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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르니

금강불괴는 링에서 힐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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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도파밍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2
최근연재일 :
2024.05.26 23:58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2,426
추천수 :
90
글자수 :
117,391

작성
24.05.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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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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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ROUND 8

DUMMY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처음 아버지와 투명 인간 취급하며 지낸 날이.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집안일은커녕 단 한 번도 자식에게 애정을 보인 적이 없었고, 늘 술에 의존해 사셨던 분이셨다.


학교 성적이 좋든 말든 사고를 치든 말든 아버지는 늘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친구들은 방학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 다니고 그런다던데, 내 머릿속에 그런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그저 일과 술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래서 ‘중2병’에 걸려 반항심이 가득했던 시기.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이유 없이 일주일 동안 가출을 했고.

사실상 친구 집에 있었음에도 ‘가출’이라는 단어에 눈이 돌아간 아버지에게 뺨을 맞아야 했으며.

‘자식의 해명’에 관심 갖지 않는 아버지에게 실망한 나는 입을 꾹 닫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어떻게든 둘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굳건히 닫힌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도.


이런 와중에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셨고, 누나까지 결혼해서 출가하자 집안 공기는 더욱 썰렁하고 스산하게 변했다.


그렇게 자식에게 매정했던 아버지는 아현이가 태어나고 조금씩 변했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하품하며 꼬물거리는 아현이를 보며 활짝 미소지은 아버지.


‘아버지도 저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아현이의 배냇짓보다도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더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그것은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아현이 앞에서 만큼은 봉인해제였다.

안방에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영락없이 핸드폰으로 아현이 영상을 보고 계셨으니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가슴 한편을 꽉 움켜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현이만큼 나에게도 관심이 있으면 대화하기 쉬울 텐데···.


그러나 아버지도 나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기에.

서먹서먹한 관계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경기인 등록’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안방 문고리를 선뜻 열지 못했다.

몇 차례나 잡았다 놓았다 반복한 끝에.


끼익-


마음을 먹고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파워풀한 포먼의 맹공격을 알리가 링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 수비를 합니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핸드폰으로 오래된 흑백 영상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

도파민 중독자이자 잡학다식러인 내가 그 영상을 모를 리 없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싱 역사상 최고의 경기라 불리는 1974년 자이르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결.


이 경기로 포먼은 복싱 인생 처음으로 패배의 쓴맛을 알게 됐다.


강력한 펀치력이 그의 강점이었던 만큼 3라운드 이상 진행된 시합을 치른 경험이 없던 게 독이 된 것이었다.


“저···. 아버지.”


알리와 포먼의 대결 영상이 힘을 실어준 걸까?

나는 3년 만에 용기를 내서 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뜬금없이 들려온 아들의 목소리에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뒤를 돌아본 아버지.


“네가 웬일이냐.”

“용건이 있어서요.”


나는 등 뒤에 놓고 있던 선수 등록 서류를 아버지 앞으로 건넸다.

종이를 무심코 쳐다보던 아버지는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복싱?”

“네. 1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엘리트 선수 권유를 받았어요.”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아버지이기에 용기를 내본 건데.

어째 아버지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한동안 꼼꼼히 서류를 살펴보셨다.


“네 어머니한테도 말했냐?”

“거절당했으니까 아버지에게 왔죠.”


아버지는 ‘풋’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내 앞에서 웃으시다니.

아현이 덕분에 성격이 유해지신 모양이었다.


“네가 이걸 들고 내게 찾아올 정도면 어지간히 갈망했다는 거네.”


나는 어떠한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처럼 필요에 의해 큰 용기를 낸 거였으니까.


“근데 나도 반대다.”

“네?”

“요즘 시대에 복싱 엘리트 선수가 무슨 메리트가 있겠냐.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가부장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고 자식에 관심이 일절 없는 아버지가 내 선택을 밀어줄 리가 없는데.

미련하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품었던 걸까.


“저 이번 중간고사에서 365명 중에 272등 했어요. 제게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뭐?”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는지 뒷덜미를 꽉 잡았다.


성적이 안 좋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심지어 3월 모의고사 때는 300등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얼마나 내게 관심이 없었으면 이번 성적을 듣고 놀랐을까.

내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럼 복싱은 가능성이 있고? 너 어릴 때 운동신경 빵점이었잖아.”


이건 좀 의외였다.

공부만큼 운동에 있어서도 실력이 형편없던 건 어떻게 알고 있던 건지.


“복싱은 1년 배웠고 체력만큼은 자신 있어요.”

“체육관에서 1년 배웠다고 엘리트 선수가 되겠다고? 거기 관장 순 사기꾼 아니냐?”

“제 실력은 제가 잘 아니까 이렇게 왔죠.”

“그럼 내가 평가해보지.”

“네?”


나는 어안 벙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내 앞날에 이토록 관심을 갖는 건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평가를 한다고? 뭘? 복싱 실력을?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며. 나와 대결하자.”

“무슨 대결이요? 설마 복싱이요?”


내 말에 아버지는 박장대소를 터뜨리셨다.

항상 심통 난 것 같은 축 처진 입 꼬리만 보다가 광대까지 승천한 입 꼬리를 보니 상당히 어색했다.


“나는 복싱 할 줄 몰라. 볼 줄은 알아도.”


복싱 부흥기인 70년대에 아버지는 새파랗게 젊은 20대였으니 복싱에 관심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럼 무슨 대결을 말한 거예요?”

“마라톤.”

“아버지 올해 환갑 넘기셨잖아요.”

“네가 내게 관심이 전혀 없었나 보구나. 난 강인이 네가 태어나고 매달 한 번씩 꾸준히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있었단다.”


몰랐던 사실이었다.

어쩐지 주말 아침이면 귀신같이 사라지던 아버지.

가족한테 비밀로 하고 교회라도 다니는 건가 싶었는데, 꾸준히 마라톤 대회에 나갔던 거였다니.


그럼 아버지는 마라톤을 무려 17년 동안 했다는 건데?


“음. 제가 너무 불리한 거 아니에요?”

“아깐 네 입으로 체력 좋다고 얘기하지 않았냐.”

“그건 그렇지만···.”

“대결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어. 풀은 버거울 테니 하프 마라톤 2시간 내로 완주만 하면 네 선택을 밀어주마. 물론 나보다 좋은 기록을 따내면···. 아니다. 이건 가능성 없는 얘기니 없는 얘기로 하자.”

“아버지. 그게 왜 가능성 없는 얘기에요?”

“뭐?”

“말해 봐요. 저 자신 있으니까요.”


정말로 자신이 있었기에 단호한 어투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헌데, 아버지는 우스갯소리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별건 아니고. 주말마다 나와 같이 달리기 하자고. 영 쓸쓸해서 말이야.”


이런 말을 다 하시는 걸 보니 내 가능성을 얕잡아 보신 게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복서에게 로드워크는 필수이기에.

나 또한 아버지의 제안이 반갑긴 마찬가지였다.


“좋아요. 그럼 그 대결 언제할 건데요?”

“사흘 뒤.”

“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사흘 만에 하프를 두 시간 안으로 뛰어야 한다니.


하프 마라톤이 21.09km니까 대략 5분 40초 페이스를 유지해서 달리면 된다는 건데.


이거···. 개쉽잖아?

문제는 아버지보다 잘 뛸 수 있냐는 건데.


설마 17살인 내가 60대인 아버지보다 못 달릴까.

그것도 무통 빨을 누리고 있는 내가.


“사흘 뒤 한강 공원 가서 달리자구나.”

“좋아요. 미리 파스 많이 사두길 바라요.”

“녀석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후 아버지와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쾌활한 기분을 느낄 줄 알았으면 진작 용기를 내볼 걸 후회됐다.


문 고리 여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


사흘의 시간은 짧고도 짧았다.

눈 깜빡한 사이에 주말이 찾아온 거 보면.


평소였으면 도파민 파밍에 꿀 같은 주말을 녹였을 텐데.

아버지와의 내기가 뭐라고.

사흘 동안 나는 달리고 또 달리며 다리 근육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각종 근력 운동으로 만든 근육과 러닝 근육은 사뭇 다르다.

나도 이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낮은 중량이라 해도 1년 간 복싱하며 스쿼트를 병행했고 그 덕에 치질도 걸렸건만.

로드워크 때 다리 힘이 풀려 전속력으로 고작 2km 밖에 못 달리는 걸 보고서야 내 하체 근육이 쇼윈도였단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러닝 근육은 말 그대로 열심히 달리면 강화되는 근육으로 허벅지 대퇴사두근, 햄스트링, 종아리가 해당된다.

또한 아무래도 다양한 지형에서 달리다 보니 스쿼트에 비해 다리와 발 근육을 더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근력 뿐만 아니라 순발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복서들에게도 로드워크를 추천하는 거겠지.


오랜만에 찾은 한강 공원.

주말이라 그런지 인파로 가득했다.


자전거를 함께 타는 커플, 피크닉을 즐기는 커플, 사진 찍는 커플···.

온통 커플 천국이다.


아, 내 옆에 서 있는 부모님도 따지고 보면 커플이구나. 젠장.


부자지간이 같이 러닝 복장으로 차려 입고 한강에 온 게 신기한지 어머니는 계속 ‘어머나!’를 외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나는 인근 카페에 있을 테니 끝나면 연락 줘요. 점심으로 추어탕 먹으러 가게.”


시야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완전히 멀어졌을 때.


“그럼 뛰어보자.”


아버지와 나는 나란히 한강 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서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기에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아버지 이어폰에선 트로트가, 내 이어폰에선 걸 그룹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 곡으로 넘어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1km. 평균 페이스 5분 30초.”


귓가에 페이스에 대한 안내 음성이 들렸다.

손목시계와 이어폰을 핸드폰에 연동하면 이처럼 이어폰을 통해 페이스를 알려줘서 편하다.


“2km. 평균 페이스 5분 10초.”


AI 같은 여성의 목소리는 1km마다 계속해서 등장했는데.


“3km. 평균 페이스 5분 00초.”


어째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아직은 뛸만했기에.

걸 그룹 노래를 따라 부르며 편한 마음으로 달렸더니.


“10km. 평균 페이스 4분 30초.”


어느새 10km에 도달해 있었다.


이전 로드워크 때는 4분 30초 페이스도 제법 빠르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펀런 하는 느낌이 들었다.


“12km. 평균 페이스 4분 20초.”


12km를 지났을 때.

내 귓가에 노랫소리 말고 또 다른 낯선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입에서 나는 거친 숨소리였다.

아버지는 슬슬 숨이 가파졌는지 ‘습습 후후’ 박자에 맞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 시작했다.


“14km. 평균 페이스 4분 50초.”


설상가상으로 역풍까지 불자 현저히 떨어진 페이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아버지의 앞에 서서 달렸다.


속칭 이를 ‘피 빨기’라고 부른다.


앞에 서서 달리는 사람은 바람 저항에 직면하니 체력 소모가 크지만 뒤따라 달리는 사람은 비교적 편하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15km. 평균 페이스 4분 40초.”


역시나 다시 페이스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17km. 평균 페이스 4분 30초.”


역풍 구간이 끝나고 순풍 구간에 들어서자 아버지의 숨소리가 한결 여유 있게 바뀌었다.


“20km. 평균 페이스 4분 30초.”


신기한 일이었다.

4분대로 20km 넘게 처음 뛴 건데도 다리가 전혀 무겁지 않다니.

오히려 바퀴를 굴리듯이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고작 사흘 동안 벼락치기로 달렸을 뿐인데.

무통빨로 체력이 뒷받침 되니 몸도 빠르게 성장한 모양이다.


“21km. 평균 페이스 4분 25초.”


그때, 내 뒤에서 달리던 아버지가 나를 제치고 막판 스퍼트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질 수 없지.

아버지를 추월하기 위해 슬슬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 순간.


“꺅!”


어딘가에서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감싼 남자가 힘껏 도망치는 게 보였다.

이건 분명.


“소매치기!”


여자는 벌벌 떨며 손가락으로 도망치는 남자를 가리켰고, 나는 빛의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렸다.

아버지와의 대결도 잊은 채.


그런데 소매치기범의 뒤를 쫓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정반대의 방향에서 달려오고 있는 남자.

그의 등 뒤에는 ‘강한고 복싱부’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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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ROUND 9 24.05.15 104 3 13쪽
» ROUND 8 24.05.14 127 3 13쪽
7 ROUND 7 24.05.13 142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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