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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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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31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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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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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ROUND 9

DUMMY

강한고 복싱부 소속 서한필.

그의 롤 모델은 조지 포먼이다.


초등학생 때 왜소한 체격으로 온갖 괴롭힘을 당했던 그는 어느 날 포먼의 경기를 우연히 보고 한 눈에 반했다.


철갑을 두른 듯한 몸과 강력한 핵주먹.

포먼의 피지컬은 어린 서한필의 심장을 날뛰게 만들었다.


포먼 같은 복서가 되고 싶어 복싱을 시작한 그는 ‘링 위에선 주먹 강한 자가 절대적으로 승리한다’는 신념을 향해 돌진했다.

'최강의 인파이터' 타이틀을 얻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미친 듯이 근력 운동을 했다.


포먼처럼 경기 초반에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면, 지구력이 필요할 만큼 긴 경기로 이어질 일이 없었기에.

체력 운동의 필요성에는 크게 공감하지 않았다.

근력 운동 만으로도 어느 정도 체력을 키울 수 있기도 했고.


그날도 서한필은 한강 공원 잔디밭에서 푸시업을 하고 있었다.

100개를 채워갈 무렵.


“꺅! 소매치기!”


한 여성의 외마디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고, 자신이 있는 쪽으로 도주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본능적으로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에잇, 시발!”


소매치기범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데이트 즐기러 나온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자신을 향해 깍두기 머리를 한 곰 같은 남자가 달려오니 당황한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자전거 도로 쪽으로 도주했다.

점점 멀어지는 곰 같은 놈.


‘덩치만 크지 체력은 형편없네.’


그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속도를 줄이려던 그때.


“잡았다. 요놈!”


누군가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뭐지? 곰 말고는 인기척이 안 느껴졌는데?’


소매치기범은 입술을 꽉 깨물며 뒤를 돌아봤다.

곧 그는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왜소한 체격의 남학생, 최강인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조무래기잖아.”


소매치기범은 피식 쪼갰다.

그때 곰이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에잇, 시발.”


그는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최강인의 손등을 내리쳤다.

손이 스르르 풀리자마자 곧바로 다시 도주하기 시작한 소매치기범.

그는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최강인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소매치기 20년 짬밥을 무시하지 말라고.”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최강인의 손에 붙잡혔다.


“아니, 시발. 네 지갑 뺏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거머리처럼 따라와. 힘들지도 않냐?”

“응.”


소매치기범은 최강인의 얼굴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빗물처럼 얼굴에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지만 최강인은 마치 샤워를 하듯이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25km. 평균 페이스 3분 40초.”


최강인이 팔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에서 알림 음성이 나왔고, 이를 들은 소매치기범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너 혹시 경찰 지망생이냐?”

“아니.”

“육상부냐?”

“아니.”

“그럼?”

“복서.”


소매치기범은 왜소한 체격의 최강인을 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네가 복서면···.”


그는 기습적으로 주먹을 휘둘렀고.


퍼어어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소매치기범의 주먹이 최강인의 한쪽 볼에 꽂혔다.


“내 주먹쯤은 피해야지.”


으스대던 소매치기범은 반쯤 돌아간 최강인의 얼굴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최강인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놈 제가 잡을게요!”


곰 같은 남자가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코앞까지 달려온 게 보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처리할게요. 그래야 정당방위니까요.”


최강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끝으로.


퍼어어어억!


소매치기범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서한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두 눈을 끔뻑였다.


키가 170cm 정도로만 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남학생이 자신보다 빠른 속도로 소매치기범을 따라잡은 건 물론이고 주먹을 휘둘러 한 방에 제지를 한 건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더욱이 소매치기범에게 맞아 퉁퉁 부은 볼이 얼얼할 법도 한데.

왜소한 체격의 남학생은 태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죄송한데 경찰에 신고해서 이놈 좀 처리해주시겠어요? 저는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셔서요.”

“그럴게요.”


점점 멀어져 가는 최강인을 멍하니 바라보던 서한필.

그는 돌연 손으로 머리통을 콩 쥐어 박았다.


“이름을 물어봤어야지, 이 멍청이야! 자세가 딱 복서였는데!”


//


“드디어 때가 왔네요.”


선아일보 스포츠팀 유승아 기자는 탁상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때?”


그녀 옆에서 노트북 키보드를 부실 듯이 두드리는 남자, 박기우 기자는 무관심한 말투로 물었다.


“다음 달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을 시작으로 이제 곧 엘리트 대회가 줄줄이 열리잖아요. 뭐 결과는 보나 마나 뻔하겠지만요.”

“강한고랑 태양체고에서 엘리트 대회 독식하는 게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니까.”

“왜 다른 학교나 체육관 소속 선수들은 매가리를 못 추리는 걸까요?”

“그만큼 두 학교가 복싱으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선후배 간에 똥군기가 잘 잡혀있기도 하니까. 또···. 복싱이 알고 보면 인맥 운동이기도 하고.”


박기우의 말에 유승아는 무언가 생각난 듯이 인상을 팍 구겼다.


“작년에 열린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 보면서 좀 찝찝했던 게 심판이 카운트를 10에서 1까지 세지 않더라고요. 상대 선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데 곧바로 ‘KO’로 끝내버리는 보고 기가 찼던 기억이 나네요.”

“맞아. 주심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데 윗선 눈치를 보고 경기를 진행하는 게 문제지.”


박기우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여전히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그럼 강한고와 태양체고가 아닌 다른 선수가 올라오기 위해선 그 누구도 의문을 가질 수 없는 완벽한 경기를 만들어야 하는 거네요?”

“그렇지. 근데 어려울 걸? 강한고와 태양체고 선수들이 보통 잘 해야 말이지. 이거 봐.”


그는 자신이 작성하던 기사를 유승아에게 보여줬다.


[(복싱) 태양체고 박한민‧강한고 서한필···유스 라이트웰터급서 ‘맞대결’]


“박한민은 아버지가 국내 챔피언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복싱했던 놈이고, 서한필은 핵주먹으로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놈이지. 한 체급에 나오는 놈들이 이 정도야.”

“와우. 이번 유스 라이트웰터급은 박 터지네요. 작년엔 텅 비었던 체급이었는데.”

“양쪽 다 빈집털이를 노린 거지. 이변이 없는 한 무조건 두 놈 중 한 명이 우승하게 돼있고.”


박기우는 입맛을 쩝 다셨다.


“근데 선배, 이 기사 언제 내보낼 거예요?”

“내일 엠바고가 풀리자마자 내보낼 거야.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 신청 마감 날이 오늘이니까.”


//


1년 넘게 매일같이 들락거린 복싱장이지만 오늘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도 그럴 게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 건 생전 처음이니까.


하프 마라톤을 2시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은 너무 쉽게 지켜졌고.

더불어 내가 하프를 뛰고도 도주하는 소매치기범까지 잡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경찰에게 전해 들은 아버지는 충격을 받으신 듯 보였다.

한동안 말이 없으셨던 걸 보면.


또 다시 침묵을 유지하는 관계가 되는 건가 싶었을 때.

내 책상 위에 하나의 박스가 놓였고, 그 안에는 노란색 복싱화가 담겨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너를 응원한다’는 묵직한 글씨체로 적힌 편지와 함께.


앞만 보며 달리던 아버지는 점점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하셨고, 아버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던 나는 서서히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냉전을 오가던 우리 부자는 복싱으로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십시오.”


복싱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길태 관장이 부모님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얼어붙은 자세를 보니 잔뜩 긴장한 모양이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곧 박길태 관장은 관장실로 앞장 서서 걸어갔고, 부모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팡! 팡! 파아아앙!


샌드백을 때리는 거친 소리와 함께.


“뒤져라, 최강인!”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삐거덕거리는 샌드백 소리와 둔탁한 마찰음 때문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는 조인찬.

녀석의 관심 끄는 방법을 내가 모를 리 있나.


“떡볶이!”

“어디?”


역시나.

샌드백을 때리던 주먹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는 단순한 놈.


“조인찬. 네가 왜 여기 있어?”

“뭐 전세 냈냐? 너만 여기 다녀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아니, 너 프로게이머 되려는 거 아니었어? 맨날 피시방에 눌러 살고 있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다리 다친 복서가 뭘 할 수 있겠냐? 근데 이제 다리가 멀쩡해졌으니까 다시 링 위로 복귀한 거지.”

“근데 왜 하필 우리 체육관이야. 여기 너네 집에서 제법 멀지 않나?”

“체육관에서 엘리트 선수를 내려면 복싱협회에 단체등록 해야 하는데 요즘 이런 체육관이 잘 없거든. 무엇보다 네게 엘리트 선수를 권한 관장님에게 나 정도면 프리패스일 것 같아서 여기로 등록했지.”


조인찬의 표정을 보니 꽤나 비장한 듯 보였다.


녀석이 다시 복싱에 대한 꿈을 꾸다니.

내 주먹이 어지간히 맛있던 모양이었다.


조인찬과 한참 떠들고 얘기하고 있던 그때.


삐걱-


관장실 문이 다시 열렸다.

부모님과 관장님 표정 모두 한껏 밝아진 걸 보니 적절하게 합의가 이뤄진 모양이었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조인찬은 햇살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부모님을 향해 인사했다.


“어머, 인찬이도 여기 다니니?”


어머니는 조인찬을 보자마자 손뼉을 치며 반가워했다.

그도 그럴 게 이놈은 하숙생마냥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두 공기씩 먹고 가니까.


“그렇습니다!”

“다리 다친 곳은 괜찮고?”

“다 나았어요. 이게 다 어머님 덕분이에요.”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그래서 다시 복싱을 시작했구나. 너희 어머님께서도 무척 대견해 하실 거야. 아줌마가 반찬 싸줄 테니까 조만간 가지러 와. 알았지?”

“항상 감사해요. 아주머니.”


조인찬과 내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낼 수 있던 건 어머니들이 여고 동창생이라는 특수한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인찬의 어머니는 우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셨고, 이로 인해 조인찬은 한동안 싸움질하며 방황했다.

한참을 그렇게 살던 놈은 아버지의 권유로 복싱을 시작했고 재능을 알게 되면서 정신을 차렸다.


문제는 체고 진학을 앞두고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다는 것.


어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에 녀석이 놀러올 때마다 도가니탕을 끓여주시며 살뜰히 챙겨주셨고 조인찬은 늘 이걸 감사해 했다.


그러니 녀석의 다리가 괜찮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진 거겠지.


“관장님, 인찬이 복싱 실력 제가 잘 알거든요. 꼭 이 친구도 선수로 키우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선수 등록이 돼있는 친구니까요.”

“정말요?”

“아참, 그리고 이 녀석들 첫 대회는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이 될 겁니다.”

“구, 국가대표요?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박길태 관장의 입에서 '국가대표'라는 단어가 나오자, 지금껏 침묵하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이르다는 생각인데 뭐 나가서 지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요. 녀석들 실력 테스트도 해보고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계속 걸리고 있습니다.”

“뭔데요?”

“둘이 같은 체급이라는 겁니다. 인찬이가 지금 53kg이고 강인이가 51kg일 겁니다.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 밴텀급 기준이 51~54kg이거든요. 우리 체육관에서 둘 밖에 안 나가는데 둘이 같은 체급에서 붙게 되면 상당히 불리한 일 아니겠습니까? 작년 유스 선발전을 보니까 의외로 60kg이 선수 층이 얇더군요. 그래서 한 명을 여기로 내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박길태 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인찬이 글러브를 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제가 체중을 올리겠습니다!”


나도 질 수 없지.


“아닙니다. 제가 올리겠습니다!”


마치 경매하듯 교대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박길태 관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곧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고는 부모님을 보며 말했다.


“오늘 이 아이들 저녁 좀 먹이고 보내도 되겠습니까?”

“정말요? 그럼 너무 감사하죠. 저도 오랜만에 강인이 아빠랑 외식 좀 해야겠어요. 인찬이 아버님께는 제가 잘 말해 놓을게요.”


어머니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자, 아버지는 괜히 헛기침을 내뱉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두 분이 팔짱을 끼고 나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자, 그럼 너희는 먹방 대결을 하러 가볼까?”


박길태 관장의 묵직한 팔이 나와 조인찬의 어깨 위에 걸쳐졌다.


“먹방이요?”


그 순간 조인찬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관장님, 그럼 메뉴는 떡볶이 어떻습니까? 무조건 순한 맛으로요!”


이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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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ROUND 11 24.05.16 97 3 11쪽
10 ROUND 10 24.05.15 96 4 12쪽
» ROUND 9 24.05.15 105 3 13쪽
8 ROUND 8 24.05.14 127 3 13쪽
7 ROUND 7 24.05.13 142 4 14쪽
6 ROUND 6 24.05.12 154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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