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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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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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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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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글자수 :
117,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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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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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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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OUND 4

DUMMY

따스한 햇살.

하얀색 물감을 떨어트린 것 같은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파란 하늘.


완연한 봄 날씨가 찾아왔다.

그야말로 놀러가기 딱 좋은 날.


남들은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가겠지만, 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장정은 복싱장 건물 앞에 모였다.


“다 모였지?”


아, 여기에 한 명 더.

커다란 승합차 운전석에 타고 있는 박길태 관장도 포함이다.


“가서 몸도 풀어야 하니까 얼른 타.”


그의 말에 여섯 명의 장정은 일사불란하게 승합차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형. 잘 지냈어요?”


내 옆자리에는 장정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새파랗게 어린 놈, 손수호가 앉았다.


“그럼. 시간이 안 가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지.”

“저도요! 작년보다 올해가 더 설레는 거 있죠?”


수호는 작년 전국 생체 때 초등학생답지 않은 저돌적인 경기력으로 큰 화제가 됐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모든 경기를 1라운드 만에 끝냈다고 하니 말 다했지.

그땐 내가 복싱을 시작하기 전이라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왜?”

“왜라니요. 형 덕분에 제 단점을 찾았잖아요. 저 그때 형이랑 스파링 하고 매일 로드워크 뛰었거든요. 어떻게든 체력 늘리기 위해서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스파링 한 번에 자신의 단점을 바로 캐치하고 곧바로 보완을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니.


이 녀석.

복싱 재능을 갖고 태어난 신동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노력파였구나.


“아참, 형. 이거 드세요.”


수호는 가방 속에서 구깃구깃하게 접힌 파우치를 꺼내 내게 건넸다.


“키 쑥쑥 홍삼?”

“절대 제가 먹기 싫어서 주는 거 아니에요.”

“고맙다. 이거 먹고 키 쑥쑥 클게.”

“앗. 그런 의도도 아니었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하는 수호.


키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게 혹했지만 어찌 고등학생이 초등학생의 간식을 뺏어 먹으랴.

무통 빨로 무한 체력인 상태라 홍삼 따위 필요 없기도 하고.


그래서 수호를 위해 소소한 꿀팁 하나 풀기로 했다.


“수호야. 형이 뭐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복싱 선수는 홍삼을 먹는 게 좋대.”

“체력 때문에요?”

“아니. 복싱 선수는 아무래도 머리를 계속 얻어맞으니까 뇌가 손상되기 쉽잖아. 전설의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파킨슨병에 걸렸었고. 근데 홍삼이 뇌 손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더라고.”

“에이, 거짓말.”

“어? 진짠데. 보여줄까?”


나는 핸드폰으로 얼마 전에 본 너튜브 영상을 틀었다.


무려 15년 전 올라온 이 영상에는 홍삼을 먹인 흰쥐에게 여러 차례 머리에 충격을 가한 뒤 미로 찾기 시험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홍삼 먹은 흰쥐는 일명 ‘펀치 드렁크’에 빠진 상태였지만 정상 쥐와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미로를 탈출했다.


“세상에 참 별별 연구 결과가 다 있네요. 근데 좀 잔인하다. 쥐는 대체 무슨 잘못이에요? 연구를 위해서 학대당해야 했다니.”

“안 그래도 댓글에 악플이 수두룩해. 근데 이 영상 보고 느낀 점 없어?”

“형. 제 홍삼 다시 주세요.”


수호는 내 손에 들려있던 홍삼을 다시 뺏어가더니 순식간에 흡입했다.

입안 가득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느껴진 건지 인상을 팍 구기는 녀석.


“맨날 홍삼 먹기 싫어서 도망 다녔는데 이제부터는 매일 꾸준히 잘 챙겨먹을 거예요.”


수호는 온몸에 힘이 솟아나는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나저나 형은 똑똑하기까지 하네요. 저도 운동만 하지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어요.”


차마 초등학생에게 밥 먹듯이 본 숏폼 때문에 잡학다식러가 됐다고 해명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래. 운동만큼 공부도 잘 하면 장차 큰 인물이 될 수 있어.”


나는 꼰대처럼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


“다 왔다.”


깊은 단잠에 빠진지 얼마나 지났을까.

박길태 관장의 화통한 목소리에 두 눈이 절로 떠졌다.


다른 회원들도 깊은 잠에 빠졌던 건지 너도나도 하품을 동반한 기지개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럴 만도 했다.

계체량 측정이 오전 8시부터 진행됐기에 새벽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으니까.


그나저나 대회장이 어디 있다는 거지?


아무리 생체라고 해도 전국 타이틀이 붙은 대회라 커다란 체육관을 빌려서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차가 멈춘 곳은 평범한 상가 건물 앞.

그리고 상가 3층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복싱장이 있었다.


“얼른 들어가자. 늦겠다.”


박길태 관장의 재촉에 여섯 명의 장정들은 서둘러 복싱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복싱장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링.

그리고 그 주변 천장에 묶여 있는 샌드백 5개.


여느 복싱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계체량은 저기 안에 들어가서 측정하면 돼.”


박길태 관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탈의실이었다.


복싱장 내부에 붙어 있는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라고 적힌 현수막만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대회장인지 모를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러면서 참가비를 3만 원이나 받다니.


여섯 명의 장정이 우르르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뜩이나 비좁은 탈의실이 꽉 찼다.


탈의실 한 가운데 놓여 있는 체중계.

그 옆 의자에는 한 남자가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옷 벗으세요.”


남자의 말에 망설임 없이 옷을 휙휙 벗는 사람들.

덩달아 나도 빠른 속도로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체중계 위에 올라가세요.”


이번에도 영혼 없이 말하는 남자.


“저부터 올라갈게요.”


수호가 가장 먼저 자신 있게 체중계에 올랐다.

손쉽게 통과하는 녀석.

수호를 비롯한 다섯 명의 회원들이 모두 계체를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50kg.”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체중계에 적힌 숫자를 읽던 남자.

그는 출전자 명단에 체중을 적으며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학생, 밴텀급으로 나온 거 맞아? 플라이급 아니고?”

“밴텀급 맞아요.”


전국 생체 출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내 체중은 밴텀급 커트라인인 55kg이었지만, 지금 체중은 그때보다 5kg이나 감량했다.


50kg은 밴텀급도 플라이급도 출전할 수 있는 체중.

그러나 애초 나는 밴텀급으로 신청을 했기에 하마터면 체중 미달로 시합을 해보지도 못 하고 귀가할 뻔했다.


어젯밤 체중을 쟀을 때 51kg이길래 안심했는데, 하루 사이 1kg이나 빠질 줄이야.

아무래도 매일 체력의 한계를 모르고 질릴 때까지 운동을 했더니 단기간 급속도로 감량이 된 모양이었다.


“KT복싱클럽 모두 계체량 통과입니다. 오전 10시에 대회 시작하니 그때까지 대기해주면 됩니다.”

“네!”


우렁찬 목소리로 입 모아 대답을 한 여섯 명의 장정은 옷을 갈아입고 하나 둘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내가 나가려던 그때.


퍽!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한 남학생과 어깨가 부딪혔다.


“시발. 뭐야? 이 나무 막대기 같은 건? 눈알이 등 뒤에 달렸나.”


그의 말에 뒤따라 들어오던 남학생들이 킥킥 소리를 내며 비웃었다.

내가 이 얼굴을 모를 리 없지.


“이서우?”


나는 남학생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뭐야, 날 알아?”


이서우는 눈을 내리깔며 나를 쳐다봤다.


나보다 키는 10cm 정도 더 크고 체격은 훨씬 더 우람해 보이는데 같은 밴텀급이라니.

이 새끼 이거, 체급까지 속인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잘 부탁한다고.”

“너도 밴텀급이냐?”

“맞아.”


나의 대답에 이서우는 내 앞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근데 뭘 잘 부탁하라는 거야? 나랑 싸울 일이 있을 것 같아? 생긴 거 보니 비실비실한 게 딱 봐도 예선 탈락인데?”


현실에서 마주한 이서우는 싸가지를 밥 말아먹은 놈이었다.

너튜브에서는 싹싹하고 쾌활한 모습이더니 순 연기였던 모양이었다.


이서우가 이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뻔했다.

주먹에 대한 과신.

그러나 박길태 관장이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복싱은 주먹의 힘 만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건 이서우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의미지.


“글쎄. 내가 외유내강인지 네가 내유외강인지는 링 위에서 겨뤄보면 알겠지.”


이서우는 나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녀석이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연 그때.


"다음."


체중계 옆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지리멸렬한 기싸움이 계속됐을 거다.


"꺼져."


내 어깨를 팍 밀치고는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는 이서우.

이렇게 재수 없는 놈이었다니.


너튜브로 수없이 본 세계 챔피언들의 레전드 경기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챔피언들은 말을 아끼고, 그들의 상대 선수들은 하나같이 자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링 위에 올라 세계 챔피언들의 주먹 맛을 보는 순간 상대 선수들은 급격히 공손해졌다.


복싱이란 그런 운동이라는 것을.

나는 이서우에게 제대로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


사전에 박길태 관장에게 공유 받았던 일정표에 따르면 이번 전국 생체는 이틀에 걸쳐 진행이 된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일반부, 여성부 등 전체 출전자가 3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첫날엔 모든 부문에 대한 예선전과 준결승전이, 다음 날에는 결승전과 시상식이 잡혀 있다.

즉, 초등부의 예선전을 시작으로 전국 생체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른 셈.


우리 체육관에서 온 다른 선수들은 계체량 측정 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나는 수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회장에 남았다.


무통 빨로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기도 했고.


전국 생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는데 초등부 경기를 보고 흠칫 놀랐다.

생각 이상으로 수준이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중등부부터는 실력파들이 엘리트 코스로 빠지지만 초등부는 체중을 목표로 하는 예비 엘리트들이 모였기 때문이겠지.


고작 다섯 경기만 진행됐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링 바닥이 핏자국과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돼있었다.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초등부 마지막 예선전.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수호가 링 위에 올랐다.


“수호 파이팅!”


한껏 긴장했을 녀석을 위해 큰 소리로 외쳐줬지만, 전년도 우승자인 수호는 피식 웃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띵!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수호는 저돌적으로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고도 날렵한 움직임.

그것은 흡사 치타와도 같았다.


다만 스파링 때와 달라진 점은 스텝을 이용해 한 번씩 타이밍을 잰다는 점이었다.

이는 수호의 약점이었던 오버페이스를 보완하기 위한 숨 고르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극단적인 인파이터였던 수호는 아웃파이터처럼 한 번씩 거리를 재며 팔을 뻗기도 했다.


스파링 했을 때만 해도 난타전으로 경기를 하던 수호는 고작 2주 사이 지능적인 경기를 펼쳤다.

역시 신동은 신동.


손쉽게 상대를 제압하고 링에서 내려온 수호는 땀을 쓱 닦고는 내게 다가왔다.


“형. 홍삼 효과 대박이에요. 안 지쳐요!”


순전히 스스로 노력해 강해진 건데도 홍삼에 공을 돌리다니.

복싱은 이렇게 겸손을 체득할 수 있는 운동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뒤 고등부의 예선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선수들은 준비해주세요.”


한 중년 남성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파아앙! 팡팡!


돌연 이시우가 웃통을 벗고는 샌드백을 때리기 시작했다.


쩍쩍 갈라진 근육질 몸으로 현란한 콤비네이션과 화려한 스텝, 그리고 파워풀한 펀치까지 선보이자 일부 선수들은 한껏 기가 꺾인 듯 보였다.


저 놈은 저게 문제다.

과시욕이 지나치다는 것.


이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 거란 걸 알긴 할까.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너튜브에서 ‘이시우’를 검색했다.

주르륵 나오는 수백 개에 달하는 생체 우승 영상들.


그것은 족보와 다름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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