다. 십만대산, 곤륜산, 화산, 태산 등 기연이 있을만한 곳들을 몇년 동안 뒤진 끝에 운 좋게 기연을 발견했다.

당연히 기연은 절벽 중간의 동굴에 있었고 나는 절벽에 추락하다 다행히 나뭇가지에 튕겨 동굴에 들어갔다.

무공을 수련해 매끈한 절벽을 뛰어오르는 성취를 얻기 전까지는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끝없는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길고 긴 세월을 동굴에서 수련을 하며 보내는 동안 무림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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