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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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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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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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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106화

DUMMY

세 명의 사냥꾼들이 허름한 마차에 올라타 말없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복은 산맥 동쪽의 의복과는 어딘가 달랐으며, 또한 그들의 말투에도 독특한 강세와 발음이 섞여 있었다. 여러모로보나, 그들은 동쪽 토박이는 아니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올 줄이야.”



그 샤낭꾼의 우두머리로 되어 보이는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별 수 있어? 그 웨일 가문의 편지를 받을 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러자 옆에서 호리호리한 남자가 대꾸했다.



“그러니까 말야. 그 편지. 봉투를 처음 열었을 때, 나는 누가 우리 뒤통수에서 몽둥이라도 들고 기다리도 있다가 냅다 후려친줄 알았다니까.”



이번에는 조금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뭐? ‘계약 기간 엄수’ 라고 했나? 기억에도 없는 소리를 갑자기 해 대니, 뭐 정신 차리고 자시고 할 틈이나 있었나.”



“웨일만 아니었어도 그냥 무시해치우는건데. 아니, 놓쳐버린 블루드래곤을 어디서 찾는대?”



“그래서 소문에 소문을 쫓아 여기까지 온 거잖아. 이 먼 동쪽 땅까지. 그나마, 돈이라도 쥐여줘서 다행이지. 돈도 안 주고 일을 부려먹는 놈들이었으면, 우린 진작 죽었다.”



다시 그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하소연하듯 말하자, 다른 두 사람도 조용히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꼭 잡아야 되는데.”



“그러게. 그러니까, 이상할 정도로 조건이 좋다 싶었어. 어휴, 웨일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도망쳤어야 하는건데······.”



다시 세 사람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뭐가 됐든 간에, 이번 일 끝나면 우리 그냥 평범하게, 성실하게 살자. 사냥 같은건 때려치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힘빠진 목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



그러자 그의 두 동료도, 잠시도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밤숲마을로 돌아온 펠릭스의 일행들은 마차에서 내려 우선 연금술 가게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 새파란 괴물이 나온다 이거죠?”



펠릭스는 숲 속 나무 사이사이를 훔쳐보며 말했다.



“그래. 귀신인지, 괴물인지, 용인지 뭔지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으슬으슬하네요.”



실비아는 가볍게 몸을 떨며 숲 속의 그림자 사이사이를 힐끗거렸다.



“뭐, 걱정마요 실비아. 여기 듬직한 올리버도 있고, 이 위대한 연금술사 펠릭스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용을 잡을 수나 있어요?”



“용은 멸종했다니까요. 멸종한 용이 왜 나오겠어요?”



“그래도, 또 모르잖아요! 어디, 숨어있던 용이 있을지도······.”



실비아의 말을 들은 펠릭스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런 용이 있었으면, 진작에 소문이 돌아야죠. 그리고, 용은 척 보면 용인줄 알아요. 진짜 용이 있었으면 귀신이니 괴물이니 소문은 안 돌았겠죠.”



“아무튼, 뭐든 간에. 헛소문일지도 모르니까. 너무 긴장할건 없다, 실비아.”



“정 그렇다면야······.”



그래도 실비아는 계속 숲 속 여기저기를 힐끗거려, 보다못한 올리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세 사람은 일렬로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선두에는 펠릭스, 후미에는 올리버, 그리고 가운데에는 실비아가 있었다.



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인지, 실비아는 아까보다는 걱정하는 낌새가 훨씬 줄어들어 보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실비아의 걱정과 달리, 행복의 연금술 가게로 오는 숲길에서 그들은 괴물은커녕 새 한마리, 벌레 한 마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봐요. 내가, 헛소문이랬죠?”



가게의 문틈에 발라둔 약을 녹이며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걱정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해서 좋을 것도 없거든요. 안 그래요 올리버?”



“뭐, 둘 다 맞는말이기는 해.”



올리버는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두 눈으로는 숲 속의 살랑거리는 그림자를 쫓았다.



“들어가죠.”



펠릭스가 가게의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그러자마자 실비아는 재빨리 가게 안으로 피신했다.






연금술 가게의 며칠 묵은 먼지 냄새는, 창문을 활짝 열자 금새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벽난로에 불을 떼자 아늑하고 따뜻한 공기가 기분좋게 솔솔 피어올랐다.



벽난로의 불길이 닿는 곳까지 의자를 끌어와, 실비아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앉아 가만히 불을 쬐었다. 집 처럼 아늑하게 느껴지는 연금술 가게의 냄새를 맡으며 실비아는 눈꺼풀에 힘이 점점 풀리는 것을 느꼈다. 커다랗지만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졸음의 거품이 실비아를 기분좋게, 포근하게 감싸안기 시작했다.



그렇게 꾸벅꾸벅 졸던 실비아는, 찍찍거리는 소리를 듣고 부스스 눈을 떴다. 그녀의 발치에서 다람쥐 코튼이 반갑다는듯 원을 그리며 잽싸게 달리다가, 그녀의 다리를 타고 쪼르르 기어올라왔다.



“코튼! 집 보고 있었구나?”



다람쥐는 어느새 실비아의 손 끝에 매달려 수염을 쫑긋거리고 있었다.



“어휴, 요 귀여운녀석. 그동안······.”



“찍! 찍찍!”



갑자귀 코튼은 창문을 향해 찍찍거리더니 잽싸게 바닥으로 쪼르르 뛰어가버렸다.



“코튼?”



실비아는 코튼이 바라보았던 창문 밖으로 조심스레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밤이 내려앉은 탓에 창문에는 그녀의 얼굴이 반사되어 보일 뿐이었다.



“코튼. 이 너머에 뭔가 있었어?”



조금 겁을 먹은 채, 실비아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창문에 한 걸음씩 가까이 갈 때마다, 실비아는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그녀는 창문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손으로 창문 손잡이를 붙잡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실비아는 숨죽여 창문을 조심스레, 소리나지 않게 아주 조금만 열었다.



창문의 틈새로 밤의 차가운 어둠이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실비아는 그 틈새로 창문 밖을 잠시 살폈지만, 창 밖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실비아는 도로 창문을 닫고, 걸쇠를 잠근 뒤에야 들이마셨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조심 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시 벽난로 앞에 천천히 앉았다.






괜히 무슨 일인가 싶어 실비아가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동안에, 한편 펠릭스는 작업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사온 재료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펠릭스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코를 킁킁거렸다. 그는 성큼성큼 작업실 창문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고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재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때, 올리버는 아무 생각 없이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살짝 열린 방문의 틈새로 코튼이 쪼르르 달려와 올리버의 다리를 타고 오르자, 그는 퍽 기분좋은듯 웃으며 코튼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튼! 역시, 여깄었구나. 그동안 뭘 갉아먹은거야?”



그러나 코튼은 평소처럼 올리버의 손에 달라붙는 대신, 계속 신경질적으로 찍찍거리며 수염을 쫑긋거렸다.



“응? 왜그래, 코튼? 무슨 일 있어? 아야!”



코튼은 그의 손가락 끝을 가볍게 깨물고는,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려 그의 방문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코튼은 상체를 일으키고 올리버를 쳐다보며 다시 찍찍거렸다.



“뭐야? 왜?”



올리버가 그쪽으로 걸어가자 코튼은 이번에는 복도쪽으로 쪼르르 뛰어가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아, 따라오라고?”



“찍찍!”



코튼은 다시 수염을 쫑긋거리며 거실로 다다다 뛰어갔고, 올리버도 코튼을 따라 거실로 나갔다.






연금술 가게 거실에는 실비아가 벽난로 앞에 앉아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리버가 오고 나서야, 그녀는 대단한 감사와 기쁨이 담긴 눈으로 올리버를 쳐다보았다.



“올리버. 반가워요.”



“그래보이네.”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해 준 다음, 계속 찍찍거리던 코튼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왜요?”



“아, 코튼이 날 이리로 데려온 것 같은데. 지금은 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 보여서.”



“코튼이요? 그러고보니, 아깐 저랑 같이 있었어요. 갑자기 창문쪽으로 달려가던데······.”



“그래?”



“네. 밖에 뭐가 있나 싶어서 살펴봤어요. 하지만, 창문 밖에는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흠. 뭐, 그냥 장난이었거나, 그랬을지도······.”



“찍!”



코튼은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무슨 항의하듯 올리버의 얼굴을 그 까만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았다.



“응? 뭐?”



하지만 올리버는 동물과 대화하는 재주는 없었다. 그러자 코튼은 답답하다는듯 수염을 까딱거리다가, 다시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가버렸다.



“거 참. 이상하네. 원래 코튼은 애교가 많았는데. 내가 뭐 실수라도 했나?”



복도를 순식간에 달려가버리는 코튼의 그림자를 보더니, 올리버가 아쉽다는듯 중얼거렸다.



“글쎄요?”



그리고 실비아도 딱히 나은 것은 없다보니, 마찬가지로 그녀도 코튼이 달려가버린 텅빈 복도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코튼은 펠릭스의 작업실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펠릭스는 불청객의 난입에 깜짝 놀랐다.



“아니, 뭐야 이 다람쥐가! 쉿쉿! 저리가!”



“찍!”



그러나 코튼은 펠릭스의 다리에 계속 엉겨붙었다.



“훠이! 저리 가라니까? 가서 올리버한테 놀아달라 그래!”



“찍! 찍! 찍!”



코튼은 집요하게 펠릭스의 다리에 엉기다가, 갑자기 그의 재료 하나를 덥썩 물고 작업실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야! 그건 두고 가야지!”



그래서 펠릭스는 어쩔수 없이 코튼의 뒤를 쫓아 작업실에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가 빠져나가자, 작업실의 창문 밖으로 무언가의 눈동자가 얼핏 스쳐 지나갔다.






코튼은 펠릭스의 재료를 물고 거실로 뛰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온 펠릭스는 실비아와 올리버와 마주쳤다.



“아, 좋은 밤. 뭐해요 여기서들?”



“난 원래 여깄었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난 코튼이 데려왔어.” 올리버가 말했다. “넌?”



“저도 올리버 당신과 같네요. 이놈이, 내 재료를 물고 달아났는데······아니, 여기 두고갔네.”



펠릭스는 창틀 앞에 내려놓은 재료를 줍다가, 창틀 앞에서 멈춰서서는 코를 킁킁거렸다.



“뭐해?”



“잠시만요. 이상한데?”



펠릭스는 창문을 벌컥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려 했는데, 갑자기 코튼이 그의 발뒤꿈치를 깨물었다.



“아야! 이, 망할 다람쥐가!”



펠릭스는 도로 고개를 안으로 들이고는 창문을 쾅 닫아버렸다.



“올리버! 당신 다람쥐 간수좀 잘 해요.”



“내가 뭘 어쩌겠어?”



올리버는 오늘따라 유난히 잽싸게 돌아다니는 코튼을 의아한듯 쳐다보았다.



“하여튼. 툭하면 사람을 물고 말이야. 재료 정리 하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아, 정리하고 있었어요? 저도 부르지. 저 그런거 잘 하거든요.”



“왜요?”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거실에 혼자 있기 무서웠나요?”



“그런거 아니거든요!”



“뭐, 정 무서우면 따라오시든지요. 저는 그런데는 관대하거든요.”



“펠릭스!”



실비아는 조금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는 펠릭스의 등에 대고 씩씩거리며 외쳤다.



“갈거야?”



“네.”



하지만 펠릭스가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



“······조금요.”



“그래. 그러면 가자.”



올리버는 실비아를 앞세워 작업실로 들어가려다가, 거실을 힐끗 돌아보았다.



“흠.”



그리고 올리버는 실비아가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그제서야 몸을 돌려 펠릭스의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펠릭스는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차가운 공기도.



“내가 창문을 열었던가?”



그러나 창문들은 모조리 닫혀있었다. 펠릭스는 의아해 하며 작업실의 창문들을 살피다가, 내친 김에 하나씩 걸쇠를 걸어 잠가버렸다.



“펠릭스. 들어가요.”



노크소리와 함께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작업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실비아보다 코튼이 한발 앞서 작업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코튼은 작업실 한복판에 가만히 앉아 수염을 쫑긋거렸다.



“코튼이 이상한걸.”



“올리버. 이제 알았나요? 저 다람쥐 말이야. 툭하면 나를 깨물고······.”



그리고 코튼은 다시 작업실 밖으로 쪼르르 달려나가버렸다.



“뭐, 아무튼. 그래서 실비아. 도와주러 온 거면 좀 도와줄래요?”



“그래요. 뭘 하면 되죠?”



“자. 이걸 여기에······.”



그리고 올리버는 두 사람이 재료 정리를 하는 동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작업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방에 갔다 올 테니까, 여기있어.”



“달리 어딜 가겠어요?”



올리버는 아리송한 얼굴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작업실 문을 열었다.






방으로 간 올리버는 여행중에 차고다녔던 칼집을 도로 허리춤에 차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여전히 재료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코튼은 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흠.”



올리버는 영 이상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작업실 문 밖으로 고개를 슬쩍 내뺐다.



“덜컹!”



“음?”



부엌 뒷문 쪽에서 난 소리였다.



“펠릭스. 실비아랑 여기 가만히 있어.”



“왜요?”



“무슨 소리가 나서. 부엌 뒷문쪽인데, 잠시 보고올게.”



“바람 소리겠죠 뭐.” 펠릭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문은 낡아가지고 덜컹거리잖아요?”



“보고 올게. 나 올 때까지 가만있어.”



그리고 올리버는 작업실의 문을 닫고,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고는 조심스레 부엌으로 걸어갔다.






세 명의 사냥꾼은 재빨리 부엌 뒷문에서 떨어져 수풀 속에 허둥지둥 숨었다. 이윽고 부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잠시 숨을 죽였다.



“꼭 이래야 할 필요가 있어?”



호리호리한 남자가 소근거리며 말했다.



“아니, 저놈들. 기억났단 말야. 그, 숲에서 다 잡은 블루드래곤을 훔쳐간 그놈들이라고!”



우두머리인 남자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컸지만, 다행히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그의 목소리를 감추어 주었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같은데······.”



“그래. 웨일한테 찍혔는데, 블루드래곤 찾는게 우선 아니겠어?”



뚱뚱한 남자도 호리호리한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이 겁쟁이들이, 넌 그놈들한테 당한게 부끄럽지도 않아?”



“하지만, 지난 일이기도 하고. 주머니를 턴 것도 아니고······.”



“그놈이 블루드래곤을 갖고가는 바람에 우리가 이꼴 난거잖아!”



“하지만, 저 남자. 보통 솜씨가 아닌 것 같던데. 잘못하면······응? 이게 뭐지?”



조그만 다람쥐가 그의 손을 타고 오르더니 그의 얼굴 위에 앞발을 얹고 수염을 까딱까딱거렸다.



“다람쥐잖아? 옳지, 요 귀여운······아야!”



“뭐야!”



“날 물었어! 이, 망할 짐승이!”



다람쥐가 그의 입술을 콱 깨물어, 뚱뚱한 남자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바람에, 그는 부엌 뒷문 바깥을 살피던 올리버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이놈들! 뭐하는 놈들이냐!”



올리버는 칼을 뽑아들고 냅다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어떡해?”



“어떡하긴, 싸워!”



우두머리의 말을 듣고 뚱뚱한 남자는 칼을 뽑아들었고, 호리호리한 남자는 허둥거리며 활을 들고 화살을 매기기 시작했다.



“당장 무기 내려놓지 못해!”



“으아악! 잠깐, 잠깐만. 살려줘!”



뚱뚱한 남자는 가까스로 칼을 들어 올리버의 검격을 막아냈지만, 그 충격 때문에 팔이 찌릿찌릿했다.



“야, 야! 너. 떨어져. 안 그러면······아얏!”



활을 든 호리호리한 남자는 화살을 겨우 매기고 올리버를 겨냥했으나, 갑자기 팔을 타고 올라온 다람쥐가 손가락을 물어 뜯는 바람에 허공으로 화살을 쏴 버렸다.



“야! 그걸, 놓치면······”



“퍽!”



올리버의 주먹이 뚱뚱한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고, 그는 힘없이 풀썩 쓰러졌다.



“아, 저, 저기요. 그, 죄송한데······악!”



“퍽!”



호리호리한 남자도 풀썩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코튼은 재빨리 올리버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흠. 코튼. 네 덕분에 알아챘구나. 고맙다. 그래서, 이놈들을 묶어둬야겠는데······.”



“찍! 찍! 찍!”



코튼은 땅으로 폴짝 뛰어내려와 올리버의 신발을 물고 저쪽으로 끌어당겼다.



“어허, 씁. 코튼. 지금은 바빠. 못 놀아줘.”



“찍! 찍!”



“어허!”



올리버는 코튼을 가볍게 쫓아내곤 밧줄을 찾아들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코튼은 어디론가 가버린 뒤였다.



“허 참. 뭐지?” 두 사람을 꽁꽁 묶으며 올리버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코튼?”



두 사람을 밧줄로 묶은 다음,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로 행복의 연금술 가게 안으로 돌아갔다.






작업실로 가려던 올리버는, 거실에서 인질로 잡혀있는 펠릭스와 실비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사냥꾼도.



“펠릭스. 내가 작업실에 가만 있으랬잖아.”



펠릭스는 미안하다는듯 싱긋 웃었다.



“당신 뭐지?”



그리고 올리버는 그 사냥꾼에게 눈을 돌렸다.



“내가 뭐냐고? 기억도 못 하는건가?”



“난 그렇게 후줄근한 사냥꾼을 만난 기억은 없는데.”



“닥쳐!” 그는 칼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너희들 때문에, 기껏 잡은 짐승이 달아났단 말이야!”



“난 이 근방 숲에 놓인 덫을 건드린 적 없어.”



“여기가 아니야! 이, 이 나쁜놈들이. 기껏 도마뱀을 잡아뒀는데, 너희들이 멋대로 우릴 때려눕혔잖아. 도마뱀 어딨어? 어딨냐고!”



“도마뱀이라니. 무슨?”



올리버는 전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듯 말했다.



“그 시퍼런놈 있잖아!”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서쪽 숲에서 일어났던 작은 촌극을 떠올렸다.



“아. 설마, 그 때 그놈들인가?”



“이제야 기억났나보군. 그래, 이 도둑놈들아. 너희들이 훔쳐간 도마뱀 때문에, 우리가 지금 무슨 꼴을 당했는지는 알아? 이, 이 빌어먹을 놈들이.”



“내 알바 아니야. 애들이나 풀어줘.”



“가까이오지마!” 올리버가 발을 움직이자마자 그는 칼을 거세게 치켜들었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이놈들 죽는거야. 어?”



“걔들 털끝하나라도 건드리면,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온 몸의 관절이란 관절은 모조리 분질러주고 네놈이 피를 흘려 죽을 때까지 생니를 하나씩 뽑아주지.”



올리버의 섬뜩한 협박을 들은 세 사람은 동시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 뭐! 어쨌든, 오지마. 너, 거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그는 잠시 펠릭스와 실비아를 번갈아 보다가, 실비아를 냅다 낚아채 연금술 가게의 창 밖으로 달아났다.



“이놈이! 당장 거기 안 서!”



그리고 올리버도 열린 창문 밖으로 휙 뛰어갔다. 곧, 밖에서 남자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니, 올리버! 실비아!”



그리고 펠릭스도 그들을 뒤따라 창문을 타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 사람의 비명과 고함이 섞여 밤나무 숲 속에서 메아리쳤다.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세 사람이 뒤엉켜 있었다. 그 혼잡한 덩어리에서 가장 먼저 실비아가 튕겨져 나왔다.



“실비아. 괜찮아요?”



“네. 일단은요.”



실비아는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올리버와 사냥꾼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듯했는데, 자세히 보니 사냥꾼의 발치에 다른 무언가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황금빛 눈을 끔뻑이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이게, 대체······.”



그리고 올리버도 곧 뒷걸음질치며 그 소란에서 빠져나왔다.



“야, 살려줘, 이게, 대체 뭐야! 저리가, 저리 가란 말이야! 으악!”



갑자기 사냥꾼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그는 거대한 어떤 힘에 의하여 저쪽으로 내던져져 나무에 처박혀버렸다. 그가 힘없이 주륵 미끄러져 내리자, 세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둠 속에서 다시 금빛 눈동자가 한번 깜빡이더니, 커다란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 행복의 연금술 가게에 밝혀진 불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거칠고 단단한 가죽의 색깔은 바다보다 새파랗고, 그 주먹만한 눈알은 금빛으로 번뜩였다. 이따금씩 주둥이 밖으로 날름거리는 혓바닥은, 새파랗다 못해 검게 보일 지경이었다.



“블루드래곤!”



펠릭스가 반갑다는듯 외쳤다.



“아니, 그, 그게, 왜 여기서······.”



“우릴 따라온건가요?”



실비아도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올리버 그때 당신이 한 말을 알아듣고 직접 찾아온걸지도.”



“내 말을 얘가 어떻게 알아들어? 도마뱀이잖아?”



세 사람은 반가워 하면서도, 정작 그 도마뱀이 가까이 다가오자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얘, 화난건 아니겠지?”



“올리버.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놈이랑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찍! 찌찍!”



그 때, 코튼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어둠 속에서 코튼이 실비아에게 휙 달려들었다.



“꺅! 앗, 코튼. 너였구나. 휴.”



코튼은 실비아의 몸을 타고 오르더니, 이번에는 도마뱀을 향해 휙 뛰어내렸다.



“찌찍! 찍!”



그리고 코튼은 도마뱀의 주둥이 위에서 수염을 까딱거리며 찍찍거렸다.



“올리버. 뭘 하는 걸까요?”



“낸들 알아, 펠릭스?



도마뱀이 혀를 두어번 날름거리자 코튼은 실비아의 발치에 매달려 그녀의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다.



“누구 말 통하는 사람없어?”



실비아는 아리송한 얼굴로 코튼과 도마뱀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조심조심 도마뱀 쪽으로 한 발짝식 걸어갔다.



“실비아. 조심해요!”



그리고 실비아는 아리송한 얼굴로 살며시 도마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도마뱀은 눈만 끔뻑이고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손이 도마뱀의 머리에 살짝 닿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에 실비아는 금새 손을 떼었다.



“으, 이상해.”



그리고 펠릭스는 엄청나게 부러운 얼굴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찍!”



다시 코튼이 실비아의 바짓단을 물고 늘어져, 실비아는 조심조심 손을 뻗어 도마뱀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보았다.



“찌직!”



그제서야 코튼은 실비아의 발치를 빙글빙글 돌다가, 연금술 가게의 열린 창문을 타고넘어 안으로 휙 들어가버렸다.



“음. 그래서, 뭘까요?”



그리고 실비아가 손을 떼자 블루드래곤은 잠시 혀를 날름거리더니, 역시 어두컴컴한 밤나무 숲으로 슬금슬금 돌아가버렸다.



“그러게요. 뭐죠, 이게?”



“글쎄말이야. 일단은, 그 강도 놈들부터 처리하자고.”



그리고 올리버는 아까 사냥꾼 우두머리가 처박힌 나무쪽으로 걸어가 기절한 사냥꾼을 짊어지고 돌아왔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에 새 아침이 밝아, 새로운 아침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가게 안으로 천천히 녹아들어왔다.



그 햇살을 받아 일어난 펠릭스는, 어딘가 개운치 못한 얼굴로 계단을 털레털레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누가 현관문을 열어둔듯 바깥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펠릭스는 재채기를 했다.



“에취! 아니, 누가 현관문을······.”



코를 훔치며 걸어나오던 펠릭스는, 현관문에 반쯤 걸쳐져 있는 블루드래곤과, 그 도마뱀에게 조심스레 먹이를 주고있던 실비아를 발견했다.



“이게 뭐죠?”



펠릭스는 손으로 눈을 비빈 다음 다시 현관문을 보았다. 아까와 똑같은 장면이 보였으며, 다만 실비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 하나가 달랐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음. 그러니까······꺅!”



도마뱀은 주둥이를 들어올려 실비아의 손에 들려있던 사과를 덥썩 물고 우적거렸다.



“음.”



펠릭스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다가, 크게 하품을 하며 도로 계단 위로 올라갔다.



“잠이 덜 깬게 틀림없어요.”



“그럴리가.”



올리버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오자, 펠릭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네?”



“이건 꿈이 아니야 펠릭스.” 부엌에서 올리버가 걸어나오며 중얼거렸다. “저 도마뱀. 어젯 밤에 계속 이 근처를 맴돌았다고.”



“음. 그러니까. 올리버. 자, 우리 생각을 좀 해 보자고요. 산맥 너머, 서쪽에서 살던 블루드래곤이, 산맥과 도로와 강을 넘어 이 행복의 연금술 가게까지 왔다고요? 에이. 우연이겠죠. 그럴리가······.”



그렇게 말을 하던 펠릭스는 도마뱀의 꼬리에 난 익숙한 상처 자국을 보더니, 이내 그것을 외면해버렸다.



“뭐, 잘 된 일 아니야? 갖고싶어 했잖아?”



“그건, 그렇기는 한데······음. 아무래도, 역시 이건 꿈이 분명해.”



그리고 실비아와 올리버는 뭐라 중얼거리며 도로 계단을 올라가는 펠릭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충격이 큰가봐요.”



“그러게. 펠릭스도 놀라는 일이 다 있네.”



“그러니까요. 저기, 그런데 얘. 거기 있으면 장사를 못 하는데······꺅!”



도마뱀이 몸을 들썩이자, 실비아는 재빨리 가게 안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가게 안으로 난입한 블루드래곤은 잠시 혀를 날름거리다가 벽난로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가 그 앞에 안착했다.



“올리버.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올리버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식구 하나 늘어난거지 뭐.”



영문 모를 얼굴로 도마뱀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동시에 가볍게 탄식했다. 하지만, 도마뱀은 그저 불이 좋은듯 이제 눈까지 스르르 감고서는, 팔자좋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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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8화 21.11.30 31 1 22쪽
107 107화 21.11.30 26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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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7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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