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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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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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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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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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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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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88화

DUMMY

펠릭스는 좀처럼 진정되지 못한 발걸음으로 산호항구의 거리를 돌며 여관을 찾았다. 그리고 실비아는 우울한 얼굴로 펠릭스를 느릿하게 뒤따라왔다. 두 사람 사이에 끼게된 올리버는 펠릭스를 진정시키는 한편, 실비아를 달래면서 힘겹게 거리를 걸어갔다.




마침내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여관에 방을 잡고 나서야 올리버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펠릭스. 밑에 가서 밥이라도 먹자.”


올리버는 펠릭스의 방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먼저 먹어요, 올리버. 난 계획을 짜야 하니까.”


“무슨 계획?”


“흑살구죠! 당연히. 실비아네 아버지가 지금까지 나온 물량을 모조리 사들여놓고 나한테는 단 하나도 못 팔겠다고 버티는데, 달리 흑살구를 구할길이 있나 없아 알아봐야죠!”


“괜히 짜증이야.”


올리버는 펠릭스의 방문에서 떨어져나와 이번에는 실비아의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실비아. 내려가서 식사하자.”


방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실비아? 안에 있어? 자나?”


“먼저 가요, 올리버.”


힘빠진 실비아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실비아. 배고프지 않아?”


“입맛없어요.”


올리버는 실비아의 방문 앞에서 기운을 북돋아줄 말이 없나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빈약한 말솜씨를 금방 떠올리고, 한숨을 쉬며 계단을 내려갔다.




산호항구의 여관 식당에서 맞이하는 점심식사는 꽤 만족스러웠다. 새우와 생선, 그리고 감자와 마늘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스튜는 조금 기름진 것만 빼면 아주 맛있었다. 빵도 좋았다. 여행중에 씹던 돌덩이 같은 딱딱한 건조 식량이나, 싼값에 덩어리로 파는 흑빵이 아니라 흰 빵이었다.


“이거야 원. 돈 깨나 깨지겠군.”


조용히 식사를 하던 올리버는 예상 밖의 진수성찬에 혀를 내둘렀다.


“이곳의 식사는 저렴한 편이다.”


올리버는 등 뒤에서 목소리를 듣고, 재빨리 싸울 태세를 갖추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항구에서 만났던 그 실비아의 아버지가 올리버의 등 뒤에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당신은?”


“실바누스 로즈베리 준남작.”


그는 짧고 간결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당신은?”


“올리버. 행복의 연금술 가게 채집꾼.”


올리버 역시 짧고 간결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실비아와 무슨 관계지?”


“거기 계속 서서 떠들겁니까?”


올리버는 그의 맞은 편 의자를 힐끗 눈짓했다. 그러자 실바누스는 식당 카운터로 가서 잠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다음 올리버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실비아와 무슨 관계지?”


실바누스 준남작이 다시 물었다.


“손님과 점원의 관계. 당신은?”


“부녀.”


준남작은 짧게 대답했다.


“반갑겠군. 먼 타향에서 딸을 만났으니.”


“실비아에게서 떨어져라.”


준남작의 말을 들은 올리버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스푼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싫은데.”


“귀족의 말을 무시할 셈인가.”


“글쎄. 작위와 호칭을 따졌을 때, 누가 더 위인지 아직 감이 안 잡혀서.”


“이곳에, 나 말고 귀족이 또 있나?”


“모를 일이니까.”


올리버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도 알쏭달쏭 했지만 그래도 준남작을 상대로 일단은 버티기로 했다.


“너희들은 정체가 뭐지?”


“연금술사와 그의 채집꾼. 실비아는 우리 손님.”


올리버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곧 가게 주인이 준남작 앞에 올리버의 것과 같은 음식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나는 너희 연금술사들을 믿지 않는다. 당장 실비아에게서 손 떼고, 네놈들의 더러운 숲으로 돌아가라.”


“더러운 숲이라니, 펠릭스가 들으면 아주 길길이 날뛰겠군.”


준남작은 올리버의 말을 듣고 그를 잠시 노려보았다.


“실비아와 왜 동행하고 있지?”


“그녀의 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같이 구하려고.” 올리버가 말했다.


“실비아를, 연금술사 따위로 만들 셈이냐?”


그러자 실바누스 준남작은 두 손을 가볍게 떨며,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설마. 나도 자세한건 몰라. 내 고용주인 연금술사나, 아니면 당신 딸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무슨 꿍꿍이인지.”


“계약 내용에 대해 아는대로 말해라.”


“몰라. 그래서 할 말이 없어.”


올리버는 말을 마치고 다시 스튜를 한술 떴다.


“귀족이 우스운가?”


“전혀. 하지만, 아직까지 난 당신한테 별로 잘못한게 없는것 같거든. 그 귀족의 권력이라는거,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뭣보다 여긴 서쪽이니까. 당신이 마음대로 권리를 휘두르도록 인정해주는 왕성에서 너무 멀어.”


“그래요, 준남작.”


계단 위에서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두 사람은 고개를 힐끗 돌렸다. 거기에는 계단 중간 즈음에 서서 이족을 향해 넉살좋게 웃고있는 펠릭스가 있었다.




계단을 내려온 펠릭스는 곧장 식당으로 오더니 올리버 옆의 의자를 빼서 그 위에 풀썩 앉았다.


“연금술사.”


실바누스가 말했다.


“맞습니다. 올리버와 한창 열띤 토론 중인것 같던데, 혹시 제가 방해라도 되었는지?”


실바누스는 펠릭스의 말을 듣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꿍꿍이냐.”


“광범위한 질문이군요. 좀 더 정확하게 질문해 주시죠.”


펠릭스는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말했다.


“첫 번째로, 실비아와 동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녀와 계약을 했거든요. 그녀가 주문하는 약을 만들 재료를 같이 찾아 다니기로.”


“어떤 약이지?”


“비밀입니다. 당사자도 아닌 사람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죠.”


“나는, 그 아이의 아버지다.”


조금 화난 목소리로 실바누스 준남작이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는건지? 계약 당사자가 아니니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펠릭스는 얄밉게 대답했다.


“귀족이 우스운가?”


“아하. 연금술사도 한때는 꽤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준남작 못지 않게 말이죠.”


그 말을 들은 실바누스 준남작의 미간이 크게 찌푸러졌다.




실비아와 달리, 그녀의 아버지는 솔직한 성격을 가진 동시에 충분한 참을성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표정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입 밖으로 무례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두 번째 묻겠다.”


“얼마든지요.”


가까스로 분노를 삭인 준남작의 말에 펠릭스는 흔쾌히 대답했다.


“실비아에게 접근한 이유가 뭐냐?”


“아하. 말에 어폐가 있군요. 누가 들으면, 제가 신비로운 미약이라도 만들어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를 낚아채 갔다고 오해 하겠습니다.”


펠릭스의 말을 들은 준남작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그는 맹수처럼 펠릭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아버지 앞에서 할 농담은 아니었는듯 싶군요. 아무튼, 걱정 마십시오.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도 없고, 또 흥분하지도 않으니까.”


그러나 펠릭스의 말은 실바누스 준남작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듯 보였다. 그래서 펠릭스는 재빨리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제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약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어떤 약이지?”


“비밀입니다.”


“왜 약을 만드는데, 그녀가 동행해야 하지?”


“설명하기도 귀찮고, 설명해 줄 의무도 없으며, 설명해 봤자 이해나 하실런지 모르겠군요.”


“말 해!”


준남작이 테이블을 내리치자 가게 주인도 올리버도, 다른 손님도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약을 만드는 약재에 그녀의 마음이 담기도록 하려고요.”


“마음이라.” 준남작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너희 연금술사들은 항상 그렇지. 허깨비와 꿈을 헷갈려 하는 어린 소녀에게 다가가, 더럽고 때묻은 추잡한 허상을 꿈이라고 속여 팔아치우지. 감언이설로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를 꼬드겨, 세뇌하여 자기 노리개로 삼아.”


“터무니없는 모함이군요. 만약, 그런 연금술사를 제가 발견한다면, 저는 그놈이 아침에 마실 물에다가 사지를 마비시키는 약을 몰래 타 줄겁니다.”


펠릭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온 거리에 사지마비 환자가 넘쳐나겠군.”


“아하. 그렇다면, 그들은 연금술사가 아니겠죠. 연금술사는 귀족과 비슷해서, 되고싶다고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자칭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 잡배들에게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습니다. 가짜 연금술사들에게 속는 사람이 바보 아닙니까?”


“실비아는 바보가 아니다!”


다시 준남작이 고함을 치며 외쳐, 식당에 머물던 손님들은 재빨리 식사를 마무리짓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거 참. 자칭 연금술사에게 크게 데였나봅니다?”


“됐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지. 더이상 지껄였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것 같으니까. 마지막으로 묻겠다.”


올리버는 준남작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그가 정말로 대단한 인내심을 가졌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흑살구가 필요한 이유가 뭐지?”


“실비아가 주문한 약의 재료입니다.” 펠릭스가 말했다.


“어떤 약인지 알려줄 수도 없다는 그 약의 재료 말인가?”


“네. 잘 아시는군요.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과는 말이 잘 통해서 참 편하단 말이죠.”


“그렇다면, 더더욱 팔 수 없다.” 준남작이 말했다.


“네?”


“정체도 모르는 약을 만드는 재료를 팔 수는 없다. 그것도, 내 딸에게 줄 약의 재료로 쓰인다면, 더더욱 팔 수 없다.”


“흠. 그렇습니까? 재고의 여지가 조금도 없는겁니까?”


“빠르면 일 주일 안에 화물 상자가 모두 배에 실린다. 그로부터 한 달 뒤면 배가 출항한다. 다시 한 달 뒤면 배가 동쪽 항구에 닿을 것이고, 거기서 다시 한 달이 지나면 어느 허름한 시장 거리에서도 흑살구를 찾을 수 있겠지.”


“바다 위에서 이리저리 요동치며 부딪히고, 사람들의 손에 주물럭거려진 흑살구에 무슨 약효가 있겠습니까? 지금 팔게 아니라면 저한테는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내겐 잘 된 일이로군. 나는 네 그 수상한 놀음에 어울려 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펠릭스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나도 이 여관에 머문다.”


갑자기 준남작이 뜬금없이 선언했다.


“오호, 얼마든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까?”


“여기 머물며 네놈들을 감시하는 한편, 실비아를 설득하여 데려가겠다. 방해한다면, 귀족의 권력을 동원해서라도.”


“귀족. 귀족이라.”


펠릭스는 그 말을 들었는데도 전혀 긴장하는 기색없이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뭐,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귀찮게 남의 가족사에까지 끼어들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저는 계약은 지키는 연금술사고, 손님이 원하는 바로 그 약을 만들어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연금술사 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게 필요한 바로 그 재료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고. 그러니 여기에 머물기로 작정했다면, 제가 귀찮게 구는 것쯤은 감안하시길.”


실바누스 준남작은 대답하지 않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드십니까? 음식이 식을 텐데요.”


“입맛이 없다.”


준남작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게 주인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내 참. 아버지나, 딸이나. 어떻게 저렇게 똑 닮았는지.”


펠릭스는 넉살좋게 준남작의 앞에 놓였던 스튜를 한 술 떴다.


“안 그래요, 올리버?”


“몰라. 난 상관 안 할래.”


올리버는 빈 스튜 그릇을 테이블 가운데로 밀며 말했다.


“나는, 네 그 귀족과의 암투에 시달리기 싫어.”


“뭐, 마음대로 해요 올리버. 하지만, 그렇다고 방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을 건 아니죠?”


“왜, 어디 가게?”


“그래요. 우리들도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죠. 남작이 자비를 베풀어 줄 때까지 입 벌리고 가만히 누웠을 생각이라고는 나는 요만큼도 없거든요.”


“그래. 하긴, 그래야지. 그래. 그럼 슬슬 가 볼까?”


“올리버! 난 아직 식사 시작도 못 했어요!”


테이블에서 올리버가 기세좋게 일어나자, 펠릭스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아, 그렇네. 그럼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올라오라고.”


“그래요. 그럼, 수고해요 올리버.”


“수고는 네가 해야지.”


펠릭스는 올리버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가게 주인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위층으로 올라온 올리버는 실비아의 옆 방에서 막 걸어나오는 실바누스 준남작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안녕하시오 준남작.”


준남작은 가만히 서서 올리버를 쳐다보았다.


“펠릭스가 무례하기는 해도, 뭐. 악의가 있는 녀석은 아니니까. 아무튼, 수고하시오.”


“실비아는 어디있지?” 준남작이 말했다.


“적어도, 제 방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펠릭스의 방에도 없고.”


“어디있냐고 물었다.


“물어볼 사람을 잘못 찾은듯 싶군요. 가게 주인이 숙박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내게 사실대로 대답하기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나?”


“제가 사실대로 말한들, 믿어 주실지 몰라서 그랬습니다. 아무튼, 숙박부를 직접 확인하는편이 모두에게 낫지 않겠습니까.”


“네 방을 보겠다.”


‘너무 막나가는군.’


올리버는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이 다 그러려니 하며 자기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실바누스 준남작은 올리버의 방을 내키는 만큼 뒤져본 다음에야 빠져나왔다.


“없군.”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 방에 없다고.”


“실비아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준남작이 위협적으로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며 말했다.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난 어린애 한테는 눈꼽만큼도 관심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준남작.”


그러나 올리버의 말은 전혀 뜻밖에 실바누스 남작의 무언가를 건드린듯 했다. 그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더니,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추잡하고 더러운 난봉꾼들은! 입으로는 도덕군자 행세를 한다! 전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며 살짝 부끄럽다는듯 얼굴을 붉히며 웃지. 그런 놈들이 밤의 그림자에 자기 몸을 가린 채, 하룻밤 사이에 수십명의 여자들을 팔 아래에, 허리 사이에 끼우고 놀아난다. 네놈의 그 혓바닥은 아무것도 증명해주지 못해!”


“아 좀, 조용히좀 해요!”


그러자 방문을 박차고 실비아가 뛰쳐나와 그의 아버지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실비아와 실바누스 준남작은 복도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러자 졸지에 둘 사이에 끼게된 올리버는 어색하게 벽으로 슬금슬금 달라붙었다.


“실비아! 당장 집으로 돌아가자.”


실바누스 준남작이 선언했다.


“싫어! 내가 뭐때문에 집에서 뛰쳐나왔는데, 날 또 집으로 데려가려고요?”


실비아가 준남작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저 정체도 알 수 없는 수상한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놔 둘 수는 없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 위험하다는 자각이 조금도 없는거냐?”


“전쟁 끝나고 죄다 동쪽 왕국에 통합됐는데, 국경이 어딨어? 그리고, 안전한 길로만 다녔단 말이야. 하나도 안 위험했어!”


올리버는 그 동굴이나, 그 수상한 마차나, 폐허가 된 역참 따위를 떠올리며 헛기침을 했다.


“됐다. 변명은 그만해라, 실비아. 돌아가자. 그만하면 충분히 즐기지 않았느냐? 집에서 뛰쳐나와 질릴 만큼 자유롭게 지내지 않았느냐? 그만 하면, 놀 만큼 논 것 아니냐? 이제 슬슬 귀족으로서······”


“난 놀러나온게 아냐!”


“그럼!” 준남작이 흥분하여 외쳤다. “뭣하러 집을 뛰쳐나간거냐?”


“저기. 잠시, 미안한데.” 올리버는 얼굴을 붉히며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는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들었다.


“뭐지?”


준남작이 올리버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다른건 아니고. 저기, 아까 계단 쪽에서 가게 주인이 바르르 떨고 있는걸 얼핏 봤는데. 그러니까, 고함 치며 싸우는건 슬슬 자제하는게 좋지 않겠어?”


올리버가 실비아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난 내 맘대로 할 거야. 안 돌아가.”


그리고 실비아는 도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실비아. 네가 또다시 남에게 속는 꼴을, 이 아버지가 두 눈 뻔히 뜨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라는 뜻이냐? 나는,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준남작도 실비아의 닫힌 방문에 대고 속이 풀릴 만큼 외친 다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내 참.”


그리고 올리버는 계단 위로 얼굴을 빼꼼 내민 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웃었다.


“고생이 많소.”


“그러게 말입니다.” 가게 주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가족 손님을 받는 것을 재고해야 겠군요.”




위층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자, 올리버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쉬려던 마음이 싹 달아났다. 괜히 거기 있다가는 공연히 두 부녀의 싸움에 다시 휘말릴 것 같은 귀찮은 예감이 들어 올리버는 도로 계단을 내려왔다.


“올리버. 시끌벅적 하던데요.”


태연하게 식사를 하던 펠릭스는 올리버가 그의 맞은편에 앉자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똑 닮았군. 쉽게 흥분하는 점이나······.”


“그 새까만 머리카락 말이죠. 아니면, 살짝 잿빛이 섞인 눈동자나. 안 그래요?”


올리버는 잠시 눈을 끔뻑이며 생각했다.


“난 모르겠는데.”


“눈썰미 하고는. 당신은 사냥거리밖에 눈에 안 들어오죠?”


“뭐, 나쁠건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펠릭스는 빈 스튜 그릇에 스푼을 땡그랑 내려놓았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려고?”


“찾으러 가야죠. 흑살구.”


펠릭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디로?”


“사막 위로요.” 펠릭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사막! 방금 거길 빠져나왔는데, 도로 사막으로 간다고?”


“왜이래요, 올리버. 흑살구는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에요. 그러니, 원산지를 찾으려면 당연히 사막을 뒤져야죠.”


“아니. 그래도. 사막을 뒤진다고 그 흑살구를 찾을 수는 있는거야?”


“아직 모든 흑살구를 수확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실바누스 준남작이 구매했다는 그 흑살구도 지금까지 수확한 것들에 한해서겠죠. 찾아보면 아직 계약하지 않은 농장을 찾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야생 흑살구 군락을 찾을지도 모르죠. 아무튼, 일단은 사막을 뒤질 수밖에 없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펠릭스의 말을 듣던 올리버는 갑자기 떠올랐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아까, 세 가지 떠올랐다고 했잖아? 그럼 나머지 두 가지 방법은?”


“세 가지잖아요.” 펠릭스가 말했다.


“뭐?”


“세 가지. 맞잖아요. 거래하지 않는 농장을 찾기, 야생 흑살구 군락을 찾기.”


“나머지 하나는?”


“준남작한테서 사기.”


펠릭스가 대답했다. 그러자 올리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이번에는 힘든 여정이 될 것 같군.”


“언제는 편했다고요. 자, 기운차려요 올리버. 그럼 슬슬 나가자고요.”


“어디로? 사막으로?”


“앞서나가기는! 사막으로 우릴 안내 해 줄 안내인을 찾아야죠!”


펠릭스는 올리버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실비아는 안 데려가?"


그러자 펠릭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데려가긴 해야하겠는데. 사실, 저모양인 상태로 데려가본들······.”


“저도 가요.”


마침 계단을 내려오며 실비아가 말했다.


“귀가 밝군요.”


“당연히 가야죠. 제 약에 쓸 재료를 찾는건데, 저를 빼놓으면 어떡해요? 제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찾아봐 주겠어요.”


실비아는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결연해 보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심술이 났어요?”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의 상태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파악했다.


“심술은요! 아무튼, 간단하게 먹고 바로 갈테니까, 둘 다 나설 채비나 해 둬요.”


“아이구, 네네. 그럼, 느긋하게 식사하세요. 또 가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내지나 말고.”


“펠릭스!”


실비아가 위협적으로 손을 들어올리자마자 펠릭스는 잽싸게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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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화 21.11.21 29 1 22쪽
» 88화 21.11.20 27 1 20쪽
87 87화 21.11.20 35 1 23쪽
86 86화 21.11.19 27 1 22쪽
85 85화 21.11.19 29 1 23쪽
84 84화 21.11.18 28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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