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20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16 22:35
조회
96
추천
3
글자
11쪽

ROUND 11

DUMMY

“벌써 도착했어요?”


유승아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같은 선배가 운전하고 있는데 잠이 오나 봐?”

“죄송합니다. 선배님.”


박기우가 한숨을 푹 내쉬자, 유승아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부랴부랴 정돈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박기우.


“장난이야. 나 그렇게 꼰대 같은 선배 아닌 거 알잖아. 서울에서 청양까지 3시간 밖에 안 달렸는데 잘 수도 있지.”

“그거, 돌려 까는 거죠?”

“에이, 그럴 리가. 그나저나 우승자 인터뷰는 잘 준비해왔어?”

“아참!”


유승아는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뭉치 두 개를 꺼내 박기우에게 건넸다.


“하나는 태양체고 박한민 거고 또 하나는 강한고 서한필 거예요.”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던 박기우는 흡족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핵심 질문들만 잘 뽑았네. 수고했어.”

“근데 왜 라이트웰터급만 인터뷰 따는 거예요? 다른 체급 선수들도 많잖아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해마다 체급별로 돌아가면서 따는 것뿐이야.”

“아하. 그나저나 청양에 오니까 공기가 확 다르네요.”


유승아는 차에서 내린 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싱그럽고 향긋한 풀내음을 한껏 맡던 그녀는 갑자기 코를 부여잡았다.


“억!”


어디선가 지독한 똥거름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차에서 내린 박기우.


“뭐야. 유승아···.”

“선배님. 그런 장난 금지에요.”

“뭐가? 차에 핸드폰 놓고 내렸다는 건데.”

“아.”


빨갛게 달아오른 유승아의 얼굴.

박기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근데 박한민에게 그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나한테 텔레파시라도 보냈어? ‘그 질문’이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선배님도 참. 찰떡같이 알아들었으면서. 박한민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의혹 있잖아요. 심판 매수 의혹이요. 그거 관련 질문 던지면 언짢아하지 않을까요?”

“기자가 언제부터 취재 대상 눈치를 보는 직업이었다고.”

“하긴 그래요.”


박기우는 재킷 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한민 측은 유스 국대 선발전 심판도 사전에 매수했을 거야. 아무래도 강력한 우승 후보인 서한필이 있으니까. 그러니 집중해서 경기를 봐야 해. 일말의 증거라도 잡아서 보도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니까.”

“알겠습니다. 선배님.”


유승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청양군민체육관에서 열린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


전국 생체 때와 달리 박길태 관장과 조인찬,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만 움직이면 됐기에 이번엔 서울에서 청양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유스라고 해도 국가대표 선발전인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경기장에서 시합을 치룰 지 궁금했는데.


“와!”


커다란 링 두 개가 설치된 대형 실내체육관이라니.

그제야 비로소 엘리트 선수가 된 게 실감이 났다.


“구경은 이따 하고 먼저 계체량부터 측정하고 와.”


박길태 관장의 말에 나와 조인찬은 ‘계체량 측정’이라고 적힌 하얀 천막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열려는 찰나.


“야. 미리 얘기하는데 내 몸 보고 반하지 마라.”


조인찬이 으스대며 말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까 걱정 마.”


곧 녀석은 옷을 훌렁 벗었고, 내 눈은 자연스레 녀석의 몸으로 향했다.

콧대가 하늘 높아 솟았길래 내심 기대를 했건만, 이전과 별반 차이 없는 수준이었다.


“53kg”


여유 있게 계체를 통과한 조인찬.

“넌 증량 성공했어?”


녀석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내게 물었다.


“실패했으면 지금쯤 밖에서 줄넘기 하고 있지 않을까?”

“음.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이전과 별 차이를 모르겠는데?”


도발하긴.

어차피 체중계가 증명해줄 텐데.


나는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벗은 뒤 체중계에 올랐고.


“61.0kg”


라이트웰터급의 기준인 60~63.5kg 기준을 가뿐히 통과했다.


매일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고루 갖춘 밥을 다섯 끼씩 챙겨먹으며 펀치력 특별 훈련을 질릴 만큼 했더니 근육량이 껑충 올랐고, 그 덕에 체중을 맞출 수 있었다.


“야.”


체중계에서 내려오자, 조인찬이 헤벌쭉 한 표정으로 내 몸을 훑었다.


“더러워. 그 변태 같은 눈깔 당장 치워.”


욕이 절로 나올 만큼 더러운 기분 느낀 건 실로 오랜만이었기에, 나는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은 뒤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그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거머리 같은 놈.


“야. 어떻게 근육을 딱 복서답게 알짜배기만 키웠냐? 나도 비법 좀 알려주라.”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의미지.”

“아오. 나도 열심히 했는데···.”


조인찬은 대뜸 보디빌더처럼 이두근에 힘을 주는 자세를 취했다.

그 꼴이 너무 보기 싫어서 서둘러 박길태 관장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


“강인아!”


익숙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엄ㅁ··· 엥?”


한두 명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거기다 친누나에 아현이까지.

온가족이 총출동할 줄이야.


그것도 본 경기가 시작하기 4시간 전에.


“쭈우!”


친누나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현이.

바닥에 뒤꿈치가 닿을 때마다 뿅뿅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온 탓에, 순식간에 관계자와 선수들의 시선이 아현이에게로 집중됐다.


“아현아, 삼촌에게 가봐.”


그 순간 누나가 아현이의 손을 놓았고.


뿅! 뿅!


아현이가 배시시 웃으며 내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한 걸음, 두 걸음, ···, 열 걸음.


“꺅!”


아현이가 내 품에 쏙 안긴 순간 우리 가족은 로또 1등에 당첨된 것처럼 환호했다.

좀처럼 웃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이 순간만큼은 봉인해제 된 듯 보였다.

조인찬도 감격했는지 입을 틀어막고 울먹였다.


아현이의 생애 첫 걸음마를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볼 줄이야.

이보다 더 효과적인 응원이 있을까.


“아참, 여기.”


어머니는 커다란 6단 도시락 가방을 내게 건넸다.


“뭐예요, 이게?”

“관장님과 인찬이랑 같이 먹으라고 듬뿍 쌌어. 유스라고 해도 명색이 국가대표 선발전인데 그만큼 잘 챙겨먹어야 하지 않겠어?”


지금 시각은 오전 8시.

그렇다는 건 도시락을 싸기 위해 어머니는 새벽 일찍부터 고군분투 했다는 얘기인데.


“엄마···.”

“아주머니···.”


나와 조인찬은 어머니에게 달려가 푹 안겼고, 어머니는 우리 둘의 어깨를 토닥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들, 이길 필요 없어. 다치지만 마.”


나는 어머니의 당부를 반드시 지키겠노라 다짐했다.


//


“벌써 라이트웰터급 준결승전이네요. 역시나 태양체고 박한민과 강한고 서한필은 손쉽게 올라왔어요. 다른 두 명이 의외인데···.”


유승아는 출전자 리스트에서 패배한 선수들의 이름을 빨간 펜으로 찍 그으며 말했다.


“한 명은 관서체고 소속이고 또 한 명은 체육관 소속이지.”


박기우는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관서체고는 한동안 주춤하더니 감독 바뀌고 선수들 역량이 오른 것 같아요. 다른 체급에서도 준결승까지 제법 올라온 것 같더라고요.”


지난 3년 동안 태양체고와 강한고가 독식했던 엘리트 대회.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다시 기지개를 켜는 관서체고. 그리고···.


‘체고의 잔칫날에 일반 체육관 소속 선수가 준결승까지 올라올 줄이야. 만약 우승까지 하면 대박이지만 과연 박한민과 서한필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일단 저 친구의 준결승 상대는 박한민. 상대가 체육관 소속인 만큼 박한민은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 하겠지.’


박기우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최강인을 쳐다보았다.


“어, 곧 시작되려나 봐요!”


유승아가 말하자마자.


“잠시 후 라이트웰터급 준결승전이 시작됩니다. 선수들은 링 아래에서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체육관 곳곳에 달린 스피커에서 안내 음성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왼쪽 링 아래에서 서한필과 관서체고 선수가, 오른쪽 링 아래에서 최강인과 박한민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링 주변에 놓인 의자들에 저지들이 앉았고, 주심이 링 위로 올라왔다.


“어···. 저 심판!”


유승아는 돌연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손가락으로 오른쪽 링을 가리켰다.


‘반전을 기대했는데···.’


유승아와 같은 곳을 쳐다보던 박기우.

그는 아쉬운 마음에 입으로 ‘쩝’ 소리를 냈다.


최강인과 박한민의 준결승전을 맡은 주심.

그는 과거 박한민에게 유리하게 판정했던 심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


고가의 복싱화를 선물해주신 부모님.

아마도 다른 선수들에게 기죽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거겠지.


제자리에서 몇 차례 뛰어보니, 마치 신발을 신지 않은 듯 발에 착 달라붙는 착화감이 느껴졌다.

복싱화계의 에르마스로 불리는 명성답다.


‘은퇴해서 돈도 없을 텐데.’


내가 뭘 하든 관심 없던 아버지는 이상하게 복싱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마치 내가 모르는 과거가 있는 것처럼.


아버지가 사주신 고급 복싱화.

어머니가 싸주신 정성 담긴 도시락.

아현이의 사랑스러운 걸음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선수들 링 위로!”


그 순간, 주심이 큰 소리로 외쳤고.

로프 사이로 몸을 넣어 링에 올라가자, 나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상대 선수와 눈이 마주쳤다.


라이트웰터급을 ‘빈집’이라고 말한 박길태 관장의 말처럼 예선전은 전국 체전 수준으로 쉬웠다.

준결승전도 비슷한 수준이면 좋겠는데.


띵!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링벨이 울리자, 상대는 글러브 터치 제스처를 취했고.

이를 위해 주먹을 가볍게 내민 순간.


퍽!


상대는 내 안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비겁한 놈.

글러브 터치를 페이크로 쓰다니.


글러브 터치는 '잘 싸워 보자'는 의미가 담긴 선수 간 암묵적인 합의일 뿐 반칙은 아니다.

그러나 페어플레이로 볼 수 없는 행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글러브 터치 페이크로 주도권을 가져간 상대는 원투를 뻗으며 점점 나를 코너로 몰아갔다.

가드를 올린 채 위빙과 더킹으로 녀석의 주먹을 피하던 중 내 왼쪽 몸통이 비었고.

그 찰나를 놓칠 리 없는 상대는 라이트 바디 훅을 던지기 위해 오른쪽 가드를 내렸다.

그 순간 텅 빈 상대의 오른쪽 안면.


퍼어어어억!

상대의 주먹은 내 바디에 꽂혔고, 내 주먹은 상대의 오른쪽 안면에 꽂혔다.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내는 일순간 고요해졌다.

카운터 펀치로 봐도 손색없을 만큼 강한 타격이 서로를 향했기 때문이었다.


털썩-


그러나 바닥에 나자빠진 건 상대 선수뿐.

나는 무통 천국을 누리고 있는 상태였기에, 개미 한 마리 지나간 듯이 옆구리가 간질거리기만 했다.


곧바로 상대 선수에게 달려간 주심.


“10, 9, ···, 3.”


그는 카운트를 세다 말고 돌연 관중석을 쳐다봤다.

누군가와 눈빛을 교환한 심판은 더 이상 숫자를 세지 않고 상대 선수가 일어나기 만을 기다렸다.


“우~ 우~”


관중들의 야유에도 심판은 개의치 않는 듯 보였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상대 선수는 로프를 잡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와 동시에 곧바로 경기를 재개 시키는 주심.


이거, 뭐 하자는 플레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ROUND 21 +1 24.05.26 66 4 13쪽
20 ROUND 20 +1 24.05.25 60 5 11쪽
19 ROUND 19 +1 24.05.24 68 4 12쪽
18 ROUND 18 24.05.23 69 2 12쪽
17 ROUND 17 +1 24.05.22 79 3 13쪽
16 ROUND 16 24.05.21 79 4 13쪽
15 ROUND 15 +1 24.05.20 77 3 12쪽
14 ROUND 14 24.05.19 86 2 12쪽
13 ROUND 13 24.05.18 84 2 13쪽
12 ROUND 12 24.05.17 88 2 12쪽
» ROUND 11 24.05.16 97 3 11쪽
10 ROUND 10 24.05.15 96 4 12쪽
9 ROUND 9 24.05.15 104 3 13쪽
8 ROUND 8 24.05.14 126 3 13쪽
7 ROUND 7 24.05.13 142 4 14쪽
6 ROUND 6 24.05.12 153 6 13쪽
5 ROUND 5 24.05.11 154 6 11쪽
4 ROUND 4 24.05.10 164 6 12쪽
3 ROUND 3 24.05.09 183 8 12쪽
2 ROUND 2 24.05.08 206 8 13쪽
1 ROUND 1 24.05.08 240 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