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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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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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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00화

DUMMY

펠릭스는 부상당한 실바누스 준남작과, 불길한 소리가 나는 골목을 번갈아 보았다.


“펠릭스. 상처에 바르는 약 많잖아요! 왜, 아무것도 안 주는 거예요?”


그리고 실비아는 점점 안색이 나빠져가는 준남작의 옆에 붙어서 펠릭스에게 소리쳤다.


“대충 새 살이 돋아나고, 피를 멎게 하는 약이라면 썩어넘치죠. 맞아요, 실비아. 하지만, 함부로 뿌려댔다가 온갖 부작용을 유발할지도 모릅니다. 피를 멎게 하는 대신, 환부에 영영 사라지지 않는 피멍을 만든다든가. 피부는 멀쩡해지는데, 속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속에서 피가 흘러 죽는다든가······.”


“뭐라도 좀 해 봐요! 연금술사잖아요! 마술을 부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최고의 연금술사라면서요!”


“올리버!” 펠릭스는 올리버에게 짜증스레 외쳤다. “준남작과 실비아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요!”


“너는?”


“알아서 할 테니까, 옮겨줘요.”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당신 응급의학 알죠? 피를 막고, 상처를 꿰매는 그거.”


“네, 네. 알아요.”


“그럼 당신이 나서요. 준남작의 상처는 약으로 어떻게 하기도 애매하니까. 자, 이거. 하나는 피를 조금 멎게 하는 약. 이거는 마취약. 이거는 피 많이 흘린 사람한테 먹이는 약. 그리고, 이건 의식이 잃었을 때 코밑에 두고 냄새만 맡도록 해요.”


펠릭스는 순식간에 네 개의 약병을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잘 기억했죠?”


“네. 알았어요. 올리버! 부탁해요.”


그리고 실비아는 올리버를 따라 쪼르르 가다가, 조금 불안한 눈으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전혀, 조금도 믿음직하지 않은, 조금 왜소한 체구의 그 등을 보던 실비아는, 입술을 깨물며 그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렸다.




골목에 혼자 남은 펠릭스는 저쪽에서 굳이 좁은 골목 안으로 말머리를 들이밀고 달려오는 멍청한 마적의 한 무리를 금새 발견했다. 그들은 무슨 약에 취한 것처럼, 시뻘겋게 두 눈이 충혈되었는데, 정작 눈에 힘은 풀려 있었다.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고, 칼을 쥔 그들의 손은 계속 벌벌 떨렸다.




“마약성 물질에 흠뻑 취했구만.”


펠릭스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 툴툴댔다.


“하여튼. 좀, 적당히 좀 하지.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연금술사 무서운 줄을 모르고 말이야.”


펠릭스는 소매 아래에서 주머니칼을 슥 뽑더니, 칼날로 옷섶을 조금 찢었다. 그러자 약병 하나가 고개를 툭 내밀었다. 펠릭스가 꽁꽁 숨겨둔 약병 안에는, 검붉은 무언가가 스물스물 요동치고 있었다.


“사람 살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보다, 사람 죽이는 방법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펠릭스는 가볍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다음, 약병을 집어들어 있는 힘껏 골목 안으로 집어던졌다.




펠릭스의 약병이 그의 손을 떠나 골목의 바닥에 부딪혔다. 병의 약한 유리가 깨지자, 검붉고 끈적한 안개가 늪지에서 솟아오르는 가스처럼, 한 여름에 개화하는 커다란 꽃잎처럼 확 피어올랐다.




안개에 닿은 말과, 그 말을 탄 사람들은,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자신의 온 얼굴과 피부를 마구 문질렀다. 그들의 피부 위에 붉은 반점과 농포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농포는 투명한, 누런, 하얀, 또는 새빨간 색으로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버렸고, 농포가 터지며 그들의 심장도 같이 터져버린듯, 그들은 금새 한 덩어리의 죽음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이렇다니까. 어휴. 이 뒷처리. 어떻게 한담. 스승님이 봤다면 보나마나 한 소리 했겠지. ‘펠릭스! 이 악마 같은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거냐!’ 하고. 역시, 다른 걸 쓸걸 그랬나.”


그리고 펠릭스는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몇 개의 약병들을 골라 골목 안으로 휙휙 집어던져댔다.




올리버가 문을 부수고 들어온 집은, 다행히 사람 사는 집은 아닌듯 했다. 그들은 일단 바닥에 실바누스 준남작을 눕혔다. 그리고 올리버는 재빨리 집 안에 위험이 없는지 확인했고, 실비아는 준남작의 옆에 붙어 그의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아빠. 내가, 금방 해 줄테니까. 조금만 참아.”


“······실비아.”


“왜, 왜?”


“안전한 곳으로 가, 가서, 의사. 의사를······.”


“내가 한다니까!”


“의사!”


준남작이 갑자기 소리치는 바람에, 그의 상처가 벌어졌다.


“아 좀! 가만있어! 내가 할게. 그리고, 이 난장판에서 의사를 갑자기 어디서 찾아?”


“실비아. 안전한데로 가라니까······.”


“올리버가 지켜줄거야. 그리고, 나도 이제 내 앞가림 할 수 있거든?”


“칼도 제대로 못 쥐면서······.윽!”


실비아가 남작의 상처에 박혀있던 칼을 뽑자, 순식간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실비아는 그 피를 보고 순식간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실비아!”


그러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깨끗한 천으로 피를 닦으며, 펠릭스가 준 피 멎는 약을 상처안에 뿌리자, 준남작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


준남작은 대답하지 않고, 거친 숨을 헐떡거리기만 했다. 실비아는 배운 대로 지혈을 하며, 챙겨들고 다니던 바느질 바늘을 꺼내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마침 초와 성냥을 발견해, 성냥을 그어 촛불을 붙이고 바늘을 불에 달구었다.




무시무시하고 위태로운 수술이 시작되었다. 집 안을 살펴보고 돌아온 올리버는 힘껏 상처를 지혈했고, 실비아는 마취약을 조금 뿌린 다음 바느질을 시작했다. 준남작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으나,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정신력이야.”


올리버는 놀랍다는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실바누스도, 실비아도 그의 말을 듣지 못한듯 했다.


“아빠. 다 돼 가거든. 조금만, 조금만 참아. 잠시만······꺅!”


“틀렸어!” 올리버는 재빨리 다른 헝겊을 갖다대며 말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와!”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아빠!”


실비아는 다시 펠릭스가 주었던 약을 상처에 뿌리다가, 그만 약병을 반쯤 쏟아버리고 말았다.


“으윽!”


준남작이 괴롭게 몸을 조금 비틀었다.


“미안, 미안해! 잠시만······.”


그 때, 현관문이 열리더니 펠릭스가 역광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올리버. 밖은 대강 정리했어요. 그래서, 잘 돼 가요?”


“펠릭스! 피가 너무 많이 나요!”


“한 병을 다 썼는데도?”


“네? 아! 아빠, 미안해.”


실비아는 펠릭스가 준 약을 다시 상처에 부었다. 그러자 상처에서 거품이 일더니, 피가 조금 멎는 듯했다.


“세상에. 대체 뭘로 만든 약이에요?”


“당신은 모르는 편이 나을 것들의 뼈와 골수를 갈아 만든 분말에, 약초 가루를 섞은 다음 뿌리기 좋게 물에 탄 거요. 나중에 찬찬히······.”


“그래서, 이제 어떡해요!”


“꿰매야죠. 별 수 있어요?”


펠릭스는 느긋하게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요? 뭐, 만병 통치약이나······.”


“엘릭서쯤 되면 몰라. 없어요.”


펠릭스는 냄비 하나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로요······?”


“실비아.” 펠릭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가끔은, 그럴 때도 있는 법이죠. 다른 길은 전혀 없고, 위험하고 위태롭고 힘들고 어려운 길 하나밖에 없을 때도. 고통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래, 그래요. 알았어요. 아빠, 다시 꿰맬게. 기다려줘.”


그리고 다시 바늘을 잡은 실비아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상처를 꿰매고 나자, 실바누스 준남작의 상처에서 더이상 피가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아빠. 아빠? 괜찮아?”


준남작은 고통스런 싸움을 하고 있는듯, 그의 눈에서 힘이 풀리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펠릭스!”


부엌에서 냄비를 살피던 펠릭스는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왔다.


“왜요?”


“아빠가, 이상해요!”


실비아가 울먹거리며 말하자, 펠릭스는 준남작의 상태를 잠깐 살펴보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네요.”


“방법 없어요?”


“바다 건너에서는, 수혈이라는 치료법이 있다지만.” 펠릭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할 줄 몰라요. 위험하기도 하고.”


“그럼, 어떡해요? 무슨 방법 없어요?”


“글쎄요. 이겨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기?”


펠릭스!” 실비아는 펠릭스의 멱살을 붙잡았다. “뭐라도, 있을거 아니에요!”


“글쎄요. 그 때, 오르데움에서 꼬마가 내 엘릭서를 훔쳐가지 않았더라면, 또 모르지만.”


“엘릭서. 그래, 엘릭서!” 실비아는 펠릭스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엘릭서, 만들게요. 당신이 만들기 쉽다면서요?”


“실비아. 좀, 진정해요. 당신이 만들어 봤자······.”


“가르쳐줘요!” 실비아가 울먹이며 매달렸다. “네? 달리, 방법 없다면서요. 이대로 가만히 있기는 싫어요······.”


펠릭스는 준남작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는 두 눈을 좌우로 번갈아 움직였다. 고개를 가로젓는것조차, 지금의 준남작에게는 힘든 일인듯했다.


“좋아요.”


그러나 펠릭스는 준남작의 의사를 무시했다.


“알려드리죠. 자, 여기요.”


펠릭스는 종이를 꺼내더니, 정말 순식간에 그 ‘엘릭서’의 레시피를 써내려갔다.


“어디 봐요. 아니, 이게, 이게 다라고요?”


“네. 실비아. 엘릭서는 공식으로 만드는 약이 아니에요. 숫자와 도식을 초월하여, 문자 너머의 것을 보고, 그리고 온 몸으로 그것을 느껴야만······.”


“알았어요. 만들어 올게요. 그동안, 아빠 잘 지켜줘요!”


그리고 실비아는 바로 부엌으로 달려가 펠릭스가 방금 꺼내둔 냄비를 장작 위에 걸기 시작했다.




실비아가 약을 만들러 가버리자, 준남작은 분노가 서린 눈으로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네? 뭐라고요?”


“이······나쁜······놈이······.”


펠릭스는 어느새 바짝 마른 준남작의 입술을 보고, 약병을 꺼내 그의 입 안에 조금 흘려넣었다. 그러자 준남작의 입술에 금새 조금 색이 돌아왔다.


“술 섞은 겁니다. 독한 과실주를 약으로 쓰기도 한다죠?”


“이, 연금술사 놈이.” 준남작은 힘겹게 말했다. “실비아를, 데려와. 그리고, 의사를, 찾아와.”


“의사라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답니까. 의사나, 약사나, 우리 연금술사나, 결국 약을 만드는건 똑같잖아요?”


“의사들은, 달라······!”


“네. 다르죠. 톱으로 팔다리를 슥슥 자르니까. 하지만, 준남작. 당신은 가슴께를 찔렸어요. 거긴 톱으로 못 자른다고요.”


“농담, 아니다······!”


펠릭스는 준남작의 입에다가 또 다른 약을 흘려넣었다. 그러자 준남작의 눈에 힘이 잠시 풀리는가 하더니, 금새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뭐지?”


“마취약이죠. 목 아래로 아마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아까부터, 계속 수상한 약을 쓰기나 하고······.”


“올리버.”


펠릭스는 준남작의 말을 무시했다.


“보초좀 서 줘요. 내가 죽인 마적만 해도, 거의 한 열명은 되기는 한데, 얼마나 남았을지도 모르고.”


“그렇게나 해치웠어?”


올리버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때요? 먼저 덤비지를 말든가. 아무튼, 부탁좀 해요.”


“내 참. 그래, 뭐. 알았어. 일리있는 말이기는 해.”


올리버가 자리를 뜨자, 펠릭스는 다시 준남작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아까보단 훨씬 낫죠?”


준남작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부엌 쪽을 쳐다보려 애썼다.


“실비아. 실비아를 불러와. 그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


“그런가요?”


“그래!”


준남작은 겨우 힘겹게 돌린 고개를, 다시 돌려 펠릭스를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이상한 길에 물들이려 하다니. 네놈, 내가, 내 손으로 해치워줄테다······.”


“사실, 연금술사 정도면 꽤 괜찮은 직업이라 생각합니다만.”


“실비아는, 귀족이야! 진짜, 귀족이라고!”


준남작이 숨을 내뱉듯 힘겹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그 아이를 위해서, 그 아이 만큼은, 그 아이라도······.”


“어, 이런. 잠시만요.”


펠릭스는 재빨리 어느 약병의 뚜껑을 열어 눈의 초점을 잃어가던 준남작의 코 아래에 가져다 대었다.


“준남작님? 준남작님? 실바누스 준남작님. 정신 똑바로 차려요. 당신 딸이 약 만들고 있으니까.”


“펠릭스? 무슨 일 생긴거 아니죠?”


부엌에서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펠릭스는 고개를 쑥 빼고 부엌 쪽으로 외쳤다.


“아무 일 없어요.”


“정말이죠? 당신 거짓말 한 거면, 저 진짜 화낼 거예요!”


“어련하겠어요.”


그리고 펠릭스는 다시 준남작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는 의식을 잃어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대단한 정신력이군요, 준남작님.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즉 까무러쳤을 겁니다.”


“날, 놀리나?”


“설마요. 순수한 존경입니다.”


“사업을, 하려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해. 강인한, 정신력이.” 준남작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네놈은 아나?”


“전혀요. 제가 감히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짐작조차 못 합니다.”


“망할 놈이,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 하는군······.” 준남작은 기침을 하려는듯 숨을 잠시 색색거렸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습니까?”


“불편? 보면 모르나?”


“죄송합니다.” 펠릭스는 히죽 웃었다.


“실비아를 데려와.” 준남작이 다시 부엌쪽으로 고개를 힘겹게 돌리며 말했다. “왜, 너 연금술사가 아니라, 내 딸이 약을 만들고 있는거지? 죽어가는데, 내 딸의 간호조차 받지 못하게 막을 셈인가? 까짓, 흑살구 좀 안 팔았다고? 이렇게 비열하고 음습하게 복수를 꿈꾸는게, 너희들 연금술사들인가?”


“음. 이런.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펠릭스는 꼭 놀리듯 준남작에게 말했다.


“물론!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당신의 상처를 낫게 할 만한 방법은 이것저것 알고 있습니다만, 하나같이 후유증이 심하게 남거든요. 뱃속에 돌이 찬 것 같은 후유증이라든가, 아니면 허리가 조금 일그러져 남은평생 꼽추로 살지도 모릅니다. 그건 솔직히 싫지 않습니까?”


준남작는 대답하지 않고 펠릭스를 노려보기만 했다.


“실비아가 엘릭서를 만들어오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겁니다.”


“왜, 네가 아니라, 내 딸이 만들고 있는 거지?”


“저는 못 만들거든요. 그 엘릭서.” 펠릭스는 사실대로 실토했다. “엘릭서는 마음으로 빚는 약입니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아주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나, 뭐 대충 그런 거겠죠.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마음 살면서 단 한번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네놈같은, 미치광이 연금술사들이······.”


“하지만, 실비아는 다릅니다.” 펠릭스는 이번에도 준남작의 말을 무시해치웠다. “실비아라면, 아버지를 살리겠다는 지극히 순수하고 선한 마음으로 약을 빚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운좋게도 진짜 엘릭서를 만들어 낼 지도 모르고.”


“날더러, 그런, 동화같은 말을 믿으라고?”


“아까 봤잖습니까? 제가 무슨 약병들을 집어던지는지. 까짓거, 그리고 못 믿을건 또 뭡니까?”


펠릭스는 준남작의 가슴께의 피투성이 상처를 힐끗 보았다.


“달리 기댈 곳이라도 있습니까?”


“의사를······.”


“소용없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은, 이미 우리가 한 뒤니까요. 기껏해야 그들은 독한 과일주를 준남작님의 입에 조금씩 흘려넣겠죠. 의식을 잃을 때마다.”


“빌어먹을. 이딴 최후를 맞이하다니······.”


준남작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따님을 못 믿으십니까?”


“실비아는, 너무 어려. 어리고, 마음이 여려······.”


준남작의 눈에서 조금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 사랑으로 키운 아이인데,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도 못 하게 찾아왔지. 그래, 숲 속의 요정처럼······.”


“음. 잠시만요. 제가 약을······.”


펠릭스는 약병을 꺼내려다가, 문득 멈춰섰다. 그리고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헛소리를 시작한 준남작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갈 때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그 아이를 사랑해 줬다. 강아지도 한 마리 사 주었지. 그런데, 멍청한 하인이······그래. 실비아. 내가, 미리 알아 챘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미안해······..”


“호오. 뭐가 그리 미안하십니까? 준남작? 제 말 들려요?”


펠릭스는 힘없이 떨구어진 준남작의 얼굴을 손으로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창백하다못해 검어지기 시작한 안색을 살피던 펠릭스는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멀었어요?”


“다 됐어요!”


실비아는 밤하늘처럼 별이 반짝거리는, 검보랏빛의 액체가 담긴 솥을 솥째로 허둥거리며 들고 뛰어왔다.


“거르지도 않아요?”


“아, 잠시만요. 거름 종이가······.”


“체를 써요. 그 위에 면보를 깔아요. 그래, 진정해요.”


펠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냄비의 내용물을 거르는 것을 도와주웠다.




완성된 액체는 한없이 검은색에 가까웠다. 검은색. 완전한 검은색. 잠이 들기 위해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그것보다 더욱 어두컴컴한 완벽한 검은색의 물약을, 실비아는 아버지의 입 안으로 조심스레 흘려넣었다.


“엘릭서를 만든것 맞죠?”


실비아는 멈칫했다.


“아, 아니에요?”


“저도 모르죠.”


펠릭스는 뭐라 더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으로 남아있는 엘릭서의 찌꺼기를 슬쩍 만져보았다. 거칠면서도 끈적하고, 악취와 향기가 뒤섞였으며, 혼탁하지만 가라앉지는 않는 이상한 약물을,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어딘가 불만족스럽게 살펴보았다.


“어, 펠릭스.”


“왜요?”


펠릭스는 재빨리 손가락을 슥 닦으며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먹여야 하죠?”


“당신이 원하는 만큼. 약의 용법을 정하는것 까지가 연금술사가 할 일이니까요.”


“알았어요. 그런데, 이 약. 효과가 있는 건가요? 아빠 얼굴이 안 좋아보여요······.”


“당신이 만든 약을 당신이 못 믿으면, 달리 누가 믿어줘요?”


“그래도요!” 실비아가 울먹이며 말했다. “이랬는데, 아빠가 안 일어나면, 어떡해요? 이대로 죽으면 어떡해요? 차라리! 의사를 찾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잖아요. 의사라면 고쳐줬을지도······.”


“두고 볼 일이죠. 기다려봐요, 실비아. 엘릭서는 즉효성 약물은 아니니까.”


펠릭스도 준남작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그리고 정 의심스러우면, 맥을 짚어봐요. 당신 맥 짚을줄 알잖아요?”


“아, 맞다.”


그리고 실비아는 아버지의 목에 손가락을 갖다대었다.


“짚혀요?”


“희미해요. 펠릭스. 괜찮겠죠······?”


“흠.” 펠릭스는 준남작의 상태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솔직히, 저는······.”


“괜찮아.”


그리고 보초를 서던 올리버가 뚜벅뚜벅 걸어와서 말했다.


“실비아. 준남작을 침대로 옮기자꾸나. 피에 젖은 옷도 조금 갈아입혀야 할 것같고.”


“아, 네. 올리버.”


실비아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올리버는 펠릭스에게 눈짓을 보냈다.


“펠릭스. 금방 다녀올게. 잠시 살피고 있어.”


“그래요. 잠깐정도라면.”


펠릭스는 올리버와 교대하여 현관 근처로 걸어갔고, 올리버는 실바누스 준남작의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그를 들어 옮겼다.


“흠.”


그들이 거실을 비우자 펠릭스는 손에 아직 조금 남아있는, 실비아가 만든 그 약을 살짝 혀끝으로 맛보았다.


“으. 이게 뭐야. 달고, 짜고, 쓰고, 신데, 떫고, 맵고, 느끼하고, 그야말로 온갖 맛이란 맛은 죄다 섞인 엉망진창이군.”


그는 남은 약을 바짓단에 슥슥 닦았다.


“이딴게 삶의 영약이라니. 적어도, 맨정신으로 먹을 것은 못 되는군. 준남작이 의식을 잃어 차라리 다행이야.”


그러면서 펠릭스는 어딘가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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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4화 21.11.23 29 1 19쪽
93 93화 21.11.23 23 1 18쪽
92 92화 21.11.22 29 1 21쪽
91 91화 21.11.22 24 1 19쪽
90 90화 21.11.21 26 1 21쪽
89 89화 21.11.21 25 1 22쪽
88 88화 21.11.20 25 1 20쪽
87 87화 21.11.20 31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8 1 23쪽
84 84화 21.11.18 27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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