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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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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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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13화

DUMMY

노리스는 펠릭스가 제대로 뒤를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는 펠릭스와 마찬가지로 이방인인 주제에,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무슨 마을 토박이라도 된 듯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수선화 마을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노리스는 마을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갈해 보이는 건물로 주저없이 걸어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들어와.”



“누구 집이야?”



“밀튼.”



노리스는 한마디 툭 던진 다음 신발에 묻은 흙을 털지도 않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내 거지만.”



그렇게 말하는 노리스의 등을 펠릭스는 아주 고깝게 쳐다보며 신발의 흙을 털고 안으로 들어갔다.







노리스는 펠릭스를 부엌 식탁에 앉힌 다음,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처럼 분주히 부엌 이곳저곳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는 밀튼이 부엌 천장에 밧줄로 걸어둔 햄을 큼직하게 한 덩이 잘라내고, 마찬가지로 밀튼이 고이 모셔둔 치즈도 한 덩이 크게 베어들어 식탁위에 가져왔다. 부엌 찬장을 휙 열자 안에 흑빵과 흰빵이 한 덩이씩 있었는데,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흑빵의 두 배 정도 비싼 흰빵을 크게 한 조각 잘라냈다.



“자.”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노리스는 기어이 밀튼이 고이 모셔둔 술병까지 꺼내들고 와서야 펠릭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먹어.”



하지만 펠릭스는 그가 가져온 것들에는 손끝하나 대지 않았다.



“안 먹어?”



“난 여기 주린 배를 채우려고 온 게 아니야, 노리스. 네가 지금껏 여기서 뭘 하며 지냈는지 알아내려고 네 뒤를 따라온거지.”



노리스는 무표정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밀봉된 술병의 마개를 뽁 뽑아냈다.



“연금술사가 할 일이 달리 뭐가 있겠어?”



그리고 노리스는 병 째로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나이프를 들어올려 햄을 한 조각 잘라내 맨손으로 덥석 집어먹었다.



“무슨 약을 만들고 있었느냐 하는거지.”



“왜. 내가 또 이상한 약이라도 만들까봐?”



노리스는 햄을 우적거리며 대답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입 안에서 형체를 잃어버리고 산산히 부서져가는 불그레한 햄의 모습이 불쾌하게 보였다.



“오지랖이지.”



“펠릭스. 답지않게 오지랖은 무슨. 그리고, 너라면 대충 알아 챘을텐데. 안 그래? 사실, 우리끼리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너나 나나 비슷하잖아?”



펠릭스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으로만 웃었다.



“뭐 하고 있었어?”



“네가 예전에 하던 거랑 같은 짓.”



노리스는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 이번에는 치즈를 한 조각 잘랐다.



“약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실험하는 일.”



“무슨 약인데.”



“그건 비밀이지.”



노리스는 시뻘건 혓바닥을 내밀어 치즈의 단면을 쓱 핥았다.



“너도 알잖아. 자기가 연구해서 만든 약의 레시피를 넉살 좋게 알려주는 연금술사가 어딨냐?”



“왕국 경비대에 끌려가면 생각이 좀 바뀔걸.”



노리스는 손에 들고 있던 치즈 조각을 덥썩 삼켜버렸다.



“아, 하긴. 난 귀족은 아니니까.”



그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손가락 끝을 쪽쪽 빨았다.



“뭐, 그것도 이제 옛말이지만.”



“누구 밑에서 일하고 있지?”



“대귀족.”



노리스는 짧게 대답했다.



“대귀족이 한둘이야?”



“왕국 안에서 대귀족이라고 하면, 보통은 한 가문만 가리키지.”



그 말을 들은 펠릭스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다가, 갑자기 기분나쁘게 씩 웃었다.



“웨일의 끄나풀이 되지는 못했군.”



노리스의 눈썹이 슬쩍 꿈틀했다.



“노리스. 안 그래? 네 성격에 웨일의 끄나풀이라도 되었으면 가장 먼저 그 이야기를 했겠지. 등 뒤에 웨일의 이름을 업으면, 남들 등쳐먹기 훨씬 편하잖아? 그래서, 그 다음가는 귀족은 누구지? 어느 가문이더라?”



“에보니.”



노리스는 아주 불쾌한 얼굴로 햄을 집어들어 이빨로 깨물고는 죽 찢었다.



“에보니 가문이라. 이빨빠진 호랑이군.”



“그래도 호랑이는 호랑이야. 발톱은 아직 남아있어.”



“어련하겠어. 그래서, 에보니 가문이 무슨 약을 주문했지? 매독 치료제라도 만들어 달라던가?”



노리스는 다시 술병을 들이켰다. 어느새 병 안에 내용물은 반절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거기까진 네 알 바 아니야.”



“아무렴. 그러고보니, 노리스. 이 근처에 지명수배범이 있다던데.”



“아, 그래?”



노리스는 처음 듣는다는듯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 죽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아니면, 그 사람이?”



펠릭스와 노리스는 잠시동안 웃는 얼굴로 눈싸움을 벌였다. 둘 다, 일 분이 넘는데도 눈을 깜빡이긴커녕 눈썹을 떨지도 않았다. 결국 먼저 눈을 움직인 것은 노리스였다. 그가 또 한 조각의 햄을 집어들기 위해 펠릭스의 시선을 피하자마자 펠릭스는 부엌 식탁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난 이만.”



“내가 만들고 있는 약. 안 봐도 돼?”



“봐서 뭐하겠어? 보나마나 그리 좋은 약은 아닐테지. 그리고 내가 보여달라 한들, 사실대로 보여줄것도 아니면서.”



“너, 그거 후회할걸.”



펠릭스는 노리스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거짓말은.”



말을 마친 펠릭스는 그 길로 뒤돌아 밀튼의 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펠릭스가 문을 닫으며 나가자마자 노리스는 술병을 들고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밀튼의 부엌으로 들어가 장작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있는 솥을 쳐다보았다.



“젠장. 펠릭스. 눈치빠르기는.”



노리스는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쭉 들이킨 다음, 빈 병을 집어던져 박살을 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솥 안에서 느릿하게 끓고 있는 짓누런 액체를 어딘가 불만스레 쳐다보았다.






노리스의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밀튼의 집을 빠져나와, 펠릭스는 마을 촌장 밀튼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새에 밀튼은 또 어디로 가버렸는지,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있었던 집에는 환자 혼자 뿐이었다.



잠시 수선화 마을 안을 기웃거리던 펠릭스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며 밀튼이 내어준 헛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그 밀튼이 있었다.



“아, 선생님.”



올리버와 실비아도 그곳에 같이 있었다. 밀튼은 그들과 가벼운 잡담이라도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글쎄요. 여전히 확답은 못 드리겠습니다.”



“아, 네······.”



밀튼은 명백하게 아쉬운 얼굴로 도로 주저앉았다.



“흠흠. 아무튼, 올리버. 그래서 물을 길어왔나요?”



“그래.”



올리버는 바닥에 놓인 큰 나무 양동이 두 개를 눈짓했다.



“꽤 무겁더라.”



“물이라는게 그렇죠. 그럼, 어디. 잠시······.”



펠릭스는 양동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펠릭스. 물이 맑고 깨끗하죠? 올리버가 좋은 물만 긷는다고 애썼거든요.”



펠릭스는 실비아의 말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슨 조그만 약병을 꺼내 물 위에다가 한 방울 똑 떨어뜨렸다. 그리고 펠릭스가 양동이를 잡고 살살 흔들자 순식간에 안에 담긴 물이 새빨개졌다.



“이럴 줄 알았어 내 참.”



펠릭스는 그대로 양동이를 바닥에 엎어버렸다. 올리버의 노력의 결실이 채 일 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휩쓸려 사라졌고, 올리버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펠릭스.” 올리버는 이마를 쓸어내렸다. “물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약 만드는데는 못 써요. 보나마나 이것도 똑같겠지.”



“펠릭스! 아무리 그래도, 올리버가 힘들여 길어온 물인데. 그렇게 쏟아버리면······꺅!”



펠릭스는 다른 양동이의 물도 그대로 엎어버렸다.



“올리버. 고생했지만, 저 물은 못 써요. 저걸로 약을 만들 수는 없어요.”



“아니, 어째서요? 깨끗한 물이에요. 안에 뭐가 둥둥 떠다니지도 않고 좋은 건데······.”



펠릭스는 실비아에게 제대로 대답도 해 주지 않고 대뜸 밀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밀튼. 마을 주변에 다른 수원지는 없나요?”



“뭐, 아예 없지야 않겠지만. 혹시, 호숫물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밀튼도 당황한듯 보였다.



“우물을 팔 수 있다면 우물을 하나 새로 파기를 권해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그러려면 사람이 필요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병상에 누워있고, 그들을 도로 일으켜 세우려면 우선 약이 필요하고. 약을 만들려면 다른 물이 필요해요.”



펠릭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 길어 올 만 한 곳. 아는데 없나요?”



“갑자기 물어보셔도 딱히······.”



“그럼 같이 가서 찾아보죠 밀튼. 올리버. 실비아 잘 데리고 있어요. 제가 당부한거 잊지 말고요.”



“알았어. 아무것도 함부로 안 건드리고, 먹지도 않을게. 그런데, 슬슬 배고픈데. 계속 쫄쫄 굶어야 하는거야?”



펠릭스는 헛간 안을 두리번거렸다.



“여행용 식량이라도 하나 까먹어요. 아무튼, 나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으라고요 둘 다.”



그리고 펠릭스는 밀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요, 밀튼.”



“아, 네. 알겠습니다.”



밀튼은 허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펠릭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펠릭스가 나가버리자, 올리버는 헛기침을 하며 여행용 식량 하나를 꺼내들었다. 흰 종이로 포장하여 갈색 끈으로 묶은 그것은, 보기만해도 마음이 든든했다.



“실비아. 너도 하나 먹지 그래.”



“맛없는걸요.”



올리버는 쓴웃음을 지으며 끈을 풀고 종이 아래 감춰진 딱딱한 육포, 돌덩이같은 비스켓, 그리고 말라비틀어져 신맛밖에 나지 않는 과일 조각을 꺼냈다.



“그렇기는 해.”



“저기, 올리버. 좀 이상하지 않아요?”



막 올리버가 가죽 부대의 마개를 열려고 하는데 실비아가 목소리를 낮추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뭐가?”



“전염병이 돈다고 하는데. 딱히 그런 마을 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시체 묻는 구덩이도 없고, 불로 뭘 태우는 곳도 없잖아요.”



“아직 초기라 그렇겠지.”



“그 밀튼이라는 사람도 그래요. 너무 멀쩡하지 않아요? 보통, 역병이 도는데 저렇게 한두 사람만 멀쩡하게 마을 안을 돌아다닐 수가 있어요?”



“운이 좋고, 그리고 본인이 신경을 쓴다면 뭐. 불가능할 건 없겠지.”



올리버는 돌 같은 비스켓에 물을 조금 뿌렸다. 그런다고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안 하는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리고 펠릭스가 묻고 다니는 질문도 그래요. 그건 전염병이라기 보다는, 독에 의한 중독을 의심할 때나 물을 법한 질문들인걸요.”



“그래? 나는 전혀 모르겠는걸.”



“전 책 좀 읽었잖아요?”



실비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연금술 책?”



“아, 아뇨. 그러니까, 낭만 소설이긴 하지만······아무튼! 명탐정이 나오는 시리즈가 있는데, 거기 흔히 중독 사건이 나오거든요. 거기 나오는 묘사랑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낭만 소설은 주장의 근거로 삼기에는 조금 부적절하지.”



올리버는 드디어 물먹은 비스켓을 이빨로 가볍게 깨물었다. 선원용이 아니라, 다행히 비스켓은 그 정도 물 만으로도 먹을 수는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그렇기는 하네요. 그렇지만 호숫물을 엎어버린건 조금 너무했어요! 올리버 당신이 얼마나 애썼는데······.”



“뭐, 솔직히 나도 좀 기분상하긴 하더라.”



올리버는 이번에는 육포를 조금 물어뜯었다.



“하지만, 그 물로 약을 만들었다가 탈이 나면 문제가 커졌겠지. 그러기 전에 펠릭스가 막았다고 생각하면, 딱히 크게 기분나쁠 건 없어.”



실비아는 조용히 올리버를 쳐다봤다.



“왜?”



“올리버. 가끔 드는 생각인데, 당신 굉장히 너그럽네요.”



그러자 올리버는 헛웃음을 지었다.



“글쎄. 뭐, 그런가.”



“당신같은 사람이 전쟁에 참전했다는게 가끔 믿기지가 않아요.”



“칭찬으로 한 말이겠지?”



“그럼요. 당연히······.”



실비아는 갑자기 올리버의 옷섶 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다람쥐와 눈이 마주쳤다.



“코튼?”



다람쥐는 수염을 쫑긋거리며 코를 킁킁거리더니 올리버의 어깨 위로 훌쩍 뛰어올라 찍찍거렸다.



“코튼. 왜이래?”



올리버가 손으로 코튼을 가볍게 감싸쥐려 해도, 다람쥐는 그의 손을 피하며 계속 찍찍거렸다.



“어허. 코튼. 지금은 장난칠 때 아니야.”



“찍! 찍!”



코튼이 올리버의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자, 그는 조금 짜증을 내며 뒤를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 틈으로 희번득하게 번뜩이는 흰 눈알을 발견했다.



“누구냐!”



당장 발로 문을 박살낼 듯 걷어차며 올리버가 외쳤다. 문 밖에는, 술 때문에 얼굴이 조금 붉어진 노리스가 넉살좋게 씩 웃으며 서 있었다.



“아, 거 참. 미안하게 됐군요.



올리버와 실비아는 노리스의 금발 머리카락과 새파란 눈동자를 보고 가볍게 긴장했다.



“아, 긴장하지 마세요. 전 그렇게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할 말 없어.”



올리버가 도로 문을 닫으려 들었지만, 어느새 밀어넣은 노리스의 발끝에 걸려 문은 닫히지 않았다.



“펠릭스의 친구 분들이시죠? 저도 펠릭스의 친구거든요.”



“할 말 없어. 돌아가.”



“에이. 섭하게 그러지 마시고. 같은 친구를 둔 사이인데, 우리 좀 친하게 지내봐요. 네?”



“내가 셋 셀 때까지 발을 빼지 않는다면, 강제로 문을 닫아버릴거야. 네 발이 부서져도 난 모른다.”



“글쎄요. 그러시든지. 하지만, 저는 귀족의 비호를 받고 있답니다. 에보니 가문에 고용된 전속 연금술사거든요. 뒷감당 할 자신은 있으신지?”



올리버와 노리스는 그 상태 그대로 잠시 기싸움을 벌였다.



“할 말이 있다면 거기서 하도록. 안으로 들일 수는 없다.



“겁쟁이구만.”



속이 뻔히 보이는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올리버는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알았어요. 뭐, 그러죠. 나는 반가운 마음에 찾아온 건데, 손님 대접이 이렇게 형편없어서야.”



등 뒤에서 실비아의 기척이 느껴지자 올리버는 한 손을 뒤로 내밀어 실비아에게 손짓을 보냈다.



“난 아무나 손님으로 받지는 않아서.”



“그래 보이네요. 뭐, 그래도 잡담 좀 나누기엔 이만하면 괜찮네요. 비록 차가운 바람에 내 살이 깎이고 이슬이 제 마음을 축축하게 물들이겠지만.”



“그런 걸로는 나를 자극할 수 없다.”



노리스는 잠시 입을 비죽이다가 씩 웃으며 올리버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미리 말하지.”



“용건만 말하고 빨리 돌아가.”



“아무렴. 용건이랄것도 딱히 없습니다. 그냥, 펠릭스에 관한 재미난 옛날 이야기나 해 볼까 싶어 그렇지. 혹시 당신들은 아시나요? 그가 무슨 약을 만드는지.”



“안다. 죽음의 약에 능한 연금술사잖아.”



“그걸 실제로 써 봤다는것도?”



“난 알아. 직접 봤거든.”



대화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 노리스는 짜증이 난듯 보였다.



“그럼 이 이야기는 해 주던가요? 우리 연금술사들이 자리잡은 터전 근처에는 종종 사냥꾼들이 자리를 잡곤 했죠. 뭐, 커다랗고 깊은 숲 속이니 그럴 만 하긴 했지만.


그런데, 그 사냥꾼이라는 작자들은 가끔씩 사고를 치곤 했거든요. 솥을 깨 부순다든지, 장난이랍시고 연금술사들을 놀린다든지. 그러던 어느날, 그 사냥꾼 무리가 모조리 죽어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누가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관심없어.”



“펠릭스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노리스는 씩 웃었다.



“그는 무자비한 살인마입니다. 사람 목숨을 벌레보듯 대하고 손으로 주물럭거리죠. 그럼, 전 할 말 다 했으니 수고들 하세요. 펠릭스의 새로운 친구분들. 부디 당신들이 다음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노리스는 꽃향기에 취한 나비처럼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방금, 그가 대체 뭐라고 말 한 거죠?”



올리버는 문을 닫고 불안한 얼굴의 실비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실비아. 전에 말 했겠지만, 난 펠릭스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을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지든 펠릭스를 전적으로 믿기로 했다.”



“펠릭스가, 그랬다고요? 하지만, 그는······.”



“실비아.”



올리버는 손으로 실비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난 펠릭스가 직접 말 해주기 전 까지는 저놈이 한 말을 믿지 않을 거다. 노리스라고 했던가.”



“아, 네. 그래요. 저도 그래야······하겠죠?”



“그건 네게 달린 일이지. 하지만,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지는 말았으면 하는구나. 그것도, 지금껏 같이 여행해온 펠릭스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의 말을 믿는데는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그렇죠. 하지만······.”



올리버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비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만 주었다. 그리고 다람쥐 코튼도 올리버의 옷섶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더니, 실비아의 얼굴을 향해 불안하게 수염을 떨었다.






수선화 마을을 무턱대고 벗어나 펠릭스와 밀튼은 수풀 사이를 헤집기 시작했다.



“저기, 연금술사 선생님. 수원지를 찾는 방법을 아십니까?”



“몰라요.”



“네? 모른다고요? 무턱대고 돌아다니고 있는 겁니까?”



“식생을 보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별 도움은 안 되겠죠.”



“이렇게 들쑤시고 다닌들, 찾아낼 수나 있을까요?”



“두 솥 분량만큼의 물만 있으면 됩니다.”



펠릭스는 주머니칼로 억센 풀과 덩굴을 자르며 수풀을 헤쳐나갔다.



“어느정도인지 저는 감도 안 잡히네요.”



“그렇겠죠. 밀튼, 당신은 그저 마을 근처에서 들은 소문이 없나만 말 해 주면 됩니다. 어디에 물이 있다더라, 어디에 강이 있다더라······.”



“아, 그렇군요. 그럼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고요.”





펠릭스와 밀튼은 마을 근처에서 생각보다는 자주 물 웅덩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대게 웅덩이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 이건 어떻습니까?”



“저기 야생 동물이 죽어있잖아요. 썩은 물이라 못 써요.”



“아쉽네요. 깨끗해 보였는데. 아, 저기도 또 하나 있는데요. 저건 어떻습니까?”



펠릭스는 웅덩이의 아래에서 꾸물거리는 것들을 잠시 살펴보았다.



“더러운 물이라 안 됩니다.”



“아깝네요. 다른데 또 웅덩이가 있을까요?”



“찾아봐야죠. 정 없으면, 그 땐 진짜 우물을 파든가, 아니면 다른 대책을 강구하든가 해야죠.”



“달리 방법이 있나요?”



“뭐든 못 할건 없습니다. 전 솜씨좋은 연금술사니까요. 하지만,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리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네요.”



“얼마나 비싸길래요?”



펠릭스는 수풀을 헤치다 말고, 뒤돌아 밀튼을 향해 웃어주었다.



“금화 단위입니다.”



“그럼 우리 마을에서는 못 쓰겠네요. 어휴. 빨리 좀 괜찮은 물을 찾았으면 좋겠네.”






한 시간쯤 수풀을 헤멨을까. 밀튼도 펠릭스도 녹초가 되어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 서 있었다. 펠릭스는 밀튼에게 가죽부대에 든 물을 양보하고, 대신 자기는 수통을 열어 물을 꼴깍 마셨다.



“힘드네요. 생각보다.”



가죽 부대에서 입을 떼며 밀튼이 말했다.



“그러게요.”



그리고 펠릭스는 자신의 오른 다리를 짜증스런 얼굴로 내려보았다. 이 수풀과 웅덩이의 습기가 그의 의족에 명백이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았지만, 여기서 계속 무리를 하면 탈이 날게 분명했다.



“슬슬 정말 찾았으면 하는데.”



“저도요.”



“아, 그러고보니까. 막 생각난건데. 그, 지명수배범 말씀을 하셨잖아요?”



펠릭스는 수통 마개를 닫으며 밀튼을 돌아보았다.



“그런데요?”



“그, 말입니다. 한 달쯤 됐던가, 언제던가. 마을 근처에 조그만 텐트를 치고 자리잡은 야생인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디죠?!”



밀튼은 깜짝 놀라 대답했다.



“마을 뒷산 어디인데······.”



“당장 그리로 가요. 가! 빨리 가요 밀튼. 내 참. 조금만 더 빨리 떠올려주지 그랬어요?!”



“아, 연금술사 선생님! 같이 가요!”



펠릭스와 밀튼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거친 야생림을 억지로 뚫고 나간 덕분이랄지, 그들은 삼십 분도 되지 않아 밀튼이 말한 수선화마을 뒷산에 도착했다.



“뒷산 어디쯤이라던가요?”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펠릭스는 능선을 노려보고, 마을 아래를 다시 내려보며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다.



“선생님?”



“이쪽으로 가 보죠.”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선생님? 아, 같이 가요!”






영문도 모르고 펠릭스의 뒤를 쫓기에 급급했던 밀튼은, 마침내 어느 조그마한 텐트를 하나 발견했다. 그건 수풀 사이에 잘 숨겨져 있었는데, 펠릭스가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거리더니 금새 찾아냈다.



“아니, 정말 있었네요?”



나뭇가지에 조잡한 천 조각과 나뭇잎을 이용해 만들어올린 텐트 앞에는, 조금 검게 그슬린 모닥불터가 하나 있었다.



“이 근처에 수원지가 있을텐데. 흠. 어디, 어디일까.”



“저쪽 아닐까요? 나무 그림자 사이에 뭔가 보인것 같습니다만.”



펠릭스는 바로 주머니칼로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과연, 저 아래쪽에 웅덩이 하나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가죠.”



밀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숨죽여 펠릭스를 뒤따라 걸어갔다.






과연 그 방향으로 걸어가니 웅덩이가 하나 보였다. 수풀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었는데, 육안으로 살펴보니 물은 깨끗했으며 펠릭스가 물을 조금 떠서 지시약을 넣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좋아요! 드디어 찾았군. 올리버가 이 물을 길어갈 수나 있으려나?”



“음.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하지만 전 올리버를 믿어요. 그래도 너무 부려먹기도 미안하니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죠.”



펠릭스는 고이 접어둔 빈 가죽부대를 꺼내 호숫물을 담기 시작했다.



“아, 도와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죠 밀튼.”



“그럼 이건 제가 하고 있을게요. 저희 마을을 도와주신다고 애쓰시는데, 정작 저는 별 도움도 못 돼고. 옆에서 보고있자니 죄송스럽더군요.”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밀튼에게 가죽부대를 넘겨주고 펠릭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무언가 그의 코에 걸리는 냄새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깨끗한 물이 다 있다니. 어디서 흘러온 걸까요?”



“산이니까, 산 꼭대기에서 내려온 물일지도 모르죠.”



대충 대답하며 펠릭스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어색하게 뭉쳐있는 수풀의 무더기가 있었다. 펠릭스가 조심스레 그것을 들춰내자, 그 뒤에 반쯤 말라버린 사람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흠.”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시체에서 멀어졌던 펠릭스는 다시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머니칼로 슬쩍 시신의 피부를 갈라보았다.



“휴. 좀 오래 걸리네요.”



밀튼의 목소리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펠릭스는 시신을 조사하며 어딘가 음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네요. 아, 밀튼. 혹시 그 지명수배범의 얼굴이 기록된 수배서가 있나요?”



“집에 놔뒀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펠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로 수풀을 잘 펼쳐 시체를 가린 다음 밀튼에게 웃으며 돌아왔다.



“그냥 호기심이 좀 생겨서요.”



“어휴. 호기심이라뇨. 저는 생각만해도 무시무시한데.”



“이따 보여주세요.”



“그러기야 하겠지만, 선생님. 혹여나 이상한 마음 품지는 마세요. 무시무시한 지명수배범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렇죠?”



펠릭스는 빙긋 웃으며 밀튼이 건네준 꽉 찬 가죽 부대를 허리에 단단하게 맸다.



“이제 내려가죠.”



“그럽시다. 어쩐지, 으슬으슬 춥네요.”



“기분탓이겠죠.”



펠릭스는 짧게 대답한 다음, 그 음흉한 범죄 현상을 내버려두고 수선화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 선생님.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수풀을 헤치며 걷던 와중 밀튼이 그에게 물었다.



“네.”



“그, 노리스 선생님과 친해보이던데. 노리스 선생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펠릭스는 걸음을 멈추고 웃으며 밀튼을 돌아보았다.



“저보다 훨씬 못한 친구죠. 어느모로보나.”



“네? 아, 그런가요?”



“네. 그럼 다시 내려가죠. 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그렇다면 선생님을 만나 다행이네요.”



“그렇죠. 다행이고말고요.”



펠릭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는 어딘가 조금 뒤틀린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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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3화 21.11.28 32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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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21.11.20 26 1 20쪽
87 87화 21.11.20 35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9 1 23쪽
84 84화 21.11.18 28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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