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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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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28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11 10:50
조회
154
추천
6
글자
11쪽

ROUND 5

DUMMY

고등부 예선전이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생각보다 내 차례는 일찍 찾아왔다.


복싱 입문 1년 만에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

거기다 나보다 족히 10kg은 더 나갈 것처럼 생긴 상대가 마주 편에 서 있으면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이지만.

희한하게도 청심환을 먹은 것처럼 하나도 떨리지가 않았다.


무통 효과일 수도 있고.


“강인이형 파이팅!”


수호의 열띤 응원 덕분일 수도 있고.


띵!


1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링벨이 울리자, 상대는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선공 잽이 내 턱에 닿기 전, 곧바로 몸을 낮추고 가드를 바짝 올렸다.


덩치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상대의 주먹엔 제법 힘이 실렸다.

가드를 올리고 있었음에도 몸이 밀릴 만큼.


치질 수술을 받기 전에 펀치력 강한 회원과 스파링을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 가드를 계속해서 올리고 있었음에도 머리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나는 공포감에 벌벌 떨며 반격을 전혀 하지 못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무통 천국을 누리고 있는 상태.

상대의 강한 펀치에 몸이 밀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단 얘기지.


상대가 나를 향해 또 다시 강한 주먹을 뻗어내던 그때.

나는 박길태 관장에게 배운 대로 레프트 훅을 날려 곧바로 스탠스 방향을 바꿨다.


그와 동시에 갈 길을 잃은 상대의 주먹.


상대가 엘리트나 프로 선수면 크게 먹히지 않을 기술이었지만 생체인이라 그런지 곧바로 균형이 깨지고 휘청거렸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나.

나는 곧바로 상대를 향해 원투를 무한으로 갈겨대며 전진 스텝을 밟았다.


헤비급 정도로 펀치력이 강한 편이 아니지만, 상대에겐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주먹이 상당히 거슬릴 것이다.

같이 난타전을 벌이기엔 체력 소모가 크고, 맞고 있으면 유효타를 내주는 꼴이기에.


역시나 상대는 가드를 올린 채 몸을 U라인으로 그리며 원투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공격 패턴이 일정하면 방어도 관성적으로 하게 되는 법.


나의 반복된 공격으로 상대의 방어 패턴이 어느 정도 획일적이게 됐을 때.

나는 기습적으로 상대의 몸을 향해 강한 바디 훅을 날렸다.


퍼억!


역시나 통했다.


상대는 잠시 당황해하더니 곧바로 반격에 나설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미 주도권은 내게 넘어온 상태.


오목처럼 복싱도 주도권이 중요하다.

공격을 이어가다보면 상대는 저도 모르게 방어에만 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 마주 편에 서있는 상대도 그러했다.


그가 반격을 위한 주먹을 내지르려고 할 때마다 나는 원투를 퍼부었다.

그럼 상대는 반사적으로 가드를 올리거나 위빙으로 피하려 했으니까.

원 패턴의 지리멸렬한 수법이라 해도 상대가 생체인이라 그런지 손쉽게 내 손바닥 위에 놀아났다.


그렇게 포인트를 독식한 나는 일말의 반전도 없이 승리했고.

그 순간.


찌릿!


온몸을 감싸고 도는 신경이 한껏 흥분한 게 느껴졌다.

자극적인 영상을 봤을 때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


‘기분 나쁜 새끼였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샌드백을 때리며 몸을 풀고 있던 이서우.

그는 계체량 측정 때 만났던 비실이를 떠올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작 생체인 주제에 근자감만 쩔어 가지고.’


엘리트 선수를 등록하고도 지역 생체부터 전국 생체까지 10차례 가까이 출전했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 도발 당한 건 처음이었다.


“서우야.”


그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이 바닥으로 똑 떨어졌다.


“곧 있으면 네 차례니까 이제 시합복으로 갈아입어.”


그가 소속된 AO복싱체육관 관장이 건넨 시합복.

그는 그것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쓱 닦았다.


이서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곁눈질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시선들을.


시합을 앞두고 샌드백을 두드린 건 몸을 풀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선수들의 기를 꺾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사전에 강력한 이미지를 어필한 뒤 링에 오르면 상대는 시작부터 방어 모드로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 생체에 나오는 거지.’


피식 쪼개며 탈의실로 향하던 이서우.

그는 체육관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는 남학생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비실이 주제에 얼마나 대단한 새끼길래 도발하나 했더니만···.’


자신의 샌드백 치는 모습엔 관심도 없고 오로지 핸드폰 액정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남학생.


‘그냥 허세충 병신이었네.’


그의 모습을 보며 이서우는 혀를 끌끌 찼다.


시합복으로 환복한 이서우가 링 옆에 앉아 복싱화 끈을 묶고 있던 그때.

앳된 얼굴의 초등학생이 그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강인이형 파이팅!”


얇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외쳤다.


‘얘는···.’


그를 본 이서우는 흠칫 놀랐다.


우연히 본 초등부 예선전 경기.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전략도 없이 싸움질인지 복싱인지 모를 주먹질을 주고받고 있을 때, 마지막에 등장한 녀석.


‘괴물 초딩이네.’


생체에서 보기 드문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상대를 처참히 짓밟은 놈이 그의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녀석이 응원하는 선수가 누군지 궁금했던 이서우는 고개를 돌려 링 위를 바라보았다.


링 코너에 서 있는 두 고등학생.

청팀 시합복을 입고 있는 제법 체격 좋은 놈과 홍팀 시합복을 입고 있는 비실이.


이서우는 괴물 초딩이 응원하는 ‘강인이’란 선수가 당연히 청색 시합복을 입고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비실이를 응원할 리는 없을 거라 확신했기에.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청팀 선수.

반면 홍팀 선수는 가드를 올린 채 막고만 있을 뿐이었다.


‘비실이는 예선 탈락 확정이군. 불쌍해라.’


이서우는 팔짱을 낀 채 비소를 띠며 링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입 꼬리는 머지않아 조금씩 내려갔다.


분명 시작은 청팀 선수가 유리했다.

헌데, 불과 몇 분 사이.

비실이의 맹공이 펼쳐진 것이다.


큰 타격의 강한 펀치도 아니고 전략적으로 뻗는 주먹도 아니었다.

단지 꽤나 거슬리는 강도의 주먹이 소나기처럼 쉴새 없이 상대를 향했다.


1라운드가 끝나갈 무렵.

이서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새끼 뭐야···.’


엘리트 선수도 1라운드 내내 주먹을 뻗으면 지쳐 쓰러진다.

헌데, 이두근조차 없어 보이는 비실이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주먹을 뻗어대고 있던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기가 지속될수록 주먹엔 점점 더 힘이 실렸다.


2라운드에서도 3라운드에서도.

초반에 공격을 쏟아내던 청팀 선수는 급속도로 지쳐간 반면, 비실이는 한껏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우승은 비실이.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옆에 서 있던 괴물 같은 초등학생이 환호했다.


‘이 초딩, 비실이를 응원했던 건가? 저거, 뭐하는 새끼지?’


이서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비실이 최강인을 한참 노려보고는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예선전을 순조롭게 끝내고 링 아래로 내려가자 수호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형 솔직하게 얘기해줘요. 홍삼 챙겨먹죠?”


수호는 연신 내게 들러붙어서 물었다.


“그랬으면 내 키가 180cm에 육박했을 걸?”

“와 크다.”

“그렇지. 180cm면 큰 편이지.”

“아뇨. 저 사람이요.”


수호는 내가 아닌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링 위.

그곳에는 이서우가 서 있었다.


“형 근데 지금 밴텀급 경기 아니에요? 저 사람이랑 형이 같은 체급이라는 게···. 안 믿기는데요?”


수호의 말처럼 링 위에 올라간 이서우는 상대 선수에 비해 우람한 체격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헤비급에서나 볼 법한 덩치의 소유자.

시합복 사이로 돌출된 울퉁불퉁한 이두근과 삼두근은 그의 실력을 짐작케 했다.


띵!


링벨이 울리자 무섭게 치고 들어가는 이서우.


내가 만났던 예선전 상대와 같은 인파이터 스타일이었지만 이서우는 남다른 회피술을 이용해 순식간에 상대에게 파고들었다.


주먹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서우는 원투로 거리 재는 것 없이 대뜸 힘이 잔뜩 실린 훅을 연속으로 내리쳤다.


상대가 가드를 올리든 말든 개의치 않아하며 상남자처럼 뚝심 있게 던져댔다.


자신감 넘치는 파워풀한 펀치를 맞으면 제아무리 글러브로 막아도 파동으로 인해 충격이 전해지는 법.


창백히 질린 상대 선수의 낯빛을 보니 그의 공격은 꽤나 통한 듯 보였다.


겁을 먹은 자와 겁을 상실한 자.

당연히 승기를 잡은 쪽은 후자였다.


고등부의 끝나고 이어진 일반부와 여성부의 경기.

선수들의 수준은 도긴개긴이었으며 주먹을 내지르는 것보다 서로 부둥켜안기를 더 많이 반복했다.


이게 내가 생각한 생체 수준이었다.

손수호와 이서우가 넘사벽 실력을 갖고 있는 거지.


이어서 진행된 준결승전.

이번에도 수호와 이서우는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순탄하게 우승을 했다.


그리고 나는···.


“네?”

“부전승이라고 몇 번 말해.”


고등부 밴텀급 중에서 준결승에 올라온 선수는 단 세 명.

홀수다 보니 한 사람은 부전승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관장들끼리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한 모양이다.

이만큼 뒤끝 없이 확실하게 승부 보기 좋은 게임이 없긴 하지.


그렇게 나는 운빨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형, 대박! 부전승이에요? 체력 아낄 수 있는 거 너무 부러워요!”


수호는 가뿐히 상대를 이겨놓고는 옆에 와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글쎄, 내 체력은 이미 무한인 상태라.


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시간이 비축되니 이서우의 동영상을 다시 한 번 복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


‘엘리트는 엘리트인 건가.’


이서우의 경기를 보던 박길태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빠른 스텝과 공격력.

거기다 자유자재로 쓰는 회피 기술에 센스 있는 경기력까지.


소규모 엘리트 대회만 나갔었기에 실력이 뒤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일반인들끼리 겨루는 생체에서 그의 실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에 비해 최강인은 파워, 반사 신경, 스피드 등 모든 게 평범 그 자체였다.


단 한 가지.

지치지 않는 체력과 무한한 근성을 제외하고.


이서우가 결승에 오르긴 했지만 실력이 아닌 순전히 운 때문에 진출한 것이었기에 박길태는 마음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실력은 이서우가 월등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탑스포츠 박수아 기자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으로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서우가 엘리트 선수라는 걸 보도하는 것.

그럼 뒤늦게라도 그의 우승을 뺏을 수 있으니까.


“결승전에 그 선수가 올라온다고요?”

“그렇습니다.”


올바른 복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다.

단지 ‘노력형 천재’ 가능성이 엿보이는 최강인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박길태와 최강인은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결승전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이서우.


‘내 경기를 보고도 저렇게 자신 있다고? 뭘 믿고?’


그는 결승전까지 손쉽게 올라왔지만 영 개운하지 않은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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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ROUND 9 24.05.15 10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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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OUND 7 24.05.13 142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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