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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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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15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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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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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ROUND 16

DUMMY

3박 4일간 진행되는 전지훈련.

첫날은 마치 패키지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느슨한 스케줄로 짜여 있었다.

이훈 감독과 김동연 회장의 인사 이후 3시간의 자유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이 일정의 전부였으니까.


다음날 빡센 일정이 예정돼 있어서인지 선수들 대부분은 자유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는 것을 선택했다.

무통빨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랬을 테지.


내 체력은 무한인 상태.

어차피 자유 시간 동안 조인찬을 상대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기에 어슬렁거리며 체육관을 활보했다.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이 치러졌던 청양군민체육관에서 진행된 전지훈련.

선발전 때는 정신이 없어서 체육관을 제대로 구경할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신설 체육관답게 시설들의 컨디션이 매우 훌륭한 편이었다.

커다란 링도 두 개나 있고, 그 옆에는 쿠션감 좋은 샌드백이 무려 열댓 개가 설치돼 있다.


샌드백의 탄력 있는 자태를 보고 있자니 주먹이 간질거리는 게 느껴졌다.

살짝 타격감을 맛보기 위해 주먹을 갖다 댔는데.


파아아앙!


미쳤다.

박길태 관장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허름한 복싱장 천장에 매달린 축 늘어진 샌드백과는 타격감이 달랐다.

마치 성난 근육질 몸에 주먹을 내리꽂는 기분이랄까.


중독적인 맛에 몰입해서 운동을 한참 하고 있던 그때.


“저기, 학생?”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기에.


“네! 감독님!”


나는 서둘러 뒤돌아 이훈 감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최강인입니다!”

“아, 맞다. 강인이. 선발전 때 서한필을 이겼던 선수지?”

“맞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쉬러 갔는데 혼자 운동하고 있다니···.”

“샌드백을 보니 근질거려서 그랬습니다.”


내 말에 입맛을 쩝 다시는 이훈 감독.

나도 다른 선수들처럼 휴식을 취했어야 했나? 너무 튀는 행동을 했나?

고민한 것도 잠시.


“그렇게 샌드백만 두드려서야 운동이 되겠나?”


이훈 감독은 갑자기 입고 있던 겉옷을 바닥에 벗어던지고는 링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 설마···.


“올라와. 스파링 상대해줄게.”

“네?”


나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던 이훈 감독과 글러브를 맞부딪히는 기회를 얻다니.


“싫으면 말고.”

“아, 절대 아닙니다!”


나는 황급히 이훈 감독 따라 링 위로 올라갔다.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는 감독.


“그러고 싸운다고? 헤드기어, 마우스피스, 낭심보호대도 안 끼고?”

“아, 그게···. 사물함에 있어서요.”


체육관 구경하려고 온 거라 가볍게 붕대와 글러브만 챙겨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가방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올 걸 그랬나.


“그럼 매스 복싱으로 하지.”

“스파링으로 해도 괜찮습니다.”

“부상당할 텐데?”

“괜찮습니다.”

“젊다고 그렇게 몸 막 쓰다가 훅 간다.”

“복서의 길을 선택한 이상 두려울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훈 감독은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이 피식 웃었다.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그런가? 패기가 좋네. 좋아. 스파링으로 하지.”


나는 서둘러 링 위로 올라가 이훈 감독의 마주 편에 섰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현역 때와 다를 바 없는 몸을 유지하고 있는 이훈 감독.

실력은 그때만 못하더라도 그 사이 쌓인 관록은 무시 못 할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쫄 필요는 없다.

그래봤자 스파링 아니겠나?

어차피 훈련일 뿐이다.


나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는 상대를 만나면 회피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세계챔피언 출신인 박길태 관장과의 스파링에서 그랬듯이.


더욱이 각종 보호대 없이 스파링을 하면 더욱 악착같이 피할 수밖에 없다.

그럼 회피력 강화에 무조건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이훈 감독을 활용하겠노라 마음을 먹었는데.


퍼어어억! 퍼어억!


음?

박길태 관장을 상대하고 와서 그런가?

명색이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출신인데, 어째서 내 복싱 실력이 더 압도적인 것 같지?


//


유스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한지 올해로 5년차인 이훈.


저물어 가는 한국 복싱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지만, 지도자로서 그의 성적은 ‘F’ 수준이었다.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선수를 만든 건 손에 꼽고, ‘국민 스타’는 단 한 명도 창출해내지 못 했다.


‘이번엔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복싱연맹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었기에 이훈은 간절했다.

이번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지 못 하면 더 이상 자리를 보존하지 못 할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간절한 그의 바람과 달리 새롭게 선발된 유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서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열정이 있는 선수들이었다면 결코 자유 시간에 휴식을 취할 리 없을 테니까.


그가 답답한 마음에 체육관을 거닐고 있던 그때.


파아아앙!


강력한 샌드백 마찰음이 그의 귓가에 들렸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샌드백을 부실 듯이 때리고 있는 남학생.


‘엄청난 집중력이네. 근데 누구였더라?’


열댓 명의 유스 국가대표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하기에 조우의 시간이 길지 않았기에, 그는 직접 묻기로 결심했다.


“저기, 학생?”

“네! 감독님!”


분명 샌드백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목소리만 듣고 자신의 정체를 알았다는 사실에 이훈은 흠칫 놀랐다.


남학생의 입에서 나온 이름 ‘최강인’.

그제야 이훈의 뇌리에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서한필과 격하게 싸우던 남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이름이 최강인이었어. 체육관 소속이라고 해서 놀랐지. 근데 어째 그때보다 주먹이 더 매서워진 것 같은데.’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다.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선수인지 궁금했다.


전지훈련 첫날엔 어차피 할 것도 없었기에.

그는 설마 하는 마음에 스파링을 제안했고.


“좋습니다!”


최강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이훈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최강인의 복싱 실력이 선발전 때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링 위로 올라간 이훈은 최강인을 향해 손짓했다.

먼저 공격해서 들어오라는 수신호였다.


최강인의 펀치력부터 테스트해보고 싶었기에 그는 공격보단 회피에 집중했다.

위빙과 더킹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기 위해 몸을 사정없이 움직이면서도 최강인의 어깨 움직임에 집중했다.

공격을 최대한 빠르게 예측하기 위해서였다.


최강인이 여러 차례 잽을 날리고는 오른쪽으로 어깨를 움직인 순간.


‘라이트 스트레이트군.’


이훈은 곧바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분명 주먹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퍼어어억!


“윽!”


그의 안면 정중앙에 박힌 최강인의 주먹.


‘실수다. 이건 실수야.’


이훈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여러 차례 흔들었다.

그 순간 최강인의 왼팔이 그의 턱으로 돌진하는 게 보였고, 그는 주먹을 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오른쪽 가드를 올렸다.


퍼어어억!

“윽!”


그러나 그것은 페이크였다.

오픈된 그의 오른쪽 옆구리에 꽂힌 최강인의 오른팔.

이것이 진짜 공격이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거센 통증에 이훈의 입에선 신음이 나왔다.


‘페이크조차 눈치 채지 못 하다니···.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


도저히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빈틈없이 빠른 움직임.

거기다 짧은 공격 순간에도 온몸의 반동을 끌어 모은 듯이 힘이 가득 실린 주먹.

예사롭지 않은 공격력에 탄식이 나온 것도 잠시.


‘카운터펀치 맞으면 훅 가겠는데?’


이훈은 어떻게든 주먹을 피하기 위해 최강인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지만, 번번이 유효타를 허용했다.

그때마다 그의 입에선 절로 신음이 내뱉어졌고, 심지어 몇 번은 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회피만으로도 벅차다고 느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안 되겠어. 공격을 할 수밖에.’


명색이 지도자와 선수 관계인지라 지는 꼴을 보일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회피에만 집중하던 이훈은 공격 스탠스로 바꿨다.

그는 원투를 내지르며 최강인을 코너로 서서히 몰아갔다.

빠르게 공격을 이어가던 최강인은 어쩐 일인지 가드를 올린 채 이훈이 리드하는 방향으로 순순히 움직였다.


‘선발전에서도 회피력이 좀 아쉽긴 했지. 이게 최강인의 약점이려나?’


이훈은 전성기 시절 그의 주특기였던 콤비네이션을 떠올렸다.

레프트 잽과 라이트 바디 훅을 섞은 연타.

‘융단폭격’으로 불릴 만큼 빠르고도 위협적인 공격.


‘헤드기어도 쓰지 않은 선수에겐 미안하지만, 코너로 몰린 모습을 보니 주먹이 근질거려서 말이지.’


이훈은 심호흡을 들이 마시고는 최강인을 향해 일명 ‘융단폭격’을 쏟아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타격감에 한껏 취한 그는 점점 양팔에 힘이 실리는 게 느껴졌다.


그는 선수들과의 스파링에서 전력을 다 한 적이 없었다.

훈련 중 부상이 생기면 안 되기에 스파링을 하면 항상 힘을 아꼈다.

그러나 이번엔 좀처럼 몸이 제어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를 꽉 깨물고 주먹을 던졌건만.


“응?”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마찰음도 타격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던지는 주먹들은 최강인의 몸이 아닌 허공을 가로지를 뿐이었다.


쉬익! 쉭쉭!


마치 물이 흐르는 듯이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한 움직임으로 이훈의 주먹들을 피해내는 최강인.

이훈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걸 피한다고?’


지금껏 그의 ‘융단폭격’을 피한 선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던 선수뿐이었다.

비록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해도 그는 ‘융단폭격’ 만큼은 녹슬지 않게 끊임없이 연습을 했기에 자신이 있었다.


헌데, 고작 17살짜리 유스 국가대표 선수가 자신의 모든 공격을 피할 줄이야.


‘어쩌면···.’


이훈은 허탈하면서도 온몸이 흥분으로 가득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스타 복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뭐야, 어디 갔다 왔는데 그렇게 땀에 절여 있어?”


조인찬은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럴 만 했다.

이훈 감독과 3시간 내내 진행한 스파링으로 땀을 한가득 쏟은 탓에 내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동하고 왔는데?”

“근데 왜 소름 돋게 쪼개고 있어. 운동을 빙자한 비밀 데이트라도 하고 온 거 아니야?”


온몸을 감싸고 도는 도파민에 나도 모르게 쪼개고 있던 모양이다.

격렬한 복싱을 즐겼을 때만 느껴지는 짜릿한 쾌락.

이는 좀처럼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미친놈아. 여기 전지훈련 하러 왔지 연애 프로그램 찍으러 왔냐?”

“그런 놈들도 많은 것 같은데? 저기 봐봐.”


조인찬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녀석의 손끝은 한 여학생을 향해 있었고, 그녀의 뒤로 한 남학생이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저게 왜.”

“내가 여기 와서 본 것만 세 번이야.”

“뭐가?”

“저 여학생이 고백 받는 모습.”

“너도 관심 있냐?”


곧바로 부인할 줄 알았는데 얼굴을 붉히는 조인찬.

뭐야. 얘. 소름 돋게.


“아무래도 남자로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유일한 홍일점이니까. 그리고 몸매 좋고 예쁘거든.”


조인찬이 여자에 관심을 가지는 날이 오다니.

살다 보니 별일 다 있다.


“그럼 너도 가서 고백해.”

“싫어. 쪽팔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쟁취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 대신 네가···.”

“꺼져.”


내가 저 말 나올 줄 알았다.

저렇게 소심하면서 어떻게 게임할 땐 욕을 한바가지 퍼부을 수가 있는 건지, 당최 신기한 놈이다.


“근데 너 그거 다 먹을 수 있어?”

“물론이지.”


조인찬은 식판에 산처럼 쌓은 음식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무통 빨로 배고픔을 느끼진 않지만, 격한 운동 후 체중 유지를 위해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단지 그 이유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타이밍에 이훈 감독이 조인찬의 등 뒤로 지나가다니.


“많이 먹어야 또 열심히 운동하지 않겠어?”


나는 조인찬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역시나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훈 감독.

그의 눈빛이 찬란히 빛나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진짜 ‘점수 따기’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그런데 조인찬 또한 내 등 뒤를 보며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있다는 듯이.


그리고 그 순간.


“저, 여기 앉아도 될까요?”


조인찬의 짝사랑녀가 대뜸 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유혹적인 자세로.


흠흠.


가만, 가까이에서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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