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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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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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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4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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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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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ROUND 15

DUMMY

“이런.”


박길태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로프에 몸을 기댔다.


‘체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그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최강인을 바라보았다.

땀에 찌든 청바지는 어느새 양쪽 다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최강인의 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스파링을 제안했건만, 정작 본인의 체력이 한계에 달했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관장님, 벌써 지친 거예요?”


더욱이 지친 기색이라고는 일절 느껴지지 않는 최강인.

여전히 체력이 남아도는지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에 박길태는 저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이를 먹긴 했어도 명색이 세계 챔피언 출신인데.

한낱 고등학생 앞에 무릎을 꿇은 줄이야.


“지치긴.”


끊임없이 성장하는 선수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

더욱이 최강인의 성장 속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회피력 강화 훈련을 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최강인은 어느 순간 박길태의 주먹을 가뿐하게 피하고 있었다.

마치 나비와 같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노력도 노력인데 이거야 원···. 습득력이 상상 그 이상이잖아?’


박길태는 알고 있다.

체육관 출신 엘리트 선수가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좀처럼 빛을 발휘하지 못 하는 이유는 체중, 체고, 체대 정석 코스를 밟은 선수들의 운동량을 따라가지 못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밤낮으로 미친 듯이 운동하는 선수들과 체육관에서 깔짝거리며 운동하는 선수들의 실력은 천지 차이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강인은 남들보다 출발점도 늦은 선수였다.


그러나 최강인의 성장 속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였으며, ‘신동’이라 불리는 유망주들을 손쉽게 밟고 올라서고 있다.


박길태는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최강인과 3시간 내내 스파링을 해서 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대감이었다.

마른 황무지에 피어난 푸른 새싹을 바라보는 듯한 싱그러운 기분이었다.


새싹이 자라 꽃을 피우기 위해선 적당한 물과 햇빛을 끊임없이 줘야 하는 법.


“전지훈련의 꽃이 바로 일본 선수들과의 스파링인 거 알지? 그날 김동연 회장도 올 거다. 그러니 반드시 이겨.”

“관장님도 참. 김동연 회장 없어도 이겨야 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게 최강인의 클리셰인데.”

“이놈은 대체 뭘 믿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지 모르겠네.”

“관장님도 이겼는데 자신감이 치솟을 만하지 않아요?”


박길태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누군가의 자신감이 이렇게 통쾌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 괴물 같은 녀석만 피하면 빛을 보게 돼 있다.’


일본 복싱 신동, 스즈키 료헤이였다.


//


“선배, 이거 대박인데요?”


조수석에 앉은 유승아는 종이를 넘기며 탄식을 쏟아냈다.


“뭐가?”

“유스 선수들 전지훈련 일정 보는데 진짜 빡세요. 작년과 비교될 만큼.”

“그렇지? 복싱연맹 회장이 바뀌니까 훈련 방식이 확 바뀌었어.”

“작년엔 체육관 하나 빌려서 샌드백 치고 쉐도우 복싱하고 스파링하고 그랬잖아요. 근데 이번엔 산 뛰고 와서 유스끼리 스파링하고 일본 선수들과 스파링하고···. 와우. 저라면 분명 하다가 토할 거예요.”


박기우는 핸들을 잡은 채 피식 웃었다.


“그것도 포인트제로 운영하다니, 김동연이 참 똑똑해.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다니 말이야.”

“웃긴 건 그렇게 포인트 모아서 얻는 보상이 고작 ‘일본 선수 선택권’이라는 거잖아요.”

“과연 고작일까?”


박기우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매년 전지훈련 때마다 진행된 일본 유스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친선 스파링.

‘친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상 두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더욱이 아시아유스복싱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진행되는 이벤트인 만큼 복싱 팬들의 관심도 크기에.

스파링임에도 너튜브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스파링에서 뛰어난 실력을 과시한 선수는 양 국가에서 주목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늘 일본 선수만 주목을 받았지···. 올해는 스즈키 료헤이가 주인공일 테고.’


스즈키 료헤이.

일본에서 ‘연체동물’로 불릴 만큼 남다른 유연성을 자랑하는 유스 국가대표 선수.

그만큼 회피력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공격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차피 스즈키 료헤이만 피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일본 대스타인데 설마 어떤 바보가 그를 선택하겠어요.”


박기우는 유승아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에서 포인트를 가장 적게 얻은 선수가 불가피하게 그와 스파링을 하겠지.”

“그건 무조건 스즈키가 이기는 경기겠네요.”

“당연하지.”

“꼴찌 싸움이 제일 치열하겠어요. 어떻게든 스즈키를 피해야 하니까.”

“그동안 전지훈련은 의례적인 훈련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모든 선수가 사활을 걸고 최선을 다 하겠지?”

“선배 말처럼 김동연 회장이 참 똑똑하네요.”


일정표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유승아는 돌연 무언가 생각난 듯이 손뼉을 짝 쳤다.

돌연 들려온 마찰음에 전방을 주시하던 박기우는 저도 모르게 유승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선배.”

“왜.”

“김동연 회장이 인심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렇지.”

“이번 스파링에는 뭐 안 걸었을까요?”

“글쎄···. 본 경기도 아닌 스파링인데 보상이 있을까?”

“금전적인 보상이 따라준다면 선수들이 이를 악 물고 최선을 다할 텐데 말이에요.”


어쩐지 기대가 되는 유승아였다.


//


“기분이 참 묘하네.”

“뭐가.”

“최강인 너랑 전지훈련을 같이 오다니 말이야.”

“그래서 싫냐?”

“아니. 좋아. 적어도 심심하진 않으니까. 너 없었으면 완전 쓸쓸했을 것 같아.”


나 또한 조인찬의 말에 공감했다.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남녀 각 체급별로 1명씩 총 15명의 선수가 뽑혔지만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태양체고 또는 강한고 복싱부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 학교를 상징하는 배지를 달고 있었기에 선수들이 어디 소속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있자니 나와 조인찬은 마치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도 된 기분이었다.


원래 유스 국가대표 분위기가 이런가.

태양체고와 강한고 선수들은 우리를 향해 곁눈질만 할 뿐 그 누구도 선뜻 인사를 건네지도,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자, 선수들 단상 앞으로 모이세요.”


그 순간 스피커를 타고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기에 망정이었지.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우르르 단상 앞으로 모이자 말끔하게 운동복을 차려 입은 남성이 단상 한 가운데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유스 국가대표 선수단 감독을 맡고 있는 이훈입니다. 다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이렇게 실력 있는 선수들과 함께 한 길을 걷게 돼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나눠드렸던 일정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늘은 각자 알아서 가볍게 몸을 풀며 적응의 시간을 가지면 되고요. 내일 아침 인근에 위치한 칠갑산 로드워크를 진행하고 오후엔 무체급 토너먼트로 선수들끼리 스파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일정은 다들 아시죠? 일본 선수들과 친선 스파링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훈 감독은 이어 데스크에서 종이로 만들어진 팔찌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건 기록지입니다. 운동만 주구장창하면 재미없고 지루하고 힘들기만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포인트제’로 훈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각 훈련에서 좋은 기록을 세울수록 높은 포인트가 부여되고 누적 포인트가 가장 많은 선수에게는 스파링 할 일본 선수를 직접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때 태양체고의 한 선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네. 질문하세요.”

“일본 선수들이 누가 나오는지 저희는 모르는데 어떻게 고르나요?”

“하여간 한국인은 참 성격 급해요? 안 그래도 지금 막 일본 선수들을 소개할 생각이었어요.”


이훈 감독은 웃으며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보드의 방향을 돌리자 선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보드에는 15명의 일본 유스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진과 이름이 부착돼 있었지만, 태양체고와 강한고 선수들은 단 한 명만 주시하고 있었다.


“헐? 스즈키 료헤이가 온다는 게 사실이었어?”

“그런가 봐. 벌써 프로 선수 제안도 받았다고 하던데.”

“스즈키는 반드시 피해야겠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웃는 선수가 딱 한 명 있었으니.

그렇다. 바로 나다.


스즈키 료헤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회피력 강화 훈련 때 밥 먹듯이 봤던 스파링 영상 속 주인공일 줄이야.


선수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이훈 감독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특별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는 누군가를 쳐다보며 박수를 쳤고.

선수들의 시선은 저절로 그를 따라 움직였다.


멀찍이서 단상을 향해 다가오는 중년 남성.

선수들은 그의 얼굴을 보고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럴 만 했다.

김동연 안화그룹 회장이 복싱연맹 회장을 맡았던 건 80년 대였지만 나를 비롯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선수들은 2006년~2007년도 출생자이기 때문이니까.


“안녕하십니까. 김동연입니다.”


그의 인사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 보면, 얼마나 무지한 지 알 수 있었다.


“반응을 보니 제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군요.”


어쩐지 서운한 표정을 짓는 김동연 회장.

그의 말에 이훈 감독의 얼굴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 고귀한 회장님을 이렇게 찬밥 취급해서야 되겠나.


짝짝!


고요한 체육관에 돌연 울린 박수 소리에 선수들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됐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복싱연맹 회장님이 김동연 회장님이라서 행복합니다!”

“야! 창피하게 왜 그래.”


내 옆에 서 있던 조인찬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쑤셨지만, 나는 개의치 않아하며 더욱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김동연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멈출까.


“이번에 새로 취임한 복싱연맹 회장님인가 봐.”

“생긴 것만 보면 이웃집 할아버지인데.”

“꼭 실력 없는 놈들이 윗사람들에게 저렇게 아부 떨더라.”

“기껏해야 복싱연맹 회장인데 왜 저러나 몰라.”


고요한 체육관을 가득 채운 나의 노랫소리에 선수들은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며 술렁거렸다.


이 멍청한 놈들.

이렇게 판을 깔아줬는데도 아직도 눈치를 못 챈다고?


“유스 국가대표 선발전 때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줬던 최강인 선수군요. 격하게 환영해줘서 고마워요. 저희 야구팀 응원 곡을 여기서 들을 줄 몰랐네요. 내 기쁨의 의미로 선물 하나 주죠. 이리 올라오세요.”


선물?

나 또한 예상치 못한 전개였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이번 전지 훈련에서 인상적인 선수를 보게 되면 격려 차원에서 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일찍 주게 될 줄 몰랐네요.”


김동연은 주머니 속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내 손에 건넸다.

손에 닿자마자 두툼한 두께감이 느껴지는 걸 보면 꽤나 많은 지폐가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박길태 관장이 김동연 회장이 통 크기로 유명했다고 했는데 이 정도였을 줄이야.


그때부터였다.

선수들이 갑자기 너도나도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포인트제로 진행된 이번 전지훈련에 ‘김동연 회장에게 점수 따기’도 포함이 된 듯 선수들은 돌연 열띤 경쟁을 펼쳤지만.


“이런, 어쩌죠. 선수 한 명 몫만 챙겨왔거든요.”


김동연 회장이 멋쩍어하며 말한 뒤에야 그들의 발악은 멈춰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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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ROUND 9 24.05.15 10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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