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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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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33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0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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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추천
8
글자
13쪽

ROUND 2

DUMMY

“갱! 갱! 갱 오라고! 상대 정글은 세 번이나 왔는데 우리 정글은 뭐하냐. 아오!”


일요일 아침부터 PC방으로 부르더니 게임 삼매경에 빠진 놈.

초등학생 때부터 나와 붙어 다니던 조인찬이다.


“아, 언제 끝나.”


벌써 세 시간째다.

이럴 거면 점심 먹자고 부르지나 말지.

뱃속에선 배고프다고 아우성 친지 오래였다.


“딱 한 판 만 더.”


검지 손가락을 들고 애원하는 녀석.

눈감아준 것도 벌써 열 번은 넘었을 거다.


“간다.”

“아, 알았어.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니 그제야 허둥지둥 따라 나서는 조인찬.

어차피 일어날 거 진작 좀 일어나지.


“뭐 먹을래?”

“내가 PC방 오면서 봤는데···.”


참고로 이 녀석의 별명은 ‘답정너’다.

밥 메뉴에 있어서는 늘 답이 정해져 있거든.


“뭐. 떡볶이?”


역시나 내 말에 두 눈을 반짝이는 놈.

이 녀석은 떡볶이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달라붙었는지 맨날 떡볶이만 먹자고 한다.


“여기 근처에 떡볶이 집 새로 생겼는데 오픈 기념으로 이벤트를 하나 봐. 물 안 먹고 30분 만에 지옥 맛 떡볶이 3인분 다 먹으면 무료래. 콜?”

“미쳤냐? 나 맵찔이인 거 알면서.”

“하긴 너 청양고추 하나 먹고 우유 2L 원샷하지? 그럼 나 혼자 도전할 테니 옆에서 봐주라.”

“지도 맵찔이면서 허세는···.”

“아, 그래도 내 사랑 떡볶이가 공짜라는 데 어떻게 참아.”


녀석은 크게 다짐한 듯이 주먹을 꽉 쥐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여간 별난 놈이라니까.


“이모님! 여기 지옥 맛 떡볶이 3인분이요!”


테이블에 앉아 위풍당당하게 외치는 조인찬.

꽤나 난이도 있는 도전인 모양인지 사람들은 녀석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가 새빨간 떡볶이가 담긴 커다란 그릇과 30분 세팅된 타이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맛있게 먹어요.”


나는 보았다.

아주머니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진 것을.


“비주얼 보니 군침 싹 도네.”


호기롭게 도전하는 녀석.

그러나 조인찬의 위대한 도전은 고작 한 숟갈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시발!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존나 맵잖아?”


조인찬은 켁켁 거리며 연신 물을 들이켰다.

고작 떡 1개 먹고 물 1L를 다 먹어버리다니.

진정 위대한, 위가 큰 놈이다.


“대체 얼마나 맵길래 그래?”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도 조인찬이 호들갑을 떨길래 얼마나 매운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뭐야. 하나도 안 매운데?”


이상한 일이었다.

떡볶이 특유의 달달한 맛만 느껴질 뿐 매운 맛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편한 표정으로 떡볶이를 흡입하고 있자.


“너 안 매워?”


조인찬이 나를 괴물 보듯 쳐다봤다.


“전혀.”


허언이나 허세가 아니었다.

진짜 괴물이라도 된 건지 매운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에선 땀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데?”


녀석의 말에 손등으로 얼굴을 쓱 닦으니 흥건한 땀이 묻어나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땀은 나는데 매운 맛이 안 느껴진다니.

매운맛은 구강 점막을 자극할 때 느껴진다.

즉, 미각이 아닌 통각.


무통 주사를 맞은 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무통 효과가 지속되고 있다.

그럼 이 때문에 매운 맛도 못 느낀 건가?


아무렴.

그 덕분에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 걸.


어느새 접시는 텅 비워졌고 부른 배를 쓰다듬고 있을 때.


삐비빅-


30분을 맞춰둔 스톱워치가 요란하게 울렸다.


“와. 천하의 맵찔이가 이걸 성공하다니···.”


조인찬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공짜 밥 잘 먹었다. 그럼 난 이제 운동하러 간다.”

“오늘 일요일인데? 체육관 문 닫았잖아.”

“전국 생체 3주 전인데 주말에 어떻게 쉬겠냐? 로드 워크 하러 갈 거야.”

“누가 보면 프로 선수인 줄 알겠네.”


내 말에 비소 짓는 놈.


비웃을 만도 했다.

내게 처음 복싱을 권유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녀석이었으니까.


조인찬은 중학생 때 복싱을 꽤 잘하기로 유명했다.

부상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체고에서 날아다녔을 게 틀림없을 만큼.

이제는 프로 복서가 아닌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듯하지만.


녀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인근에 있는 축구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구 필드 주변에 400m 트랙이 있어서 로드워크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박길태 관장은 늘 로드워크를 강조했다.


복싱은 계속해서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뻗어야 하는 고강도 운동이기 때문에 로드워크를 통해 체력을 늘리고 스텝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1년차 복린이인 내게 로드워크는 꿈속에서나 하던 운동이었다.

복싱과 보강운동 만으로도 모든 에너지가 소모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체력이 늘 턱이 있나.

스파링을 하면 2라운드에서 대(大)자로 뻗어버릴 만큼 내 체력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전국 생체 출전권을 따낼 수 있던 건 오로지 주먹 때문이었다.

박길태 관장에 따르면 일반인 치고는 제법 쓴다고 했으니까.


“하아.”


그런 점에서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복싱 1년 만에 처음으로 로드워크를 시작한 날이니까.


스트레칭으로 온 몸을 풀어주고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5분대 페이스였다.


한 바퀴, 두 바퀴, ···, 열 바퀴.


이상한 일이었다.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닌데 4km를 뛰어도 숨이 하나도 차지 않았다.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4분대 페이스로 열 바퀴 더 달려보았다.


이번에도 숨이 하나도 차지 않았다.


이를 악 물고 전속력으로 뛰어봤다.

손목시계를 보니 3분대 페이스였다.


한 바퀴, 두 바퀴, ···, 다섯 바퀴.


2km를 뛰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숨은 차지 않았다.


‘이런 미친···.’


총 10km를 평균 페이스 4분대로 뛰었지만 숨소리는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에도 이마에서 땀방울이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무통 주사 효과로 숨찬 것도 못 느낀다고?’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폐를 가지지 않고 있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과시할 수 있다니.

무통의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


“따따따-.”


하이 체어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흡착볼에 담긴 딸기를 집어 먹는 아현이.

입에 한가득 넣어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나와 친누나는 띠 동갑이지만 꽤나 가깝게 지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나가 동생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용돈을 팍팍 퍼주니까.


이번에도 시간당 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육아 SOS를 치길래 얼씨구나 하고 달려왔는데.

헬육아는 개뿔.

아현이처럼 순하고 예쁜 아기 있으면 나와 보라지.


“누나.”

“응?”

“아현이 자연분만으로 낳을 때 무통 주사 맞았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때 어떤 느낌이었어?”


나의 말에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누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수박 같은 게 막 자궁 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욕이 절로 나오고 제발 제왕절개 해달라고 빌고 또 빌게 되더라고. 그때 무통 주사를 딱 맞았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어. 모든 고통이 싹 없어지더라니까. 그때 너랑 통화도 했잖아. 근데 한 4시간인가 지나니까 다시 지옥이 시작되더라. 후. 생각도 하기 싫어.”


누나는 끔찍한 고통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럼 만약 무통 효과가 지금까지 계속되면 어떨 것 같아?”

“음. 통증을 모르고 사는 건 무서운 일 아냐? 통증은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라고 하잖아. 그래서 아현이도 헬멧 안 씌우는 거거든. 바닥에 넘어지고 부딪혀봐야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니까.”


한참 말을 이어가던 누나는 돌연 무언가 생각난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만약 무통 효과가 지금까지 계속 있으면···. 진작 둘째를 준비했겠는데?”

“두, 둘째? 아현이 만으로도 버겁다며.”“아현이는 첫째니 힘든 거지. 육아 선배들이 둘째는 눈 감고도 키운대. 다만 자연분만 통증을 아니까 둘째를 고민하는 건데 그 고통을 못 느끼면 둘, 셋 못 낳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띠 동갑 동생한테 서슴없이 하는 거 보면 누나가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둘째 얘기하면서 왜 눈을 반짝이는 건데?


매형에게도 치질 수술을 권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딸랑-


치질 수술 후 무려 3주 만에 찾은 복싱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전국 생체가 2주 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겠지.


실전 감각을 키워야 하는 시기다 보니 링 위에선 잇달아 격한 스파링이 오갔고, 천장에 걸린 샌드백은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수시로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 멀뚱히 서서 낯선 풍경을 구경하고 있던 그때.


“강인이 왔냐?”


박길태 관장이 내게 다가왔다.

그 순간 땀에 찌든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건 마치 복싱장 벽면에 걸려 있는 공용 글러브의 냄새와도 같았다.


“관장님 안녕하십니까.”

“치질 수술한 곳은 괜찮고?”

“네! 문제없습니다!”

“오늘부터 대회 전날까지 계속 스파링만 할 예정인데 가능하지?”

“물론입니다!”

“대답은 참 잘해. 일단 몸 풀고 있어. 이따 스파링 상대 알려줄게.”


계속된 스파링으로 지쳤는지 박길태 관장은 인포 데스크 위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링 위에 올라야만 했지만.


몸을 푸는 덴 줄넘기만 한 게 없다.


다만 스파링이 워낙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훈련이다 보니, 이런 날엔 줄넘기를 생략하거나 3라운드 정도 가볍게 뛰는 게 좋다.


하지만 지금은 무통 빨로 무한 체력인 상태.


몸이 풀릴 때까지 줄넘기를 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10라운드가 지나 있었다.


“최강인!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박길태 관장이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해가 저물 때까지 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 멀쩡합니다.”

“평소 줄넘기 6라운드 하면 힘들다고 쓰러졌던 애가 웬일이래? 오래 쉬고 와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오버페이스는 대참사로 이어지니까 스파링 체력은 아껴둬. 아참 오늘 스파링 상대는 쟤야.”

박길태 관장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손수호. 초등학교 6학년이야. 초등학생이라고 우습게보지 마. 복싱 신동으로 불린 데다 작년 전국 생체 대회에서 우승도 했어.”


우습게 볼 리가 없었다.

링 위에서 현란하게 쉐도우 복싱 하는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실력이 짐작 갔으니까.

그리고 초등학생이라기엔 덩치도 제법 큰 편이었다.


한참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던 수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링 아래로 내려왔다.


“손수호!”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박길태 관장이 수호를 향해 손짓했다.


“네, 관장님.”

“오늘 이 형이랑 스파링 할 거야.”


수호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했다.

곧 인상을 팍 찌푸리는 녀석.


“이 형 못하잖아요. 몇 번 하는 거 봤는데 완전 허접하던데요.”

“쉿!”


박길태 관장은 당황해하며 부랴부랴 수호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초딩의 촌철살인은 이미 고막을 타고 들어온 지 오래였다.


요즘 초등학생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문제라니까.

이렇게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쉽게 하고.


“관장님, 저도 배울 게 있는 형이랑 스파링 하고 싶어요.”


수호는 어지간히 날 깔봤던 건지 가시 돋친 말만 퍼부어 댔다.


“수호야. 직접 글러브를 부딪혀보지 않고 그런 소리부터 하면 못 써.”

“쳇. 알았어요.”


박길태 관장의 설득이 통한 건지 수호는 입을 쭉 내민 채 다시 링 위로 올라갔다.

수호에 이어 나도 로프 안으로 들어가자 회원들이 하나 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의 경기가 흥미로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이 온통 수호에게 쏠려 있는 걸 보아 모두가 수호의 승리를 예견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나의 복싱 경력은 백지 그 자체지만 수호는 이미 여러 대회에서 우승한 화려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는 나이가 깡패라고 하지만 복싱은 예외인 모양이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줄이 세워지는 걸 보면.


“스파링은 2라운드만 진행할 거고 승패보단 경험 쌓는다는 생각으로 무리하지 않도록 해.”

“알겠습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박길태 관장의 염려가 무색할 만큼 수호가 불도저 같이 맹렬한 기세를 풍기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띵!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링벨이 체육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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