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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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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27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09 15:10
조회
183
추천
8
글자
12쪽

ROUND 3

DUMMY

팡!


수호는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곧바로 나를 향해 돌진했다.

일종의 자신감 표출이었다.


내게 공격 기회를 일절 주지 않으려는 생각인 듯이 무차별적으로 원투를 던져대는 녀석.


수호가 앞뒤 재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 탓에 가드를 올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생답지 않은 전투 의지는 높이 사겠다만.

이거야 원.

주먹이 간지러워도 너무 간지럽잖아.


아니, 간지러운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퍼억! 퍼억! 퍼억!


수호의 글러브와 내 가드가 부딪히는 소리는 상당히 요란했지만, 무통 효과 때문인지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수호가 아무리 체격 좋고 실력파라고 해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

펀치력이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몸이 밀리는 것도 없다.


즉, 녀석의 주먹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지.


퍼어어억! 퍼어어어억! 퍽퍽!


난타전 맞불 작전은 예상 못 한 건지 수호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소나기처럼 공격을 쏟아내던 녀석은 어느새 가드를 올리고 각종 회피 기술로 내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호는 급속도로 지쳐가고 있던 반면 나의 주먹엔 계속해서 힘이 실리고 있었으니까.


복싱은 정신력 싸움이다.

이는 박길태 관장이 체력을 강조한 진짜 이유였다.


상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되면 없던 힘도 솟아나는 법.


그러나 정신력 싸움에서 지는 순간.

강한 결의는 눈 녹듯이 무너지게 돼있다.


1라운드가 끝나기 10초 전.


수호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젠 주먹을 막으려는 시늉조차도 없다.


정신력 싸움에서 패배한데다 오버페이스까지 했으니 뻔한 결과였다.


상대가 이렇게 지쳤을 땐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다.

원투 사이에 훅 하나 넣어주면.


퍼어억!


끝.


털썩.


수호가 링 위에 널브러진 순간.


띵!


1라운드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숙연해진 복싱장.

클럽에서나 들을 법한 노랫소리 말고는 고요한 적막만 흘렀다.


한 방에 나가떨어진 수호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회원들.

그들의 시선은 어느새 내게로 쏠려 있었다.


분명 매일같이 복싱장에 출석했건만 그들은 마치 초면인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바로 그때.


“으앙!”


적막을 깬 건 다름 아닌 한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였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청 놓고 오열하는 수호.


‘내 주먹이 울 정도로 그렇게 아프진 않을 텐데···.’


비록 막판에 수호를 날려버리긴 했지만 이는 수호 체력이 다 해서 그런 것뿐.

녀석을 울릴 만큼 펀치력이 강력하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기에.


“어디 다쳤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다행히 고개를 양쪽으로 젓는 수호.


그럼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는 건데.


“형···.”


잠시 뒤 수호는 울음을 멈추고 날 빤히 쳐다봤다.

녀석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돼 있었다.


“부끄러워서 울었어요.”

“응?”

“스파링 시작하기 전에 제가 형 무시했잖아요. 지금 생각하니 너무 쪽팔려서요. 이렇게 실력 있는 상대인지 모르고 나댄 거잖아요. 제가.”


수호는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걸 보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나는 씩 웃으며 수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형과 주먹을 부딪치면서 알았어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요. 형처럼 체력을 비축하면서 전략적으로 복싱을 해야 하는데 저는 너무 성급하게 날뛰었어요. 형처럼 배울 게 있는 사람과 스파링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감사해요.”


수호는 돌연 나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건방지던 꼬맹이는 어디가고 갑자기 애늙은이처럼 구는 녀석.


그나저나 신동은 신동인 모양이다.

곧바로 자신의 단점을 캐치하는 거 보면.


강력한 선제타격은 상대의 기를 꺾어버리고 곧 위축시키게 만든다.

그래서 단시간에 결판을 낼 수 있기도 하고 포인트제에서 여러모로 유리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전략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체력 소모가 크다는 것.

그렇기에 수호가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덧없이 훌륭한 선수가 될 게 틀림없다.


“저도 형처럼 남은 2주 동안 열심히 체력 키워서 이번에도 꼭 우승할 거예요.”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수호의 눈은 어느새 찬란하게 빛났다.


“그래. 전국 생체 때 기대할게.”


나는 수호를 향해 씩 웃어주고는 링 아래로 내려왔다.


불과 1라운드 만에 끝나긴 했지만 쉴새없이 주먹이 오갔기에 체력 소모가 상당했을 터.

그러나 무통 효과가 심장과 폐에도 번진 건지 쾌적하기 짝이 없었다.


이전 같았으면 지금쯤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겠지.


남아도는 체력이 아까워서 샌드백 앞에 서 있자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박길태 관장이다.


“너 3주 동안 폐관수련이라도 받고 온 거냐?”

“폐관수련은커녕 치질 수술 받고 온 거 아시잖아요.”

“폐 수술 하고 온 건 아니고?”

“관장님도 참. 그럴 리가 있겠어요?”

“수호랑 스파링 한 거 보고 깜짝 놀라서 그래. 불과 3주 사이에 다른 애가 돼서 왔으니까.”

“이게 다 관장님의 지도 덕분이에요.”

“응?”

“관장님께서 늘 로드워크를 강조하셨잖아요. 사실 3주 동안 꾸준히 로드워크를 했거든요. 그 덕에 이렇게 체력이 오른 것 같아요.”


로드워크는 고작 하루 했지만 이보다 좋은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통 빨로 무한 체력을 얻게 됐다고 이실직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역시나.

내 말에 박길태 관장의 입 꼬리가 씩 올라갔다.


“이 자식, 이거 크게 될 인물이네. 관장 말을 허투루 듣지도 않고. 아주 기특해! 오늘 저녁에 약속 없으면 복싱장 다시 나와. 고기 사줄게!”


자린고비로 유명한 박길태 관장이 선뜻 지갑을 열다니.

역시 복싱은 실력제인 모양이다.


//


박길태의 선수시절 별명은 ‘노력파 천재’였다.


복싱의 부흥기로 여겨지는 70년대.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 세계챔피언이 된 복서를 보며 온 국민이 열광하던 그때 그 시절.

박길태 또한 동경 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경기를 바라보았다.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으며.


문제는 복싱 천재들이 넘쳐난다는 것과 그에게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체력을 늘리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다.

동체시력이나 반사 신경과 달리 체력은 재능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는 밤낮 장소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고 그렇게 올린 체력으로 밤새도록 복싱 연습을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올린 체력으로 프로 복싱의 길을 걷게 된 그는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레전드 장면을 만들어냈다.


당시 2회까지 3번이나 다운이 되는 수모를 겪던 그가 3회 들어 상대를 폭풍처럼 몰아붙이고는 KO시킨 것.


‘3전 4기’ 신화의 주인공이 된 그는 전설적인 세계 선수로 자리를 잡는 듯 했지만, 방어전에서 KO를 당한 후 그의 복싱 인생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그는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조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복싱장을 운영하는 이유도 자신과 같은 노력파 천재 복서들을 만들어 복싱 열풍을 다시 한 번 일으키고 싶은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꺾였다.


풍요로워진 21세기.

생존을 위해 글러브를 끼는 복서가 사라진 지금.

노력형 천재 복서는 모래알 속 진주알처럼 매우 희귀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었다.


헌데.


‘그놈이 그렇게 물건이었을 줄이야.’


텅 빈 복싱장.

박길태는 거울에 잔뜩 묻은 손자국을 마른 걸레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생체라고 해도 전국 복싱장에서 내로라하는 회원들이 모이는 대회.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이자 고인물 대잔치였기에 그는 처음부터 최강인을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펀치력은 그럭저럭 있다고 해도 체력이 참 아쉬운 놈이었지.’


그럼에도 그가 최강인을 출전자 명단에 적은 이유는 단 하나.


‘체육관에 밴텀급 고등학생이 그 녀석뿐이라 한 번 권유했던 건데, 이렇게 단시간에 체력을 껑충 키워 오다니.’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앞날이 기대되는데···.’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거울을 마저 닦고 있던 그때.


딸랑-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관장님 저 왔습니다!”


최강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


지글지글-


불판 위에 올라간 고기를 보고는 몇 번이나 눈을 끔뻑였는지 모른다.


고기를 사준다고 해서 삼겹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꽃등심의 우아한 자태를 보게 될 줄이야.


“맘껏 먹어.”


딱 알맞게 익은 꽃등심을 한가득 내 앞에 놔주는 박길태 관장.


“관장님 혹시 저한테 뭐 사기 치려고 그러는 거 아니죠?”

“너는 속고만 살았냐?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한테 사기 쳐봤자 뭐가 남는다고.”

“고기에 약 탄 것도 아니고요?”

“먹기 싫으면 말아라.”


박길태 관장이 다시 고기를 회수하려고 하자 나는 허겁지겁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관장님.”

“말 잘 들으니까 예뻐서 사주는 거뿐이야.”

“그렇다면 편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겠습니다.”


꽃등심 한 점을 소금에 콕 찍어 입에 넣었더니 입 안 가득 육즙이 파도치는 게 느껴졌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라는 게 딱 이런 맛인가 싶다.


그나저나 값비싼 꽃등심을 사주면서 아무 의도가 없다고?

천하의 자린고비 박길태 관장이?


“사실···.”


내가 한 점 먹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입을 여는 박길태 관장.


그럼 그렇지.

꽃등심 맛 배리게.

그래도 씹을 때까진 기다려주지.


“네 상대인 엘리트 선수 복싱연맹에 얘기했거든?”


음?

엘리트 선수 얘기를 꺼내는 걸 보니, 저의를 갖고 꽃등심을 사준 건 아니었나 보다.


“그때 치질 수술 했을 때 얘기한 사람이요?”

“그래. 증거 자료 갖고 가서 선수 교체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거절 당했어.”

“왜요?”


박길태 관장은 소주를 잔에 가득 채워 몇 차례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전국 생체 규정에 엘리트 대회 입상 경력 있으면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적혀 있는데, 네 상대는 대한체육회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나오지 않을 만큼 소규모 엘리트 대회에 참가한 거라 규정 위반으로 보기 어려운 모양이야.”

“그렇다는 건 그렇게 실력 있는 선수는 아니라는 거네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래도 엘리트는 엘리트니까 그 선수랑 붙게 되면 좀 긴장 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선수 이름이 뭔데요?”

“이서우.”


이서우?

어디서 들어봤는데···.


‘설마!’


나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곧바로 너튜브 앱에 들어가 최근에 본 숏폼 목록을 쭉 내렸다.


‘맞네!’


어젯밤 밤새도록 봤던 짧은 동영상.

그것은 이서우라는 이름의 너튜버가 올린 각종 복싱 대회 영상들이었다.


편집 효과인 건지 배경 음악 탓인지 제법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가 나간 대회들은 죄다 생활체육대회 뿐이었다.


내 도파민을 충전해준 주인공이 문제의 엘리트 선수였을 줄이야.

어젯밤 ‘좋아요’도 눌러줬건만.

배신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너튜브 채널을 보며 분노를 들끓고 있던 그때.

불과 한 시간 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눈에 띄었다.


[하도 편집 빨이란 비난이 많아서요. 다음 경기 영상은 라이브로 진행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다음 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진행되는 전국 생체 복싱대회에 출전할 예정입니다.]


이게 웬 꿀이야?

어느새 내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어휴. 고기값이 장난 아니네.”


내가 이서우의 너튜브를 보는 동안 박길태 관장은 빌지를 보고 있었나 보다.

값비싼 꽃등심으로 입에 기름칠을 해줬으니 나는 번지르르한 말로 보답을 해야겠지.


“관장님. 잘 먹었습니다. 저 밥값 제대로 하고 올게요.”


이게 바로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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