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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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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24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12 10:50
조회
153
추천
6
글자
13쪽

ROUND 6

DUMMY

수호는 복싱이 싫었다.


강하게 커야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간 복싱장.

그때 수호의 나이는 불과 5살에 불과했다.


“자, 수호야. 이게 잽이라는 거야.”


박길태는 양쪽 발을 1시 방향에 두고는 왼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이렇게요?”


곧바로 따라하는 수호.


“그럼 이번엔 스트레이트를 해볼까?”


박길태는 왼쪽 주먹을 올린 채 오른팔을 쭉 뻗었다.

이번에도 수호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따라했다.


“제법인데? 그럼 이것도 한 번 해볼래?”


박길태는 왼팔과 오른팔에 힘을 싣지 않은 채 가볍고 빠르게 앞으로 뻗었다.

이어 오른쪽으로 허리를 틀어 앉고는 반동을 이용해서 오른팔을 앞으로 깊게 뻗었다.


“이건 원투슥빵이라는 거야.”


일종의 장난이었다.

성인도 복싱을 배운지 한 달은 돼야 할 수 있는 콤비네이션.

이것을 복싱을 처음 접하는 다섯 살 꼬맹이가 따라할 리가 없었으니까.

헌데.


“관장님 이거 맞아요?”


박길태는 두 눈을 의심했다.

엉성하긴 하지만 허리를 돌리는 거 하면 반동을 쓰는 것까지 얼추 비슷하게 따라했기 때문이었다.


‘신동이구나.’


그가 선수 시절 그토록 부러워했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곧 씁쓸한 표정으로 수호를 바라보았다.


‘하필 침체기에···. 일찍 태어났으면 세계를 씹어 먹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런 박길태의 마음도 모르고 수호의 엄마는 곧잘 따라하는 아들을 보며 연신 기뻐했다.


그 후로 수호는 복싱장에 방치됐다.

재능이 있단 이유로.


박길태 또한 수호가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제대로 복싱을 알려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줄넘기와 각종 콤비네이션을 알려주는 것 말고는.


손수호 나이 13살.

어느새 복싱 경력 8년 차가 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성장하지 않고 제자리에 맴돌았다.


각종 대회에서 자신과 같은 초등학생을 상대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였고, 복싱장 회원 중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단 한 번도 눈길이 가지 않았을 만큼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형과 스파링이 잡혔고.


‘빨리 끝내고 PC방이나 가야지.’


수호는 이를 그저 귀찮고 성가신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스텝, 공격, 회피 기술 등 모든 게 허접하기 짝이 없는데.

처음 맛본 체력의 한계와 패배감, 그리고 승부욕까지.


수호는 울음을 빵 터뜨렸다.

미안하면서도 기뻐서 흘린 눈물이었다.


수호는 복싱이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목표는 초등부 톱클래스가 아니었다.

저 형을 이기는 것.

나아가 더 높은 상대들을 줄줄이 쓰러뜨리는 것.


그러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쓰디 쓴 홍삼을 챙겨 먹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홍삼 덕분인지.

전국 생체 쯤은 우습게 느껴졌다.


//


예상대로 수호는 손쉽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예선전과 준결승전 모두 별다를 게 없는 전략이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 한 건지 결승전 상대는 2라운드가 끝나기 전 펑펑 울며 링에 하얀 수건을 내던졌다.


경기를 마친 수호는 ‘홍삼 기운’이라며 괴상한 손짓을 내 앞에서 해댔다.

링 위에서는 성인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발사하더니 링 아래에서 보면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


초등부 결승전이 끝나고 중등부 결승전이 치러지는 동안 시합 준비에 나섰다.

시합복을 입고, 머리에 헤드기어를 쓰고, 입에 마우스피스를 끼고, 낭심 보호대까지 착용하면 끝.


진작 시합 준비를 마친 이서우는 라이브 방송을 켜려는 건지 삼각대에 핸드폰을 꽂고 있었다.


“이서우 경기하는 거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 잽 정확도도 좋고 공격 속도까지 빨라. 거기다 파워도 제법 있고···. 우승 안 해도 되니까 다치지만 마.”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박길태 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마우스피스 때문에 발음이 어눌해져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중등부 결승전이 모두 끝나고 고등부 결승전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결승전을 치른 건 플라이급.

그 다음이 바로 밴텀급인 나와 이서우의 대결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AO복싱체육관 이서우 선수, KT복싱클럽 최강인 선수 준비해주세요.”


스피커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로프 사이로 몸을 집어넣어 링 위로 올라가자 관중들이 수군거렸다.


그럴 만 했다.

같은 밴텀급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나와 이서우의 체격은 극과 극이었으니까.


코너의 끝과 끝에 서 있던 나와 이서우는 심판이 팔을 벌렸다가 모으는 것을 보고 중앙으로 걸어갔다.


심판의 수신호에 맞춰 가볍게 글러브 터치를 하자.


띵!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링벨이 울렸다.


우람한 체격에 비교적 짧은 리치를 갖고 있는 녀석은 누가 봐도 인파이터였다.

백스텝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려던 찰나.


타악!


이서우의 날카로운 잽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둔탁한 마찰음은 울렸지만 가드를 올려 간신히 막은 덕분에 유효타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잽을 이용해 거리를 확인한 이서우가 불도저마냥 빠른 속도로 잽을 던지기 시작했다.

벌처럼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잽.

처음엔 박길태에게 배운대로 머리를 흔들면서 피하려고 해봤으나 오히려 안면만 오픈될 뿐이었다.

1년차 복린이인 나로서는 가드를 올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녀석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백스텝을 밟다 보니 어느새 로프가 등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윽!”


내가 움찔하자 이서우는 씩 웃었다.

자신이 친 덫에 걸려들었다는 확신의 미소였다.


그때부터 녀석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시작은 어퍼컷이었다.

나의 턱을 향해 힘을 잔뜩 실은 어퍼컷을 날리는 놈.

내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밑으로 숙인 순간.


퍼어어어억!


이서우는 곧바로 내 안면을 향해 바디 훅을 날렸다.

양궁이었으면 10점을 받았을 만큼 정중앙에 정확히 꽂힌 주먹.

거기다 비대한 상체 근육을 가진 녀석의 펀치력은 가히 압도적이었기에 꽤나 큰 마찰음이 체육관에 울렸다.


그와 동시에 나의 몸은 휘청거렸고.


툭.


코에서는 주르륵 핏방울이 떨어졌다.


녹다운을 당한 것도 아니었는데 곧바로 내게 달려온 심판.

아무래도 생체 대회다 보니 안전을 걱정한 모양이었다.


“계속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나는 손등으로 코피를 쓱 닦고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통 효과 덕분에 먼지 한 톨 스친 것처럼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제법 버티네.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꽤나 근접한 거리에 있었기에.

녀석의 낮은 음성이 내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슈우욱! 퍼어어억!


인파이터에게 KO만큼 짜릿한 승리가 또 있을까.

이서우는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나를 향해 주먹을 퍼부었다.

주먹 하나하나에 힘을 잔뜩 실은 걸 보면 내가 쓰러지는 꼴을 봐야 성이 차려는 모양이었다.


주먹 하나하나가 이토록 매서운 걸 보면 엘리트는 엘리트다.

허나, 엘리트도 사람이었다.


1라운드가 끝나기 1분 전.

이서우의 공격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헉헉.”


그리고 녀석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이서우의 강점인 펀치력과 공속을 제압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

그것은 바로 소나기 펀치를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겉멋에 취한 이 녀석의 경기 영상들을 보면 전부 소나기 펀치를 이용해 1라운드에서 끝났다.

이는 다시 말해 지구력이 그만큼 딸린다는 얘기지.


자신의 한계도 모르고 ‘KO’에 집착해 이를 악 물고 주먹을 잇달아 던진 이서우.

팔 힘과 함께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욱이 녀석의 공격은 마초적인 스타일.

간파하기 쉬운 펀치였다.

영상을 보면서 다음 펀치가 짐작이 갔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이서우의 공격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과 나의 반사 신경이 느린 편이라는 것.


그러나 녀석의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이서우가 또 한 번 나를 코너로 몰기 위해 원투를 잇달아 던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느려진 공격 속도.


나는 곧바로 백 스텝을 밟아 거리를 벌리고는 링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뛰었다.

그 순간 녀석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1라운드 종료 40초 전.

내 체력은 넘치고 있었고 정신도 말짱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녀석의 발을 묶을 차례였다.


링을 뺑뺑 돌면서 이서우가 직진 스텝을 밟으며 다가올 때마다 원투로 페이크를 주면서 엇박자로 바디 블로우를 던졌다.


“읏!”


스텝을 이용해 만든 반동으로 내리친 바디 블로우라 그런지 이서우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아마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겠지.


1라운드가 끝나기 20초 전.


이서우는 불리한 상황인 걸 감지했는지 머리를 흔들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흡사 투우의 뿔과도 같았다.


이럴 때 백 스텝이 오히려 독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투우사처럼 위빙을 하며 녀석이 달려드는 쪽 반대 방향으로 치고 들어갔다.


당황한 이서우는 저도 모르게 가드를 내린 채 큰 궤적을 그리며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시원하게 비워진 녀석의 턱을 향해 힘껏 훅을 던졌다.


퍼어어억!


그와 동시에 이서우의 몸이 코너 쪽으로 내팽개쳐졌고.

녀석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띵!


“괘, 괜찮니?”


1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심판은 서둘러 이서우를 향해 달려갔다.


새끼 엄살은.

나처럼 코피가 줄줄 터진 것도 아니면서.


“아, 네. 할 수 있습니다.”


녀석은 고개를 몇 차례 젓고는 로프를 잡고 다시 일어섰다.


30초 뒤, 2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고.

이서우는 1라운드와 마찬가지로 대시 전략을 세웠지만, 이미 팔과 다리 힘 모두 빠진 녀석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나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링을 뺑뺑 돌며 포인트 사냥에 나섰고.

녀석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내게 성질이 뻗쳤는지 점점 감정적으로 주먹을 던지기 시작했다.


직관적이고 힘이 팍팍 들어간 펀치.

그것은 놈의 체력만 갉아먹는 자충수였다.


이대로 끝내도 결과는 뻔했지만.

비열한 녀석에게 인과응보를 체감하게 해주고 싶었기에.


2라운드가 끝나기 10초 전.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포자기 심경으로 가드를 내리고 있던 이서우를 향해 영혼을 끌어 모은 어퍼컷을 던졌다.


아마 녀석이 지치지 않은 상태였으면 바로 위빙이든 더킹이든 슬립이든 뭐로든 피했을 테지만.

지금 이 녀석의 움직임은 상당히 둔화된 상태.


쿵!


턱이 들린 녀석은 곧 바닥에 대자로 쓰러졌고, 허공엔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마우스피스가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띵!


2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링벨이 울렸지만 관중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 했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그저 두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찌릿!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파민이 충전되는 게 느껴졌다.


영상으로는 절대 충전되지 않는 극강의 도파민.

예선전 상대를 이겼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카타르시스.


그것은 주먹 끝을 시발점으로 온몸에 잔뜩 퍼졌다.


//


박길태는 입이 떡 벌어졌다.


분명 지고 있던 경기였고 체급뿐만 아니라 실력 차 또한 상당했다.

엘리트 선수답게 이서우의 주먹은 묵직했고 공격 속도도 빨랐으며 수준 높은 돌파 능력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우승을 한 건 최강인이었다.

펀치력도 동체시력도 풋워크도 모든 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작 복싱 1년 밖에 안 배운 고등학생이 말이다.


‘운 때문이 아니었어.’


박길태는 링 위에서 본 최강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KO가 돼도 이상할 게 없는 강력한 안면 타격을 맞고도, 바닥을 흥건히 적실 정도로 선홍빛 코피를 흘리고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끝까지 버틴 독한 놈.


‘단순한 노력형 천재가 아니야. 승리하겠다는 집념과 불굴의 정신까지···. 이 시대 보기 드문 헝그리 복서다.’


박길태는 심판에 의해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최강인을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선수를 1년 동안 방치하고 있었다니.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그의 두 눈이 한창 타오르고 있던 그때.


“저기, 관장님.”


옆에 서 있던 탑스포츠 박수아 기자가 말을 걸었다.


“네?”

“청색 시합복을 입은 선수가 엘리트라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럼···. 엘리트 선수가 진 건가요?”

“그렇죠! 그것도 복싱 1년 배운 생체인한테 말이죠. 이거 대서특필할 만한 화젯감 아닙니까?”


박길태는 껄껄 소리를 내며 화통하게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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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OUND 8 24.05.14 12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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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UND 6 24.05.12 154 6 13쪽
5 ROUND 5 24.05.11 154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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